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두렵게 느껴지긴 이번이 처음이다.
빠르게 움직이는 구름들 모습에 서둘러 다락골을 벗어나 귀갓길에 올랐다.
세차게 퍼 붓는 빗줄기에도 후텁지근한 공기의 흐름이 계속돼 태풍"갈매기"가
지근거리에 와 있는 느낌이 감지된다.
빗길을 조심스레 달려온 차들이 서해대교를 앞에 두고 길게 늘어선다.
바가지로 끼었듯 빗줄기가 거칠다.
"시속80km 감속운행"
서해대교 초입 전광판엔 빗길감속운행을 당부하는 노란불이 선명하다.
"천천히, 천천히"
속도계는 채 30km을 넘어서질 못한다.
스스로 깊은 최면에 빠져들듯 몸의 기능을 한 점에 집중한다.
핸들을 붙잡은 양손엔 힘이 실리고 고개를 들이밀며 두 눈을 크게 부릅뜬다.
초고속으로 빗물을 훔쳐내던 와이퍼가 제 기능을 상실했다.
사방이 비의 장막으로 둘러지고 바람까지 심상치 않다.
차가 들썩이는 느낌에 방향도 제멋대로 움직인다.
상태가 조금나아보이는 룸미러를 통해 잠깐잠깐 후방을 살펴 차의 방향을 유지
시킨다.
희미하게 깜빡이는 앞차의 비상등불빛이 마치 구원의 등불인양 그 불만 쫓아
움직인다.
악천후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구나!…….
순간 묘한 긴장감과 공포감이 엄습한다.
다리상판을 떠받치고 있는 커다란 서해대교의 기둥을 언제 지났는지 기억조차 없다.
평상시 다리위에서 주변을 조망하는 재미에 순식간 내달렸던 서해대교 건너기가 그리 많이 지체된 시간도 아닌데 무척 지루하게 느껴진다.
다리를 다 건넜다 싶어 경직된 몸을 풀어주기 위해 상체를 몇 번 흔들어 대자 톨게이트
무렵부터 잠이 든 옆자리에 동승한 옆지기가 주변을 살펴본다.
"나, 많이 잤지?"
너스레를 떠는 순진한 모습에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긴장감이 일순간 이탈한다.
토요일 습관적으로 올려본 하늘에선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유독 주말에만 계속되는 애꿎은 비만 탓하며 무작정 내버려둘 수도 없는 상황이라
장대비를 뚫고 2주 동안 비워둔 다락골로 향했다.
짙은 황토물이 배수로를 타고 넘쳐 길을 쉽게 분간 할 수 없어 조심스레 차를 몰아야만
했다.
빗물을 촉촉이 머금고 있는 밭뙈기엔 예상치 못한 물난리로 토양유실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었다.
일 년에 한두 번 큰 비가 내릴 때만 가끔 발생하는 쉼터 뒤편 돌 틈 사이에서 새어나온 물이 무너져 내린 밭두렁사이로 흘러들어 밭 한쪽을 완전히 침수시켰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미쳐 신경을 쓰지 않았던 탓에 허둥지둥 비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물길을 만드는 법석을 떨어야만했다.
태풍전야.
비싼 기름을 때며 찾아온 사람에 대한 하늘의 배려일까?
농사일에 치여 그 동안 밀린 쉼터정리를 하던 중에 비가 그쳤다.
바람 한 점 불지 않고 시커먼 구름들의 움직임만 활발했다.
밭에 들어가 일할 형편이 못되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구름모습에 손 놓고 구경만 할 처지도
못됐다.
옆지기에게 들깨모종을 부탁했다.
사이짓기를 염두에 두고 사전에 골을 크게 만들었던 울금밭 헛골의 물 빠짐이 좋아 방금 전까지 비가 내렸는데도 들어가 작업하기엔 별다른 어려움의 없어 보였다.
옆지기가 모상에서 모종들을 떠 바구니에 담아왔다.
키가 고만고만한 것들끼리3-4개를 추려내 잎을 중심으로 키를 맞춰 30cm정도 간격으로 이식하라 일렀다.
또 모종의 키가 너무 큰 것들은 너무 깊게 심으려 들지 말고 줄기가 부러지지 않게 "ㄴ"자 모양으로 심어 줄 것을 당부했다.
산 모기들의 극성스런 공격에 투덜대는 횟수는 늘어 갔지만 하나라도 더 심고 싶은 욕심으로 손길은 분주했다.
2주전 1차 순지르기를 마친 검은콩 밭은 새로 발생한 분지들로 무성했다.
훌쩍 성장한 모습에 기쁨보다 심란한 마음이 앞섰다.
바람이라도 불면 콩들이 쓰러질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너무 일찍 심어 괜한 헛고생만하고 있다는 옆지기의 비아냥거림 속에 2차 순지르기를 실시했다. 비가 내려 축축해진 땅에 태풍까지 예보되어 있어 언제 발생할지 모를 쓰러짐을 방지하기위해 잎과 줄기를 잘라냈다.
한 구멍에 두 그루가 심어진 곳엔 늘어난 분지로 자체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벌써 넘어진 것도 몇 개 발생했다. 그곳은 어김없이 한 그루씩만 남기고 줄기째 과감히 정리했다.
밤새 비가 계속되었을까?
양철지붕을 때리는 빗소리가 새벽부터 요란했다.
심한 비에 혹시 산사태라도 발생하지 않을까?
괜한 걱정에 쉼터안위가 걱정돼 비옷으로 무장하고 삽과 낫을 챙겨 들었다.
바람은 잠잠했지만 후텁지근한 기운 때문에 새벽공기가 전혀 상쾌하지 않았다.
배수로의 흙들을 걷어내고 밭두렁주변잡초들을 말끔히 정리했다.
누구는 더하고 누구는 뺄 거라며 옆지기는 수확물에 대해 나눔할 상대를 결정하는 시시 컬컬한 일에 골몰하고 있다.
푹푹 빠져대는 고추 골에 들어가 벌써 아삭이 고추를 두 바구니 따낸 후 노각오이가 된 토종조선오이 수확에 흥이 나있다.
올해는 마른장마라 그런지 노각오이가 크게 달리지 않았다며 밭가에 심어진 옥수수도 자기가 직접 수확하고 싶다며 접근을 허락하질 않는다.
고추지지대와 유인줄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시커먼 구름들이 빠르게 움직인다.
비가 오다 말다 궂은 날씨가 계속된다.
기분 나쁜 후텁지근한 공기가 계속 유입된다.
골과 이랑의 경계를 허물고 계속 성장하고 있는 야콘에게 아무 피해가 발생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락골사랑 > 다락골 사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농장에 핀 꽃(무슨꽃인지 알아맞춰보세요??) (0) | 2008.08.06 |
---|---|
김장배추 씨앗파종 (0) | 2008.08.01 |
쟁기질에 대한 기억 (0) | 2008.07.12 |
매는 몰아 맞아야 낫다?? (0) | 2008.07.07 |
추억속의 과자 '뽀빠이'를 아시나요?? (0) | 2008.06.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