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피지 않은 곳에서도 아름다움은 있다

퇴근하자마자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밭에 나왔다. 부추밭에 듬성듬성 꽃이 피었다. 며칠 가뭄 끝에 한 차례 내린 비를 맞더니만 파릇파릇해졌다.

"부추꽃이 아주 예뻐요."
"세상에 안 예쁜 꽃이 있나?"

"자세히 좀 봐요. 얼마나 예쁜지."
"그렇게 예뻐?"

다른 일을 보려는 나를 아내가 잡아끌며 가까이서 좀 보란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잔잔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살피지도 않은 곳에 언제 이렇게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을까?

▲ 하얀 꽃잎의 부추꽃. 잔잔한 소박한 멋이 있다.
ⓒ 전갑남
부추는 보통 7월, 8월에 꽃이 핀다. 백합과에 해당하는 부추꽃은 꽃자루에서 길게 나와 우산 모양의 꽃차례를 이룬다. 하얀 꽃잎이 소박하다. 꽃잎과 수술은 6개씩으로 꽃밥은 노란색을 띠어 더 예뻐 보인다.

잎을 먹는 채소는 꽃이 피면 수명을 다한다. 종자를 만들고 자손을 퍼트리지만 잎은 세서 먹지 않는다. 부추도 꽃장대가 올라오면 베서 버린다. 그러면 얼마 안 있어 또 새순이 올라온다.

우리는 꽃이 피기 전에 미리 잘라먹었다. 그냥 놔두었더라면 죄다 꽃이 피었을 것이다. 지금쯤 흐드러지게 핀 부추꽃을 보았을 것이다. 꽃동산은 못되었지만 대신 부추는 넉넉하게 베먹게 되었다.

바람결에 가늘게 떠는 잎과 곧게 고개를 쳐든 꽃이 묘한 조화를 이루는 것 같다.

부추 부침개로 막걸리 한 잔

보름 전 잘 숙성한 깻묵을 뿌렸더니 거름기를 먹어서 그런지 부추가 탐스럽다. 호미로 밭을 일궈 김을 매주자 딱딱한 땅이 부드러워지고 깨끗해졌다. 아내가 칼을 찾는다. 부추를 벨 모양이다.

▲ 우리 부추밭의 일부. 꽃은 피었어도 잘라먹을 게 많다.
ⓒ 전갑남
"부추 겉절이나 해보지?"
"겉절이는 다음에 하고, 부침개나 하려고요."

"해물이 있으면 더 맛있는데."
"미리 오징어를 사다 놓았지요."

해물을 넣어 부추 부침개를 준비한다니 은근히 막걸리 생각이 난다.

"그럼 막걸리는?"
"그건 당신이 알아서 해요."

나는 막걸리를 참 좋아한다. 땀 흘려 일하다 먹는 시원한 막걸리는 타는 목을 적셔주고도 남는다. 때론 허기도 달래준다. 그래서 막걸리를 농주라 하지 않았나 싶다.

예전 아버지께서 새참으로 사기그릇에 넘실넘실 부은 막걸리를 쭉 들이켜시고 "캬!" 소리를 내며 입술을 닦던 모습이 생각난다. 그때 안주로는 뜰에 있는 부추를 베다가 해먹는 부침개가 제격이었다. 막걸리 한 잔에 따끈한 부침개를 손으로 찢어 간장에 찍어 먹어본 사람은 그 맛을 알리라.

부추는 지방마다 부르는 이름이 다르다. 고향이 전라도인 우리는 '솔'이라 부른다. 충청도에선 '졸', 경상도에서는 '정구지'라 한다. 이름도 가지가지지만 부추는 맛과 영양에서 여느 채소에 뒤지지 않는 좋은 식품이다.

부추만큼 영양이 풍부한 채소도 드물다

부추는 들풀이나 마찬가지다. 씨 뿌리고 난 후 신경 써서 돌보지 않아도 잘 자란다 하여 '게으름뱅이풀'이란 이름도 있다. 그만큼 야생성이 강하다는 뜻이다.

늦가을 된서리를 맞으면 말라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추운 겨울 땡땡 언 땅에서 썩지 않은 뿌리로 질긴 생명을 이어간다. 봄이면 따스한 기운에 기지개를 켜듯 새싹이 올라온다.

▲ 파릇파릇 자란 싱싱한 부추이다. 잘라먹기에 딱 알맞다.
ⓒ 전갑남
부추는 봄부터 자라는 족족 베먹는다. 웃거름을 적당히 주고 사이사이 자라는 김만 매주면 수차례 잘라먹을 수 있다.

강인한 생명력만큼이나 몸에 좋은 식품으로도 알려졌다. 양기를 돋워주는 식품으로 손꼽혀 '기양초(起陽草)'라고도 부른다. 피를 맑게 하고, 혈액순환을 촉진하는 좋은 효능이 있어 성인병에도 좋다고 한다.

배추김치나 오이소박이 담글 때 부추를 넣으면 독특한 향으로 맛을 돋운다. 또 부추와 된장은 음식궁합이 잘 맞는다. 그래 된장국 끓일 때 함께 끓여 먹기도 한다. 된장은 향암효과가 뛰어나지만 다량의 염분(나트륨)이 많아 문제다. 그런데 부추 속에 많이 들어있는 칼륨이 체내로 배출될 때 나트륨을 끌고 나온다. 된장에 없는 비타민A와 C를 보완해주기도 한다.

맛도 그만인 부추 요리

▲ 작은 화병에 꺾꽂이를 한 부추꽃
ⓒ 전갑남
아내가 조심스럽게 부추를 벤다. 부추를 베는데도 요령이 있다. 최대한 흙 가까이 밑동을 잘라야 한다. 그러면 새로 올라온 것을 잘라먹을 때 다듬기가 수월하다. 식탁에 자주 오르지 못한 것은 다듬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막걸리 한 병을 사오는 동안 아내가 부침개 준비를 하느라 부산하다. 풋고추, 양파를 송송 썰고, 애호박도 체 썬다. 모둠 채소에다 부추를 넣고, 손질한 오징어와 함께 밀가루 반죽을 한다.

프라이팬 위에 기름을 두르고 반죽을 올려놓자 지져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노릇노릇 익혀진 부침개의 구수한 냄새가 주방에 가득하다.

아내가 막걸리를 대접에 가득 따라 놓는다. 부추를 다듬다 추려놓은 부추꽃을 화병에 꽂았다. 분위기로도 취하는 것 같다.

나는 단숨에 한 잔을 비웠다. 부추 부침개의 향긋한 맛이 안주로 그만이다. 호호 불며 먹는 뜨거운 부침개가 아주 맛있다.

못 먹는 술을 조금 마신 아내 얼굴이 불그스레하다. 맛있는 안주로 막걸리를 두어 잔 거푸 마시자 기분이 좋다. 한결 서늘해진 가을 저녁이다. 오늘 밤은 세상모르고 곤한 잠이 들 것 같다.

▲ 부추와 해물이 들어간 부침개. 막걸리 안주로 그만이다.
ⓒ 전갑남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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