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건강 상태를 나타내는 생장 특성  
 


4월에 찍은 사진이다.
왕벚나무의 꽃눈이 전년도 가지의 끝 부분에 있어 전년도 7월 중순에 꽃눈이 생긴 이후에 8월 중 새 가지가 나오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건강한 왕벚나무는 8월 이후에도 새순이 나온다.
5년 전 이식한 나무가 아직도 활력을 찾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왕벚나무의 꽃눈이 전년도 가지의 아래쪽에 있어 전년도 7월 중순에 꽃눈이 생긴 다음, 8월에 새순이 나왔음을 알 수 있다.
5년 전 이식한 나무가 완전히 활력을 찾았음을 알 수 있다. 
 


스트로브잣나무를 옮겨심은 해에는 뿌리 절단으로 줄기 생장이 저조해진다.
이 사진에서 스트로브잣나무 맨 아래쪽의 마디 간 길이가 짧아 이식한 해에 생장이 저조했음을 알 수 있으며,

연차적으로 마디 간 길이가 점점 길어져 활착이 제대로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산속 서늘한 곳에서 자라는 건강한 잣나무의 잎은 4년간 살다가 낙엽이 진다.
1년에 한 마디씩 자라서 네 번째 마디에 있는 잎이 변색하여 낙엽 지기 직전의 사진이다.
도시에서 더위를 먹으면 3년 차 혹은 2년 차 잎이 조기낙엽 현상을 보인다.


 
 잎의 수명과 낙엽 시기, 가지의 길이, 봄 잎과 여름 잎의 생산 여부, 장지와 단지의 발달, 겨울눈의 크기와 싹이 트는 시기 등의

수목의 생장 특성은 나무의 건강을 가늠할 수 있는 좋은 지표가 된다.


현대의학은 수백 년의 연구를 통해 이제 상당한 수준에 도달해 있다.
그 덕분에 암 이외의 병을 대부분 고칠 수 있으며, 갖가지 건강지표가 개발되어 있다.
체중, 체지방, 체온, 혈압, 맥박뿐만 아니라 혈액검사와 소변검사의 각종 수치는 환자의 건강 상태를 잘 말해준다.
나무의 건강 상태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수목의학은 인체의학에 비해 별로 발달되어 있지 않다.
필요성과 투자가치가 적기 때문일 것이다.
나무는 초본식물보다 중무장을 하고 있어서 건강진단이 쉽지 않다.
나무의 건강 상태는 두껍고 딱딱한 줄기보다는 잎을 보고 판단한다.
잎에 여러 가지 초기 증상이 나타나지만, 서로 다른 병들이 비슷한 병징(예: 황화 혹은 갈변)을 보이기 때문에 원인을 찾기 어렵다.
그나마 활엽수는 잎이 부드러워서 병징이 곧 나타나지만, 침엽수는 잎이 뻣뻣해서 매우 둔한 반응을 보인다.

예를 들면 토양 수분이 부족하면 활엽수는 곧 잎이 밑으로 처져 진단이 가능하지만, 소나무는 잎이 말라죽을 때까지 그대로 위를 향해 뻗어 있어 진단이 어렵다.
나무가 건강하지 않아 잎이 변색할 경우 마땅한 분석과 진단방법이 개발되어 있지 않다.
그나마 잎 분석을 통해 엽록소 함량과 갖가지 무기양분의 함량을 측정하는 정도이지만, 시간이 상당히 걸리고 결과의 해석이 어렵다.
대신 나무의 건강 상태는 수목생리의 원리를 응용해서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우선 형성층(形成層, 부름켜)의 건강 상태로 알 수 있다.
형성층은 인간의 피부에 해당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으며, 나무껍질 밑에 숨어 있다.
나무가 건강하면 수액 이동이 활발하여 형성층 부근에 수분이 많아진다.
이 원리를 이용하여 형성층에 전기를 통하게 하여 수분의 함량에 비례하는 전기의 흐름으로 나무의 건강 상태를 측정하는 기계가 개발되었다.
개발자인 미국 샤이고 박사의 이름을 따서 샤이고메터(Shigometer)라고 하며, 나무청진기라고도 한다.

소나무를 이식하면 뿌리가 많이 잘리기 때문에 곧 나무의 건강 상태가 나빠지며 숫자(전기전도도)로 그 상태를 알 수 있다.
이식한 나무에서 내적으로 발생하지만 눈으로 볼 수 없는 미세한 변화를 샤이고메터가 감지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샤이고메터는 전문가만 사용할 수 있는 기계로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수목생리에 근거하여 눈에 보이는 현상으로 나무의 건강을 가늠할 수 있는 방법이 몇 가지 있다.
잎, 눈, 가지의 생장 상태를 근거로 생리적 해석이 가능하다.
우선 잎의 건강 상태로 잎의 수명과 낙엽현상을 관찰한다.
잎의 수명은 수종에 따라서 매우 다양하다.
낙엽수는 봄부터 가을까지 한 계절이지만, 사철나무는 여름에 나온 잎이 다음해 봄 새잎이 나온 후 곧 탈락한다. 침엽수는 편차가 매우 크다.
소나무의 잎은 최고 3년간 살아 있지만, 잣나무는 4년, 주목과 전나무는 5∼6년 산다.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전나무는 잎이 20년간 살아 있는 경우도 있다.
추운 곳에서 낙엽이 잘 썩지 않아 양분순환이 잘 되지 않기 때문에 적응한 결과이다.
나무의 건강이 나빠지면 잎의 수명이 짧아진다.
낙엽수의 경우 봄에 나온 잎이 가을까지 버티는 것이 정상이지만 수분부족, 고온, 대기오염, 이식 쇼크 등의 피해가 있으며, 늦여름에 조기단풍이 들거나 낙엽이 진다.
단풍과 낙엽은 가을철 온도가 낮아질 때 진행되어야 정상인데, 스트레스를 받으면 늦여름부터 단풍이 들기도 한다.
봄에 일찍 나온 봄 잎은 여름에 나온 여름 잎보다 먼저 단풍이 들면서 낙엽이 지는 경향이 있지만,

나무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봄 잎이 더 빠른 속도로 조기에 단풍이 들거나 떨어진다.
침엽수의 건강은 새로 만들어진 잎이 몇 년간 나무에 붙어 있는가로 가늠할 수 있다.
잣나무의 원산지는 본래 북쪽지방이기 때문에 서늘한 기후를 좋아한다.
잣나무는 서늘한 산속에서 자라면 새잎이 4년간 살아 있지만, 도시에 심으면 여름철 열섬효과로 기온이 높아져 잎의 건강이 나빠지면서 2년 혹은 3년 안에 낙엽이 진다.
구상나무는 높은 고산지대에서 자라면 잎이 6년간 살아남는데, 도시에서는 더위로 인해 2년 혹은 3년 만에 낙엽이 진다.
가지의 길이도 나무의 건강 상태를 말해준다.
소나무, 잣나무, 전나무, 가문비나무는 1년에 한 마디씩만 자라는 ‘고정생장’을 하기 때문에 생장이 느린 편이다.
고정생장을 하는 나무들은 전년도 겨울눈이 제대로 만들어지면 당년 봄 정상적으로 봄 잎과 가지를 생산하며, 초여름부터 더 이상 키가 크지 않는다.

따라서 여름 잎을 만들지 않으며, 여름철에 겨울눈을 만들어 월동에 대비한다.
이 나무들은 가지의 길이(마디 사이의 길이)로 건강 상태를 판단할 수 있다.
나무를 옮겨심을 때 우리는 뿌리를 대량으로 절단하며, 나무는 그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잣나무와 스트로브잣나무를 봄에 옮겨심으면 뿌리 절단으로 인해 당년 가지 생장이 저조해 가지의 길이가 짧아진다.
이식 후 활착이 제대로 진행되면 3년 후, 늦어도 5년 후에는 가지의 길이가 정상으로 돌아온다.
이를 바탕으로 외국에서는 이식 후 활착기간을 5년으로 해석한다.
이식한 나무의 가지 길이가 이식하기 전보다 짧다면 아직 활착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생장이 빠른 나무들은 봄 잎과 여름 잎을 만들면서 혹은 플라타너스의 경우 가을 잎을 만들면서 가을까지 키가 크는 ‘자유생장’을 한다.

낙엽송, 포플러, 느티나무, 단풍나무, 왕벚나무를 예로 들 수 있다. 이런 나무들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봄 잎만 생산하고 여름 잎을 만들지 않아 생장이 둔화된다.
왕벚나무를 이른 봄에 옮겨심으면 이식 스트레스로 인해 첫해 생장이 저조해지면서 봄 잎 생산으로 그친다.
꽃눈이 7월 중순경에 만들어지는데, 8월에 여름 잎과 가지를 만들지 않기 때문에 이듬해 꽃눈이 가지 끝에 붙어 있다.
반면 이식하지 않은 건강한 왕벚나무는 꽃눈을 만든 이후 8월에도 여름 잎과 가지를 만들기 때문에 이듬해 꽃눈이 가지의 아래쪽에 달려 있다.

즉 왕벚나무를 이식한 후 해마다 봄 잎만 생산하면 그 나무는 아직 활착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증거이며, 활착이 제대로 되면 여름 잎을 생산한다.
제대로 옮겨심은 왕벚나무는 2∼3년 내로 여름 잎을 생산한다.
은행나무의 건강 상태는 가지의 독특한 형태로 판단할 수 있다.
은행나무와 낙엽송은 장지와 단지의 구별이 뚜렷하다.
장지(長枝)는 길게 자라면서 마디 사이가 길고, 단지(短枝)는 자라지 않으면서 마디 사이가 매우 짧다. 건강한 나무는 장지로 형성된 ‘잔가지’를 많이 만들며,

가지마다 길게 자라면서 잎을 달고 있어 수관이 풍성하고 그늘을 많이 만든다.
은행나무를 옮겨심으면 스트레스를 받아 장지의 생산이 급격히 줄어든다.
대부분의 가지들이 단지로 남아 있으면서 잔가지를 거의 만들어내지 못한다.
결국 수관이 엉성해지고 그늘을 제대로 만들지 못한다.
이식 후 계속해서 단지만 생산한다면 그 나무는 아직 활착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식 후 물을 자주 주고 비료를 주면 장지의 발생을 촉진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것 이외에도 눈의 크기와 눈이 봄에 트는 시기도 나무의 건강과 연관되어 있다.
겨울눈은 여름부터 가을 사이에 만들어진다.
여름철 광합성을 활발하게 한 나무는 겨울눈이 크고 건실하게 생긴다.
곤충이 잎을 갉아먹거나 대기오염이 심하거나 나무를 옮겨심거나 그늘에서 자라면 겨울눈이 작아진다.

겨울눈이 작으면 그다음 해 잎과 가지 생장이 좋지 않다.
겨울눈이 봄에 싹이 트는 시기도 나무의 건강과 직결되어 있다.
잎이 피는 시기는 체내에 양분과 에너지를 얼마나 저장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
전년도에 건강한 상태에서 광합성을 많이 하여 에너지를 비축하면 봄철 새싹이 빨리 돋는다.
또한 봄철 새 뿌리가 돋아나옴으로서 잎이 피는 데 도움을 준다.
나무의 건강이 좋지 않으면 봄철 새 뿌리의 발달이 지연되어 지상부에서 겨울눈의 싹이 늦게 나온다.
옮겨심은 나무는 뿌리가 많이 손상되었기 때문에 월동용 저장 에너지가 부족하고 그 후유증으로 겨울눈이 늦게 나온다.
잎이 늦게 필수록 나무의 건강이 나쁘다고 할 수 있다.
위에서 이야기한 대로 수목의 잎의 수명과 낙엽 시기, 가지의 길이, 봄 잎과 여름 잎의 생산 여부, 장지와 단지의 발달, 겨울눈의 크기와 싹이 트는 시기 등의

생장 특성은 나무의 건강을 가늠할 수 있는 좋은 지표가 된다.
현장에서 자라는 나무의 생장 특성을 면밀히 관찰하여 생리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안목을 가지면 나무를 좀 더 건강하게 과학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산림
글·사진 / 이경준(서울대학교 산림과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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