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장을 일구면서 해보고 싶은 일이 여럿 있습니다만
그중 꼭 해보고 싶었던 것이 쑥과 솔 순으로 효소를 담는 일입니다.
주말에만 일을 몰아서해야하는 처지라 모종도 내다 심고 씨를 뿌리다보면 그 일을 잊고 지나가기 일쑤였습니다.
일에 파묻혀 있을 땐  잠시 짬을 내기도 쉽지 않았으니…….

 


올해도 여러 효소를 담가볼 계획인데 여유가 생길지 모르겠습니다.
여태껏 하지 못한 미련 때문에 농장에 도착하자마자 바구니를 챙겨들고 뒷산에 오릅니다.
쑥은 단오절기 전후로 10일 사이에 채취해야 약성이 으뜸입니다.
생장점 근처의 쑥만 꺾어와 설탕에 버무린 후 하룻밤을 재워 용기에 옮겨 담아야 하기 때문에 손길을 바쁘게 재촉합니다.
지금이 쑥으로 효소 담그기에 딱 좋은 시기입니다.

 


잊으려하면 할수록 떠오르는
옛 여인의 기억처럼 또렷하게 중추신경이 한곳에 집중됩니다.
행동반경은 극도로 좁아지고 부스럭거리는 작은 소리 하나까지도 전율이 느껴집니다.
"전설의 고향"에서 나오던 귀신이야기처럼 해괴한 도깨비이야기만 듣고 살아온 세대라서인지 각인되다시피 한 귀신이야기들 때문에
산자락 끝 외딴집에서 홀로 지내는 밤은 유쾌하지 못합니다.
개구리소리가 외딴시골마을을 집어삼킵니다.
시간이 멈춘 듯 긴 고독의 나락으로 빠져듭니다.

 


새벽닭이 울기 전에 호미를 챙겨듭니다.
뜰 안에 있는 텃밭이라 가능한 일입니다.
쑥 효소 담는 일에 시간을 빼앗겨 예정했던 일이 뒤로 상당히 밀려났습니다.
이른 봄에 내다심은 부짓갱이 나물이 땅속깊이 뿌리를 내렸습니다.
아직은 포기가 크지 못해 틈새마다 금세 바랭이 등 온갖 잡초들이 빈틈없이 들어차버렸습니다.
잡초들만 골라 들춰내야하는데 흙이 말라 호미조차 잘 쳐 박히지 않고 걸핏하면 어린모종까지 뽑혀 나오기 일쑤입니다.
궁여지책
물을 밭에 흠뻑 뿌리고 나서야 축축해진 흙 사이로 잡초들이 쏙쏙 뽑힙니다.
지키느냐! 내주느냐!
지긋지긋한 잡초들과 땅 따먹기가 시작됩니다.

 

 

활짝 핀 함박꽃이 운치를 더합니다.
농장의 작물들이 차츰 자리를 잡아갑니다.
허리높이까지 자란 찰옥수수 잎사귀의 녹색 빛이 많이 얇아졌습니다.
옮겨 심은 지 한 달이 지난 고추모종도 예전에 비해 성장이 많이 뒤쳐졌습니다.
낮은 밤 기온이 아직도 영향을 끼치고 있는 모습입니다.
두 가지 작물 모두 커가는 과정에서 거름을 많이 필요로 하는 것들이라 적절한 시기에 부족해지기 쉬운 양분을 채워주어야 하는데

그 시기가 닥친 느낌입니다.
기운을 북돋아주고 잃은 활력을 되찾아주기 위해 뿌리에  직접 닿지 않게 포기와 포기사이에 구멍을 뚫고 그 속에 비료를 한 스푼씩 떠
넣고 공기와의 접촉으로 비료의 유용한 성분들이 달아나는 것을 막기 위해 흙으로 구멍을 채웁니다.
흔히 말하는 첫 번째 웃거름주기를 마칩니다.

 

 

긴장의 끈을 놓고 그냥 지나치기가 쉽지 않습니다.
고춧대에 서성대는 개미들이 심심찮게 관찰됩니다.
부드러운 잎사귀뒤쪽으로 진딧물도 가끔 눈에 뜁니다.
땅이 건조해진 틈을 타고 쓸모없는 벌레들이 여럿 고추밭에 출현했습니다.
고추꽃 속에 알을 낳았는지 화들짝 놀라 달아나는 나방들도 서넛 보입니다.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농사를 짓기로 결정한 터라 여러 가지 독초들을 우려낸 액체를 물에 섞어 골고루 뿌려주고
나방들은 유인해서 없애기 위해 틈틈이 준비했던 페트병을 고추지지대에 매달고 그 속을 효소찌꺼기와 막걸리 그리고 독초우려낸 물을 섞어 1/3쯤 채웁니다.
고추농사에서 제일 골칫거리인 고추벌레(담배나방애벌레)는 고추꽃이 필 때 꽃 속에 알을 깝니다.

수정을 마치고 풋고추가 통통하게 커질 때쯤 알에서 깨어나 고추에 구멍을 내고 밖으로 탈출하는데 그때 뚫린 구멍사이로 빗물이 스며들어 고추가 썩게 됩니다.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막걸리와 효소의 달콤한 냄새로 나방들을 페트병 속으로 꼬드겨 죽이는 이 방법은 생각했던 것보다 효과가 커

해마다 고추농사에 사용해오고 있습니다.

 


벌써부터 한해농사를 걱정하는 이들이 많이 늘었습니다.
유월의 초여름날씨인데도
밤 기온은 서늘합니다.
수확기에 접어든 감자가 밑이 잘 들지 않았다며 이웃들의 수심은 깊어갑니다.
하늘이 하는 일이니 난감합니다.
이래저래 마음만 쓸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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