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호나물

 

전호는 다른 산나물과 닮은 점이 많다.
줄기의 생김새와 맛은 미나리와 비슷하고, 잎은 당근 잎과 거의 비슷하다.
아삭아삭 씹히는 맛과 향은 미나리와 거의 같지만 한약재 같은 향긋한 향이 조금 더 진하다.
이른 봄에 잠깐 시장에 나오고 마는 것이 못내 아쉽다.
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이 불고 흰 눈으로 덮인 겨울 산은 삭막하다.
빈틈없이 빽빽한 숲을 이뤘던 풀잎과 나뭇잎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바스락 소리만 낼 뿐
겨울 산의 스산함을 막지 못한다.
발길이 끊이지 않던 등산로도 발걸음 소리가 그리울 만큼 적막하기는 마찬가지다.
낮이 짧고 밤이 긴 겨울 산은 깊은 잠으로 빠져들었다.
하지만 눈높이를 낮추면 한겨울에도 녹색을 잃지 않는 생명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산 속의 양지 바른 곳에서는 잎의 무늬가 이채로운 노루발풀과 도깨비고비, 조릿대 등이
푸른색을 머금고 자라고 있다.
또 계곡으로 내려서면 인동덩굴이나 으름덩굴이 몇 장의 잎을 매달고 겨울을 나고 있다.
이처럼 추운 겨울에도 산에는 모질게 자라는 식물이 있다.
전호는 상록 여러해살이풀은 아니지만 추위에 강하다.
다른 식물은 겨울잠에 빠져 있을 무렵 2월에 벌써 새순을 밀어 올린다.
겨울이 비교적 따뜻한 울릉도에서는 2월이 되면 전호가 시장에 첫선을 보인다.
눈 속에서 자란다는 산마늘보다 한 걸음쯤 빠르다.
겨울에 신선한 채소가 귀한 울릉도에서는 전호가 밥상을 풍성하게 하는 데 한몫한다.
특히 파도가 높아 잦은 배 결항으로 신선한 채소를 들여오기가 어렵고 바람이 강하게 불어
비닐하우스 설치가 곤란한 울릉도에서는 일찍 선을 보이는 전호가 소중한 산나물이다.


습기와 수분이 적당한 계곡 근처가 적지

울릉도를 여행하다 보면 잎이 바람에 나풀거리는 전호를 어렵잖게 볼 수 있다.
특히 사람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산, 계곡 같은 곳을 잘 살펴보면 군락을 이루며 자라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겨우내 쌓인 눈이 녹으면서 땅이 약간 질척거릴 정도로 토양 수분이 적당한 곳에서 터를 잡고 자란다.
성인봉 정상에는 아직 흰 눈이 쌓여 희끗희끗해 보이지만 전호는 꽃샘추위 같은 것은 두려워하지 않는 듯하다.
육지에서는 이보다 한참 늦다.
5월 무렵 강원도 어느 산에 올라 보니 해발 1,000m의 나무 그늘에서 군락을 이루고 자라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계곡이 근처에 있어 약간 습하고 낙엽 등이 쌓여 썩어서 부슬부슬한 느낌이 들 정도로 토양이 부드러운 곳이었다.

키 큰 나무가 울창하게 자라고 있어 온종일 햇볕이 거의 들지 않아 서늘한 편이었다.
봄에 일찍 나오는 산나물이 그렇듯이 전호는 더위에 약하다.
그래서 5~6월에 꽃이 피고 나면 산에서 거의 모습을 감춰버린다.
그러다가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 무렵 산에 올라가 보면 새로 돋아난 전호가 눈에 띈다.
무성하게 자라던 나무와 풀이 울긋불긋 단풍이 들고 떨어지면
햇볕이 숲속까지 들어 전호가 자라기 좋은 환경이 된다.
생태와 자라는 환경이 비슷한 어수리도 이맘때쯤 연녹색 새잎을 밀어 올리면서 모습을 드러낸다.
일 년에 두 번이나 새싹을 밀어 올리는 전호의 속셈은 뭘까.
너무 이른 봄에 새싹을 밀어 올리고 일찍이 여름을 맞은 아쉬움과 미련 때문일까.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다른 풀들은 녹색을 털어내고 겨울 준비를 하는데,
다시 연녹색 새잎을 밀어 올리는 전호를 바라보면 미련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뿌리에 축적해둔 영양분을 가을에 쓰고도 다른 풀보다 일찍 봄을 맞는 것을 보면
전호의 생명력은 남다른 데가 있는 것 같다.

 

산촌에서 즐겨 먹던 미나리 맛 나는 산나물

전호는 한약재 시장에서 약재로만 거래되어서
전국의 산나물 축제 현장을 다 돌아보아도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랬던 전호가 요즘 산나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전호는 사실 그동안 못 먹는 산나물로 취급됐다.
산촌에 사는 사람들에게 전호를 아느냐고 물어보면
“미나리같이 생긴 거, 그거 옛날에는 많이 먹었는데 요즘에는 안 먹어”라고 한다.
전호는 산에 가보면 좀 흔한 것 같다.
계곡이 근처에 있고 토양에 수분이 적당한 곳에서 자주 볼 수 있다.
6월 무렵이면 줄기가 1m 정도로 자라고 흰색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눈에 잘 띈다.
사실 산에 나는 것은 탈이 나지 않는다면 못 먹을 이유가 없고, 안 먹을 이유도 없다.
자연요리 연구가인 임지호 씨는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저서를 통해
“세상에 쓸모없는 건 없다. 이름 모를 풀들도 다 존재 이유가 있다”고 입버릇처럼 주장한다.
여기에다 요리가가 영혼을 보태 완성하는 게 임무라고 덧붙인다.
전호가 한낱 풀에서 맛있는 나물로 새롭게 태어나는 이유이자 설명이다.
전호는 봄에 잠깐 맛볼 수 있는 게 흠이다.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2월 말부터 4월 초까지 먹기에 알맞다.
이때 정말 부드럽다.
산나물이 대부분 질기다는 선입견이 있지만 전호는 다르다.
알고 보면 이른 봄에 새싹이 트는 산나물은 부드럽다.
얼음 속에서 자라는 미나리가 그렇고, 쑥이 그렇다.
이른 봄에 새싹이 트는 나물은 하나같이 봄이 지나면 억세어져 먹지 못한다.
전호 역시 조금만 자라도 먹지 못한다.

 

바디나물이나 섬바디와는 종이 다른 산나물
전호는 어느 지방에서는 바디나물이라고 한다.
바디나물은 엄연히 다른 종이기 때문에 전호를 바디나물이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울릉도에서 나는 것은 육지에서 나는 전호와 맛과 생김새가 약간 다른데,
이를 구분하기 위해 어떤 이는 섬바디라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섬바디는 또 다른 식물이다.
경기도에서는 물상추라고도 한다.
생김새와 맛이 상추와는 닮은 점이 없는데 왜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 의문이다.
개울가나 습지에서 잘 자랄 만큼 물을 좋아해서 이 같은 이름이 붙은 것일까.
전호의 학명은 아삼(峨參), 한방명은 전호(前胡)이며 해열제와 진통제로 사용하기도 한다.
주로 약용으로 이용하는 뿌리는 소화 촉진과 진해, 거담 효능이 있고
한약방에서는 노인 빈뇨와 치통을 치료하는 약재로 사용한다.
전호는 이른 봄에 잠깐 맛볼 수 있어 산나물을 좋아하고 부지런한 사람만이 맛을 즐길 수 있다.
상추 잎과 함께 쌈으로 먹으면 미나리 향과 같은 맛이 나 별미다.
생김새 또한 미나리와 아주 비슷하게 잎자루가 약간 불그스름한 색을 띤다.
잎자루가 아삭아삭 씹히는 맛은 참나물을 떠올리게 한다.
맛과 식감이 미나리와 참나물의 중간쯤이다.
당근 잎과 생김새가 거의 비슷한 잎은 부드럽게 씹히는 맛이 좋다.
잎과 줄기에서 나는 특유의 향은 미나리 향에 가깝다.
하지만 미나리와는 차원이 다른 색다른 향이다.
산나물 가운데 향이 가장 신선하고 산뜻하다고 할 만하다.
산나물을 먹을 때 느끼는 싱싱함이 그대로 묻어난다.
이 정도 맛과 향이라면 산나물로서 손색이 없다.
삶아서 데치는 것보다 생채로 양념해 먹는 것이 향이 더욱 진하고 맛있다.
돼지고기를 굽거나 삶아서 먹을 때 쌈으로 싸 먹으면 그만이다.
향긋한 향이 고기의 잡냄새를 잡아준다.
처음 먹어보는 사람은 약간 야생 미나리와 같은 향이 나서 싫어할 수 있다.
좀 역겨운 향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자꾸 먹다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겨우내 세찬 눈보라가 빚은 자연의 향은 다르다.
처음에는 거슬리지만 자꾸 먹을수록 입맛이 돈다.

 

쌈으로 먹거나 데쳐서 무쳐 먹으면 맛이 일품

삶아 무쳐 먹어도 좋다.
삶으면 미나리를 삶을 때처럼 약간 불그스름한 물이 우러난다.
잎은 만져보면 결이 고운 털처럼 아주 부드럽고 나물로 무쳐 놓으면 금방 숨이 죽는다.
처음 먹는 사람은 데쳐서 된장이나 고추장을 넣고 무쳐 먹는 것이 무난하다.
고추장이나 된장이 향긋한 전호의 맛을 깎아내리는 게 아쉽지만 이런 방식으로 먹다 보면 입맛이 든다.

생것 100g당 기준 칼로리는 20㎉로 낮은 수준이다.
주요 영양소는 탄수화물이 4.2g으로 가장 많고, 단백질 3.1g, 회분 1.8g, 지질 0.1g, 섬유소 1.0g 순으로 많다.
무기질은 칼륨 849㎎, 칼슘 161㎎, 인 54㎎, 나트륨 62㎎, 철 5.3㎎ 등이다.
그밖에 베타카로틴 2,957㎍, 비타민C 73㎎, 비타민B₂ 0.17㎎, 비타민B₁ 0.13㎎, 나이아신 0.8㎎ 등이다.
전호는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탓에 생산량과 소비량이 많지 않다.
한 번 먹어본 사람들은 “이런 산나물이 왜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우뚱할 정도로 상품성이 충분히
앞으로 연중 먹을 수 있도록 재배 기술을 개발하고 사람들에게 좀 더 많이 알리면
인기 있는 산나물로 자리 잡을 것으로 확신한다.
글·사진 오현식 | 농민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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