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지붕의 아담한 집
글 / 조진태 (소설가, 아동문학가)


몸이 온 산촌은 온통 새 생명이 기지개를 켜고, 만 가지 목숨 가진 것들이 소리 없이 아우성을 친다. 아울러 내가 기거하는 농막의 뾰족히 솟은 빨간 지붕에는 봄의 따사로운 햇살이 아지랑이와 더불어 출렁인다. 맑은 공기도 연녹색의 대지 위에 풍성하다. 연초록 숲 아래 개골창으론 눈 녹은 개울물이 졸졸거린다. 수십 미터 암반에서 치솟은 지하수가 스프링클러를 타고 푸른 잔디 위에 연우(煙雨)처럼 퍼져간다.
이쯤해선 자두꽃, 복사꽃이 망울지고, 연분홍 진달래와 노란빛 개나리가 함성을 지른다.
물과 공기와 햇빛은 모든 생물이 살아가는 삼대 요소다. 그 삼대 요소가 생명이 용트림치는 산촌에 넘쳐난다.
이곳을 한 번쯤 다녀간 친구들은 와 보지 못한 친구들에게 자랑이 늘어진다. 그래서 그 소리를 전해들은 친구들로부터 전화를 자주 받는다. 특히 도시에서, 그것도 탁한 매연 속에 사는 친구들일수록 전화가 잦다. 그럴 때마다 다음과 같이 안내를 해준다.
“중부 프리웨이를 110km 속도로 달려오다가 음성IC를 빠져 나오라. 그리고 바로 연결되는 음성행 하이웨이를 80km로 질주하다가 음성읍에 닿으면 36번 국도에 연결된다. 거기서 충주 방면 3km 지점 국도변에 이르면 왼편으로 ‘만남의 광장’이 있고, 오른쪽엔 ‘주유소’와 ‘전통가마솥’ 판매점이 나란히 있다. 그 곳에서 다시 충주 쪽 50m 지점에 ‘작가원(作家苑)’이란 녹색 간판이 눈에 확 들어온다. 그 간판을 보고 포장된 진입로를 따라 6백m 들어오면 아담한 빨간 기와지붕의 집 한 채가 있다. 물론 집이 한 채 있다고 말하는 것은 ‘빨간 지붕의 집’이 한 채 있다는 것이지 주변엔 여러 채의 창고며, 얼마 전에 새로 지어 이사를 온 두어 가호의 집이 있다. 바로 그 ‘빨간 지붕의 집’에 내가 살고 있다. 서울서는 승용차로 1시간 40분이면 족하다.”
이 정도 해주면 언제 오겠다는 전화 외는 두 번 더 묻지 않고 잘도 찾아오는 친구들이다.
자주 찾아오는 친구들은 대개가 금요일 오후에 모여드는, 모두가 직장에서 정년퇴직을 한 친구들이지만 아직도 손재고 가만히 집에 들어앉아 세월이나 삭히는 친구들은 아무도 없다.
다들 일찍이 노년을 염두에 둬서 각자 개성에 맞는 특기를 살려 이미 그 방면에 일가를 이루어 놓았기 때문이다. 시인, 아동문학가, 소설가, 수필가, 화가, 기사(棋士), 서예가, 목공예가 등 다양한 특기에다 예식장의 주례 서기, 적십자사에서 한글문맹자 교육, 노인대학 강사로 쉼 없는 활동을 하고 있는 친구들이다. 그래서 “인생은 육십부터”가 아니라 “칠십부터”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이곳에 와도 놀고만 있는 법이 없다.
별도로 마련해 놓은 창작교실에는 시인과 작가들이 모여 작품을 쓰거나, 토론회를 갖는다. 느티나무 밑 평상에는 기사(棋士)가 바둑을 두고, 화가는 실경산수화가 아니면 수채화를 그린다. ‘빨간 지붕의 집’ 응접실 넓다란 테이블 둘레에는 주례사를 쓰거나, 강의록 작성에 여념이 없는 친구도 있다. 동반해 온 부인네들은 모처럼 만나 끝없는 수다와 함께, 웃음소리가 낭자한 가운데 산자락 밭자락에서 캐온 산나물, 들나물로 음식을 장만하여 풍성한 점심상을 차리기가 일쑤다. 잔디로 뒤덮인 정원에 식탁을 갖다 놓고 진수성찬(?)이 마련되면 다들 제몫을 챙겨 게 눈 감추듯 한다.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연못에 낚싯대를 드리워 낚시를 즐긴다. 낚시질한 붕어는 매운탕 끓여서 소주잔을 나눈다.
이레서 봄의 산촌에는 회색빛 무거운 겨울을 밀어내고 봄 냄새, 사람 냄새로 가득 찬다.
어느 사이 하루해가 기운다. 일몰의 노을이 수정산 머리 위로 붉게 탄다. 붉게 타는 저녁노을을 바라보는 시인은 인생의 황혼기를 생각하며 시를 읊는다. 화가도 타는 노을을 그리고, 사진작가도 노을을 찍는다. 그러다가 어느 한 친구가 아직도 잔디가 덜 자란 묫등을 건너다보며 뜬금없이 말한다.
“어느 새, 무덤 하나가 더 생겼구먼.”
그는 석양에 빗겨 선연한 무덤을 가리켰다.
“그래, 지난 가을에 세상을 하직했지. 바로 저 쪽 농장에서 사과나무를 가꾸던 친구였어.”
“이렇게 물 좋고, 공기 맑고, 햇볕 좋은 곳에 살면서도 무어가 그리도 급해 서둘러 떠났을까?”
“글쎄나, 한평생 농사지으며 욕심 없이 살던 이 곳 토박이였는데. 하기야 술이 탈이었지. 과수원에만 나오면 하도 과음을 자주 해 인사불성이 된 그를 내가 병원에 실어다 나른 횟수만도 수회나 되었거든.”
“폭음을 해야 할 이유라도?”
“알뜰히 농사 지어 자식들 뒷바라지해 결혼시켜 내보내고 두 내외 살다보니 아내는 중풍 들어 누웠겠다 낙이란 술밖에 없다고 푸념깨나 하였었지. 그러면서 나보다 한참 아래였던 그가 죽기 전까지만 해도 내게 이런 말을 자주 했었다네.”
“뭐라 하던가?”
“선생님은 일흔까지만 사십시오. 그 후에 돌아가시면 수의까지 장만해서 선생님 장례는 제가 책임지고 모시도록 헐 터이니께유우 하고 농담을 하곤 했었지.”
“그러던 그가 저렇게 먼저 가서 누웠으니 참으로 인생은 무상한 거구먼.”
전직 A교장의 한탄조의 말이었다.
노을은 점점 더 붉게 타오른다. 타오르는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다들 인생의 황혼을 생각한다.
“아, 저 불타는 황혼을 보라. 바로 저것이야. 하루를 마감하는 저 일몰의 위대함이여!”
B는 시인답게 황혼을 찬탄해 마지않았다.
“우리의 황혼기도 저 불타는 노을이어야 해. 지는 황혼이 아름답듯이 인생의 황혼도 아름다워야 해. 그것이 인생에 있어서 ‘유종의 미’라는 거야.”
나는 지금 저렇게 붉게 물든 저녁노을을 바라보면서 문득 아내와 함께 했던 여행 중 잊을 수 없는 추억의 노을이 떠올랐다. 저 북미(北美)의 대서양 연안에 있는 노바스코샤에서 보았던 낙조(落照)하며, 온타리오 주의 토론토에서 퀘백에 이르는 로렌스 강에 무더기로 떨어지던 그 찬란하던 황혼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뿐이던가! 비탈길을 달리는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본 샌프란시스코 항의 골든게이트 브리지에 쏟아지던 황금빛 낙조와 더불어 찬란했던 황혼 또한 잊을 수가 없다.
내가 그토록 그 때 그 황혼을 추억하는 것은 하루를 마감하는 자연의 아름다움에서 내 인생의 황혼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B시인의 말대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다 황혼처럼 아름답게 살아지기를 바래서이다.
어느 사이 수정산 능선에 보름달이 떠오른다.
밤공기가 차가워지자 마당 귀퉁이에다 모닥불을 피웠다. 토닥토닥 불똥을 튕기며 불꽃이 활활 타오른다. 모닥불의 밝음이 달빛을 밀치기라도 하듯 환하다.
아이들은 쥐불을 돌리고 어른들은 오갈피로 빚은 농주를 마신다.
농막의 뾰족한 지붕 위로는 파르스름한 달빛이 무더기로 쏟아지고 있다.
“후꾸 후꾸….”
이름 모를 밤새의 울음이 산촌의 밤을 살짝 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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