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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덩굴을 들추면 주렁주렁 달린 참외가 엄청나다.
ⓒ 전갑남

장마가 주춤한 사이 더위가 몰려왔다. 한여름을 알리는 소서(7일)가 지나서일까? 더위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습한 데다 후덥지근한 날씨에 짜증이 난다. 이럴 땐 점잖게 소나기라도 내렸으면 좋겠다.

사람만 더위에 지친 것일까? 산과 들의 초록은 그야말로 싱그러움 자체이다. 만물상이 차려진 우리 텃밭에도 녹색의 물결이다.

내가 가장 공을 들여 가꾸는 고추는 키가 허리까지 자랐다. 아래로 쭉쭉 내리 뻗어 달린 고추가 엄청나다. 줄기가 무성한지라 벌써 네 번째 줄을 묶을 때가 되었다. 지금 상태로 봐서는 작년보다 훨씬 실한 것 같다.

고구마 줄기도 고랑을 덮기 시작했다. 이제 고랑에 풀매는 일은 한시름 놓았다. 옥수수, 토란을 비롯한 작물들도 자라는 게 가속도가 붙었다. 며칠 전 씨를 넣은 서리태도 삐죽삐죽 떡잎을 내밀고 있다. 모를 부어 옮긴 들깨는 땅 맛을 본 듯 고개가 빳빳하다.

욕심 같아서는 장마철을 잘 견뎌 지금 기세를 계속 이어갔으면 좋겠다.

와! 언제 이렇게 달렸지!

▲ 풍성함이 넘치는 우리 참외밭이다.
ⓒ 전갑남
덩굴을 뻗은 참외밭도 기세가 장난이 아니다. 이리저리 줄기가 얽히고 설켜 발 디딜 틈이 없다. 요즘 들어 부쩍 자랐다. 고개를 쳐든 순을 쳐줘야 할 것 같다. 손을 씻고 저녁 준비를 하러 들어가는 아내를 불렀다.

"여보, 참외 순 질러주자!"
"손자덩굴을 잘라줘야 되는 거지?"

아내가 한 수 배워야겠다며 참외덩굴을 헤치며 들어왔다. 참외 순지르기는 늘 내 몫이었다. 덩굴을 들춰보며 호들갑이다.

"와! 참외가 바글바글해!"
"뭐? 바글바글! 표현이 그럴 듯하네."
"여기 좀 봐! 굵은 것도 많고, 엄청 달렸어!"
"순을 질러주니까 굵어진 거야!"

아내 눈이 휘둥그레진다. 여기저기 주먹만하게 달린 참외가 잎 뒤에 수도 없이 숨었다. 며칠 상간에 몰라보게 커졌다. 열매는 열매대로 소담해서 보기 좋고, 활짝 핀 꽃에 또 다른 기대를 갖는다. 꽃을 찾아 벌들이 윙윙거리며 이리저리 움직인다.

아내가 순을 지르다 허리를 펴고 묻는다.

▲ 참외밭에 벌 손님이 찾아왔다.
ⓒ 전갑남
"참외꽃에도 꿀이 들어 있나?"
"그럼! 수꽃, 암꽃을 옮겨 다니니까 수정이 되는 거야!"

벌들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녀석들은 꽃 속 깊숙이 머리를 처박고 있다 금세 자리를 옮긴다. 이리저리 옮겨 다닐 때마다 자손을 이어가는 신비가 펼쳐지리라. 눈에 보이지 않은 자연의 질서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참외 재배에도 요령이 있다

5월 초순경, 우리는 스물 대여섯 그루의 참외를 심었다. 참외 모를 심은 뒤 가뭄이 들어 뿌리를 내리는 데 애를 먹였다. 시들시들 몸살을 몹시 앓았다. 올해 참외 농사는 틀린 게 아닌가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런데도 시일이 지나 몇 차례 비를 맞고 씩씩하게 깨어났다. 관심 밖에서 제 구실을 한 참외가 어찌나 반가운지! 어미덩굴에서 아들덩굴이 뻗고부터 자라는데 탄력이 붙었다.

나는 참외를 몇 해째 심었다. 처음 가꿀 때는 호박처럼 심고 놔두면 저절로 열매가 달리는 줄 알았다. 그래 첫해는 잎만 무성하였고, 달리는 게 시원찮았다. 참외 재배도 요령이 있었던 것이다.

이듬해 심을 때는 옆집 할머니가 덩굴 순지르기를 가르쳐주셨다. 직접 밭에 오셔 시범을 보여주셨다.

▲ 참외꽃, 암꽃과 수꽃이다.
ⓒ 전갑남
"이게 참외 아들덩굴, 이게 손자덩굴이야! 암꽃, 수꽃은 알지? 아들덩굴은 자라도록 내버려둬야 돼. 손자덩굴은 세 마디에서 잘라내야 씨알이 굵어지는 거야. 아들덩굴도 열대여섯 마디에서 잘라버려! 그리고 무성해지면 삐죽삐죽 올라온 순은 낫으로 후려치면 돼!"

할머니가 알려준 뒤 참외 재배 요령을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전문가 수준은 아니지만 매년 수월찮게 거두고 있다. 이치를 알고 보면 별거 아니지 않는가?

참외는 어미덩굴에서 아들덩굴 두세 가지만 뻗도록 유인한다. 아들덩굴에서 수꽃이 핀다. 아들덩굴에서 손자덩굴이 나오는데 여기서 암꽃이 핀다. 암꽃이 많이 피게 하면 참외가 자잘하다. 그래서 손자덩굴은 세 마디에서 잘라줘야 한다.

열매는 많이 달리게 하는 것보다 실하게 자라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초보농사꾼은 욕심이 앞서는 경우가 많다. 좁은 면적에 작물을 배게 심는 것도 그렇고, 순지르기를 하면 수확량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것이다.

충분히 간격을 띄워 심고, 제때 순지르기를 하여 기르면 열매가 튼실하다. 그러면 자연 수확량이 많아진다.

꿀맛 같은 참외가 기대된다

아내가 참외 덩굴을 헤집고 다진다. 얼굴에 기쁨이 가득하다.

"우리 참외는 언제나 맛볼 수 있을까?"
"한 열흘 정도 지나야 노랗게 익을 걸!"
"아직도 그렇게나 기다려야 돼!"
"이 사람, 참외는 수정되고 한 달 정도 지나야 익는 거야!"

아내는 벌써 참외 따먹을 생각부터 한다. 탐스럽게 익은 참외를 맛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마음이 부푼 모양이다. 참외가 노랗게 익기 시작하면 하루에도 수십 개씩 따게 되리라.

두 판자에 길게 심어놓은 참외밭이 정말 풍성하다. 잘 썩은 두엄과 깻묵으로 밑거름을 하여 그럴까? 기세 좋게 뻗은 덩굴에서 올핸 많은 수확이 기대된다.

▲ 튼실하게 달린 참외. 머지않아 노랗게 익을 것이다.
ⓒ 전갑남
넉넉한 참외밭은 이웃과 나눠먹는 재미가 있어 좋다.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면 우리는 친지들을 비롯하여 여러 사람들과 나눠먹는다. 냉장고에 보관한 참외를 툇마루에서 깎아먹으면 여름철 주전부리로도 그만이다.

땀이 많이 나는 여름철, 알칼리성 식품인 참외를 많이 먹으면 몸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참외는 수분 함량이 90%이지만, 단백질과 지질, 당질이 풍부하고 칼슘, 인 등 무기질 함량이 높다. 비타민C가 많이 들어 있어 피로회복에 좋다.

한참을 구부려 순을 다 지른 것 같다. 허리를 펴며 아내와 나는 마주보며 무언의 미소를 짓는다. 큰 부자라도 되는 듯 마음이 넉넉해진다. 벌써 꿀맛 같은 참외 맛이 입안에 감돈다. 아마추어농사꾼이 힘들어도 애써 가꾸는 재미가 이런 게 아닐까?

참외밭을 빠져나오며 아내가 한마디 한다.

"우리 원두막이라도 차려야 하는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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