쌉싸래한 맛과 향이 나는 음나무

 

천연기념물로 지정됐을 만큼 우리 문화 속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음나무.

우리 선조는 날카로운 가시가 있는 음나무를 액운을 막아주는 길상목으로 귀히 여겼다.

하지만 유명세는 두릅만 못 한 것 같다. 맛과 향이 뛰어나지만 널리 알려지지 않은 탓이다.

 

 

거무스름한 빛깔의 산이 연녹색으로 변해가는 4월,

산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잦아진다.

이맘때가 되면 왠지 사람들은 ‘봄이 다 가기 전에 꼭 한번 산에 가야지’ 하고 마음을 먹는다.

하지만 변덕스러운 날씨를 탓하며 게으름을 피우는

사람에게 봄 산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생강나무 꽃이 피는가 싶으면 연분홍색 진달래가

온 산을 뒤덮고, 어느새 잎이 푸릇푸릇해진다.

울긋불긋 오색으로 물드는 가을 산이 아름답다면,

하루하루 녹색 빛깔을 더해가는 봄 산은 생명의 기운이

넘쳐나서 싱그럽다.
4월과 5월은 산나물을 탐방하기 좋은 때다.

나무나 풀보다 일찍 새순이 돋는 얼레지를 비롯해

처녀치마, 산마늘 등이 싱그러운 자태를 뽐내며

탐방객을 유혹한다.

아직 숲이 우거지지 않아 산등성이 잡힐 듯 한눈에 보이고 사방이 훤히 트여 있어 한결 마음이 놓인다.

땅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숲이 우거지면 길을 잃을

가능성이 있고 발을 헛디디거나

뱀을 밟아 안전사고를 당할 위험이 있을 터.
산에 들어서면 먼저 온갖 장애물이 앞을 가로막는다.

그중 날카로운 가시 있는 아카시나무를 비롯해 산초나무,

찔레나무, 청미래덩굴, 딸기나무 등이 탐방을 방해한다.

미끄러지거나 넘어지지 않으려고

나뭇가지를 잡으려 할 때, 가시가 촘촘한 나무가 앞에 나타나면 얼마나 얄미운지 모른다.

또 가파른 산을 오를 때 가시가 있는 나무가 앞을 가로막고 서면 다리 힘이 빠져버린다.
가시 있는 나무라면 음나무를 빼놓을 수 없다.

나무는 뿌리를 제외하고 전체에 날카로운 가시를 지니고 있다.

음나무는 한자로 자동(刺桐)이다.

이름에서 가시의 날카로움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음나무 가시는 촘촘히 나고 날카로워 얕봤다가는 큰코다치기 십상이다.
가시가 유난히 촘촘한 음나무는 내버려두는 게 좋다. 봄마다 새순을 채취하면 더욱 날카로운 가시를 만들어 낸다.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방어를 하는 기재다.

대부분 식물이나 과수가 가뭄이 들거나 기상이 나쁜 해에 종족 유지를 위해 보통 때보다

열매를 많이 결실시키는 것과 같은 이치다.

가시는 생명을 유지하고 종족을 유지하려는 방어의 본능인 셈이다.

 

유목은 그늘, 성목은 양지를 좋아해
산에서 음나무 새순을 채취하려면 발품을 들여야 한다.

여기저기 흩어져 자라기 때문에 한자리에서 많이 채취할 수 없다.

주로 씨앗으로 번식하는데,

어릴 때는 그늘을 좋아하지만 웬만큼 자라면 햇빛을 좋아한다.

수많은 나무가 자라는 산속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며 살아남으려는

생존 전략이다.

키 큰 나무 사이에서 햇빛을 많이 받을 수 없는 환경에 적응한 셈이다.

한 해에 수많은 씨앗이 생산되지만 겨우 몇 개만 싹이 트고,

그중에서도 살아남는 것은 손에 꼽을 정도로 숲속의 생존 경쟁은 치열하다.
음나무는 두릅나무와 같은 두릅나뭇과이지만 습성은 조금 다르다.

두릅나무는 물 빠짐이 좋고 양지 바른 곳에서 잘 자라지만

음나무는 약간 그늘진 곳에서 잘 자란다.

두릅나무는 햇살이 바로 드는 산등성이에서도 잘 자라지만 음나무는 이런 곳에서는 드물다.

물기가 약간 있고 토심이 깊은 곳과 계곡 근처를 좋아한다.

음나무는 두릅나무와 또 다른 특성이 있다.

음나무는 두릅나무보다 수명이 아주 길다.

수령이 몇 백 년 되고 높이 25m, 직경 1m에 달하는

거목이 전국 곳곳에서 자라고 있다.

잎이 크고 가지를 많이 치기 때문에 일단 터를 잡으면

다른 나무와의 경쟁에서 좀처럼 밀리지 않고 잘 자란다.

오래된 거목은 원줄기에 가시가 거의 없는 게 특징이다.
우리나라 전국 곳곳에는 아름드리 음나무가 있다.

경남 창원 신방리 마을에 있는 키 19m, 둘레 5.4m의

음나무는 천연기념물 제164호로 지정됐다.

또 전북 무주 설천면에 있는 음나무는

천연기념물 제306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특히 강원 삼척 근덕면의 천연기념물 제363호로 지정된 음나무는

높이 18m, 둘레 5.43m의 위용을 자랑한다.

 

비늘잎 밀어 올리고 꽃처럼 피는 새순
음나무가 더욱 사랑을 받는 것은 봄에 돋는 새순 덕분이다.

대개 4월 하순에 가시가 갈색에서 녹색으로 변하면 새순이 곧 돋는다.

새순은 단단한 비늘잎을 밀어 올리고 양수와 같은 끈적끈적한 진액을 내뿜으며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막 태어난 아기가 손가락을 펴듯이 따뜻한 봄 햇살에 피는 새순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잎이 완전히 피기 전의 새순은 산나물로 손색이 없다.

두릅나무 새순을 참두릅이라고 하는 데 반해

음나무 새순은 개두릅이라고 한다.

질이 떨어진다는 뜻의 ‘개’ 자가 이름에 있는 나물은

왠지 맛이 없을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지만 음나무는 다르다.

맛있는 음나무 새순을 왜 개두릅이라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보통 사람들은 음나무 순과 두릅나무 순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것 같다.

마트에 가 보면 참두릅과 개두릅을 구분하지 않고

그냥 두릅이라고 판매하기도 한다.

소비자들에게 개두릅이라고 설명하면 괜히 맛없는 나물로 오해할까봐 그냥 두릅으로 판매하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참두릅보다 개두릅 맛이 낫다고 한다.

쌉싸래한 맛과 향이 독특해 중독성이 있다고 한다.

식도락가들은 음나무를 먹어봐야 제대로 봄맞이를 한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그 맛이 싫어 고개를 가로젓는 사람도 있다.

산나물 맛을 잘 모르는 사람이거나 달착지근한 패스트푸드 맛에 너무 길들여진 사람이 아닐까 싶다.
쌉싸래한 맛과 향이 개두릅만큼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산나물도 없다.

약간 쓴맛이 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먹고 나면 입안이 개운해진다.

음식을 먹고 나면 입안이 텁텁하고 갈증이 나는 패스트푸드와는 격이 다르다.

 

뜨거운 물에 살짝 데치면 향과 맛이 일품
새순은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맛이 일품이다.

요리 솜씨에 따라 다양하게 이용해 먹을 수 있는 봄철 별미다.

잎이 5∼9갈래로 갈라지고 팔손이 나뭇잎과 같이 완전히 핀 것은 살짝 데쳐 쌈을 싸 먹거나 그늘에 말려서

차로 마셔도 좋다.

억세어 나물로 먹기 곤란한 것은 고추장이나 간장 장아찌를 담가도 맛이 그만이다.
음나무 새순을 찾는 식도락가가 늘면서 지역 축제도 열리고 있다.

강원 강릉 해살이마을에서는 음나무 순이 나는 4월 중 ‘개두릅 축제’를 열어 도시민을 불러들이고 있다.

축제 참가자들이 개두릅을 직접 따거나 옛날처럼 새끼줄에 엮어보는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해 인기를 얻고 있다.

국립산림과학원이 가시가 전혀 없는 ‘청송’ 음나무를 육성해 보급하고 있어,

이를 체험 프로그램에 활용하면 인기를 얻을 것으로 기대된다.

음나무 잎 생것 100g 기준으로 칼로리는 43k㎈로 보통 수준이다.

주요 영양소는 탄수화물 함량이 8.2g으로 가장 많고

단백질 4.5g, 섬유소 1.2g, 회분 0.6g, 지질 0.8g 순으로 많다.

무기질은 칼륨 294mg, 칼슘 75mg, 인 94mg, 나트륨 24mg,

철 1.1mg 등이다. 그밖에 영양소는 베타카로틴 3,137㎍, 비타민C 16mg,

비타민B2 0.22mg, 비타민B1 0.19mg, 나이아신 0.8mg 등이다.
가지는 물론 뿌리도 약재로 이용한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강장, 해열, 요통, 신장병, 당뇨병,

피로 해소 등에 효능이 있다.

특히 속껍질은 쓰임새가 많다.

두꺼운 겉껍질은 버리고 속껍질을 주로 사용하는데,

여름철에 벗겨야 겉껍질이 잘 벗겨진다.

흰색을 띠는 속껍질은 그늘에서 말려 잘게 썰어서 쓴다.

속껍질은 맛이 쌉싸래하고 성질은 서늘한 편이며

특유의 향기가 난다.

 

 

 

 

관절염과 요통 등 성인병 예방 효과
특히 속껍질 달인 물은 신경통에, 또 나뭇가지를 닭과 함께 가마솥에 넣고 푹 곤 음나무 백숙은

관절염과 요통에 좋은 건강식품이다.

요즘 쉽게 끓여 먹을 수 있도록 음나무와 닭고기를 함께

포장해 판매하기도 한다.

가지와 껍질은 한약재 또는 고기를 요리할 때 이용한다.

민간에서는 음나무 가지를 삶아 그 물로

식혜나 차를 만들어 마시면 신경통에 좋다고 알려진다.
예로부터 집 안에 귀신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대문이나

방문 위에 걸어 두었던 것도 바로 음나무 가지다.

또 집 마당이나 마을 입구에 음나무를 심기도 했다.

품위 있는 한옥 정원에는 음나무가 어김없이 심어져 있었다.

모두 나쁜 귀신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방어하기 위해서였다.

무당이 귀신을 물리치기 위해 굿을 할 때도

음나무를 사용한다.

 

이처럼 음나무는 재앙을 막아주고 만복이 깃들게 하는 길상목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음나무 가지를 고급 액자에 넣어 집들이 선물용으로 판매하기도 한다.

출처:산림

글·사진 오현식 | 농민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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