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다락골로 가는 길이 더 아름답다.

막 겨울로 들어서고 있는 계절의 감흥에 젖어 쓸려 내린 낙엽을 즈려 밟으며

천천히 작은 곡선을 그리며 이어진 논길을 따라 다락골로 들어왔다.

코끝에 와 닿는 풋풋한 배추냄새가 차장 안으로 밀려들어와 아침의 상쾌한 맛을

더해준다. 토요일 아침 대입 수능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모처럼 늦잠에 빠져

있는 고3딸아이와 중3아들 녀석을 깨워 아침밥을 챙겨주고 서해안고속도로를 질주했다.

옆지기는 전날 김장준비 때문에 먼저 다락골로 떠나보냈다. 요즘 들어 잦은 고장으로

가계부 지출내역을 채우고 있는 열 살 갓 넘은 승용차가 신경을 거슬리게 한다.

마지막 잎사귀마저 떨구어내고 은행열매만 수북이 달린 은행나무에 시선이 고정된다.

야! 하고 감탄사가 입 밖으로 흘러나온다.

 계절을 잃고 진정 초록의 진수를 보여 줄 듯 하며 싱싱한 모습 그대로였던 은행나무 잎이 불과 2주 사이에 모두 나뭇가지에서 이탈해 버렸다. 자연의 위용에 그저 인간이 한없이 작아지는 느낌이다.

 

 오늘은 400포기의 배추 모종을 구입하여 밭에 이식시킨 지 10주째가 되는 날이다. 궂은 날씨로 인한 일조량부족과 중공군의 인해전술을 떠올리게 하는 계속된 달팽이와의 전쟁을 잘 이겨내고 배추들이 속이 들어찰 대로 들어찼다. 이식할 때 살충제한번과 이식 후 3주째에 요소비료 한 스푼을 웃거름으로 시비했을 뿐인데도 잘 자랐다. 알타리무만 약간 덜 찼을 뿐 다른 갓, 무, 대파, 쪽파 등 김장채소들이 잘 영글었다.

 오늘과 내일 이번 주말을 이용해서 우리 가족은 김장을 한다. 옆지기의 형제5가족과 장모님이 동참한다.

 궁금한 마음에 한 포기를 뽑아 배추를 쪼개 속살을 한 입 깨어 무니  배추가 참 달착지근하고 고소하다.  노랗고 결이 촘촘하게 속이 들었다. 작년에는 배추파동으로 수확도 못하고 밭에서 썩어나간 배추들이 부지기수였는데 올해는 기상여건이 좋지 않아 배추며 무 등 김장 채소 값이 금값이란다. 주변 이웃들에게 물어보니 밭떼기로 포기당 1500원씩 거래했다 한다.  이웃과 나눔 할 양을 정하려고 옆지기에게 형제들과 상의해 김치필요량을 산정하라했더니 서로 많이 가져가겠다고 아우성이라 했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어쩔 수 없이 이웃들에게 나눔 할 양을 조금 줄이기로 했다. 주변 분들과 70포기정도 나눔하고 옆지기 자매 5가족이 모여 대략250포기를 김장할 예정이다.

 옆지기가 벌써 150여포기 가량을 통이 큰 것은  사등분하고 작은 것은 이등분하여 소금에 절여놓고 있다. 소금은 작년에 고향에서 가져와 간수를 쪽 뺀 천일염을 이다. 만져보니 보슬보슬하다. 산 속에 마련된 취수원에서 물을 받아 사용하는 상수도인 관계로 가을가뭄이 심했던 작년 김장때는 물 부족으로 옆집에서 물을 공수해오는 어려움이 겪었는데 올 해는 충분한 가을강우로 그런 수고는 덜 듯 싶다.

 옆지기에게 너무 짜지 않게 절임 할 걸 당부한다.

 

 오후 들어 나눔 할 배추를 가지러온 이들에게 배추뿐만 아니라 무, 쪽파, 갓 등 농장에서 재배한 김장에 필요한 재료들을 실려 보내고 은행열매가 필요한 마을 이웃 분들을 불러들여 주워 들 가라 하면서 그 분들에게서 동네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은행 줍기에 몰두한다. 비료포대 가득 한 포대씩을 들쳐 보낼 무렵 오전 근무를 끝내고 서둘러 왔다며 인천에서 처재내외가 합세하여 일을 거든다.

 쪽파, 마늘을 깐다. 미나리를 다듬는다. 아낙들은 김장준비에 여념이 없다.

 원두막 양 끝기둥에 줄을 매고 무시래기를 열심히 매달고 있는 은행 독을 심하게 타는 동서에게 갈색으로 퇴색되어 영글대로 영근 서리태 수확을 부탁하고 은행 줍기를 계속한다.    쭈그리고 앉아 하나하나씩  주워대려니 허리며 무르팍이 저려온다. 서서히 지쳐가고 출출해진다. 배추속쌈에 막걸리 생각이 절로 난다. 하던 일을 내팽개치고 동서를 붙잡고 술부터 찾는다. 쭈그리고 앉아 약간 덜 절여진 배추의 노란 속살에 마시는 막걸리가 기가 막히다.

 익숙하지 않는 일을 하나라도 더 도와주려는 동서의 마음이 너무 곱다.

 오후 해가 한 뼘밖에 남지 않았다.

 해맑은 풍경을 취할 겨눌 도 없다. 은행 몇 개를 주웠더니 해가 어느덧 뉘엿뉘엿 서산마루에 걸려있다.

 스산한 기운이 돌더니 가늘고 찬비가 내린다.

 서리태를 수확하는 동서는 잘라 낸 콩대를 작은 단으로 묶어 원두막으로 안고 옮기려 여념이 없다. 삽시간에 주변이 어둠의 커텐이 드리워진다.

 조물조물 무친 여러 나물로 저녁을 마친 형제들이 맛깔스런 김치 담그는 법에 이야기가 집중된다. 원탁에 둘러앉아 마늘껍질을 벗겨내면서 그 동안 보고 들었던 이야기를 들추어낸다. 팔도의 김치비법들이 총 망라된다. 무슨 양념을 넣을 것이며 어떤 젓갈로 뺄 것인지......, 분위기가 사뭇 진지하고 엄숙하다. 양념으론 올여름 우리부부를 울고 웃게 했던 매운맛과 단맛이 함께 어울린 태양초고추와 올 봄에 수확하여 서늘한 원두막에서 보관하고 있던 알이 단단한 햇마늘을 사용한다. 생강은 옆집 어르신이 김장때 사용하라 한 움큼 가져왔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생새우를 동서 네가 소래포구에서 공수해 왔고 새우젓, 멸치액젓, 간재미액젓, 까나리액젓은 장모님이 손수 담그셔서 군산에서 들고 오셨다. 생활전선에서 일을 마친 형제들이 띄엄띄엄 다락골 쉼터로 찾아들고 10시가 넘어서 시간에 마지막으로 대전에서 출발한 차가 어둠을 깨운 후 무거운 적막감에 휩싸여든다.

 

 툭! 툭! 툭! 툭!

 규칙적으로 울려대는 마늘 찧는 소리에 눈을 뜨니 4시가 조금 못 된 시간이다.

 먼저 일어난 몇 분이서 마늘을 찧는다. 갓을 썬다. 파를 자른다. 무를 썬다. 각자 가져온 도마 위에 김칫거릴 올려놓고 야단법석이다. 무는 김장할 때 바로 채를 썰어내야 달착지근한 맛을 유지할 수 있다며 (전날 무채를 썰어놓으면 쓴 맛이 생긴다함.)서둘러 일어난 남정네들도 가세하여 칼춤을 추어댄다. 거실 한가운데다 커다란 다라이를 놓고 양념 섞기가 시작된다. 경험 많으신 장모님과 큰 동서가 호흡을 맞춘다. 고춧가루를 붓고  펄펄 끓여  식혀 놓은 찹쌀 풀에 콩가루를 섞어  마늘, 생강과 함께 액젓을 넣으면서 비율을 맞추며 잘 혼합시킨다. 아직도 식지 않는 찹쌀 풀에 온기가 남아있다. 잘 다져진 양념장에 무채, 갓, 미나리, 대파, 쪽파 등을 넣고 다시 한 번 잘 섞는다. 커다란 다라이가 온갖 양념에 넘쳐난다. 6시가 넘어선 시간에 밖에 나오니 한기가 옷깃을 파고든다. 불빛에 억새꽃이 처연하게 나부끼고 있다. 올 겨울 들어 처음으로 얼음이 제법 두껍게 얼어있다. 소금에 절여 숨이 죽은 250포기 절임배추가 수북이 쌓여있다.

 각자 가져온 김치 통을 옆에 놓고 김치 담그기를 시작한다.

 날라다 준 절임배추를 가운데 놓고 각자 작은 함지박을 하나씩 앞에 끼고 절여진 배추를 하나씩 들고 와 그 속에 양념을 비벼 넣는다, 배추 속살을 한 겹 한 겹 들추며 정성스럽게 양념을 버무려 넣는다,  아낌없이 양념을 버무려 넣는다.

 너의 것이 더 곱네! 내 것이 더 곱네!

 

서로들 경쟁하며 김치 통에 꽉꽉 채워 넣는다. 남정네들도 역할을 분담하여 양념을 퍼 주는 이, 절임배추를 나르는 이, 가득한 김치 통을 깨끗이 닦고 옮겨 놓는 사람. 모두들 한 마음이 된다. 어느 틈엔 삶아낸 잡내가 없고 육질이 쫀득쫀득한 돼지고기수육에 배추 속살 양념장을 곁들이니 부드러운 육질에 씹는 맛이 별미다. 아침부터 막걸리도 서너 잔 들이켜니 든든함을 더해준다.

 풍만해진 배를 두드리며 손수레에 연장을 챙겨 싣고 마늘 심을 밭으로 이동한다.

 이번에는 난생처음 씨앗을 심어본다는 큰 동서가 동행한다.

 새 찬 바람이 길을 붉게 만든다.

 오늘 김장때 잘 사용한 마늘을 내년 김장거릴 준비하기위해 파종한다. 퇴비장에서 손수레로 다섯 차 퍼 가져와 밭에 골고루 뿌리고 그 위에 복합비료, 토양살충제, 은행잎을 뿌리고 쇠스랑으로 흙을 파 퇴비등과 흙이 잘 섞이게 뒤집어 밭을 일군다.

 숨이 차서 하얀 입김이 넘쳐 난다.

 호미로 골을 만들고 15㎝간격으로 껍질을 탈피하여 소독 처리한 마늘씨앗을 하나씩 꼭꼭 눌러 심고 흙으로 덮는다. 마늘밭 바로 밑에 있는 이웃집 논에서 짚더미를 가져와 가지런히 펼쳐준다. 마늘심기를 끝내고 종묘상에서 구입해 간 양파모종을 심고 있는데 점심 식사하라 불러댄다. 언제 다 담나 걱정했던 배추와 무가 모습을 모두 감추었다. 그새 배추김치는 작업을 끝내고 깍두기, 갓김치, 알타리무김치, 동치미 담그기에 여념이 없다. 가득 채운 김치 통이 마루 한편에 가득하다. 모든 통을 채우고도 남은  김치는 서늘한 곳을 정하여 흙을 파고 김칫독을 두개를 묻고 한쪽을 배추김치를, 또 한쪽은 알타리김치며 동치미를 가득 채워 볏짚으로 보온하여 잘 덮어 놓았다.

 점심시간을 조금 넘어선 시간에 올해의 김치 담그기는 끝이 났다.

 

 미리 파놓고 일광소독까지 마친 흙구덩이에 매실나무를 심는다.

 10주 구입한 대과매실나무가 40cm 정도에서 키를 맞추어 전정하여 보내왔다.

 사방 4m 간격으로 열 그루를 심고 그 위에 발효된 바크를 덮고 볏짚을 수북이 깔아준다.   겨울을 무사히 보내고 잘 성장하여 튼실한 매실을 수확할 수 있는 날이 자꾸 기대된다.

 모두들 타고 온 차량마다 트렁크와 뒷좌석이 가득하다.

 무의식적으로 뒷바퀴타이어의 공기압을 체크한다.

 표정이 밝고 환하다.

 일 년 동안 힘들게 농사지었어도 이런 모습이 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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