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방에서는 감기로 열이 날 때, 머리나 눈에 열이 있거나 가슴속에 열이 있어 답답하고 괴로울 때, 폐렴, 기관지염에 쓴다. 장위를 편안하게 하고 풍으로 어지러운 것과 두통에 쓴다. 두통, 어깨결림, 혈압상승 등을 막는다. 해독, 소염 작용과 함께 혈액 정화 능력이 뛰어나다. 변비, 생리불순도 개선되며, 여드름을 포함한 각종 피부 트러블을 해소할 수 있다. 감국은 특히 간 기능을 좋게 하여 눈을 밝게 한다고 하여 눈으로 인해 생기는 두통, 눈이 침침하며 미열이 있을 때나 눈에 열이 올라 생기는 충혈 등에 활용한다.
울긋불긋 파스텔 톤으로 치장했던 가을의 상징들이 하나 둘씩 가지에서 이탈하더니만 이젠 나뭇가지만 횅하니 남아있다.
단풍과 같이 물들었다가 그것과 함께 쓸려간다는 가을이 종착역을 향해 줄달음치고 있다. 지난주엔 오고가는 인파들로 가득했던 고속도로는 이번주말오후에는 한결 여유로웠다. 주변의 풍광을 즐길 여유도 없이 넘나드는 경계속도에 신경 쓰다 보니 청아한 가을하늘에 구름 몇 개 떠가는 서해대교 위를 주행하고 있다.
시골집 마당에는 펼쳐진 멍석위엔 황금색 나락으로 가득하고 부족한 햇볕을 더 쬐어 주려는 주인들의 정성은 고무내질로 이어진다.
가을걷이를 마친 논 주변을 태우는 연기가 긴 꼬리를 물고 자욱이 깔려 시골의 자화상을 멋지게 그려내고 있다.
스물 스물 몰려와 코끝을 즐겁게 하는 볏짚 태우는 냄새가 동심의 아련한 추억을 더듬게 한다. 지금도 시행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소싯적 내가 다니던 시골학교에선 봄, 가을 농번기철을 맞이하면 3-4일씩 농번기 방학을 실시했다.
봄에는 보리수확철에 가을에는 나락수확철에 실시했었다.
부족한 일손을 도와주라는 취지에서 그랬는지 방학과제는 따로 내어 주지 않고 수확이 끝난 들판에서 떨어진 이삭을 주워 봄에는 보리 한 되, 가을에는 나락 한 되를 방학을 끝나고 개학할 때 들고 오라했다.
어린마음엔 커다란 부담이었다.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에서 이삭을 주어 과제물을 제출하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열심히 일을 도와주면 부족한 과제물을 채워 주실 거라는 어르신들의 언질에 농땡이 한 번 제대로 피워보지도 못하고 일을 거들어야 했다. 그 땐 그런 일이 싫어 농번기가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어릴 마음에도 날씨가 궂으면 안 되는 줄 빤히 알면서도 놀고 싶은 마음에 비라도 내려주길 내심 기대했었다.
가을걷이가 거의 다 끝나가는 이 시기 오후 시간에는 친구들과 어울려 갈색 바께쓰를 들쳐 매고 미꾸라지 사냥을 나갔었다.
추수가 끝난 논바닥에 깔려있는 볏짚들을 긁어모아 논둑에 불을 지피고 바지를 허벅지 끝까지 걷어 올렸다. 얇은 수렁이 있는 논은 나락 수확을 하려 논에 있던 물을 다 말렸는데도 쑥쑥 빠져들었다.
검정고무신을 논둑 한편에 벗어 놓고 발을 살짝 논에 들어 놓았다 이내 몇 걸음 옮기지도 못하고 줄행랑치듯 논두렁으로 뛰쳐나왔다.
발은 시려오고......, 결국 찬 냉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도망 나온 것이었다.
지펴 놓은 불 위로 발을 올려놓으면 이내 발은 온기가 돌고......,
이런 과정을 몇 번 하고나서야 찬 물에 적응이 되었다.
쑥쑥 빠져드는 질퍽한 흙이 걷어 올려놓았던 허벅지 바짓가랑이 근처까지 밀고 올라 겨우 반 뺨 사이에서 경계선이 설정되었다.
바께쓰를 옆에 놓고 질퍽한 흙속으로 두 손을 밀어 넣었다 흙을 한 움큼 부여잡고 들추어내면 흙 속에서 보금자리를 펴고 겨울채비를 준비하던 살이 오를 대로 오른 누런 미꾸라지가 긴 수염을 흔들어 대며 따라 나왔다. 갑작스런 기습공격에 어리둥절하던 녀석을 두 손으로 잽싸게 감싸 통에 던져 넣었다.
친구들과 경쟁이나 하듯 한 마리라도 더 잡고 푼 욕심에 연신 흙을 뒤집었다.
미꾸라지 잡는 재미에 빠져들다 보면 언제 그랬는지 바짓가랑이는 흙탕물 속에 적셔들고 말았다. 바지춤을 추슬러 보지만 소용이 없었다.
서쪽하늘에 석양이 빨갛게 물들어 가면 흙 반 미꾸라지 반으로 반쯤 채워 진 통을 들고 논가로 나와 맑은 물에 씻고 있노라면 모여드는 친구들의 모습이 가관이었다. 얼굴엔 진흙이 튀어 그 새 말라 있고 머리카락은 흙탕물이 범벅되어 있고......,
내 모습도 그들과 동색일 것인데 내 모습이 아닌 양 웃고 떠들었다.
바지뿐만 아니라 윗도리까지 진흙에 흙탕물 얼룩뿐이었다.
집에 가면 혼만 날 것 같은 걱정에 선뜻 집 들어가기가 걱정이 되었다.
시린 손도 말릴 겸 젖은 옷도 말릴 겸 추수가 끝난 볏짚가리에서 짚뭇을 들고 와 불을 지피면 특유의 냄새만을 뇌리에 각인시키고 볏짚 형체를 그대로 남긴 체 금세 사그라지고 말았다.
서리가 많이도 내려 있다.
짙은 녹색의 배춧잎에 소담스런 서리꽃이 앙증맞게 피어있다.
제법 매서운 새벽공기로 절로 옷깃이 여며진다.
어젠 오후 네 시경에 도착하여 밭둑 위쪽에 있는 은행나무의 은행수확을 실시했다.
아래쪽 밭둑에 위치한 은행나무는 밑에 김장채소가 심어져 있어 수확은 다다음주 김장이 끝난 후 실시하기로 계획했다.
사다리를 기대 놓고 올라간 아름드리 은행나무엔 주름 잡힌 은행열매들이 금방이라도 떨어져 내릴 것 같다.가지마다 무게를 못 이겨내고 가지가 축 늘어져있었다.
약간의 고소공포증이 있는 관계로 은행나무에 매미를 하고 있으려드니 어지럼증이 동했다. 은행을 긴장대로 내리치면 따면 꽃눈을 손상시켜 다음해엔 달리지 않기 때문에 될 수 있는 데로 나무에 올라가 가지를 발로 툭툭 밞아 털어 주거나 가지를 흔들어 따야 꽃눈이 그대로 보전되어 다음해에도 다수확을 할 수 있다.
미리 줍기 좋게 차광막 등을 사용해 나무 밑에 자리를 펼쳐 놓았다.
윗가지를 단단히 부여잡고 밞고 있는 가지를 툭툭 발로 차니 샛노란 은행잎이 하늘위로 날아오르며 후드득 후드득 우박처럼 쏟아져 내렸다.
무게 때문에 축져져 여름 내내 고생했던 나뭇가지들이 굽힌 허리를 펴 들고 오랜만에 자기자리로 찾아들었다.
터진 과육사이에서 퍼져 나오는 거시기한 냄새가 가을 하늘에 너울너울 피어올랐었다.
옆지긴 먼발치 나무 밑에서 쪼그리고 앉아 떨어진 은행을 줍고 있었다.
다행히 우리 둘은 옻을 타지 않은 채질이여서 은행을 맨손으로 뭉개도 아무런 해가 발생하지 않는다. 작년 처음 농장을 일구면서 경험과 지식도 없이 은행을 주워 담기에 급급하여 은행잎을 섞어 주워 담는 바람에 과육을 분리 할 때 엄청 애를 먹었다.
그래서 올해부턴 하나하나 꼭지까지 제거하며 주위 담으려 보니 일이 더디게 진행되었다.주말에만 올 수밖에 없는 특수성 때문에 이렇게 비닐 포대에 주워 담아 양지바른 곳에 보관하고 있다가 다음 달 초에 과육과 알을 분리해야만 할 것 같다.
어둠이 짙게 깔린 산자락엔 가는 가을밤이 서러운지 이름 모를 풀벌레들이 구슬피 울어댔다.
.....
떨어져 줍지 못한 은행들 위에도 하얀 서리꽃이 만발했다.
새벽녘부터 움츠리고 앉아 손을 호호 불며 떨어진 은행들을 주우려 드니 괜스레 짜증이 밀려온다.
찬바람에 낙엽이 쓸리는 호젓한 계절의 감흥에 빠져 들고 싶어진다.
늦가을 아침 고즈넉한 시골 들판은 넉넉하고 푸근하다.
밥 짓는 연기가 지붕 위를 넘실거린다.
옆지기와 산자락에 난 오솔길을 걸다 앙상한 가지에 까치밥만 서너 개 달린 감나무 밑에서 잠시 지난 세월을 들여다보는 사색의 시간을 즐긴다.
산자락 끝엔 제철 맞은 들국화들이 탐스런 자태를 뽐내고 있다.
누가 먼저랄까 경쟁하듯 그쪽으로 발을 옮긴다. 햇볕에 반사되는 서리꽃이 함께 핀 들꽃의 자태에 황홀함이 넘쳐난다.
들국화의 향기로 후각 또한 즐겁다.
주머니 속에서 구겨진 비닐 봉투를 하나 발견하고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훼손한다. 국화 향 가득한 효소음료를 만들어 보고픈 욕망에 사로잡혀 줄기에서 꽃들을 분리한다. 언제 찾아 들어는 지 나뭇가지위에선 까치 두 마리가 낯선 난봉꾼을 향해 거친 울음소리를 토해낸다.
토요일 오후 3시30분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한 주행은 30분도 채 못가서 멈추어서 버리고 만다.영동고속도로와 서해안고속도로가 만나는 안산분기점에서부터 차들로 가득하다.지난주 가지 못하고 2주 만에 찾는 것이라 혹시 아프지나 않았는지, 먹을 것은 부족하지 않았는지…….온갖 환상 속에서 사무치게 밀려오는 그리움을 애써 다독이고 계절의 3번째 징검다리 가을 역에 발을 멈추고 있는 계절을 음미하니 일상생활에서 꼈던 마음의 때가 하나둘씩 밀리여 나간다. 비록 낙엽을 밟으며 계절의 정취를 느낄 순 없지만 고속도로 옆에 잘 가꾸어져 계절의 풍향계를 나타내던 모감주나무의 잎사귀가 그새 샛노란 단풍으로 치장하고 불어대는 바람에 하나 둘씩 떨어져 내린다.
노랑들국화가 보기 좋게 피었다 싶더니 금방이라도 깃털을 펼치고 날아오를 것 같은 억새꽃이 처연하게 나부끼고 있다. 흐르는 개울물처럼 가다, 서다를 반복하던 차량의 흐름은 서팽택 분기점을 지나고 나서야 한결 여유로워진다. 석양이 짙어가는 서해대교 위에서 일몰의 광경을 목격하는 환희의 호사를 만끽한다. 갓길에 차를 정차할 시간도 없이 카메라를 꺼내 셔터를 눌러보지만 뚝뚝 떨어져 내리며 금세 서산에 모습을 숨기고 만다.
가을의 어둠은 삽시간에 밀려온다.
당진IC부근에서 정체되는 관계로 요금 소에서 도로 비를 정산하니 사방천지가 칠흑이다.
당진읍에 들려 간단히 배를 채우고 이틀쯤 기운 둥근달을 벗 삼아 한적하기도 한적한 비포장 길을 따라 다락골로 들어선다.
고요하고 평온했다.
주인을 기다리다 지쳐 토라질 대로 토라져 잠에 빠졌나 보다.
자동차 전조등에 화들짝 깨어난 것처럼 부스스한 모습을 애써 감추려는 듯 고개만 빼곰히 쳐들고 주인을 반기는 듯하다. 전조등에 비추어진 모습에서 아직도 달팽이의 공격이 계속되고 있어 속상한 마음을 억누를 수가 없다.
쉼터의 방문을 열고 형광등 등불을 켜니 귀뚜라미 몇 마리가 갑자기 나타난 침입자에게 놀란 양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도망가기에 난리가 났다.
가을.
산자락의 밤은 빨리도 내리지만 서둘러 물러가지도 않는다.
평소보다 조금 늦게 눈을 떠 시계를 보니 5시가 조금 넘어선 시간이다.
주변은 아직 어둠의 흔적이 남아 있다.
두툼한 털 스웨터를 챙겨 입고 원두막에 앉으니 찬 공기로 행동이 움츠려 든다.
배추밭엔 하얀 서리가 얇게 내려 있다.
2주 동안에 결구가 많이 진행되어 있다.
늘 푸를 것만 같았던 검은콩 밭도 점점 갈색으로 퇴색되어 가고 있다.
옆 밭의 누런 콩은 벌써 배어내어 건조작업이 진행 중인데, 서릴 맞으며 익어간다는 서리태의 정의를 실감할 수 있다.
검은콩 밭과 인접한 곳에 심은 배추에서 달팽이의 피해가 줄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
아마 검은콩 밭 전체가 달팽이의 서식지인 것 같다.
수 없이 잡아 없앴는데도 계속 피해를 가하고 있다.
달팽이를 잡겠다고 콩밭을 다 멜 수도 없는 현실이고 보니 이젠 이놈들과 공생하는 법을 모색해야만 할 것 같다.
오다가다 길에 깐 경비가 얼마냐고 가끔은 생뚱맞은 바가지를 북북대지만 지금은 마니아로 변해버린 옆지기가 건네 준 따스한 커피 한 잔으로 속을 데우며 뒷동산에 처연하게 피어 있는 억새꽃을 감상하며 우리만의 가을의 운치를 즐긴다. 가끔 누런 은행들이 하나 둘씩 뚝뚝 떨어지고 미처 줍지 못한 은행들이 맨 땅위에 어지럽게 널려있다.
초봄에 “곧은터사람들”을 통해 옮겨 심은 100여주의 당귀를 수확하려 계획된 날이다.
거름하나 주지 않고 농약한번 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에서 재배한 것이라 내심 그 결과 몹시 궁금하다.
지난 주중에 미리 대장간에 들려 쇠스랑처럼 생긴 두발달린 도구와 한발달린 도구를 각각 하나씩 약초 캐는 도구를 구입했었다. 조심스레 흙을 걷어내고 한 뿌리 한 뿌리씩 캐어 낸다. 뿌리가 깊게 퍼져 있어 여간 힘이 든 게 아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옆지기가 호기심이 발동해서인지 자기도 한번 해 보고 싶다고 도구를 낚아 체더니 한 뿌리를 붙들고 발버둥 치다 이내 힘들다 포기하고 도구를 내팽개친다.
자기는 떨어진 은행이나 줍는다고 비닐 포대를 하나 챙겨 들고 은행나무 밑으로 발을 옮긴다.
밑이 실하게도 들었다.
덩치가 큰 것들은 1KG이 족히 넘어 보인다.
캐낸 것들은 순을 제거하고 높이 들었다 패당이 쳐 흙을 털어낸다.
상처가 난 뿌리에서 하얀 진액이 흘러 나와 손에 묻어 찐득거린다.
시골 장터 한약방에서 맡던 냄새가 온 사방에 퍼져 나간다.
“당귀농사는 대성공이다”은행 줍던 옆지기가 흥얼거린다.
“무슨 냄새가 이리 좋남?”
언제 건너오셨는지 아랫집어르신이 원두막에서 우릴 내려다보고 계신다.
“안녕하셨어요. 어젯저녁엔 길이 막혀 늦게 오는 바람에 인사도 못 드렸어요!
“배추가 참 잘 되었어!”
올 해는 날씨가 궂은 날이 많아 일조량 부족으로 늦게 심은 배추는 속이 차지 않은 것이
많을 것이라 하시며 올 김장채소 값이 예전에 비해 비쌀 것이라고 진단을 곁들이신다.
“할멈이 아침 준비했어, 건너가 서 같이 먹어.”
“어르신 호의는 감사합니다만 지금 저희도 아침준비를 하고 있는걸요. 대접 받은 걸로 생각하겠습니다.”
우리말엔 아랑곳하지 않고 한사코 자기 집에 건너가 식사하자고 성화시다.
아침부터 그렇게 할 수 없다고 계속 사양하니 이젠 양손을 잡아끌어 당기신다.
어르신의 호의를 너무 거절하기도 그래서 수확한 당귀를 한 움큼 안고 건너가니 언제 준비하셨는지 정성 가득 한 상 차려 놓으시고 우리 오길 기다리고 계신다. 지지난주에 베어내어 원두막에다 건조시켜 놓았던 들깨도 손수 털어 잡티까지 깨끗이 선별해 놓으셨다면 밥 먹고 들고 가라 마루에 내어 놓으신다. 또 우리가 고구마를 조금 심은 것 같다 하시며 고구마 한 포대와 알밤 한 자루 그리고 갓 수확한 생강도 한 움큼 내어 놓으신다.
코끝이 찡해오고 마음이 숙연해진다.
일주일에 한 번 내려와 가끔 말상대만 해 주었을 뿐인데…….
너무 고맙고 감사해서 말문이 막혀 이침부터 차려주신 성찬에 반주로 건네주신 소주잔까지 곁들이니 마치 하늘을 걷는 기분이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햅쌀밥에 꽃 게장, 도토리묵, 된장찌개, 갓김치, 파김치, 깻잎장아찌, 등 등 어릴 적 향수가 젖은 정갈한 음식들이 입에 착착 달라붙는다.
정해진 시간에 맞추려 노동의 질을 높여본다.
뿌리 사이에 끼여 있는 흙을 털어 내는 작업이 수월치가 않다.
덩치가 클수록 일이 더디게 진행된다.
커다란 다라이에 수확물을 가득 채우고 물로 씻어 가며 하나하나 칼로 긁어내고 솔로 닦아주며 작은 것은 발효효소용으로 큰 것은 건조용으로 선별하며 작업한다.
콧노래까지 불러 가면 흥에 겨워 솔로 싹싹 닦고 있는데 은행을 줍던 옆기지가 버럭 소리를 질러댄다.
“그 놈의 당귀에만 시간 다 허비할거에요?”
“나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왜요? 혼자하려드니 심심해서요?”
“심심하기는....... 오늘 길도 엄청 막힐 텐데, 빨리 끝내고 한시라도 빨리 올라갑시다.”
갑자기 손놀림이 빨라지기 시작한다.
크기가 큰 것은 끈으로 굴비 엮듯 엮어 원두막 중앙에 매달고 발효효소 담글 것은 반으로 갈라 수분을 건조시킨다.
지난 초여름에 담갔던 개복숭아 와 보리수열매 효소를 걸러내며 맛을 보니 향긋한 향과 진한 맛이 입안 가득하다.
일기예보와 괴를 같이 하려는 듯 오후3시를 조금 넘어선 시각에 하늘엔 먹구름이 드리워지는가 싶더니 이내 후드득 찬비가 쏟아지고 바람도 새 차진다.
“가을비는 빗자루로도 피한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가을비가 굵은 장대비를 한바탕 퍼 부어 대더니 이내 잠잠해지고 잠잠해진다 했더니 또 내리고…….
아직도 깊은 잠에서 헤매는 고3딸아이와 중3아들 녀석을 깨워주고 6시가 조금 못되는 시간에 홀로 아파트를 빠져 나왔다.
차에 몸을 의지하고 집에서 15분 거리인 연안부두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하늘은 청명했다.
스산한 가을바람이 간간히 불어오고 찬 기운이 피부에 와 닿는다.
새벽녘에 들린 연안부두 도매시장은 한가했다.
간간히 활어를 운반중인 수조 차만 급히 왔다 갔다 한다.
상점주인도 기억 못하는 단골집에 들려 가리비. 새우, 전어, 꽃게 등의 싱싱한 해산물을 구입한다. 하얀 스치로품 박스에 차곡차곡 채워 넣고 그 위에 얼음을 쏟아 부은 다음 포장을 하고 있을 즈음 주머니 속 휴대전화에서 진동소리가 요란하다.
“이모부! 어디세요?”
6시30분에 함께 출발하기로 한 처제네 집에서 온 전화였다.
“연안부두어시장인데”
“저희는 지금 이모부 댁으로 갈 거예요.”
“그래, 알았다. 빨리 일보고 갈 거니까. 이모한테 전화해서 짐 챙겨들고 아파트 앞으로 나와 있으려 하렴.”
해 돋는 시각, 푸른색 캔버스위에 황금색과 가을 색으로 덧칠되어 그려지고 있는 자연의 변화를 감상하며 서해안 고속도로를 질주한다.
조직의 부름을 받고.......
지난 개천절 아침이었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생각 없이 컴퓨터 앞에 앉았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니 카페지기님께서 주신 쪽지 하나가 온 신경을 잡아맨다.
“웬 일이실까?”
농사를 지으시는 부모님 밑에서 자랐지만 농사를 지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팔순의 노모가 아직도 노구를 이끌고 농사를 짓고 있지만 나의 일이 아닐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고향을 등지고 20여년을 살아왔다. 재작년 6월 예기치 못한 옆지기의 돌출행동으로 당진읍 다락골에 조그마한 터를 마련하고도 선뜻 어떻게 할지 몰라 망설였다.
흙에 대한 동경은 늘 가지고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농사를 짓는다는 게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작년 봄 마련한 그 터에 감자를 심었다.
옛 생각을 더듬고 주변 분들에게 물어보고 해서 나와 옆지기 그리고 처제, 동서 우리 넷은 작은 흥분에 휩싸여 신나게 태어나서 처음으로 감자를 심었다.
그렇게 대략 100여평을 넘게 심었다.
농사는 씨앗만 심어 놓으면 다 되는 줄 알았다.
기다려도 소원해도 새싹은 올라와 주질 않았다.
감자100평 심어 달랑 감자 아홉개........
열무도 심었고 참깨도 심어보았다.
심었던 작물마다 지금도 가슴속 깊은 곳에 갈무리해 둔 소중한 실패를 맛보았다.
노력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좋다는 비료는 다 사 날랐고 남에게 욕 먹을까봐 밭엔 잡초하나 보이지 않게 열심히 일했다.
작년8월 거듭되는 실패 속에서 우연히 “곧은터 사람들”을 만났다.
“오랜 가뭄에 단비” 이 말이 정말 실감났다.
디카도 하나 장만했다.
작문시간이 제일 싫었던 기억을 지우려 카페에 글도 올렸다.
쪽지를 열었다.
전화통화를 하시고 싶다면 전화번호를 남겨 두셨다.
“무슨 일일까?”
“내가 무슨 실수라도 했나!”
오만 가지 생각이 주변을 휘감았다.
작년 카페 가입 후부터 지금까지 주고받은 쪽지하나 전화한통 없이 올해 초여름 서산모임에서나 옥천정모때도 얼굴만 잠깐 뵙고 대화다운 대화도 한 마디 주고받지 못 했는데.....
“여보세요. 주인님이세요. 저는 다락골 은행나무입니다.”
“안녕하세요. 다락골은행나무님, 비익조입니다.”
그 전날 카페에 올려놓은 글을 보고 쪽지를 주셨다했다.
올 여름 궂은 날씨로 다른 회원님들 주말농장의 채소들이 생육작황이 좋지 않다며 저희 집 채소는 잘 가꾸었다고 칭찬해 주시며 TV출연을 한 번 해보면 어쩠게냐고 물어 오신다.
MBCTV DMB에 ‘동호회2.0’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여러 인터넷 동호회 중에서 활동이 우수한 카페를 찾아 소개시켜 드리는 프로그램이라 했다.
‘나사모’정모행사모습과 전문적으로 농업에 종사하시는 분 그리고 주말농장을 가꾸시는 분 들 중에서 각각 한사람씩을 촬영대상으로 선정하셨다며 주말농장부분은 우리가 맡아주시면 안되겠냐고 말씀하셨다.
1주일에 잘해야 한번 방문해서 남들이 하는 일 흉내만 내고 오는데 어찌 경험도 없는 우리더러 다른 분을 대신해서 촬영에 임하라니.......
정중히 사양했다.
“아무런 부담 갖지 말고 좋은 추억 만들어 보세요.”
카페지기님 목소리에 힘이 실려 있었다.
TV촬영이 있다고 하니 이번에는 나서기 싫어하는 가족들의 반대가 심했다.
“주먹때기만한 밭뙈기에서 보여 줄게 무엇이 있다고…….촬영은 무슨......”
“아빠, 엄마만 즐겨하는 일인데 왜 우리까지 끌어들이느냐…….”
“논문준비에 회사일로 시간 비우기 어려운데, 자기네 입장은 한번이라도 생각했느냐…….
“내가 즐기는 일이다. 도와 달라.”
촬영시간이 다가올수록 “평소에 하던 대로만 하자” 신경 쓰지 않으려 해도 자꾸 긴장의 도는 높아만 갔다.
아침 일곱 시에 인천에서 출발하는 과정부터 촬영하기로 했던 계획은 사정으로 변경되고 9시30분 우리가족과 처제네 가족이 농장에 도착하는 것부터 촬영이 시작되었다.
MBCTV에선 담당PD님과 조연출 담당님 그리고 작가선생님이 참석하셨다. 상견례와 동시에
일정은 진행된다.
오늘 예정된 작업은 밭 가장자리에 심어진 들깨수확, 호박고구마 수확 및 그 자리에 쪽파종구파종하기, 김장채소밭관리하기, 더덕씨앗채취하기, 그리고 풋고추를 수확하는 것으로 짜여졌다. 농기구를 사용할 때는 안전사고에 유의하고 긴장할 필요 없이 평소 하던 대로 스스럼없이 행동하라 일러 주었지만 카메라만 들이 대면 긴장들을 한다.
들깨, 고구마 수확은 차질 없이 진행된다. 처음 대하는 일이라 모두들 신기해한다. 주방에서는 바로 뽑아 온 배추로 김치 겉절이를 만들고, 무로 병어조림을 하고 싱싱한 호박잎을 데쳐내고 호박과 쪽파를 이용 나물도 만들고 풋고추도 밭에서 한 접시 가득 따와 점심식사를 준비한다.
점심식사를 즐기는 가운데서도 촬영은 계속되고 어르신들마다 듣기 좋은 소리만 늘어놓는다. 현지 주민들과의 밀접한 관계가 농장을 일구는 데는 아주 중요한 일인데 많이들 도와주시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올 여름 계속된 궂은 날씨 속에서도 우리 집 건고추를 40KG이나 만들어 주신 마음 따스한 분들이다.
잠시도 휴식 없이 촬영은 계속된다.
오후 3시 40분이 지나가는 시간에 참석한 모든 가족이 모여 한바탕 웃음잔치가 펼쳐지는 가운데 인적사항을 확인하고 촬영이 마무리 된다.
“마음 따뜻한 사람들의 모임, 다음카페 ”곧은터 사람들“다락골은행나무입니다. 직업은회사원, 나이는 49세, 성명은 김영수입니다. 감사합니다.
농장을 다녀온 뒤에는 1주일 내내 나는 작은 몸살을 앓는다.
주초2-3일은 노동으로 인한 피로가 그 원인이고 주말이 가까워지는 2-3일은 변화된 농장의 모습을 상상하며 마음고생을 한다.
비록 이 일로 몸은 고단하고 힘은 들어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어 행복하다.
여유시간을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하는 모든 분들께 강추하고 싶다.
자연에서 호흡하고 하루하루가 달라지는 생동하는 모습을 느끼며 흙을 만지다보면 에너지는 충전되고 몸과 마음은 맑고 가벼워진다.
“흙을 만지면 생활이 즐거워져요.”
촬영에 힘써 주신 MBCTV 김지언 PD님과 하루 내내 무거운 카메라를 들쳐 매고 생생한 모습을 담아주신 이성희PD님 그리고 이상미 작가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 마을엔 풋고추 하나 성한 게 없구먼, 아저씨네 고추밭에만 풋고추가 남아 있제 ,다른 밭에선 구경도 못히여.”
“습해로 콩 꼬투리 하나 성한 게 없당게, 들깨농사는 아주 절단 났어.”
“달지 달던 이 무화과 한번 먹어봐........ 올해 과일 맛이 모두 이런 맛이구먼.”
“논이 마르지 않아 도개도 못치고 있구먼, 수확한 이른 나락들도 쌀 애기가 절반도 더 되고 밥맛도 별로구.......올 농사 글렀어......”
“채소 값이 금값이여, 남아나는 게 있어야제, 그래도 이집 밭은 달팽이가 많이 안 보이는구먼! 집집마다 달팽이 땜시 배추밭이 엉망이구먼......”
“가을이라 가을바람 솔솔 불어오니........”
상쾌한 가을바람에 한번쯤 읊조려 보고픈 어릴 적 즐겨 부르던 동요가 입가에서 맴돌고만 있다.
구월 마지막 날.
기대하고 소원했던 눈이 부시게 푸른 하늘 대신 온통 검은 먹구름에 뒤덮여 비가 내리고 있다. 세차게 퍼부어 대기라도 하면 포기하고 늦잠이라도 즐길 텐데, 쉽게 그칠 기미도 보이질 않고 마음 뒤숭숭한 이 애간장이라도 녹이려는 듯 부슬부슬 속절없이 내리고 있다.
눈을 뜨자마자 종이컵에 막대기모양의 일회용 커피믹스를 쏟아 붓고 반쯤 물을 채워 들고 원두막에 우둑 커니 주저앉았다. 밤새 마신 음주로 머리가 띵하다. 하얗게 핀 참취꽃이며 한여름 내내 자태를 자랑했던 풍접화가 마지막의 화려함을 더하려는 듯 어지럽게 널 그러져 있다.
비에 젖은 대지에서 뿜어 나오는 정감이 평소와는 사뭇 다르게 피부에 와 닿는다.
한 폭의 채색화처럼 가을 색으로 덧칠해가는 주변 풍광들을 즐길 여유가 오늘아침은 왠지 낯설게만 느껴진다.
지난밤 지난 친 음주 때문만은 아닌 듯싶다.
예정했던 일을 행할 수 없다는 초조감과 조바심에 휩싸여 그런 분위기가 연출된 것 같다.
꼬투리가 여물기 시작하여 제법 불룩해진 검은콩 밭도 계속된 궂은 날씨로 생기를 잃어가고 있다. 원두막아래 펼쳐진 배추밭의 배추들도 구멍이 숭숭 뚫려 있어 애달픈 마음뿐이다.
마르지 않고 축축해진 토양 때문에 달팽이의 서식조건만 충족시켜 온 밭이 달팽이의 놀이동산으로 변해버릴 것 같은 착각 속에 빠져든다.
어제 저녁엔 장모님생신모임을 이곳 다락골 쉼터에서 갖기로 해 출가한 5형제들이 부부동반 모두 다락골에 모였다. 밤늦게 까지 형제의 애를 나누고 음주를 즐긴 덕택(?)에 누구하나 아침 고요한 이 분위기를 깨우려 들지 않는다. 부지런한 장모님만 빗속에서 풋고추를 따신다. 고춧잎을 훑는다. 고구마 순을 채취한다. 부추를 배어낸다. 하시며 부산하게 움직이고 계신다.
교회당 가는 봉고차가 옆집 할머니를 태우려 신작로를 가로 질러 들어온다. 얼추 시간이 많이 지나간 것 같다.마냥 기다릴 수도 그렇다고 그냥 방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비옷을 걸쳐 입고 호미하날 챙겨들었다. 먼저 은행나무 밑에 파종한 쪽파 밭의 잡초제거 및 북주기를 병행해 실시한다. 빗물이 스며들어 반죽이 되다시피 한 흙이 호미에 달라붙어 작업을 방해한다. 파종3주차가 된 갓과 알타리무을 솎아내는 작업을 마치고 배추밭으로 발길을 옮긴다. 그새 빗줄기는 가늘어지고 오다가다를 반복한다.
배추포기를 들추어본다.
한포기당 한두 마리 많게는 4마리의 달팽이가 푸른 배춧잎을 도려내서 포식을 즐기고 있다. 오기가 발동했는지 한 마리 한 마리씩 손으로 잡아내어 돌멩이에 갈아 없앤다.
살생은 계속되고, 그것에 비례해 마음은 찝찝해지고 작업의 속도는 붙질 않는다.
형제들 무리 속에 섞여 늦잠을 즐기고 있는 옆지기를 깨워 도움을 요청하니 징그럽게 그런 일 시킨다며 뒤도 안보고 줄행랑을 친다. 처단하는 방법이 너무 잔인하다 느껴져 플라스틱바가지에 굵은 소금을 두툼하게 깔고 그 바가지 안으로 놈들을 집어 던지니 흐물흐물 형체가 녹아내린다. 청명한 가을하늘이 계속되지 않는 한은 달팽이와의 전쟁은 계속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여운으로 남아 우울한 기분이 상승된다.
달팽이를 구제하면서 병행해서 배추포기마다 배추잎사귀를 활짝 핀 꽃처럼 양손으로 활짝 펼쳐 준다. 잎사귀마다 햇볕이 잘 들어 광합성 작용을 활발하게 유도해 속이 꽉 차게 하기 위해서다.
다행히 달팽이의 피해만 관찰되고 다른 배추벌레들은 관찰되지 않는다.
정오가 가까워진 시간, 잠에서 깨어난 삭구들로 주변이 소란하다.
간간히 오다가다를 반복하던 빗줄기도 멈추어 선다.
아침 겸 점심을 함께 즐기고 배추, 무밭에 2차 웃거름 주기를 실시한다.
오늘로서 배추를 정식한지 4주가 지나간다.
정식하고 2주차가 되던 지지난주에 1차 웃거름으로 요소비료를 시비했었다. 4주차가 지난 오늘 요소비료에 칼슘비료가 혼합된 N-K비료를 포기와 포기사이에 구멍을 뚫고 그 안에 한 스푼씩 집어넣는다. 옆지기가 앞서가며 구멍을 내주는 도움으로 일이 한층 수월해진다.
“우와! 배추가 어제저녁때보다 훨씬 많이 큰 것 같다.”
“그럼! 이놈들도 주인 발자국 소릴 기억하고 있다구. 그 소릴 듣고 바로 반응하는 거야.”
“정말 !그래서 더 푸릇푸릇하고 더 커져 보이는구나.”
“말 못하는 생물이지만 주인의 정성을 먹고 사는 애들이야, 다른 집들이야 틈만 나면 들려 이놈들하고 대화도 나누고...... 하지만 우리는 잘해야 일주일에 한번오니 올 때만큼은 이놈들에게 더더욱 정성을 다해야 하지 않겠어?
때마다 계속했던 귀성추억은 옆지기의 근무문제와 딸아이의 입시 준비로 이번 명절엔 접기로 했다.
추석연휴 귀성길로 서해안고속도로도 몸살을 시작중이였다.
새벽바람을 맞으며 떠난 길은 영동고속도로와 서해안 고속도로가 만나는 지점부터 귀성하는 차들로 거북이 걸음이었다.비봉부근에서 정체현상은 해소되고 한 여름 노랗게 피었던 모감주나무가 어느새 열매들로 가득한 길을 따라 싱그러운 가을기운을 들이키며 막힘없이 서해대교를 넘는다. 오늘부터 서해대교엔“ 시작 지점과 끝 지점에 각각 무인 카메라를 설치, 두 카메라를 지나는 차량의 거리 대비 주행시간을 재서 평균 속도를 산출해내는 방식의 구간 단속제가 실시된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온다.
오늘도 하늘은 온통 먹구름이다.
가을 시작 즈음부터 오늘까지 맑은 하늘과 마주한 날을 아무리 기억해 내려 해도 열손가락을 채우지 못한다.
지난 한주도 썩 좋지 못한 날씨 때문에 애간장을 몹시 태웠었다.
달팽이가 대량 발생하여 방제조치를 해 두었으나 그때부터 좋지 않은 궂은 날씨로 혹시나 달팽이가 배추잎사귀를 다 갉아먹고 줄기만 앙상하게 남은 배추만을 상상하며 악몽에 시달리다 하루하루 조바심에 마음 편치 못했다. 가시질 않는 불안감에 당진읍 농약 상에 들려 친환경제제로 달팽이 구제가 가능하다는 약제를 구입했다. 이른 나락들은 벌써 타작을 마쳤고 온 들판은 누런빛으로 일렁거린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말짱하던 고추가 탄저병에 감염되어 있다.
하얀 꽃들이 만발하고 풋고추들 주렁주렁 달려있어 가슴 한편이 무너져 내린다.
주변 이웃 고추밭들은 벌써 탄저병에 감염되어 올 고추농사을 포기하고 고춧대를 잘라내고 그 자리에 무며 배추 쪽파 등 김장채소들을 심었는데 우리 밭은 병 징후가 하나도 보이질 않아 지켜보시던 이웃 분들이 찬사들 들려주어 은근히 자부심이 상승했었는데......
계속되는 궂은 날씨로 병마를 이겨내지 못하고 감염되어 버린것 같다.
과육이 나이테모양의 갈색반점으로 보기 흉하게 부패되어 가고 흰색 곰팡이가 얇게 끼어있는 병증이 나타난 열매들을 보이는데로 제거했다. 옆지기을 시켜 익은 고추며 풋고추들을 무작위로 수확하라하고 검은콩 밭을 둘러본다.
꼬투리에 알이 들어차기 시작한 검은콩 밭은 갈색 철갑으로 두껍게 치장한 노린재가 여러 마리 발견된다. 이놈들로 인해 벌써 쭉정이로 변해버린 꼬투리들이 몇 개 관찰된다. 이 영악한 놈들은 방제 약을 살포하면 “이웃 밭으로 피신해 있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건너와 피해를 입힌다.”며 방제를 꼼꼼히 하라 이웃 어르신이 일러주신다. 먼저 목초 액에 방제 약을 섞어 밭둑을 위시하여 밭 전체를 빙 둘러 포위망을 형성하며 방제를 실시하며 도망하지 못하게 안쪽으로 몰아넣으며 약제를 뿌려 댔지만 약제를 그대로 맞고도 이리 뛰고 저리 날뛰는 놈들의 저항에 실로 감탄한다. 마치 온몸에 철갑을 두르고 “약을 치려면 쳐봐라”조롱하듯 날뛰는 녀석들이 얄미워진다.
계속된 궂은 날씨로 잎사귀들이 녹아내린 도라지, 더덕 밭엔 잡초들이 꾸며낸 꽃들로 들꽃세상이다. 씨앗이 맺혀 떨어지기 전에 제거하려 바삐 손을 움직인다. 축축해진 땅으로 말미암아 호미도 필요 없이 잡초를 잡고 힘껏 당기니 줄줄이 뿌리째 뽑혀 나온다. 더러 도라지 뿌리도 덩달아 함께 따라 나온다.
이른 봄날 이식했던 당귀는 한여름의 멋진 자태를 끝내고 잎사귀가 갈색으로 하나 둘씩 퇴색되어 간다.
마을 주변 이웃들이 배추밭에 달팽이가 발생하였다고 난리법석이다.
만나는 이마다 달팽이 이야기가 빠지질 않는다.
서식장소를 없애기 위해 콩대를 뽑아냈다는 분, 기생하는 장소를 없애기 위해 멀칭비닐 벗기었다는 분......
지난주 파종했던 쪽파 밭에는 푸른색 새싹들로 한참 보기가 좋아 보인다.
1차 웃거름을 시비한 배추며 무밭은 보기 좋게 훌쩍 커져있다.
무밭은 한구멍에 한 개씩 놓아두고 솎아주기를 마감한다.
달팽이 습격으로 한 주간 노심초사했던 배추밭은 우려했던 것과는 다르게 어느 정도 방제에 성공하여 배추들이 제자릴 완전히 잡은 것 같다.
몇 포기에서 배추벌레들이 발견된다.
배춧잎처럼 푸른색으로 위장하여 찾기도 쉽지 않다. 이제부터 징그러운 이 녀석들과 숨바꼭질이 계속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