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속 15m이상 바람이 불면
항구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작업들이 all-stop된다고 한다.
"강풍주의보"
다리난간에 설치된 바람빠르기를 알려주는 전광판엔 18m라는 숫자가 선명하다.
서해대교를 목전에 두고 길게 늘어선 차량행렬이 거북이 걸음이다.
하늘로 우뚝 솟은 두개의 다리기둥 사이를 지날 무렵엔 심한 흔들림이 느껴진다.
옆지기의 근무가 끝난 오후 3시경에 인천을 출발했으나 평소와 다르게 다락골에
도착하기도 전부터 진이 빠져버린다.
일손을 거들겠다고 따라나선 처재내외를 괜한 고생시키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어둠에 잠겨버린 다락골엔  바람을 타고 눈송이마저 춤을 춘다.

 

 

불빛에 반사된 눈송이를 반길 낭만이 없다.
추워질 거란다.
마지막 남은 가을걷이를 끝내야한다는 중압감에 마음만 앞선다.
아직까지 다 하지 못한 가을걷이는 검은콩타작과 은행겉껍질탈피작업이다.
잠시 주변을 살펴볼 여유도 없이 은행겹껍질탈피기를 광에서 꺼내 마당으로 옮겼다.
지난해까지는 겹껍질을 벗겨내는 작업을 수작업으로 진행했으나
올핸 거금을 들여 소형탈피기 한 대를 구입했다.
은행열매를 둘러싸고 있는 껍질과 과육을 따로 모아 발효시켜 다음농사에 친환경자재로
사용할 목적으로 탈피기를 제작하는 여러 회사의 모델 중에서
물의사용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제품을 숙고 끝에 마련했다.
매섭게 파고드는 한기를 없애려 모닥불을 지피고
틈틈이 주워 비료포대에 담아 은행나무 밑에 모아 둔 은행열매들을
기계주변으로 들어 날랐다.
은행 독을 유독 심하게 타는 동서는 방안창틀에 보온용 비닐을 붙이는 작업을 맡겨
작업장 출입을 금지시켰다.
기계 스위치를 켜고 포대에 반쯤 채워진 은행들을 기계 안으로 천천히 흘려보낸다.
철재로 제작된 세탁기 통처럼 생긴 원통 안에 모터에서 연결된 하나의 축에 4개의 날개를 달아 그것들을 회전시키면 은행겁껍질이 벗겨져 통 밖으로 밀려나온다.
빠져나온 껍질과 과육은 따로 보관하고 통속에 든 은행만 꺼내 깨끗한 물로 다시 한 번
행군 후 포장위에 곱게 펼쳐 물기를 제거했다.
기계속도에 일을 맞추려드니 껴입은 옷 속이 땀으로 흥건하다.
그새 바람은 많이 자자들고 맑게 겐 하늘에선 별빛이 쏟아진다.
30kg정도 들어있는 포대를 반씩 나누어 작업하니 모든 것이 순조롭다.
과하면 체한다고 했다.
은행 알에 묻어있는 과육을 헹궈내던 옆지기가 성이 차지 않는 모습이다.
애써 반 포대씩 나누어 넣지 말고 한 포대씩 투입하자고 우겨댄다.
마주치는 눈길이 사납다.
은근히 기계의 성능을 검증하고도 싶다.
한 포대를 들쳐 매고 천천히 통속으로 들여보냈다.
조금은 묵직하게 돌아가는 기계 밑엔 시간이 지날수록 벗겨진 껍질들 위로 으깨져버린
은행 알만 수북이 쌓인다.
지켜보던 옆지기는 막걸리를 내어온다 모습을 슬쩍 감춰버리고.......
석쇠위에서 톡톡 튀는 은행 알을 안주삼아 마시는 막걸리 맛이 시원하다.

 

 

 

 

 

 

  

  


기습한파에 조심하라는 예보와 달리 다행히 기온은 많이 내려가지 않았다.
늦잠을 즐기다 호미를 챙겨들었다.
밤새 핀 서리꽃이 만발한 당귀 밭에서 얼지 않게 덮어놓은 은행잎을 걷어내고 당귀들을
수확했다.
지난해 작황에 비해 올해의 작황은 신통치가 않다.
기후변화 때문인지 올해는 2년생 참당귀에서 꽃들이 많이 개화했다.
당귀에 꽃이 피면 뿌리로 갈 영양분이 꽃으로 이동해 뿌리발달이 이뤄지지 않아 수확기의
당귀뿌리는 다 썩어버린다.
꽃 피는 것을 억제시켜야했는데 주말에만 드나드는 한계 때문에 그만 그 시기를 놓쳐버렸다.
뿌리에 달린 흙들을 밭두렁에 팽개쳐 떨어내는데 밭두렁 가엔 철 이른 햇 냉이가
지천에 깔려있다.
어느 것은 그 뿌리가 애기 새끼손가락만큼 굵다.

 

 

 

 

 

햇볕이 쉼터마당 안까지 들어왔다.
간밤에 얼지 않게 은행위에 덮어놓은 포장을 벗겨내 마당 한 복판에 펼쳤다.
밭에서 뽑혀 그 동안 비를 피해 원두막 안에서 건조 중이던 검은콩 단을 풀어 헤쳐
마지막 햇볕을 쪼였다.
너나할 것 없이 기다란 막대를 하나씩 들고 포장한가운데에 쪼그리고 앉아 한줌씩 콩대를
가져다가 힘차게 내리친다.
콩대가 완전히 건조되지 않아  일이 더디게 진행된다.
"철철이 옷도 사주고 여행도 시켜 줄 것이라고…….
그 말에 속아 넘어간 내가 멍청이지!"
"키만 크고 콩은 실하지 않은 것이 꼭 누구와 똑같네!"

구시렁대는 옆지기의 푸념 속에 엉뚱한 콩대들만 심한 매질을 당하고 만다.
넘쳐나면 덜어내고 부족하면 채운다고
능력이 안 되니 몸으로 때울 수밖에 없다.
큰 티끌들을 골라낸 후 체로 쳐 흙을 털어냈다.
오랜 된 바람개비로 작은 티끌들을 날려 보내 보지만 서툰 솜씨 때문에 생각대로
잘 되지 않는다.
일하는 모습을 구경 왔던 이웃할머니가 키를 가져와 일을 도와준 덕에
마무리가 말끔히 정리됐다.
노린재의 집요한 공격을 이겨내고 귀족서리태가 실한 모습으로 주인의 정성에 보답했다.

  

 

 

 

  

 


올 한해의 농사를 마무리했다.
보일러에 부동액을 채우고 창틀마다 보온용 비닐을 오려붙였다.
노출된 수도관엔 동파방지열선으로 칭칭 감아놓고 혹시 발생할지모를 수도관 동파를
가정해 쉼터로 통하는 수도관의 밸브도 잠갔다.
주변 이웃들을 찾아 베풀어준 정에 감사하며 쉼터를 잘 지켜 달라
당부의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겨울 내내 쉼터를 비워두어야 하기에 몹시 허전하다.
밭두렁 감나무에 까치가 반쯤 먹다 남은 홍시 하나가 허전함을 더한다.
의지할 대상도 없이 앙상한 가지에 홀로 남겨진 홍시처럼 홀로 남겨질 쉼터모습이 애처롭다.
세상이 을씨년스럽다.
사람의 얼굴빛도 그렇고 날씨도 그렇다.
몸은 떠나오는데 마음은 그곳에서 움직일 줄 모른다.
모진삭풍과 세찬 눈보라 속에서도
아무리 힘들고 버겁더라도
참고 버티고 이겨내야 한다.
그래! 꼭 이겨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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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세상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친구들은 다들 묘한 마력들을 지녔습니다.
각자 정체성이 확립된 시기라 진정한 친구사귀기가 힘든 다 커버린 사람들 간에

인터넷을 통한 우정을 나누는 모습들은 가끔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강한 결속력을 보이는 것을 여럿 보아왔습니다.
아마 그것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가감 없이 내보여주었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다락골사랑" 카페를 시작하면서부터 주~욱 좋은 인연이 이어져 지금까지 이어오는 친구가
계십니다.
외딴곳으로 혈혈단신 귀농하여 사과농사를 짓고 계시는 친구입니다.
여태껏 살아가는 모습들은  인터넷에 오르는 글로서만 대충 서로를 이해하며 전화 한번 주고받지 못한 사이입니다.
태어나서부터 여태껏 도시생활만 하다가 어떤 사연 때문인지 홀로 귀농하여 사과밭을 일구는 모습들을

때로는 잔잔하게 때론 거친 파도에 휩싸인 모습으로 농장소식을 들려주곤 하셨습니다.
혼자 맞닥뜨려야 할 세상 살아가는 일이 그리 녹록치는 않았을 텐데 열정과 오기만 믿고

지금까지 잘 이겨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저는 과일을 무척 좋아합니다.
종류를 가리지 않고 아무것이나 좋아합니다.(저희 가족 중에서 유독 저만 그렇습니다.)
혼자 힘들게 일군 사과가 맛나 보였습니다.
그래서 지난 여름날에 예약하고 사과 따 주는 날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만

어느 날부터가 그분모습은 화면에서 잘 보이질 않았습니다.
올 추석명절이 평년에 비해 빨라 수확기의 과수농가들이 인건비도 나오지 않는 현실에 힘들어 하신다는

모습을 보고 속상해했습니다.
남에게 줄 품삯이라도 줄여보려 혼자 애쓰시는구나!
그래 힘들어 모습도 보여주질 않는구나!
애타는 마음속에서 시간은 무던히 잘도 지나갔습니다.
교통사고를 당하여 병상에서 한 달 이상 또 다른 시련에 내몰렸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이런 게 세상사는 과정이구나!
슬펐습니다.
조금이라도 빨리 알았으면 사과 따는 작업에 손이라도 보탤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만 남았습니다.

어제는 지루한 쪽지보내기 전쟁이 이여 졌습니다.

"팔다 남은 사과 있으면 나에게도 기회를 달라."

"지인과 어머님이 힘을 보태준 덕에 상품가치가 있는 것은 다 판매했다.(??)
 맛보기로 남겨놓은 것을 드릴 테니 주소나 쪽지로 알려 달라"

"자칭 농사꾼이란 자가 남이 피땀 흘려 일군 것을 그냥 먹을 수 없다.
상자 당 가격하고 입금할 계좌번호 가르쳐달라.
그래야 입금 후 쪽지로 주소 주겠다."


지금은 지루한 공방 속에 휴전이 진행 중입니다.
친구님들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려주시죠.
우리친구님들의 좋은 생각 나눔받고 싶습니다.

출처 : 다락골사랑
글쓴이 : 누촌애(김영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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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가  흩뿌려댄다.
막바지 단풍놀이와 김장김치를 담그러 가는 차량행렬이 서해안고속도로 초입부터
길게 이어졌다.
옆지기 혼자 김장준비로 하루전날 다락골로 들어간 토요일 오후 습관처럼 당진으로
가는 고속도로에 차를 올렸다.
창가로 스치는  플라타너스의 앙상한 모습이 쓸쓸하다.
낙엽은 지고  듬성듬성 벗겨진 껍질모습이 어릴 적 동무 머리에 핀 "버짐"모습과 똑같다.
샛노란 은행잎만 나뒹구는 다락골 쉼터엔 먼저 도착한 형제들이 김장준비에 분주하다.
서로 정해진 세상살이에 내몰려 잠시 멀어져있던 옆지기의 다섯 형제들이 가족과 함께
모처럼 한자리에 모인다.
다락골이 형제들의 거주지에서 거리상 대략 100km, 시간상으로는 한 시간 남짓이면 오갈 수 있는 중간지점에 위치하고 있기에 이곳에 터를 마련한 첫해만 빼고 3년째 처가형제들의
겨울채비를 이곳에서 해오고 있다.
지치고 힘들 때 위로받고 싶고 그리워지는 게 가족이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금세 표가 난다.
버스를 이용해 혼자 도착한 대전사는 처형이  흥이 없어 보인다.
일에 지쳐 다음 날 새벽에 오기로 한 큰동서에게 '빨리 오시라' 긴급 호출을 전했다.
누구네 집은 손만 잡고 사는 가족으로…….
누구 네는 뜨거운 밤을 지새우는 연인으로…….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살아가는 이야기가 가감 없이 전달된다.
재잘대는 소리만큼 발그스레 뺨이 물들어 갔다.
쉽게 대할 수 없는 풍경이기에 그 기쁨과 부러움이 한층 고조된다.

 

 

 

미리 도착한 옆지기가 300여포기에 가까운 배추들을 밭에서 뽑아내 쉼터로 옮기려 파김치가 다 되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소래포구에서 생새우를 사가지고 합류한  인천처재내외가 옆지기와 힘을 합쳐 배추들을
알맞은 크기로 나누어 3-4시간 천일염에 절이는 과정을 마친 후 깨끗한 물로 행구고 나서
바구니에 차곡차곡 쌓아올려 물기가 빠지기만 기다리고 있다.
가을가뭄이 길어진 탓에 뒷산골짜기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받아 사용하는 상수도의 물 사정이 좋지 않아 앞집지하수를 끌어왔다.
배추는 약과 거름을 거의 사용안하고 키운 탓에 배추통은 그리 크지 않았으나 잎 두께가 가늘고 달고 고소하다고 모두가 좋아한다.
쪽파의 작황이 신통치 못해 이웃집에서 구입해왔다며 쪽파농사하나 재대로 짓지 못한다고 옆지기가 빈정거린다.
소금은 봄, 가을에 정부에서 농가에 지원해주는 천일염을 앞집에서 사정사정해 구입해와 사용했단다.
인공조미료와 감미료는 일체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마늘은 다락골에서 올봄에 수확한 육족마늘을 생강은 이웃집에서 나눔받은 햇생강을 사용하고 양파만 시장에서 구입했다.
김장철 대목을 맞아 양파 값이 금값이란다.
고춧가루는 다락골에서 여름 내내 수확한 청양고추와 일반고추가 반반씩 섞인 태양초고추가 사용되고 젓갈류는 장모님께서 간재미액젓, 까나리액젓, 새우젓을 준비해 오셨다.
무가 채 썰어지고 쪽파와 대파가 가지런히 추려져 알맞은 크기로 잘라졌다.
양파와 마늘, 생강, 생새우를 분쇄기로 곱게 갈고 찹쌀풀이 걸쭉하게 쒀졌다.

 

 

 

 

 

 


큰동서가 도착한 10시 무렵부터 올해의 김장하기가 시작되었다.
배춧속에 들어갈 양념배합은 경험이 많은 장모님의 주관으로 커다란 함지박에 가득 만들어 졌다.
먼저 고춧가루에 찹쌀 풀, 콩가루, 다진 양념류에 젓갈류를 함께 넣고 잘 버무린 후 무채와 쪽파, 대파가 담긴 통에 한 바가지씩 퍼 넣으며 여러 재료들을 잘 혼합시켜 되다싶을 정도로 배추 속에 넣을 양념이 준비됐다.
쉼터 거실에 자리를 펼치고 그 중앙에 양념통과 함께 절인배추를 수북이 쌓아올린 후 각자 집에서 가져온 용기들을 챙겨들고 딸 5형제와 장모님이 빙 둘러 쪼그리고 앉는다.
어느 집에선 김치냉장고에 든 보관용기에 다 가져왔고 어느 집은 김치를 담을 때 쓰는 비닐봉지만 준비했다.
배추는 넉넉하다.
혹시 양념이 부족하지 않을까?
배추에 양념을 조금씩만 버무려 넣으라는 장모님의 크고 작은 간섭은 끝도 없이 계속된다.
작은 쟁반을 하나씩 앞에 놓고 양념을 퍼와 절어져 숨이 죽은 배춧잎을 일일이 들춰가며 양념들을 새빨갛게 채워 넣는다.
한사람의 뱃속에서 나온 형제들이지만 그 동안 길들여진 습성 때문에 김치 속을 채우는 방법과 속도, 양이 제각각이다.
각자의 손맛을 살려 자기가 버무린 김치를 가져갈 만큼 용기에 채워 가져간다.

 

 

 

 

 

 

 

 

 


은행나무가지에 잎사귀 하나 없이 텅 비었다.
초록세상 속에서 활기가 넘쳐나던 밭뙈기엔 안식의 계절이 찾아왔다.
미쳐 타작을 끝내지 못한 검은콩과 은행열매를 빼고 올해 수확한 것들을 조금씩 나눔했다.
짐칸이 부족해 승용차뒷자리까지 가득 채운 형제들의 흡족한 모습에 흐뭇하다.
어느 땐 지친 마음에 한숨이 저절로 세어 나왔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것 같았던 땀과 열정을 함께 나눌 수 있어 좋다.
재미에 취해 흠뻑 취하다보면 건지는 건 분명 있다.
작은 것도 좋다.
먼저 즐겁고 재미있게 일을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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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해질녘
밭두렁을 타고 이어지는 대여섯 그루의 은행나무에서 지는 샛노란 낙엽들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어느 화가의 물감 통엔 노란색 물감만 남아 있나봅니다.
여러 색으로 채색된 그림보다 더 정겹습니다.
토요일 오후 고속도로 길섶까지 내려앉은 색 바랜 나뭇잎들을 즐기며
단풍놀이 가는 행렬사이에 끼여 예정보다 훨씬 늦게 다락골에 도착했습니다.
가을걷이가 끝난 들녘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긴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지푸라기를 태우는 정겨운 냄새에 홀려 디카의 배만 채우려 허둥대다 순식간에
밀려든 어둠속에 갇혀버렸습니다.
일 못한 아쉬움을 버리고 편한 마음으로 주변을 섬기니 훨씬 여유가 넘칩니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과정을 배제하고 순수한 재미와 열정으로 사색하려드니 모든 것이
아름답게만 보입니다. 

 


야콘의 종근(뇌두)은 겨울철 내내 일정한 수분을 유지하며 얼지 않게 보관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지난 주말에 수확한 야콘종근을 보관하는 방법 때문에 한 주 동안 마음고생을 했었습니다.
지난해에는 야콘종근을 11월경에 인터넷으로 구입하여 신문지로 둘둘 말아 스티로폼
상자에 담고 보온해줄 요량으로 톱밥을 채워 아파트안방화장실에 보관했습니다만 올해는
틈틈이 담아온 효소단지들이 그 자리를 점령해버려 새로운 장소를 찾아 나서야만 합니다.
이른 새벽부터 삽자루를 챙겼습니다.
쉼터 바로 밑 밭뙈기 햇볕이 잘 드는 곳을 골라 구덩이를 파기 시작했습니다.
대충 가로1m 새로2m은 족히 넘어 보입니다.

 

"이른 새벽부터 무얼하고 있남?"

 

"야콘종자들을 묻을 땅을 파고 있습니다. 땅에 묻어 보관할까 해서요.
그런데 얼마정도의 깊이로 땅을 파야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우덜이 무를 밭에 묻을 땐 보통 2자 넘게 땅을 파는 디....
눈이 많이 내려도 땅은 깊게 얼지않으니께 그 정도의 깊이로 파면 될 거구먼.
근디! 이 뿌리는 땅속에 그냥 파 묻혀주면 되는감?"

 

아침 일찍 야콘종근을 나눔해 달라며 손수레를 끌고 이웃집어르신이 건너오셨습니다.

 

"젖꼭지처럼 볼록하게 튀어나온 이 부분에서 새로운 싹이 돋아나니 이 부분들이 손상되지
않게 잔뿌리와 썩은 부분들을 제거하고 보관하시면 됩니다."

 

습득한 관리요령들을 일러드리고 혹시 잘못될 것을 가정하여 솜씨가 야무진 이웃어르신을
믿고 야콘종구를 손수래 가득  실려 보냈습니다.
서리로 잎들이 말라 타들어가는 울금밭에선 옆지기 혼자 울금수확에 열중입니다.
낮으로 잎과 줄기들을 제거하고 난 후 그것들을 퇴비장으로 보듬어서 옮긴 후 멀칭비닐을
벗겨내는 작업으로 이어집니다.

 

 

 

 

 

 

 

  

 

주말에만 올 수 있는 주말농사꾼의 특성상 효율적인 시간 관리는 매우 중요합니다.
해야 될 일들을 모두 마쳐야만 1주일동안 마음고생을 덜 수 있습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안에서 머릿속에 그렸던 작업일정들이 예기치 못한 상황변화로
뒤바뀔 때가 많습니다.
어제도 계획에는 밤새 야콘종구 손질을 마치는 것으로 되여 있었습니다만 이웃집에 초청받아 "살아가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재미에 시간을 다 허비해버렸습니다.
흙을 파내다 숨이 차면 야콘종구 쪽으로 자리를 옮겨 종구를 손질하고 숨이 고르면 땅을
파고 이런 과정을 몇 번 걸친 후에야 생각했던 저장고가 완성되었습니다.
쌀 등겨 대신에 나무껍질을 잘게 부순 바크를 땅에 깔고 서로 엉겨 붙지 않게 조금씩 틈새를 벌려주며 차곡차곡 정성스레 채웠습니다.
바크를 그 위에 수북이 올려 틈새를 메우고 흙을  채워 돋아주며 잘 밟아줍니다.
흙을 지면보다 더 높게 퍼 올려 쌓고 털어낸 들깻대를 쌓아올린 후 비닐포장을 펼쳐
바람에 날리지 않게 돌멩이로 사방을 돌아가며 눌러주고 배수로를 확보하는 것으로
야콘종근 보관 작업을 마쳤습니다.
울금수확에 나선 옆지기 모습이 재밌습니다.
비닐을 벗겨낸 두둑에서 호미로 울금을 캐내려 애쓰는 모습은 영 성이 차질 않았지만
함께 이곳까지 따라 나선준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입니다.
먹구름과 숨바꼭질을 하던 태양이 구름 속에 모습을 숨긴 아침나절 새참시간 무렵
자기 앞가림도 힘든 세상에  일을 거들겠다고 인천에서 달려 온 지우내외가 일을 거들고
나서니 막혔던 숨통이 한결 시원합니다.
이름 봄날 종구들을 땅에 묻고 거름한번 농약한번 주지 않은 울금밭엔 생강과 똑같은
모양의 울금들이 주렁주렁 달렸습니다.
따뜻한 남쪽지방에서만 재배되는 줄로만 알았는데 기후변화의 탓인지 다락골에서도
남쪽지방 못지않게 수확이 풍성합니다.
정오를 지날 무렵부터 다락골엔 가을찬비가 흩뿌려댑니다.
조급함에 손놀림이 바빠졌습니다.
등걸에 달린  잔뿌리를 제거하고 줄기를 짧게 잘라 물로 깨끗이 씻어냈습니다.
이것들은 잘게 잘라 설탕과 버무려 발효효소를 담을 것들입니다.

 

 

 

 

 

 


머릿결을 타고 찬비가 흘러내립니다.
바람이 차갑게 와 닿습니다.
가을 탓일까요??
몸과 함께 마음까지 움츠려드는 것은 왜일까요?
두서없이 허둥대기만 했을 뿐 무얼 하나 재대로 이루어 놓은 것이 없습니다.
마음만 앞서 성급하게 결과만 집착하고 있지 않은지?
가을걷이를 마친 텅 빈 밭뙈기처럼 마음 한구석이 허전합니다.
가을걷이가 끝난 밭뙈기에 가을찬비가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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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 톡! 톡!
소금 튀는 모습이 요란하다.
화물차 바퀴에서 뽑은 알루미늄휠을 이용하여 만든 화덕 위에 석쇠를 걸치고
굵은 소금을 흩뿌리며 구워내는 삼겹살의 씹히는 맛이 그만이다.
방금 따낸 싱싱한 야채, 나물무침으로 혀가 호사한다.
향긋하면서도 쌉싸한 맛의 야콘 잎이 최상의 메뉴다.
눈코 뜰 새 없이 한 주를 보낸 주말저녁
적막하기만 한 다락골이 사람 사는 냄새로 왁자하다.
항상 가까이 있어 마치 들이마시는 공기처럼 그 절실함과 고마움을 잊고 살아왔던
지우들이 일을 돕겠다며 따라 나섰다.
장작불을 지피고 둘러앉아 자기가 만난 세상과 소통하는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이여진다.
애환이 짙게 벤 살아가는 이야기가 실타래 풀리듯 끝이 없다.
서로를 격려하고 아끼는 마음들이 불꽃처럼 뜨겁다.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세상은 따스하다.
다음날 노동의 질을 높이기 위해 음주를 절제하는 모습들이 애처롭다.
좋은사람들과 있으니 좋다.

 

 

 

 

 

 

 

 

 

 

 

출발총성만 울리길 기다리는 마라톤선수들처럼 어둠이 아직 물러가지 않은 쉼터 안은
각자 몸 풀기로 분주하다.
은은하게 번져오는 아침햇살의 기세가 다락골 구석구석에 스며든다.
약 한 번 거름 한 번 치지 않고 순전히 땅의 힘으로만 버텨온 야콘들을 드디어 오늘 수확한다.
4월의 마지막 날  밭에 모종을 함께 심었던 지우들과 수확의 기쁨을 나눈다.
차디찬 한기가 채 가시지 않은 이름 봄날 택배상자에 담아 인천에서 당진까지
어린 모종들을 시집보낸 후 농사꾼이라고 자청하는 자가 해준 일이란 고작 초여름
밭고랑에서 풀 몇 포기 뽑아준 것밖엔 없다.
처음 재배하는 작물이라 혹시 잘못되진 않을까?
걱정과 우려 속에서 조급함을 떨쳐내려 지난시간동안 애써 외면했다.
털끝하나 건들이지 않고 지금껏 혼자 커가는 모습만 지켜봤다.
성장하는 동안 내내 결실의 크고 작음에 집착하여 비료와 약제사용의 유혹에 빠져들진
않을까! 스스로를 억제하며 참고 참았던 땅속세상모습이 몹시 궁금하다.
사람들 불러놓고 혹시 밑이라도 재대로 들지 않았으면 이게 무슨 망신…….
실패에 대한 두려움에 지난밤새 몰래 한 번 뽑아보고 싶은 유혹에 시달렸다.
수확하기도 전부터 이사람저사람 붙들고 나눔해주기로 혼자 기분 좋게 선심을 쓴 옆지기
모습 또한 긴장한 표정이다.
왕성한 기운이 넘쳐나던 야콘 잎이 계속 내린 무서리 탓에 많이 수척하다.
지상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낸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 송이의 야콘 꽃이 함초롬히 피였다.
야콘 잎차의 용도로 쓸 줄기 맨 끝 생장점 부근의 잎과 줄기를 먼저 잘라낸 후 땅위에서
대충 20cm높이에서 부터 줄기를 2-3개의 토막으로 줄기들을 제거한다.
잘라낸 줄기들은 밭뙈기 한쪽에 마련된 퇴비장으로 옮겨 완전 발효시킨 후 다음농사에
사용할 예정이다.
남정네들이 힘든 줄기제거 작업을 맡고 야콘을 땅속에서 뽑아내는 수확의 기쁨은 아낙네
들에게 양보했다.
두 편으로 나눠 밭뙈기 양쪽 가장자리에서부터 줄기를 제거하기 시작한다.
키가 2m이상 자랐고 줄기끼리 서로 엉켜있어 낫으로 줄기를 베어내기가 힘에 부친다.

"우와! 엄청 크다.
고구마보다 훨씬 더 달렸다!"

밭두렁에 환호성이 넘실댄다.
아낙네들의 힘으로 뿌리를 들춰낸다는 건 예초부터 잘못된 설정이었다.
남정네도 흙속에 파 묻힌 야콘들을 뽑아내면서 힘들어한다.
별다른 연장도 필요 없이 줄기가 제거된 밑동을 잡고 힘껏 당기니 야콘들이 우수수 뽑혀
나온다.
미쳐 덜 따라 나온 야콘들도 손으로 흙을 헤집고 뽑아내니 쉽게 땅속에서 빠져나온다.
토실토실 살이 올랐고 그것도 모자라 몸뚱이가 쭉쭉 갈라진 것도 수두룩하다.
신바람이 따로 없다.
따사로운 햇볕아래 함박웃음을 머금고  활기가 넘친다.
그 동안 흘린 땀과 열정이 흡족한 결과로 다가왔다.
남모르게 혼자 실실 웃음을 흘렸다.
바구니에 가득 담아 이웃집들에 나눔 하니 좋아라들 하며 입이 귀까지 걸린다.
가져간 바구니마다 고구마며 김치 등을 채워 담아준다.
따뜻하고 넉넉한 가을모습이다.
나눔하고 남은 야콘들이 쉼터 사랑방 안에 가득하다.
이것들 또한 숙성과정을 걸쳐 쓰임새 별로 구분하여 주변사람들과 나눔할 요량이다.
야콘을 따낸 등걸에 달린 줄기들을 마저 제거한 후 다음해 농사에 쓸 뇌두(종자)만 따로
모아 쉼터 원두막 안에 펼쳐 놓는 것으로 올해의 야콘 농사를 마무리 했다.

 

 

 

 

 


잎사귀가 땅에 내려않은 귀족서리태(검은콩)를 뿌리째 뽑아 흙을 털어낸 후 단으로 지여
쉼터 원두막 안으로 옮기는 작업을 마친 일행들이 은행나무아래 쪼그리고 앉았다.
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안주인은 점심상 내어 오는 것을 망각하고 있다.
지친 마음과 한숨이 저절로 묻어난다.
은행나무 밑에 쌓인 열매들을 빈 비료포대에 주워 담는 일이 지루하게 이여진다.
자신들이 살아가는 세상과 떨어진 농사일을 싫은 내색 한 번 보이질 않고 함께 해주는
이들이 있어 살아가는 재미에 가슴 벅차다.
서로서로 소통하며 나눔하려는 정이 살아있어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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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이 세장밖에 남지 않았는데 무엇하나 재대로 해 놓은것도 없이 시간만 너무
빨리 지나가는 것 같아 아쉬움만 남는다.
나이테가 늘어날수록 그 수에 비례해 개선될 줄 알았던 삶의 질이 현실에서는
뒷걸음질이다.
세상이 어수선하고 힘들다고 모두가 한목소리다.
다락골 가는길
풍진세상만큼이나 자욱한 새벽안개가 첩첩산중이다.
설악산과 오대산에서 단풍소식이 들려온다.
안개틈새로 희미하게 보이는 서해안고속도 길섶에도 형형색색의 단풍들로 물들고 있다.
라디오주파수를 타고 흐르는 추억의 팝송"Don't forgot to me remember"를 따라 읊조리며
마을로 들어서는 야트막한 산 고개를 넘어서자  들국화향기가 코 속으로 밀려든다.
하늘거리는 억새꽃, 한 입 깨물고 싶은 빨갛게 익어가는 홍시, 땅바닥에 떨어져 나딩구는 은행열매에서 세어 나오는 구릿한 냄새, 그리고 귀뚜라미 울음소리와 새털구름…….
애써 촉수를 내밀지 않아도 가을을 느끼기엔 부족함이 없다.

 


"농사의 기본은 기다림과 정성이 아닐까?"
여름 내내 노린재의 새 찬 공격으로 군데군데 텅 빈 꼬투리만 달린 검은콩(귀족서리태)을 헤아리며 속상한 마음을 다독이려드니 세삼 이 말이 떠오른다.
가끔 한번 주말에만 나타나 남들이 다하는 것을 흉내만 내다 그것마저 남 앞에 자랑하고 싶어 사진기를 가져다대고 폼만 잡았던 지난날이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다.
한 번 더 보듬고 더듬었더라도 아픈 상처의 흔적은 조금은 더 줄일 수 있었을 텐데…….
쓰린 주인마음을 위로라도 하려는 듯 밤새 내린 서리를 맞아가며 서리태가 많이 여물었다.
오직 푸른색 일색이던 콩밭은 여러 색깔의 색종이를 오려 붙여놓은 모습이다.
수확 철 주인의 힘을 덜어주기 위해 잎사귀마저 떨쳐내는 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다음 주로 잡았던 야콘의 수확시기를 몇 주더 늦춰야 될 것 같다.
왕성한 생명력으로 푸르름이 더해가는 야콘 줄기에 칼을 대기엔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앞선다.

"한 푼이라도 더 아낍시다.
이번 주엔 별로 할일도 많지 않으니 당진가는 건 다음 주로 미룹시다."

이른 아침 옆지기의 충고도 마다하고 농장으로 달려온 까닭은 일주일동안 변해있을 농장모습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본격적인 은행수확을 대비해서 은행나무 밑에 포장을 펼쳐놓기 위함이다.
지난주 방문 땐 다른 일에 치여 시간부족으로 나무 밑에 포장을 설치하는 것은 다음으로 미뤘야했다. 농익어 바람에 떨어진 은행열매가 지천에 깔려있어 발걸음조차 옮기는 것이 신경이 많이 쓰였었는데 글쎄 오늘 와서 보니 은행나무 밑이 깨끗하게 치워졌다.
아마! 누군가 주인 몰래 슬쩍 주워 담아갔나보다.
어차피 나누어 먹기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품을 덜어줘 고맙다는 생각 저쪽에는 주인 허락 없이 가져간 행동이 아쉽기만 하다.
농장을 일군 지난 3년 동안 이런 일이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는데.......
하찮은 은행열매지만 속상해 했다.
미쳐 덜 주워간 은행열매들을 비료포대에 주워 담았다.
겉껍질이 벗겨지지 않게 유리그릇 다루듯 조심스럽다.
쪼그리고 앉아 하나하나 주워 담으려니 일이 더디다.
마른하늘에 늦더위까지 겹쳐 등줄기가 흥건하다.

 

 

 

 

 


이웃비닐하우스건조장 안에선 아까부터 들깨 터는 소리가 요란스럽다했더니 진한 들깨향기가 솔솔 밀러든다.
지난주 베어내 작은 단을 지어 말린 들깻대가 잘 말랐다.
쉼터 한 복판에 포장을 깔고 들깻대를 날아와 수북이 쌓아놓았다.
포장 중앙에 그것들을 한 단씩 올려놓고 작대기로 사정없이 내리쳤다.
탁! 탁! 탁! 탁!
꼬투리에 숨어 지내던 들깨알들이 심한 매질을 견디다 못해 사방으로 튕겨나가기 바쁘다.
매질한 깻단을 들고 흔들어대니 우수수 떨어진다.
털어낸 알맹이를 채로 쳐 티끌들을 추려내는 작업을 반복한다.
"올핸 가뭄 땜에 알이 실하지 못하구먼유!"
사내놈 혼자 애쓰는 모습이 보기 싫었던지 이웃집 할머니가 대나무로 짠 키를 들고 와
능숙한 솜씨로 작은 티끌마저 공중으로 날려 보내니 실한 알맹이 남는다.
모래알보다 굵은 시커먼 들깨 알이 곱다.
만지는 느낌 또한 부드럽다.

 

 


사방에서 단풍소식이 밀려든다.
"양보와 절제" 단풍의 꽃말이란다.
차디찬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 자신의 자양분을  뿌리와 줄기에 가득 채운 채 미련 없이
땅바닥으로 추락하는 단풍이 오늘따라 더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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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체할 수 없었다.
두 주째 홀로 남겨 둔 다락골 생각에 마음을 빼앗겨 싱숭생숭한 마음을
다잡고 어둠속에서 갇힌 영동 땅을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상쾌한 새벽공기가 서늘하다 못해 찬 느낌으로 옷깃을 세우게 했다.
고된 삶속에서도 동행한 옆지기가 두 시간째 곤한 잠에 취해있는 사이
가을햇살이 내려앉기 시작할 무렵 다락골로 들어섰다.
간밤에 야콘잎에 살포시 내린 무서리가 햇볕에 반사되어 황홀경을 연출했다.
헤어짐은 고통이었다.
인터넷 오프라인에서 사귀였던 얼굴모른 친구들과 함께한 자리
'영동가는길'은 고향집 찾아가듯 포근함과 설렘으로 충만했다.
심장박동은 요동쳤고 만나는 이마다 분에 넘치는 관심과 애정을 가을햇살만큼이나
베풀어주었다.
마주앉은 벗들과 주고받은 대화 속에서 살아가는 재미를 함께 나눈다.
'만남' 그 자체가 그저 즐겁고 함께 느낀 행복했던 그 순간이 마냥 고맙다.
세상과 소통하는 또 다른 공간속에서 훔쳐오고 싶은 사람 살아가는 끈끈한 이야기들을
가슴 속 깊은 곳에 꾹꾹 눌러 담았다. 

 

 

 


서리를 맞으며 귀족서리태가 알알이 여물었다.
여름 내내 입고 있던 초록 옷들이 빛이 많이 바랬다.
멀리 안데스산맥에서 건너온 야콘들만 마지막 남은 가을 햇살을 즐기며 생기발랄한 모습
이지만 바로 옆자리에 자리를 잡은 울금 잎도 차츰차츰 누렇게 변해만 간다.
밭두렁 가장자리와 울금 골에 사이짓기(간작)했던 들깻잎들이 누런빛을 띠며 하나, 둘 땅바닥에 내려앉고 꼬투리도 갈색으로 시나브로 빛이 바랬다.
지금 다락골에선 들깨수확이 절정인 듯하다.
다른 작물에 비해 일손이 덜 가는 들깨는 나이 드신 마을사람들이 검은콩(서리태)과 더불어
밭뙈기와 논두렁에 즐겨 심는 작물이다.
들깨는 잎이 누렇게 변색되어 떨어지기 시작하고 먼저 여문 꼬투리가 갈색으로 퇴색되는 때가 수확할 시기란다.
밤새 촉촉이 이슬까지 내려 수확하기엔 최적의 조건이다.
작은 포장을 밭두렁에 펼치고 한 포기씩 낫으로 베어내 수북이 쌓아 올렸다.
진한 들깨향기가 코 안에서 떠나 줄을 모른다.
겉절이 김치를 담겠다며 속이 찬 배추들을 뽑아내 손질을 마친 옆지기가 낫을 챙겨들고 거들고 나섰다.
"당신이 낫질하려고?
손 다치지 말고 베어낸 것들이나 단으로 묵기나 하세요."
낫질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도시 아줌마인지라 선뜻 일 시키기가 겁부터 난다.
깻대를 붙잡고 기를 쓰다 죄다 뿌리 채 뽑아 놓는다.
"서방이 말을 듣지 않으니 낫까지 말을 듣지 않는다!"고 일 못하는 자신은 탓하질 않고 말 못하는 연장에 대고 괜한 푸념만 늘어놓는다.
하지 말라는 충고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덤벼들던 기세는 온데간데없다.
"아줌마! 낫질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네요."
구시렁대는 꼴이 듣기 싫어 참견을 했다.
"깻대를 붙잡은 손은 앞으로 밀어주고 동시에 낫은 살짝만 당겨주는 기분으로 낫질을 해봐요.
당신처럼 낫도 당기고 깻대를 붙잡은 손까지 함께 당기면 깻대가 잘리지 않고 뽑히는 것이에요."
두세 번 자세까지 교정해주며 요령을 가르치니 금세 적응하기 시작한다.
사내들도 베어내기 힘든 굵은 줄기까지도 쓱쓱 잘라낸다.
가만히 지켜보니 일부러 먹기 안성맞춤이다.
입가엔 작은 미소가 스쳤다.
낫을 내려놓고 배어낸 깻대들을 작은 단으로 지어 끈으로 묶은 후 혹시 내릴지도 모를 비를 피해 위해 원두막 안에 차곡차곡 세워 건조하는 과정을 되풀이한다.
가을햇살이 제법 따갑다.
그 동안 들깨들과 영역다툼을 했던 울금들에게서 생기가 넘친다.
얼마 남지 않은 들깨수확은 옆지기에 맡기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 가을가뭄이 계속되고 있는 배추밭으로 발길을 옮겼다.
2주전 3포기의 배추가 시들시들하며 축 쳐진 모습을 발견했다.
성장이 뒤쳐진 이것들을 뽑아들고 뿌리를 살펴보니 뿌리에 혹 같은 것이 발생해 있었다.
마땅한 치료약도 없다는 배추 무사마귀병(뿌리혹병)에 대한 공포심에 지난 2주내내 마음 고생했는데 막상 천천히 들여다본 배추밭엔 다행히 병들어 시들시들 하는 포기는 하나도 눈에 띄지 않는다.
또 2주전에 관찰됐던 민달팽이도 계속된 가을가뭄의 영향인 듯 확산을 멈추고 한 마리도 보이질 않는다.
한 참 결구가 진행 중인 배추에서 발생하는 잎 끝이 말라 타 들어가는 증상이 보이질 않는 것으로 봐 칼슘부족에서 오는 생리장해는 이식 전 충분히 뿌려준 석회비료 덕에 염려를 덜 수 있어 보인다.
가뭄으로 부족해진 수분을 보충해 주기 위해 물을 퍼 날났다.
나방들만 몇 마리 관찰될 뿐 별다른 이상 징후는 보이질 않는다.

 

 

  

 

 

 

 


가을이 무르익어간다.
땀 흘린 만큼 풍성한 결실을 맛보았다.
살아가는 과정은 굴곡 많은 곡선이란다.
뿌듯함과 아쉬움이 동시에 교차된다.
비록 머무른 시간은 많지 않았지만 머문 보람은 또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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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봉산이다.
인천에서 홍천오는 길
이른 새벽 길을 재촉했는데도 매표소 옆 주차장은 겨우 몇 자리만 남아있다.
매표소를 지나 농익은 다래가 서너 개 달린 철재구름다리를 건넜다.
초록 세상 속에서 단풍색이 낯가림한다.
가을 속에서 여름을 함께 걷는다.
아침 일찍 도착한 터라 산행 길은 호젓하다.
군데군데 나무와 돌로 만든 계단으로 잘 정리된 조붓한 산길로 함께 걷는 8명이
기다랗게 늘어선다.
두현형이 길을 찾고 민지아빠가 뒷단속을 한다.
살아가는 지혜와 자연의 묘미에 그칠 것 같지 않던 말수가 내딛는 걸음걸이수와
반비례하여 차츰차츰 자자든다.
한참을 헉헉대며 올라왔는데도 채 20분도 지나지 않았다.
행여 거친 숨소리를 남들에게 들킬까봐 들풀들과 눈인사를 주고받으며 가파른 나무계단을
올라서니 "편하게 갈 수 있는 길",  “조금은 더 험한 길" 두개의 이정표가 선택을 강요한다.
이른 잠을 깨서일까?
민지아빠와 형수와 편을 묶어 험한 길을 택하고 나머진 능선을 따라 오르는 조금은 더 쉬워 보이는 길을 향해 자연스레 두 팀으로 편이 갈렸다.
평소 산행 길을 마다하던 민지아빠가 오늘따라 펄 펄 난다.
나뭇가지를 붙잡아도 보고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것을 몇 번 모면한 후에야 겨우 두 갈래 길이 다시 만나는 팔봉산 일봉 바로 밑 쉼터에서 거친 숨을 다독이는데 쉬운 길을 선택했던 일행들도 턱까지 차오르는 숨을 내뱉으며 하나둘 쉼터에 주저앉는다.
팔봉산 오는 길 내내 얼굴빛이 좋지 않았던 지수아빠모습은 끝내 보이질 않았다.

 

 

 

 

 

 

 

 


강원도 홍천에 위치한 팔봉산은 정상 능선을 따라 8개의 봉우리가 저마다의 비경을 자랑하며 일렬로 이어져 있다.
중간 중간에 제법 가파른 길이 나타나기도 하고 어느 봉우리에선 철제계단을 이용해야 되고 또 어느 봉우리에선 로프를 잡고 한참을 낑낑대며 올라가야 할 정도로 산세가 험하다.
아직 몸이 덜 풀린 일행 덕에 일봉은 건너뛰고 이봉정상을 지나 삼봉 정상에 올라서니 두 다리가 심하게 후들댄다.
해발360m의 팔봉산정상인 삼봉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홍천강의 모습이 장관이다.
팔봉산을 허리춤에 끼고 유유히 흐르는 강 가운데서 낚시하는 태공들의 모습이 평화스럽다.
산중이라 휴대전화 소통이 원활치 못하다.
한 시간 가까이 지나가는데 지수아빠의 모습은 아직  보이질 않는다.
바위틈에 쪼그리고 앉아 정상에 오는 증거를 남기려 모두들 사진기 앞에 모여 앉았다.
내색은 않고 있지만 지수엄마의 표정은 어쩐지 어둡게 느껴진다.
때마침 그곳을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사진 한 장 찍어주길 청했다.
"웃는 모습들을 찍어드릴까요?"
영문을 몰라 잠시 어리둥절히는 사이
"자! 여기를 보세요."하며 순간 한 손을 내려 속칭 남대문 앞에 올려놓고 거시기를 털 털 털 터는 흉내를 반복한다.
"으하하하!"
한바탕 입가엔 미소가 번지로 자지러질듯 배꼽을 잡고 웃어댔다.
 퍼지는 미소를 살짝 감추고 그 틈을  몇 커트 셔터를 더 눌러준다.
"어! 지수아빠네."
삼봉과 마주보고 선 이봉 정상에서 빨간색 등산복 상의 차림의 지수아빠가 겸연쩍은 모습으로 우릴 향해 손을 흔들어댄다.
우리일행이 우회한 줄도 모르고 일봉마저 올랐단다.
"부실하다." 놀림당할까 애쓴 모습이 역력했다.
함께하니 모든 신바람이다.
포기하지 않고 함께하려는 모습들이 정겹다.
함께 하지 못한 효선 네가 보고 싶다.
동생들에게 기를 북돋아주려는 두현형과 형수님의 따스한 마음씀씀이가 고맙다.
한바탕 웃고 나니 몸들이 날아갈듯 가볍다면 모두들 난리다.
힘든 바위산도 주저함이 없다.
봉우리마다 작은 표시판으로 다음코스로 가는 길을 명시해 놓아 산행길이 한결 수월하다.
이 자리를  마련해준  민지네식구들께 감사함을 함께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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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하면 떠오르는 모습들
파란하늘, 알알이 여문 누런 황금빛들판…….
조붓한 개천길섶을 따라 곱게 핀 코스모스사이로 바람이 스치며 가을향기를 코끝에
날라준다.

 

"어디쯤 가고 계세요?"
"마을로 들어서는 개천길인데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피었네요."
"벌써! 집에도 안 들리고 바로 가게........
 그곳이 그렇게도 좋아요?
밥 굶지 말고 일하다 빨리 오세요."

 

가을 문턱에서 한 참을 얼쩡거리며 마지막 열정을 불태우던 늦더위가 사그라지고
이젠 서늘하다 못해 쌀쌀하다.
보고 싶은 마음에 토요일 오후 2주째 홀로 남겨둔 다락골 생각에 직장을 마치자마자
단박에 당진으로 가는 서해안고속도로에 차를 올렸다.
각자 맡은 책임과 역할을 다하려 자리를 비운 가족구성원들을 대신해 출근길부터
작업복이 담긴 꾸러미를 옆자리를 채웠다.
밤송이가 쏟아져 내린 오솔길을 따라 천천히 차를 몰아 농장입구에 들어서니 갑작스런
기온차로 생긴 돌풍으로 쓰러진 들깨들이 길을 막고 주인의 손길만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초장부터  호된 신고식인가?
쉼터로 뛰어 들어가 쇠막대와 끈을 챙겨와 한바탕난리를 치룬 후에 쉼터마당에 차를 세웠다.
들깨향기가 손에 배여 콧속을 후벼 판다.

 

 

 

이식 후 한 달이 가까워지는 배추밭은 생동하는 모습으로 넘실댄다.
부드럽고 얇고 길쭉길쭉한 배추잎사귀가 고추 골에 고춧대를  제거하고 직파한 이웃밭들과는 확연히 대조를 이룬다.
지난 9월 둘째 주(노지이식 2주째, 직파재배 4주째)까지 비슷하게 성장을 했던 직파한 이웃밭들은 고추 골을 그대로 사용해서 비롯된 밑거름부족분을 만회하기위해 무리하게 비료를 사용한 까닭에 잎이 타들어가고 누렇게 변색되는 농도장해를 심하게 겪고 있다.
배춧잎 두께도 두껍고 길이도 짧은 까칠한 모습들이다.
짧아진 해는 벌써 뒷산에 모습을 숨기려한다.
호미를 챙겨들고 밭고랑에 난 잡초들을 제거하며 한포기 한포기마다 배춧잎들을 양손으로 펼쳐주며 조금이라도 더 햇볕을 쪼여주기 위해 정성을 다했다.
배추들은 벌써 속이 차오고 있다.
지난해에도 좋지 않은 초가을 날씨에서 이와 같은 방법을 통해 통이 크고 속이 꽉 들어찬 배추를 키워냈었다.
2주 동안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라 혹시 발생했을지 모를 배추벌레 때문에 마음 고생했던 것과는 다르게 두 마리의 배추흰나비 애벌레만 관찰되었을 뿐 별다른 피해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야콘밭과 인접한 골에선 구멍이 숭숭 뚫린 배춧잎만 보일뿐 벌래들은 모습은 보이질 않는다.
수확한 게 별로 없어 나누어줄게 마땅한 게 없다며 집에 가서 한 번 쪄 먹어보라며 햇밤이 담긴 자루를 머리에 이고 이웃집할머니가 건너오신다.
약도 치지 않은 배추가 너무 잘 됐다며 배추 골로 들어와 배추포기들을 이리저리 들춰보며 신기해한다.
벌레들이 올핸 유달리 많이 발생했고 며칠 전 궂은 날씨로 민달팽이까지 생겼다며

"배추금도 싸다는데........"

걱정이 많다한다.

 

"달팽이도요?"

 

민달팽이

지난해 초가을 하루가 멀다 하고 내리는 비 때문에 배추밭마다 발생한 민달팽이 때문에 무진 애를 태웠다.
그렇지 않아도 엊그제 며칠 계속된 궂은 날씨로 행여 민달팽이가 발생하지나 않을까 내심 걱정이 많았는데.......
구멍이 난 배춧잎들이 혹시 민달팽이들의 소행은 아닐까?
불길한 예감에 작년에 사용하다 남은 달팽이 유인제를 찾아냈다.
방안 서랍 속에서 화투장을 꺼내와 한 장씩 배추포기 밑에다 깔고 그 위에 유인제를 조금씩 올려놓았지만 쉽게 배추밭을 벗어나질 못했다.
씁쓸한 맛이 짙게 배어났다.

새벽같이 일어나 이슬이 촉촉이 머금은 배추밭으로 내달았다.
긴 소매 옷으로 치장했음에도 찬 공기에 몸은 금세 움츠려든다.
구멍 뚫린 배추 잎들을 한장 한장 꼼꼼히 살펴보다 잠시 당황했다.
당혹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어제 저녁 늦게까지 행한 달팽이방제 작업이 괜한 헛수고였기를 바라고 바랐는데 순식간
그 기대가 무너졌다.
아니나 다를까!
새까만 민달팽이가 배추어린속잎만 골라 사정없이 먹어치우고 있다.
발생초기인 듯 개체 수는 그리 많이 발견되지 않았으나 또 다시 농장을 비워야하는 여건 때문에 비워놓을 그 기간 마음고생을 조금이라도 덜고 싶은 바램 때문에 근원을 없애려 최선을 다 할 수밖에 없다.
400포기가 넘는 배추들을 일일이  한 꺼풀 한 꺼풀 살펴보니 시간이 많이 지체됐다.
불볕더위만큼이나 여름 내내  괴롭혔던  노린재가 귀족서리태밭에서 감쪽같이 모습을 숨겼다.
꼬투리에 알이 들어차 더 이상 머물 이유를 상실한 모양이다.
함초롬히 핀 울금 꽃이 하얀 속살을 내보이고 야콘들도 짧아진 가을 햇살 속에서 몸집 키우기에 열심이다.
대파와 부추 밭에 부족한 양분들을 보충하고 무밭에 김매기를 마치니 점심시간이 벌써 지난 시간이다.
남의 밥 퍼 주는데 정신이 팔려 자신의 배를 채우는 덴 소홀했다.
부족한 손길을 한 번 더 내밀고픈 욕심에 시간가는 줄 몰랐다.
누렇게 익기 시작한 은행열매가 소슬바람에 떨어진다.

 

 

 

 

휴게소에 들려 국밥 한 그릇 말아먹고 싶은 간절한 생각에 일찍 짐을 꾸렸다.
어제 저녁부터 비운 뱃속이 허전했다.
정오를 지난 시각 차안은 아직도 뜨겁다.
창문을 열고 천천히 동네를 벗어날 때쯤 돌담 넘어도 빠져나온 감나무의 매력에 빠져 자신도 모르게 주차브레이크를 잡아당겼다.
가을향기가 물씬 묻어나는  감나무 곁에서 디카의 메모리를 채우는데  텃밭에서 일을 하시던 나이 지긋한 주인집 내외가 웃는 모습으로 다가오시며  익은 홍시들을 다 따 가져가란다.
처음 본 낯선 사람에게 매미체가 달린 긴 장대를 들려주며 사용요령도 가르쳐준다.
야릇한 기분을 애써 숨기며 서투른 솜씨로 홍시를 몇 개 따 우선 허기진 배를  채웠다.
 잘 익은 홍시의 선홍빛이  대장간에서 달구어진 쇠붙이 빛과 같다.
빨갛게 달구어진 쇠붙이만큼이나 식지 않은 인정이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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