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골로 가는 길은 늘 새롭다.
고속도로 옆으로 모내기를 끝낸 논들이 스쳐 지나간다.
위도로 섬 여행을 떠나겠다는 옆지기를 주저앉혀 옆자리를 매웠다.
때 이른 여름 날씨로 차안이 후텁지근했다.
어떤 모습들일까?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설렘으로 운전대를 잡은 두 손엔 땀이 밴다.
다락골에도 모내기가 시작되었다.
산골짜기 다랑이 논 모습이라 저수지도 따로 없다.
지난 주말에 내린 단비로 논두렁까지 물들이 넘쳐난다.
늦은 점심을 먹던 이웃이 같이 먹기를 청해온다.
손사래를 치며 서둘러 자리를 피해 보지만 챙겨주는 마음씀씀이에 한량없이 기분이 좋다.
"당신 못밥 먹어봤어?"
어린 시절의 기억의 공간을 선명하게 차지하고 있는 논두렁에 쭈그리고 앉아 먹던 못밥의
미련이 아직 남아 있어서일까!
추억을 남겨 놓고 돌아서자니 마음이 미처 따라오지 못해 입맛만 다시며 옆지기에게
말을 건넸다.
한 해 기껏해야 열손가락에 꼽을 수 있던 쌀밥 먹던 날.
삶은 팥을 섞어 지어낸 불그스레한 빛깔로 유혹하며 사람을 환장하게 했던 밥.
조붓한 논길 한 복판을 밥상삼아 길가 양 옆으로 마주앉아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웠던
그 밥. 모내기하던 일꾼들 뿐 아니라 주변에 있던 모든 이를 불러들여 함께 먹으며 풍년을
기원했었다.
"고수레! 고수레! 올 한해 농사 풍년들게 해주소서!"
모든 것이 맛있고 부족함이 없었다.
밭가에 심어 놓은 옥수수가 도열하듯 우릴 반긴다.
설렘이 환희로 바뀌는 순간
훌쩍 커버린 분신들이 마지막 가는 봄의 햇살을 즐기고 있다.
찬찬히 들여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지난주 파종했던 검은콩(서리태)들이 기지개를 펴고 고개를 약간 숙인 다소곳한 모습으로
주인에게 첫 인사를 건넨다.
심어진 구멍마다 어김없이 2-3개씩 태동하고 있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하다.
자기보다 몇 갑절 무거워 보이는 흙더미를 머리에 이고 씩씩하게 버티고 서 있는
모습에 감동과 경이가 교차된다.
자꾸만 매만지고파 손이 간 사이, 콩밭에 정신이 팔린 비둘기가 밭뙈기 주변에서 서성거리며 자기의 존재를 각인시키려 든다.
치장해놓은 반짝이 비닐테이프 덕분일까?
다행스럽게도 지금까지는 콩밭에 비둘기들의 가해흔적들은 보이질 않는다.
그렇다고 비둘기들의 약탈에서 벗어난 것도 아닌 것 같다.
이쯤해서 집중되는 새때들의 무자비한 강탈을 잘 넘겨야 할 텐데.......
뚜렷한 대책이 떠오르지 않아 경험을 빌려보려 이웃 밭에서 매주 콩을 심고 계신다는 어른께 다가가 지혜를 구했다.
독한 살충제(다이***)에 파종하고 남은종자를 담갔다가 싹이 올라오는 구멍구멍에 뿌려 놓던지, 냄새가 심하게 나는 입제를 구해다가 구멍에 조금씩 집어 놓으면 효과가 있을 거란다. 약 먹고 죽은 비둘기나 까치들을 서너 마리만 장대에 매달아 밭에 걸어두면 새때들이 겁을 먹고 얼씬도 못할 거라 하신다.
그 동안 당한 피해 때문일까?
들려주는 방법마다 섬뜩하다.
한 구멍에 3알씩 넉넉히 파종했으니…….
애당초 그 중에서 한 알은 비둘기먹이로 생각했으니…….
냄새를 싫어한다는 목초 액을 물에 희석시켜 밭고랑에 뿌려주는 것으로 대신했다.
밤새 이슬이 많이 내렸다.
짝짓기를 하는 까치부부가 호들갑을 떤다.
2년째 재배경험을 쌓고 있는 마늘농사와 궁합이 별로 좋지 못하다.
지난가을 마늘씨 파종부터 4월 초순까지 재배교본에 충실하게 관리해왔으나(석회질비료는 시비 못함)4월 중순 무렵부터 마늘잎 끝이 하얗게 말라갔다.
봄 가뭄 탓일까 싶어 주말마다 흠뻑 물로 적셔주었지만 결과는 별 차도가 없었다.
"칼슘부족으로 인한 생리장해일 수 있다."
귀동냥으로 습득한 값진 지식을 칼슘(ca)을 칼륨(k)으로 착각하는 실수를 범해 웃거름으로
n-k비료만 처방했었다. 그 결과 개선되기는커녕 상태만 더 악화되어 어느 것은 줄기째 메말라 카메라에 담기도 창피할 정도로 농사가 엉망이 되었다.
오늘 "꿈꾸는 농부님"의 가르침대로 새로운 지식을 경험한다.
질산칼슘엽면시비와 교대기처리가 그것이다.
때 늦은 감이 있지만 마늘밭과 가뭄에 발생하는 칼슘겹핍을 예방하기위해 야콘밭에 0.3%농도로 질산칼슘을 엽면시비 했다.
이후 생육과정을 면밀히 관찰하여 마늘농사의 답을 찾아보려한다.
고추, 토마토에는 꽃의 발생을 활성화시키는 교배기 처리를 했다.
꽃이 2-3개 필 무렵 인산칼슘과 영양제를 엽면시비해주는 것으로 화아분화를 촉진시켜 열매를 많이 달릴 수 있게 하는 기술이다.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건네주며 옆지기가 고추밭과 옥수수 밭 곁순제거를 거들고 나선다.
생육환경의 차이일까?
같은 날 같은 재배조건에서 이식했는데 일반고추와 청양고추와는 달리 풋고추용으로 심은
50그루의 아삭이 고추나무의 자람이 뒤쳐져 있어 관심의 대상이다.
고추나무마다 가지분화가 왕성하다.
방아다리가 뚜렷이 구분되고 한 나무에 4-5개씩 꽃들이 피었다.
방아다리 밑 곁가지를 말끔히 제거했다.
시골에서 농사를 일구는 노모는 아직도 방아다리 밑 곁가지를 제거하지 않고 고추농사를 짓는다.곁가지를 제거해버리면 초반에 고추 딸게 없다며 오래전부터 해오던 방식을 고집한다.
지난해에도 장마철이 끝나갈 무렵에 탄저병이 창궐하여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탄저병은 공기를 통해 전염되는 것이 아니라 흙탕물이 튀겨 병반이 옮겨진다며 방아다리 밑 곁순은 무조건 제거하라고 누누이 말씀드렸건만…….
영양분을 많이 소비하는 대학찰옥수수도 곁가지들을 제거하니 보기에도 시원하다.
오이덩굴을 중심으로 1m간격을 유지하며 양옆으로 철재지지대를 땅에 박고 쇠파이프를
가로질러 전선 묶는 끈으로 단단히 동여매니 오이덩굴을 유인할 그물을 설치할 수 있는 기다란 틀이 갖추어졌다.
그물망을 펼치며 윗부분은 지지대에 끈으로 묶어 고정시키고 그물망 밑 부분을 나무젓가락을 이용해 땅속에 촘촘히 고정시키고 나서 그 그물망에 오이덩굴을 올려주는 것으로 오이덩굴유인작업을 마쳤다.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밭고랑에서 야금야금 영역확장에 재미를 붙인 들풀들이 얄미워 본능적으로 호미를 찾아든다.
거저 얻는 것은 없다.
벌써 햇볕이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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