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하면 떠오르는 모습들
파란하늘, 알알이 여문 누런 황금빛들판…….
조붓한 개천길섶을 따라 곱게 핀 코스모스사이로 바람이 스치며 가을향기를 코끝에
날라준다.

 

"어디쯤 가고 계세요?"
"마을로 들어서는 개천길인데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피었네요."
"벌써! 집에도 안 들리고 바로 가게........
 그곳이 그렇게도 좋아요?
밥 굶지 말고 일하다 빨리 오세요."

 

가을 문턱에서 한 참을 얼쩡거리며 마지막 열정을 불태우던 늦더위가 사그라지고
이젠 서늘하다 못해 쌀쌀하다.
보고 싶은 마음에 토요일 오후 2주째 홀로 남겨둔 다락골 생각에 직장을 마치자마자
단박에 당진으로 가는 서해안고속도로에 차를 올렸다.
각자 맡은 책임과 역할을 다하려 자리를 비운 가족구성원들을 대신해 출근길부터
작업복이 담긴 꾸러미를 옆자리를 채웠다.
밤송이가 쏟아져 내린 오솔길을 따라 천천히 차를 몰아 농장입구에 들어서니 갑작스런
기온차로 생긴 돌풍으로 쓰러진 들깨들이 길을 막고 주인의 손길만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초장부터  호된 신고식인가?
쉼터로 뛰어 들어가 쇠막대와 끈을 챙겨와 한바탕난리를 치룬 후에 쉼터마당에 차를 세웠다.
들깨향기가 손에 배여 콧속을 후벼 판다.

 

 

 

이식 후 한 달이 가까워지는 배추밭은 생동하는 모습으로 넘실댄다.
부드럽고 얇고 길쭉길쭉한 배추잎사귀가 고추 골에 고춧대를  제거하고 직파한 이웃밭들과는 확연히 대조를 이룬다.
지난 9월 둘째 주(노지이식 2주째, 직파재배 4주째)까지 비슷하게 성장을 했던 직파한 이웃밭들은 고추 골을 그대로 사용해서 비롯된 밑거름부족분을 만회하기위해 무리하게 비료를 사용한 까닭에 잎이 타들어가고 누렇게 변색되는 농도장해를 심하게 겪고 있다.
배춧잎 두께도 두껍고 길이도 짧은 까칠한 모습들이다.
짧아진 해는 벌써 뒷산에 모습을 숨기려한다.
호미를 챙겨들고 밭고랑에 난 잡초들을 제거하며 한포기 한포기마다 배춧잎들을 양손으로 펼쳐주며 조금이라도 더 햇볕을 쪼여주기 위해 정성을 다했다.
배추들은 벌써 속이 차오고 있다.
지난해에도 좋지 않은 초가을 날씨에서 이와 같은 방법을 통해 통이 크고 속이 꽉 들어찬 배추를 키워냈었다.
2주 동안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라 혹시 발생했을지 모를 배추벌레 때문에 마음 고생했던 것과는 다르게 두 마리의 배추흰나비 애벌레만 관찰되었을 뿐 별다른 피해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야콘밭과 인접한 골에선 구멍이 숭숭 뚫린 배춧잎만 보일뿐 벌래들은 모습은 보이질 않는다.
수확한 게 별로 없어 나누어줄게 마땅한 게 없다며 집에 가서 한 번 쪄 먹어보라며 햇밤이 담긴 자루를 머리에 이고 이웃집할머니가 건너오신다.
약도 치지 않은 배추가 너무 잘 됐다며 배추 골로 들어와 배추포기들을 이리저리 들춰보며 신기해한다.
벌레들이 올핸 유달리 많이 발생했고 며칠 전 궂은 날씨로 민달팽이까지 생겼다며

"배추금도 싸다는데........"

걱정이 많다한다.

 

"달팽이도요?"

 

민달팽이

지난해 초가을 하루가 멀다 하고 내리는 비 때문에 배추밭마다 발생한 민달팽이 때문에 무진 애를 태웠다.
그렇지 않아도 엊그제 며칠 계속된 궂은 날씨로 행여 민달팽이가 발생하지나 않을까 내심 걱정이 많았는데.......
구멍이 난 배춧잎들이 혹시 민달팽이들의 소행은 아닐까?
불길한 예감에 작년에 사용하다 남은 달팽이 유인제를 찾아냈다.
방안 서랍 속에서 화투장을 꺼내와 한 장씩 배추포기 밑에다 깔고 그 위에 유인제를 조금씩 올려놓았지만 쉽게 배추밭을 벗어나질 못했다.
씁쓸한 맛이 짙게 배어났다.

새벽같이 일어나 이슬이 촉촉이 머금은 배추밭으로 내달았다.
긴 소매 옷으로 치장했음에도 찬 공기에 몸은 금세 움츠려든다.
구멍 뚫린 배추 잎들을 한장 한장 꼼꼼히 살펴보다 잠시 당황했다.
당혹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어제 저녁 늦게까지 행한 달팽이방제 작업이 괜한 헛수고였기를 바라고 바랐는데 순식간
그 기대가 무너졌다.
아니나 다를까!
새까만 민달팽이가 배추어린속잎만 골라 사정없이 먹어치우고 있다.
발생초기인 듯 개체 수는 그리 많이 발견되지 않았으나 또 다시 농장을 비워야하는 여건 때문에 비워놓을 그 기간 마음고생을 조금이라도 덜고 싶은 바램 때문에 근원을 없애려 최선을 다 할 수밖에 없다.
400포기가 넘는 배추들을 일일이  한 꺼풀 한 꺼풀 살펴보니 시간이 많이 지체됐다.
불볕더위만큼이나 여름 내내  괴롭혔던  노린재가 귀족서리태밭에서 감쪽같이 모습을 숨겼다.
꼬투리에 알이 들어차 더 이상 머물 이유를 상실한 모양이다.
함초롬히 핀 울금 꽃이 하얀 속살을 내보이고 야콘들도 짧아진 가을 햇살 속에서 몸집 키우기에 열심이다.
대파와 부추 밭에 부족한 양분들을 보충하고 무밭에 김매기를 마치니 점심시간이 벌써 지난 시간이다.
남의 밥 퍼 주는데 정신이 팔려 자신의 배를 채우는 덴 소홀했다.
부족한 손길을 한 번 더 내밀고픈 욕심에 시간가는 줄 몰랐다.
누렇게 익기 시작한 은행열매가 소슬바람에 떨어진다.

 

 

 

 

휴게소에 들려 국밥 한 그릇 말아먹고 싶은 간절한 생각에 일찍 짐을 꾸렸다.
어제 저녁부터 비운 뱃속이 허전했다.
정오를 지난 시각 차안은 아직도 뜨겁다.
창문을 열고 천천히 동네를 벗어날 때쯤 돌담 넘어도 빠져나온 감나무의 매력에 빠져 자신도 모르게 주차브레이크를 잡아당겼다.
가을향기가 물씬 묻어나는  감나무 곁에서 디카의 메모리를 채우는데  텃밭에서 일을 하시던 나이 지긋한 주인집 내외가 웃는 모습으로 다가오시며  익은 홍시들을 다 따 가져가란다.
처음 본 낯선 사람에게 매미체가 달린 긴 장대를 들려주며 사용요령도 가르쳐준다.
야릇한 기분을 애써 숨기며 서투른 솜씨로 홍시를 몇 개 따 우선 허기진 배를  채웠다.
 잘 익은 홍시의 선홍빛이  대장간에서 달구어진 쇠붙이 빛과 같다.
빨갛게 달구어진 쇠붙이만큼이나 식지 않은 인정이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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