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소매 저고리가 무색하게 날씨가 따스하다.

 울긋불긋 파스텔 톤으로 치장했던 가을의 상징들이 하나 둘씩 가지에서 이탈하더니만 이젠 나뭇가지만  횅하니 남아있다.

 단풍과 같이 물들었다가 그것과 함께 쓸려간다는 가을이 종착역을 향해 줄달음치고 있다.  지난주엔 오고가는 인파들로 가득했던 고속도로는 이번주말오후에는 한결 여유로웠다.  주변의 풍광을 즐길 여유도 없이 넘나드는 경계속도에 신경 쓰다 보니 청아한 가을하늘에 구름 몇 개 떠가는 서해대교 위를 주행하고 있다.

 시골집 마당에는 펼쳐진 멍석위엔 황금색 나락으로 가득하고 부족한 햇볕을 더 쬐어 주려는 주인들의 정성은 고무내질로 이어진다.

 가을걷이를 마친 논 주변을 태우는 연기가 긴 꼬리를 물고 자욱이 깔려 시골의 자화상을 멋지게 그려내고 있다.

 스물 스물 몰려와 코끝을 즐겁게 하는 볏짚 태우는 냄새가 동심의 아련한 추억을 더듬게 한다.  지금도 시행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소싯적 내가 다니던 시골학교에선 봄, 가을 농번기철을 맞이하면 3-4일씩 농번기 방학을 실시했다.

 봄에는 보리수확철에 가을에는 나락수확철에 실시했었다.

 부족한 일손을 도와주라는 취지에서 그랬는지 방학과제는 따로 내어 주지 않고 수확이 끝난 들판에서 떨어진 이삭을 주워 봄에는 보리 한 되, 가을에는 나락 한 되를 방학을 끝나고 개학할 때  들고 오라했다.

 어린마음엔 커다란 부담이었다.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에서 이삭을 주어 과제물을 제출하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열심히 일을 도와주면 부족한 과제물을 채워 주실 거라는 어르신들의 언질에 농땡이 한 번 제대로 피워보지도 못하고 일을 거들어야 했다. 그 땐 그런 일이 싫어 농번기가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어릴 마음에도 날씨가 궂으면 안 되는 줄 빤히 알면서도 놀고 싶은 마음에 비라도 내려주길 내심 기대했었다.

 가을걷이가 거의 다 끝나가는 이 시기 오후 시간에는 친구들과 어울려 갈색 바께쓰를 들쳐 매고 미꾸라지 사냥을 나갔었다.

  추수가 끝난 논바닥에 깔려있는 볏짚들을 긁어모아 논둑에 불을 지피고 바지를 허벅지 끝까지 걷어 올렸다. 얇은 수렁이 있는 논은 나락 수확을 하려 논에 있던 물을 다 말렸는데도 쑥쑥 빠져들었다.

 검정고무신을 논둑 한편에 벗어 놓고 발을 살짝 논에 들어 놓았다 이내 몇 걸음 옮기지도 못하고 줄행랑치듯 논두렁으로 뛰쳐나왔다.

 발은 시려오고......, 결국 찬 냉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도망 나온 것이었다.

 지펴 놓은 불 위로 발을 올려놓으면 이내 발은 온기가 돌고......,

 이런 과정을 몇 번 하고나서야 찬 물에 적응이 되었다.

 쑥쑥 빠져드는 질퍽한 흙이 걷어 올려놓았던 허벅지 바짓가랑이 근처까지 밀고 올라 겨우 반 뺨 사이에서 경계선이 설정되었다.

 바께쓰를 옆에 놓고 질퍽한 흙속으로 두 손을 밀어 넣었다 흙을 한 움큼 부여잡고 들추어내면 흙 속에서 보금자리를 펴고 겨울채비를 준비하던 살이 오를 대로 오른 누런 미꾸라지가 긴 수염을 흔들어 대며 따라 나왔다. 갑작스런 기습공격에 어리둥절하던 녀석을 두 손으로 잽싸게 감싸 통에 던져 넣었다.

 친구들과  경쟁이나 하듯 한 마리라도 더 잡고 푼 욕심에 연신 흙을 뒤집었다.

 미꾸라지 잡는 재미에 빠져들다 보면 언제 그랬는지 바짓가랑이는 흙탕물 속에 적셔들고 말았다. 바지춤을 추슬러 보지만  소용이 없었다.

 서쪽하늘에 석양이 빨갛게 물들어 가면 흙 반 미꾸라지 반으로 반쯤 채워 진 통을 들고 논가로 나와 맑은 물에 씻고 있노라면  모여드는 친구들의 모습이 가관이었다. 얼굴엔 진흙이 튀어 그 새 말라 있고 머리카락은 흙탕물이 범벅되어 있고......,

 내 모습도 그들과 동색일 것인데 내 모습이 아닌 양 웃고 떠들었다.

 바지뿐만 아니라 윗도리까지 진흙에 흙탕물 얼룩뿐이었다.

 집에 가면 혼만 날 것 같은 걱정에  선뜻 집 들어가기가 걱정이 되었다.

 시린 손도 말릴 겸 젖은 옷도 말릴 겸 추수가 끝난 볏짚가리에서 짚뭇을 들고 와 불을 지피면 특유의 냄새만을 뇌리에 각인시키고 볏짚 형체를 그대로 남긴 체 금세 사그라지고 말았다.

 

 서리가 많이도 내려 있다.

 짙은 녹색의 배춧잎에 소담스런 서리꽃이 앙증맞게 피어있다.

 제법 매서운 새벽공기로 절로 옷깃이 여며진다.

 어젠 오후 네 시경에 도착하여 밭둑 위쪽에 있는 은행나무의 은행수확을 실시했다.

 아래쪽 밭둑에 위치한 은행나무는 밑에 김장채소가 심어져 있어 수확은 다다음주 김장이 끝난 후 실시하기로 계획했다.

 사다리를 기대 놓고 올라간 아름드리 은행나무엔 주름 잡힌 은행열매들이 금방이라도 떨어져 내릴 것 같다.가지마다 무게를 못 이겨내고 가지가 축 늘어져있었다.

 약간의 고소공포증이 있는 관계로 은행나무에 매미를 하고 있으려드니 어지럼증이 동했다.  은행을 긴장대로 내리치면 따면 꽃눈을 손상시켜 다음해엔 달리지 않기 때문에 될 수 있는 데로 나무에 올라가 가지를 발로 툭툭 밞아 털어 주거나 가지를 흔들어 따야 꽃눈이 그대로 보전되어 다음해에도 다수확을 할 수 있다.

 미리 줍기 좋게 차광막 등을 사용해 나무 밑에 자리를 펼쳐 놓았다.

 윗가지를 단단히 부여잡고 밞고 있는 가지를 툭툭 발로 차니 샛노란 은행잎이 하늘위로 날아오르며 후드득 후드득 우박처럼 쏟아져 내렸다.

 무게 때문에 축져져 여름 내내  고생했던 나뭇가지들이 굽힌 허리를 펴 들고 오랜만에 자기자리로 찾아들었다.

 터진 과육사이에서 퍼져 나오는 거시기한 냄새가 가을 하늘에 너울너울 피어올랐었다.

옆지긴 먼발치 나무 밑에서 쪼그리고 앉아 떨어진 은행을 줍고 있었다.

 다행히 우리 둘은 옻을 타지 않은 채질이여서 은행을 맨손으로 뭉개도 아무런 해가 발생하지 않는다. 작년 처음 농장을 일구면서 경험과 지식도 없이 은행을 주워 담기에 급급하여 은행잎을 섞어 주워 담는 바람에 과육을 분리 할 때 엄청 애를 먹었다.

 그래서 올해부턴 하나하나 꼭지까지 제거하며 주위 담으려 보니 일이 더디게 진행되었다. 주말에만 올 수밖에 없는 특수성 때문에 이렇게 비닐 포대에 주워 담아 양지바른 곳에 보관하고 있다가 다음 달 초에 과육과 알을 분리해야만 할 것 같다.

 어둠이 짙게 깔린 산자락엔 가는 가을밤이 서러운지 이름 모를 풀벌레들이 구슬피 울어댔다.

.....

 떨어져 줍지 못한 은행들 위에도 하얀 서리꽃이 만발했다.

 새벽녘부터 움츠리고 앉아 손을 호호 불며 떨어진 은행들을 주우려 드니 괜스레 짜증이 밀려온다.

 찬바람에 낙엽이 쓸리는 호젓한  계절의 감흥에 빠져 들고 싶어진다.

 늦가을 아침 고즈넉한 시골 들판은 넉넉하고 푸근하다.

 밥 짓는 연기가 지붕 위를 넘실거린다.

 옆지기와 산자락에 난 오솔길을 걸다 앙상한 가지에 까치밥만 서너 개 달린 감나무 밑에서 잠시 지난 세월을 들여다보는 사색의 시간을 즐긴다.

 산자락 끝엔 제철 맞은 들국화들이 탐스런 자태를 뽐내고 있다.

 누가 먼저랄까 경쟁하듯 그쪽으로 발을 옮긴다. 햇볕에 반사되는 서리꽃이 함께 핀 들꽃의 자태에 황홀함이 넘쳐난다.

 들국화의 향기로  후각 또한 즐겁다.

 주머니 속에서  구겨진 비닐 봉투를 하나 발견하고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훼손한다. 국화 향 가득한 효소음료를 만들어 보고픈 욕망에 사로잡혀 줄기에서 꽃들을 분리한다. 언제 찾아 들어는 지 나뭇가지위에선 까치 두 마리가 낯선 난봉꾼을 향해 거친 울음소리를 토해낸다.

 따온 꽃봉오리를 물로 깨끗이 씻어내어 채반에 받쳐 놓고 못 다한 은행 줍기에 몰두한다.

 서리가 녹아내리는 물이 낙숫물이 되어 톡! 톡! 톡! 떨어져 내리고 있다.

 


Daum 블로거뉴스
블로거뉴스에서 이 포스트를 추천해주세요.
추천하기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