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렐레,텔렐레,......."
5월의 마지막 날 아침고요를 깨우는 전화벨 소리에 옆지기가 용수철처럼 침대에서 팅겨나가 거실에 있는 전화를 받는다.
불안한 마음에 시계를 응시하니 새벽 3시 40분이다.
누구일까? 이 시간에.......
이런 저런 불길한 생각으로 순간 머리가 복잡하다.
"여보세요"
.............
"아! 안녕하세요!아저씨.
.................
"이번주에는 못 내려가는데요. 6월6일 현충일 때 내려갈까 하던데요.
...................
"아! 그래요. 큰일이네. 지난주에 내려갔어야 하는데 예식장이다 뭐다해서 못 내려가고 이번주에도 애들아빠가 일이 있고 제가 회사 당직이라서요.
...................
"예, 말은 해 보겠습니다만........"
수화기를 내려놓고 건너온 옆지기가 근심이 가득하다.
"이 새벽에 누구야"
"당진 할아버지셔.고추하고 옥수수 곁순이 너무 자랐다고 이번 일요일에 내려와 곁순제거 작업을 해야 한데요, 그리고 파종한 참깨씨앗이 싹은 잘 올라왔는데
낮에 햇볕이 너무 강해 다 녹아 참깨밭이 절단나고있데, 빨리 내려와 손을 써야 한다는데  이번주 일요일이 내가 회사 당직이라서 어쩌지,
내가 당직을 한 번 바꾸어 볼까 한다.

 

토요일 오후 당진 다락골로 향하는 서해안 고속도로는 우려했던 것보단 그리 붐비진 않는다.
오후 2시 평소보다 서둘러 출발했지만 마음은 급하기만 하다.
발아된 참깨싹이 타 들어가 녹아 내리는 상상의 연속속에 목요일 ,금요일 이틀 밤낮을 애태우다 옆지기가 동료를 설득하여 당직을 바꾸는 기지를 발휘하고 사정의 심각성(?)에 동화되어 휴가까지 내고 합세해 준 처제가족들을 대동하고 자꾸 급해지는 마음을 진정하려 애쓰며 도착과 동시에 참깨에게 달려간다.
상상속의 모습에 대비하면 눈 앞에 펼쳐져있는 광경은 다행스럽게도 그리 피해는 크지 않는 듯 했다.전화해주신 어르신이 급한 마음에 멀칭비닐 한 가운데를 임시방편으로 칼로 줄 긋듯 쫙 갈라 놓고 공기순환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선 처리를 해 놓으신 뒤였다.
지지난주 5월 20일에 파종한 참깨씨앗의 발아는 참 잘 된듯 싶다.노랗게 녹아 내린곳이 듬성듬성 있고 완전히 타 버린곳도 더러 있다.마음 쓰리다.
옆밭에서 가족들과 모종솎아내기와 북주기를 하시던 어르신이 우리일행을 발견하고 역정아닌 걱정을 해 주신다.
"아니,이 사람들아 지난주에 와서 비닐에 구멍을 뚫어 주어야지 이제야 오면 어쩌나...... 심어만 놓으면 저절로 농사가 되는 줄 알아! 관리를 해 주어야지 ,관리를......"
이런 저런 구실을 찾아보아도 마음만 서글퍼진다.주말농사의 어려움이 세삼 한계를 더한다.


작업이 수습국면에 들어간다.
우리부부는 참깨모종솎아내기와 동시에 북주기작업에 처제내외는 옥수수 곁순제거작업에 투입된다.
옥수수를 좋아하는 식구들 모습에 농장에 올 적마다 심고 심었던 옥수수가 사방 밭 가장자리에 멋지게 자리하고 있다.
맨 처음 포트이식한 200여주의 곁가지가 2-3개씩 발생하여 무성하다.어느것은 본가지를 위협할 정도로 성장속도가 무섭다.
인정사정없이 본대목하나만 남기고 가차없이 곁가지를 제거하라 두 사람에게 당부했다. 처제내외는 묵묵히 잘 따라준다.
지나가시던 할머니 한분이 농을 던지신다. 농사박사 다 되었다고,
옥수수는 그렇게 해야한다고, 욕심을 버리고 대목하나만 관리해야 속 실한 옥수수를 맛 볼 수 있다고.......
6월들어 생명력이 더 왕성해진 쬐악볕 아래서 쪼그리고 앉아 작업하는 모종솎기와 북주기작업은 몹시 힘들었다.이랑을 사이에두고 옆지기와 마주앉아 작업을 진행한다.
군데군데 노랗게 타 버린 모종을 포함하면 뿌린 갯수만큼 너무도 싹이 잘 올라 있었다.작년 싹이 나지 않아 2번을 파종했다 끝내 포기했던 경험에 비추어보면 너무도 싹이 잘 나있었다.
5-6개가 한움큼 한움큼씩,대략 20cm간격을 유지하며 한곳에 2-3개씩 남기고 세가 약한 모종부터 제거하고 흙을 채워준다.성장속도를 보아가며 한 번더 솎아내기와 북주기를 해 주어야 할 것 같다.
쪼그리고 앉아 뽑아내고 채워주는 작업이 반복될수록 짜증은 더 해지고 농사에 대한 자괴감에 빠져들고 있는 자신이 느켜지곤 한다.참깨싹이 타 들어간다는 말에 이틀동안 노심초사했던 걱정은 오간데 없고 유전자를 탓하려 들지 않으려해도 농사에 대한 버리지 못한 미련이 서글퍼지기도 한다. 옆지기도 짜증나있기는 매 마찬가지인듯하다.피식 한 번 웃어본다.
시작이 반이라던가. 생명의 숭고함에 감사함이 더해지고 하나 하나 집중의 도를 더하니 금새 해는 저물고 개구리 목청이 소음으로 변 할 즈음 작업은 하나하나 종착역에 도달한다.
먼저 작업을 완수한 처제가 만들어 준 삼계탕의 닭다리를 옆집어르신과 나누어 즐기며 모처럼 왁자지껄해진 다락골 쉼터에서 하루를 정리한다.


일요일새벽
무슨 약속이나 있는 것처럼 한사람 한사람 옷가지를 챙겨 입고 원두막에 모여든다.
원두막에서 내려다보는 다락골은 너무도 쓸쓸하다.다락골로 이동하면서 본 주변의 논들은 모들이 모두 제자리를 찾아 갔지만 유독 이곳 다락골만은 이제껏 모내기 준비만 해 놓고 있다.
사정인즉 농기계를 운전할 수 있는 젊은이들이 없어 마을에 그 흔한 이양기 한대 없어 외지에서 모내기가 끝난 후에야 이 곳 다락골의 모내기가 시작된다 한다.
옆지기가 건내준 커피 한 잔으로 마음을 다스리며 오늘 일을 설계한다.오후 고속도로 정체를 감안하여 작업을 오후2시까지 마치기로하고 각자의 일에 역활을 분담한다.
옆지기와 처제는 고추곁순제거 및 고구마 심기작업,동서는 다락골 쉼터 주변정리 및 오이망설치작업,그리고 나는 잡초제거 및 마늘밭물주기를 하는것으로 각자의 작업을 할당했다.
내가 성장했던 시골에서의 밭 김매기 작업은 여성의 몫이였다.6-9월 숨이 막히는 폭염속에서 쪼그리고 앉아 오리걸음으로 김매기를 했으니 무릎은 관절염에 허리는 허리병에 우리어머니는 지금도
건강이 좋지 않으시다.
다락골에선 쪼그리고 앉아 오리걸음를 하며 호미로 하는 잡초제거는 나의 역활이다.옆지기만은 그 기억속의 한 장면에 끼워넣고 싶지 않아서다.그 역활에 주변 이웃 할머니들의 칭찬이 자자하다.
오늘도 더덕,도라지밭에는 잡초세상이다.더러 하나둘씩 보이는 더덕싹의 생존경쟁이 보기에도 안쓰럽다. 그 옆에는 곧은터를 통해 옮겨심은 참당귀가 한껏 유월의 푸르름을 더하고 있다.
마늘쫑도 많이 달려있다.
한쪽 마늘밭은 엉망이다.흉해 보이기까지 한다.누가볼까 겁도 난다.호수를 연결해 물주기작업도 병행한다.
옆에서는 옆지기와 처제가 고추나무 방아다리밑 곁순을 제거하느라 열심이다.
작년고추농사에선 곁순제거 작업시 곁순뿐 아니라 방아다리 밑에 있는 모든 잎까지 제거해 버렸더니 보기도 민망하고 해서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었는데 고추정식때 도움을 주셨던 할머니 말씀도
곁순만 제거하지 본가지 잎은 그대로 살려주라 하신다.곁순제거와 함께 방아다리밑에 달린 풋고추도 모두 따버리라고 했더니 그 할머니는 아까운 고추를 왜 따냐고 하신다."할머니,맛있을때 먹어야지요."
옆지기가 거들자 "아이고 아까워라"하신다.자기들은 빨간고추생각에 아까워서 풋고추하나 손대지 않는다나 하신다. 올해도 고추를 1000개 넘게 심으셨다는 할머니의 고추사랑은 대단하기만하다.
동서도 자기가 맡은 소임완수에 분투중이다.
쉼터의 주변청소며 배수로정리 주변 잡초제거까지 마친 동서는 처음 쳐보는 오이망치기에 분주하다.
2m길이의 철재 지지대를 1.5m정도의 폭으로 서로 마주보게 양쪽으로 비스듬히 땅에 박고 위쪽끝을 x자로 교차시켜 전선묶는 타이로 묶고 1.5m간격으로
이런 과정을 5번 반복하고 나서 그것을 지지대로 준비해간 오이망을 펼쳐 지지대에 고정시키고 나플거리는 그물망 밑쪽을 나무젓가락을 이용하여 땅에 고정시키니 한 채의 멋진 새장이 꾸며진다.
거기에 오이줄기를 하나씩 유인시키니 멋진 오이농원으로 탈바꿈한다.


비슷한 시간에 일을 마친 두 팀은 비닐멀칭후 이웃할머니가 주신 호박고구마를 3이랑 심고나서 처제내외는 뒷산으로 머위대를 채취한다가고 옆지기는 미나리깡에서 미나리 수확 재미에 한껏 빠져있다.
유월의 초입에 들러선 계절은 무더위가 제철인양 싶다.
더위를 식혀줄 시원한 소나기라도 한바탕 내려주길 갈망하며 농사꾼의 DNA을 물려받지도 않고 태어났으매도 한여름의 쬐악볕아래서 수고를 아끼지않은 처제내외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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