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비름 이야기에 얽힌 전설

 

옛날, 아버지를 여의고 나이 많은 어머니와 세 아들이 함께 사는 집이 있었다.

맏아들과 둘째 아들은 장가를 들어 가정을 꾸렸지만 막내 아들은 아직 총각이어서 늘 쓸쓸하게 지냈다.

늙은 어머니는 막내 아들이 혼자 지내는 것이 안쓰러워 민며느리를 들이기로 했다. 그래서 중매장이를 통하여 가난한 집 처녀를 돈을 주고 사서 막내 아들의 민며느리로 삼았다.

그런데 늙은 시어머니와 큰 동서는 이제 열네 살밖에 안 된 어린 며느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 심하게 구박했다.

다 헤어진 옷을 입히고 먹다 남긴 음식을 주었으며 힘들고 어려운 일만 시켰다.

그뿐 아니라 걸핏하면 막내 며느리한테 욕을 하고 때리기까지 했다.

“거지 같은 게 일은 안하고 게으름만 피워.”

“글쎄 말이예요.”

그러나 둘째 동서는 마음씨가 착하여 막내 며느리가 울고 있으면 위로해 주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몰래 남겨 두었다가 주기도 했다.


그런데 그해 여름 이질이 유행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다.

이질은 설사에 피가 섞여 나오는 병으로 불쌍하게도 막내 며느리도 이질에 걸리고 말았다.

막내 며느리가 배가 아프다면서 앓는 것을 본 큰 며느리가 시어머니한테 가서 말했다.

“어머니, 저 거지 같은 애가 이질에 걸렸나 봐요. 그대로 두면 우리한테 옮을지도 모르니 일찌감치 내쫓아 버립시다.”

“돈 주고 사온 며느리인데 내쫓아 버리면 너무 아까우니 좀더 두고 보다가 병이 나으면 또 부려먹지.”


시어머니는 막내 며느리를 밭에 있는 움막으로 보냈다. 막내 며느리는 너무 슬펐다. 남편은 아직 어려서 아무 것도 몰랐고 어디 기댈 곳도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

“이렇게 살면 뭐 하나, 차라리 죽는 게 낫지.” 밭 옆에는 마침 우물이 하나 있었다.

막내 며느리가 우물에 뛰어들어 죽으려고 하는 순간 둘째 며느리가 급히 달려와 말렸다.

“동서, 죽으면 안 돼. 아직 살아야 할 날이 얼마나 많은데 죽으면 어떻게 해. 앞으로 좋은 날이 올지 어떻게 알아.

자, 내가 죽을 쒀 왔으니 이걸 먹고 힘을 내. 그리고 며칠 기다려. 내가 의원한테 가서 약을 지어 올게.”

둘째 며느리의 위로에 막내 며느리는 마음을 고쳐 먹고 밭에 있는 움막에서 살기로 했다.


그러나 약을 지어 오겠다던 둘째 며느리는 여러 날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배가 고프고 지친 막내 며느리는 밭둑에 있는 풀을 뜯어서 삶아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그런데 며칠 동안 풀을 뜯어먹고 나니까 배도 아프지 않고 설사도 멈췄으며 몸이 가뿐해졌다.

“야! 병이 다 나았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지.” 막내 며느리는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집에 오니 어찌된 일인지 대문에 삼베 조각이 걸려 있는 게 아닌가.

조금 있으니까 막내 며느리의 남편이 상복을 입고 나왔다.


“아니 어찌 된 일이예요?”

“어머니와 큰 형수님이 이질로 돌아가셨소. 그리고 둘째 형수님도 이질로 앓아 누워 있소.

그런데 당신이 아직 살아 있다니 어찌 된 거요?”

“밭에 있는 풀을 뜯어먹고 병이 나았어요.”


막내 며느리는 곧 앓고 있는 둘째 며느리한테 갔다.

“네가 아직 살아 있다니. 내가 이 꼴이 되어서 너에게 약을 가져다 주지 못했구나. 정말 미안하다.”

“형님, 저는 밭에 있는 풀을 뜯어먹고 병이 나았으니 제가 그 풀을 뜯어 올게요. 그걸 먹으면 나을지도 몰라요.”

막내 며느리는 들에 나가 그 풀을 뜯어서 끓여 둘째 며느리에게 갖다 주었다.

과연 그 풀을 먹고 나니 둘째 며느리의 병이 나았다.


이질을 낫게 한 그 풀의 잎 모양이 말의 이빨을 닮았다고 해서 사람들은 이름을 마치현(馬齒 )이라 불렀다.

마치현을 우리말로는 쇠비름이라고 부른다.

쇠비름은 길옆이나 발에 흔한 잡초이다. 줄기와 잎이 다육질로 잎은 긴 타원 꼴이고 줄기는 붉다. 한해살이풀로 줄기는 밑동에서 갈라져 땅을 기면서 자라고 꽃은 6월에서 가을까지 노랗게 피며 열매는 꽃이 지고 난 뒤에 까맣게 익는다.

 

약초연구가 전동명님의 쇠비름 소개글에서 일부 발췌했습니다. 이 사이트에서는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약초의 효능, 복용법, 각종 사례들과 약초에 얽힌 전설들이 망라되어 있어 회원님들께 많은 읽을 거리를 제공할 것입니다.

 

아래의 곰보배추 그림을 클릭하시면 더많이 보실 수 있습니다.

 

출처 : 황골농장 이야기
글쓴이 : 주밝 원글보기
메모 :
아름다운 힘을 가진 능소화

박병권
두레 생태기행 연구위원, 식물생리학

 

중국 원산의 덩굴성 목본 식물이다. 중국에서도 강소성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언제 우리 나라에 도입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고 그 형태상의 친숙한 정서가 우리 꽃처럼 느껴지게 한다. 한 줄기 소나기가 지나간 후에 잎과 꽃에 싱그럽게 맺힌 물방울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이지 어느새 사진기를 들이대고 싶은 마음이 먼저다. 감상은 그 다음이랄까? 그만큼 능소화는 한여름 게슴츠레 지친 우리들의 눈을 반짝거리게 하는 아름다운 힘을 간직한 꽃의 하나이다. 능소화

   옛날 우리 나라에서는 이 능소화를 양반집 마당에서만 심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마도 생각컨데 중국쪽으로 왕래하던 귀족출신이나 사신들이 우리 나라로 도입하면서, 자기네 정원이나 울타리에 심었을 것이고 이를 몰래 얻어가거나 씨를 주워 심거나 혹은, 요즘 같기야 하겠으랴만, 삽목을 통해 개체를 확보한 상민의 집에서 이 나무가 발견되면 관가로 잡아가 곤장을 때려 다시는 심지 못하게 벌을 내렸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옛날 이야기 이다. 그런 연유로 이 능소화를 양반꽃이라고 했다하니 좀처럼 믿기 어려운 이야기처럼 들린다.

 

 이 능소화의 수려함에 비해 그리 흔히 볼 수 없는 것으로 보면 설득력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능소화의 생장 특성으로 보아 이것은 상당히 있음직한 이야기이다. 능소화는 비교적 냉해에 약하고 상처를 견디는 힘이 부족하여 손쉽게 말라 죽는 것을 많이 보아 왔다. 실제로 능소화는 광합성 효율을 최대한 이끌어 낼 수 있는 한 여름에야 꽃을 피울 만큼 그 번식을 위한 에너지가 많이 요구되는 식물의 하나이다. 여름내 만들어지는 잎새들은 그 무성함에 비해 녹색이 진하지 않아 질리지 않고 잎 만들기에 열심이던 능소화가 이제 그만 여름나기에 지칠 즈음 시원스레 꽃차례를 뽑아 낸다. 가지 끝에서 자란 꽃대에 열 송이 안팎의 큼직한 꽃송이가 달리면서 꽃자루는 힘에 겨운 듯 축 늘어진다.

 


   그리고 줄기에 비해 잎이 상당히 많기 때문에 여름철에 잘못 상처를 입으면 위조(말라버림)로 죽기 쉽다. 따라서 사람의 출입이 제한되거나 비교적 보호가 잘되는 양반이나 부잣집 근처에서 아무런 간섭 없이 잘 자랄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양반네 집이야 비교적 오랜 시간동안 그 터와 형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평민의 경우는 수시로 집을 부수거나 이사를 가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에 그 서식처 관리가 부실할 것은 뻔한 일이다.

 


   능소화는 한자어로 능가할 능, 또는 업신여길 '능(凌)'자이고 소는 하늘 '소( )'자이고 보면 하늘같은 양반을 능가하고 업신여길 것을 염려해서일까, 지역에 따라서는 능소화 대신 금등화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서양에서는 능소화를 '차이니즈 트럼펫 클리퍼'라고 부르는데 이 꽃을 보고 트럼펫을 떠올리는 것을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보고 느끼는 것은 같은 모양이다.

 


   덩굴 식물들은 일반적으로 덩굴손을 가지고 다른 물체를 휘감아 오르며 자라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 능소화는 몇 갈래의 줄기가 서로 의지하면서 꼬이며 자라 오르다가 줄기의 마디에서 생기는 흡반이라는 뿌리를 주로 다른 나무에, 또는 벽면에 붙여 가며 타고 오른다.
   대부문의 낙엽성 나무는 가을이면 무성한 잎새를 모두 떨구어 초라해 보이게 마련이다. 그러나 능소화는 연한 회갈색 줄기며 세로로 벗겨지는 모양새가 고목처럼 기품 있어 보기에 좋다. 고목 나무에 새순이 돋듯 봄이면 능소화 가지에서 잎이 나기 시작한다. 마주보며 달리는 큰 잎자루 마다에는 다시 손가락 두 마디쯤 되는 작은 잎이 일곱 개 혹은 아홉 개씩 달리는데, 그 가장자리에는 톱니 같은 결각이 나 있고 가장자리에는 이와 함께 보송한 녹색의 털이 만져진다.

 


   꽃은 거꾸로 된 원뿔 모양이다. 이 꽃차례의 작은 꽃자루들은 동서로 남북으로, 다시 동서로 엇갈려 갈라지면서 깔때기 같은 꽃송이를 매단다. 늘어진 자루에 등을 대고 목에 한껏 힘을 주고 부는 나팔처럼 싱싱하게 고개를 쳐들고 능소화가 핀다. 꽃 색은 겉은 연주홍이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나팔처럼 벌어진 부분은 진한 주홍빛이고 긴 통으로 이어지면서 다시 연한 주홍색으로 변하는데, 그 가운데 진홍 및 줄무늬가 세로로 보이며 곳곳에 갈색 반점이 있어 전체적으로 아주 인상적인 꽃이다.
   수술 끝에 달리는 꽃가루에는 갈고리 같은 것이 있으므로 눈에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한다. 간혹 능소화의 꿀이 눈에 들어가면 실명한다는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능소화는 성분상으로 전혀 독이 없는 식물이고 보면 이는 꿀보다는 꿀에 섞인 꽃가루 때문일 것이다. 이 능소화의 학명이 '캄프시스 그랜디플로라(Campsis grandiflora K. Schum.)'인데 여기서 캄프시스라는 속명은 그리스어로 '굽는다'는 뜻으로 수술의 휘어진 모양을 상징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3000여 년 전에 작품을 모은, 동양 최초의 시집인 <시경(詩經)속에 소아(小雅)>에도 능소화를 그린 시가 있습니다.
   바람이 불고 비라도 몹시 내리면 시계추처럼 흔들리는 이 능소화 꽃송이는 너무도 매력적이어서 언제까지고 바라보게 된다. 그러노라면 마치 꽃받침이 내는 연둣빛 종소리와 꽃송이가 부는 주홍빛 나팔 소리를 함께 들을 수 있을 듯싶다. 이렇게 무더위 속에서 피는 능소화는 오래오래 꽃을 볼 수 있고 지는 모습이 추하지 않아 더욱더 좋다.

 


   10월이 되면 능소화도 결실을 하는데 네모난 열매가 둘로 갈라지면서 여문 씨앗이 드러난다. 이때쯤이면 하나 둘 낙엽이 지고 견디기 어려운 겨울나기 준비를 시작한다.
   능소화를 자주 볼 수 없던 이유 중 하나는 추위를 이기는 힘이 약하기 때문인 것 같다. 서울에서는 장소에 따라 잘 자라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따로 월동 준비를 해주어야 겨울을 무사히 나며 내륙보다는 따뜻한 바닷가에서 잘 자란다. 번식은 삽목이 가장 용이한 편이다. 늦은 봄에 1년 생의 가는 가지를 잘라 모래와 부엽토를 1 : 1로 섞어둔 화분(깊이 20cm 정도)에 20cm 정도로 잘라 꽃아 양지바른 곳에 두면 싹이 터서 잘 자란다. 어느 정도 자라면 이식한다. 물론 종자로도 번식이 되며 많은 개체를 원할 때는 이 방법이 유리하다.

 


   간혹 볼 수 있는 정원수로 미국 능소화가 있는데, 동양의 능소화보다 꽃이 조금 더 작고 색은 지나치게 붉으며 늘어지는 것이 없이 꽃이 한 곳에 모여 달린다.
   능소화 꽃은 점잖고 동양적인 기품이 흐른다 하여 충청도 이남의 사찰에 심은 것이 많다.
   정원수로 쓰는 이외에도 한방에서는 꽃을 약용하며, 꽃이 피는 시기에 따서 말려서 이용하는데 어혈과 혈열로 인한 질병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줄기에 달리는 잎을 능소경엽, 뿌리를 능소엽이라 하여 쓰기도 한다.

 


   참고로 몇 년전에 초등학교 꼬마 친구들이 이를 소재로 하여 과학 논문을 쓴 경우도 있다 : 능소화 담쟁이 덩굴의 부착근에 대한 탐구 광주송정초등학교 양윤주 김희나.
   당신은 산다는 것의 기쁨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 기쁨을 연인에게 나누어 주십시오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고, 8월 6일과 12월 13의 탄생화로 여성, 명예를 상징한다.

출처 : 황골농장 이야기
글쓴이 : 주밝 원글보기
메모 :

'화훼재배 > 야생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서리꽃  (0) 2007.02.04
[스크랩] 철없는 수련  (0) 2007.02.04
[스크랩] 몽고의 야생화-흰할미꽃  (0) 2007.02.04
[스크랩] 으름과 칡꽃..  (0) 2007.02.04
[스크랩] 춤추는 아가씨 (바위취)  (0) 2007.02.04

1. 파종시기

 

일년 일작 :

 백태는

예전 수원기준 5월 30일경-6월 초였으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6월초가  좋다고 봅니다.

 

흑태는

 굵은것(일명 서리태)는 6월10일 전 후, 조금 작은 것(속청)은 6월초-중순  정도가 좋다고 봅니다. 서리태가 서리가 올 정도로 늦게까지 낙엽이 지지않고 잘 여물지 않을 뿐더러 수량이 많이 나지 않는 것은 노린재 때문인데, 그에 대한 사고나 대책없이 늦게까지 여물지 않기 때문에 일찍, 심지어 5월초-중순에 심어야 한다는 것은 자칫 적심 등의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을 경우 과번무와 도복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자식을 충분히 낳지 못해  서리가 올때까지 잎을 떨구지 못하고 잎에 영양을 간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백태도 마찬가지입니다.

 

쥐눈이콩은

백태에 기준하면 되리라고 봅니다.

 

일년 2기작

전작: 배추,감자,담배 등. 후작 콩

 

시기는 배추, 감자 경우 수확 직 후 대략 6월말-7월초

종자는 백태, 쥐눈이콩, 속청 가능합니다. 서리태는 저온처리시 일부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전년도 배추-속청으로 작부체계를 하였는데 속청 4kg을 약 300평 조금 못되는 면적에  배추 수확 후 6월 30일 파종으로 250kg 수확하였습니다.

 

파종량

일반적으로 일기작시에는 쥐눈이콩이나, 오리알태같은 작은종자는 100평당 약 1kg, 백태나 흑태등 굵은 것은 약 1,5kg정도가 좋다고 봅니다.

                

배추나 감자, 담배 후작시에는 약 20-30%정도  더 필요하겠지만 지나치게 많은 것은 금물입니다. 후작시에도 5-6알을 넣을 경우에 그중에 반드시 1-2개주는 실처럼 올라와서 통풍에 방해만 되고 1주에 콩 10알도 달리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앞 답글에서 담배 후작에 지나치게 많은 양이 들어가는 것은 담배재배의 특성상 콩이 곁가지를 많이 칠 수 없기 때문인데, 그 경우에도 파종량을 조금 줄이면 수량이 더 늘어날 것입니다. 토양이 지나치게 척박할 경우에는 조금 변화를 주어야 할 것입니다.

 

재식거리

토양관리가 정상적으로 될 경우 일기작시에 콩의 뿌리가 깊이 90cm, 좌우로 지름 70cm정도까지 뻗습니다. 현실적으로는 대부분의 밭이 경반층이 심해져서 이정도 뿌리생육은 불가능할 것입니다만 재식거리를 지나치게 좁게 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60*15이나  60*20의 재식거리는 자칫 자살행위가 될 것입니다. 밀식다비의 잔재라고 볼 수 있는데요. 현재 진흥청 시험장보다 수량을 많이 내기 위해서는 밀식은 탈피해야 할 것입니다 (진흥청 수량 약 260kg내외/300평).  저온저장을 해서 후작으로 파종하는 경우에는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입니다만 저는 60*30이나 65*25를 권합니다.  동리 한 가운데 100여평 뜰에 우람하게 서 있는 한 그루 아름다운 당산나무처럼 최소한의 충분한 자기공간을 가져야 제 수량을 뽑을 수 있습니다. 

 

이외 저온저장, 미생물 접종, 노린재 방제, 적심, 엽면시비 등의 몇가지 점을 보완하면 평당 1kg 수확은 그리 어렵지 않다고 봅니다. 조금 더 욕심을 낸다면 평당 1.3-1.5kg은 달성해야 할 것입니다.

 

이상 내용은 결코 일반적인 것은 아니고 제가 하는 방식입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영월 사하원 합장.

출처 : 황골농장 이야기
글쓴이 : 주밝 원글보기
메모 :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