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결이 바꿨습니다.
여름 내내 괴롭혔던 칙칙하고 끈적끈적한 공기가 아닌
습기가 가신 뽀송뽀송한 바람입니다.
피부에 와 감기는 느낌도 상쾌합니다.
8월의 마지막 주말 다락골엔
가을이 통째로 밀려들었습니다.
옥잠화 꽃이 스러지고 울금과 야콘이 소담스레 꽃을 피우며 바통을 이어받고 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원두막에 갇혀 궁싯거립니다.
아름다운 사연과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벗 삼아 일상의 거품을 걷어내려 해도
쉽게 착잡한 기운이 가시질 않습니다.
새벽부터 일기가 고르지 못하더니  비가 반나절이 다가도록 그칠 줄을 모릅니다.
차라리 세차게 퍼 부었으면
계획했던 일들을 포기하고 일찍 짐이라도 꾸릴 텐데, 가는 비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몇 시간째 하늘만 멍하니 쳐다보고 있습니다.

 


"비가 와서 밭고랑에 들어가지 못 할 텐데.......
이거나 들고 가서 껍질 벗겨 말려봐유!"

 

 

비가 그치면 쪽파를 이식할 요량으로
종구를 손질하다 말고 동네소식도 들을 겸 건너간 이웃집에서
벗기다 남은 것이라며 토란대를 한 움큼 들려줍니다.
가지런히 썰어서 일부는 끓는 물에 살짝 데쳐내서 껍질을 제거하고, 일부는 그대로 껍질을 벗겨냅니다.
미끈하고 끈적끈적한 액체가 줄기에서 묻어나옵니다.
길이방향으로 두툼하게 조각을 내
임시로 만든 엉성한 건조장에 서로 겹치지 않게 펼칩니다.

 


밉살스런 벌레들로부터 지키기 위해
한랭사를 씌워둔 배추밭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이식을 마친 300여포기중 서너 포기는 낯선 환경에 적응을 못해 말라죽고
나머진 얼추 자리를 잡았습니다.
밭에 옮겨 심은 후 뙤약볕에 축 늘어진 배추잎사귀만 눈앞에 아른거려
생사에 대한 걱정과 그리움이 지난 한주동안 마음을 괴롭혔습니다.
잘 키워야한다는 강박증에 내몰리듯 시달렸습니다.
땅냄새를 맡고 잎사귀가 주먹만 해진 배추들이 나무랄 데 없이 예쁩니다.
코끝이 싸해지는 정체를 알 수없는 시원함이 온몸에 퍼집니다.

 

 

 

2주전에 씨를 뿌렸던 배무채(무+배추)와 무의 새싹은
지금까진 비슷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배무채싹이 무싹보다 잎사귀의 길이는 더 짧아 보이고 폭은 넓은 모습입니다.
조심스레 한랭사를 벗겨내고 금세 훌쩍 커버린
잡초들의 머리채를 잡고 사정없이 끌어내 제거하고 무밭엔 한 포기씩만 남기고
솎아내기를 마쳤습니다.
호미로 흙을 북북 긁어 북주기를 해야 하는데
내린 비 탓에 호미에 흙이 달라붙어 일이 더딥니다.

 

 

새벽부터 내리던 비가 저녁나절 새참시간이 다가왔는데도 갤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부슬부슬 내리는 가을비가
부글부글 속을 끓게 합니다.
자신만의 휴식을 누리겠다며 다락골 오는 길을 마다해버린
옆지기가 야속하기도 합니다.
비가 내리는 중에 고추밭에 쪼그리고 앉아 고추를 따는 색다른 경험을 추가합니다.
쉼 없이 내리는 비와
잎사귀가 머금은 빗물까지
한껏 뒤집어썼습니다.
붉게 물든 홍고추만을 대상으로
조금이라도 푸른 기가 있을까 이리저리 돌려 살펴보고
손으로 매만져 부드럽게 숨이 죽은 고추들만 골라 바구니를 채웁니다.

 

 

 

차라리 보지 않았으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던 일이였습니다.
올 고추농사 중 가장 많은 고추를 거둬들였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움보다 쓸쓸함이
기쁨보다는 아쉬움이 많았던 하루였습니다.
배추밭에 물주기 수고는 덜었습니다만 밭뙈기를 가득 채운 작물들은
아직도 강한 햇볕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얄궂기만 한 가을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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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기에 접어든 더위는 마지막 정열를 불사르고
하늘빛은 가을색이 듬뿍 묻어납니다.
이른 봄 수선화에서
늦가을 들국화까지
계절의 전령사를 자임하는 꽃들로 채워진
쉼터 앞뜨락엔 옥잠화가 함초롬히 피었습니다.
순백의 꽃잎 자태가 도드라집니다.

 


헝클어지진 않을까?
상처 나진 않을까?
승용차 뒷자리를 차지한 배추모종들이 행여 멀미라도 할까봐
인천에서 당진까지 100km 길을
가속페달도  마음대로 밟지 못하고
조심조심 다락골로 차를 몰았습니다.
3주 동안 아파트베란다에서 키운 배추모종들이 풋풋합니다.

 


농장을 일군 후부터 해마다 처서 무렵에 김장배추모종을 이식해오고 있습니다.
1주일 전에 심은 무와 배무채는 보기 좋게 싹이 움텄습니다.
딸만 다섯 형제인 처가식구들이 해마다 다락골에 모여
김장김치를 담가 오고 있기에 올해도 배추를 넉넉하게 키웁니다.
300포기를 심을 계획으로 밭은 2주전에 꾸며놓았습니다.
부족한 터 때문에
한 두둑에 세줄 심기를 했습니다.

 


세심하고 조심성이 많은 일은 옆지기 차지입니다.
햇볕이 덜한 이른 아침시간에 서둘러 이식을 마치고
생육초기 들끓는 벌레들로부터
모종들을 지켜내기 위해 모기장처럼 생긴 한랭사 이용 보호막도 씌웠습니다.

 

 

지난밤엔
동네주민들을 따라
물이 빠져나간 해변으로 고기잡이 갔습니다.
등불을 비춰 밤 마실 나온 낙지며 소라, 꽃게를 잡는 것이었습니다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불가사리만 실컷 구경했습니다.
모처럼 동네사람들과 마음을 나눴습니다.
강한 햇볕에 심어놓은 모종들이 지친기색이 역력합니다.
기대 반 걱정 반
새끼를 유학 보낸 애비 심정입니다.
몸살 끼를 이겨내고
낯선 환경을 잘 극복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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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물더위의 기세가 요란합니다.
끝장을 보려는 듯 열기가 뜨겁습니다.
광복절 연휴 아침
무더위를 피해 산과 바다를 찾는 차량 행렬 속에 갇혀
예정보다 훨씬 늦게 도착한 다락골엔
두릅나무에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높아진 하늘밑으로
고추잠자리 때가 유영하는 모습은 영락없이 가을입니다.

 

 


고추를 말리는 비닐하우스건조장 지붕 위로
검은 차광막이 한 겹 덧씌워졌습니다.
강한 햇볕으로 인한 고온으로
붉은 물고추가 쪄지는 것을 방지하기위해서입니다.
땅에서 솟구치는 복사열기와 하늘에서 내리쬐는 따가운 햇볕이
뒤엉켜 고추밭 안은 금세 숨이 막힙니다.
비둘기, 꿩 등 날짐승의 약탈로 만신창이가 되다시피 했던 고추밭은
매달아 놓은 은빛독수리모형 때문인지, 더 이상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지난주엔 탄저병까지 발병하여 바람 앞에 놓인 촛불처럼 고추밭이 불안했었는데
다행히 좋은 날씨와 방제약제 덕에 위기를 넘기고 이젠 퇴치를 확신해도
될 것 같습니다.
무덥다고 팽개치기만 했던 햇볕이 고맙기만 합니다.
두물고추를 수확했습니다.
수확량이 첫물고추에 비해 배가 늘었습니다.
땀방울과 맞바꾼 결실입니다.
숨은 가빠오고 땀은 비 오듯 해도
거두어드리는 기쁨을 훼방 놓진 못합니다.
더위가 절정에 이른 세시 무렵
식초를 풀은 물에 고추를 깨끗이 세척한 후
널기 위해 건조장에 들어서니 "덮다"고 아우성쳤던 고추 딸 때 맛보았던 더위는
예고편에도 미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불가마 안처럼 뜨거웠습니다.
10여분도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온 하우스 바깥의
30도가 넘는 불볕더위가 오히려 상쾌하게 느껴집니다.

 

 
고추를 건조장에 펼치는 일은 해가 진 저녁으로 미뤘습니다.
쉼터 원두막에 홀로 앉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낯익은 트롯가사를 읊조리며
달콤한 휴식을 즐깁니다.
더위 때문인지  마을 들판에서 일하는 농부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농장 아래쪽 은행나무 가지가 축 쳐졌습니다.
통통하게 차오른 알의 무게를 지탱해내는 것이 힘겹게만 보입니다.
밭뙈기 한쪽에 만든 박 터널이 주저앉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띱니다.
반나절을 고생해서 만들고 박, 수세미, 여주를 심었던 곳입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멀쩡했었는데,
단박에 내달려 잎사귀를 헤치고 터널 안을 살펴보니
큼지막한 박과 수세미가 터널 안에 들어차 그 무개를 견디지 못하고 지지대가 주저앉고
있습니다.
급한 마음에 손을 뻗쳐 따낸 박이 열개도 훨씬 넘습니다.
아직 껍질이 단단하게 여물지 못한 박들입니다.
따낸 것 중 반쯤은 이웃들과 나눔하고
나머지는 겉껍질을 벗겨낸 후 속을 도려내 얇게 썰어 건조장 한쪽에 서로 겹치기 않게
일일이 널어 말립니다.
아무래도 남정네가 하는 솜씨라 모양이 어설픕니다.
일상이라는 족쇄에 갇혀 함께 오지 못한 옆지기의 빈자리가 크게만 느껴집니다.

 


지난밤에 유난히 가까이서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가을은 이미 곁에 와 있었습니다.
지난주에 미리 밭을 꾸며놓았던 곳에 무씨를 파종합니다.
씨를 뿌릴 땐 항상 설레고 기대에 충만 됩니다.
또 마음이 차분해지고 조심스러워집니다.
한 톨의 씨앗이라도 제자리에 놓이게끔 전력을 다 합니다.
아직 재배경험이 없는 배무채씨앗도  파종합니다.
잘 썩은 퇴비를 듬뿍 넣고 석회와 붕사가 섞인 복합비료는 살짝만 뿌렸습니다.
사방10cm간격을 유지하며 한 구멍에 1-2알씩 빈틈없이 심고 물도 흠뻑 뿌려줍니다.
벼룩잎벌레 등 나쁜 벌레들로부터 지키기 위해
강선을 꽂고 모기장처럼 생긴 한랭사를 씌웠습니다.

 


아무리 좋은 약도 쓰임새가 다르면 독이 될 수 있습니다.
무더위를 핑계로 정오 무렵 다락골을 빠져나왔습니다.
따가운 햇볕이 싫지만은 않습니다.
강한 햇볕에 알차게 여물어가는 곡식들이 경이롭습니다.
오늘보다 더 가슴 뛰는 내일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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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가 농익은 여름입니다.
자연이 내린 축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봄, 여름, 가을, 겨울
하늘빛과 내리쬐는 햇살
불어오는 바람과 공기의 냄새마저도 제각각 다르다는 것을
알게 해준 다락골로
자연과 함께하는 법을 터득하기위해
여러 유혹들을 떨쳐내고 진정한 휴식을 즐기려왔습니다.
큰맘 먹고 떠나는 휴가인데
다락골에서 일하는 것이 무슨 휴가냐는
가족들의 볼멘소리가 오는 길 내내 이여 졌습니다.
무더위는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는데
계절은 어김없이 가을의 문턱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야! 해 떴다!"
휴가 첫날부터 몇 차례의 비가 들고 지나가고
밭뙈기엔 발붙일 틈을 주지 않습니다.
쉼터 원두막에 앉아
생동하는 모습들에 찬사들 곁들이며
삶은 찰옥수수로 연신 하모니카를 불어대던 옆지기가 속내를 들켜버립니다.
비 덕분에 오랜만에 실컷 쉴 수 있어 휴가다운 휴가를 왔다며
일 못해 풀 죽은 서방을 슬슬 약 올리던 옆지기입니다.
아직 끝이 보이질 않는 장마영향으로
휴가 기간 동안 궂은 날씨만 계속돼 푹 쉬는가 싶었더니
휴가 이튿날 정오 무렵부터 오락가락하던 비가 수굿해지고 이내 산자락에
피어오르는 뭉게구름 뒤로
파란하늘이 들어나 밭뙈기에 따가운 햇볕이 내리쬡니다.
주말에만 겨우 들려
급한 일만 해치우고 떠나와야 했기에 늘 시간부족만 탓했습니다.
날 잡아 일을 몰아서 할 수 있는 휴가날짜만 기다려왔는데
궂은 날씨로 하루 반을 허비했으니 괜히 마음만 바빠집니다.
그렇다고 질퍽거리는 흙 때문에 밭뙈기엔 발을 들어놓을 여건도 못 됩니다.
유난히 길게만 느껴지는 장마 탓에 울창한 밀림으로 변해버린
밭뙈기 일부를 되찾기 위해 연장을 챙깁니다.
제초제 사용을 절대 금하며 자칭 "어설픈 자연주의자"행세를 하며
폼만 잡은 결과 늘 성가시게 심신을 괴롭혔던 잡초들과의 승부도
거의 종착역에 다다른 느낌입니다.
왜냐하면 계절이 바뀌고 수은주가 꺾이면
잡초들의 기세도 덩달아 수그러질 거라는 기대 때문입니다.
의욕만 앞서서인지, 후텁지근한 날씨 때문인지
호미질 몇 번 못했는데
등줄기엔 땀이 흥건하고 쉽게 지쳐버립니다.

 

 

 

 

고추밭에 들어선 옆지기의 얼굴이 밝지 못합니다.
수확의 기쁨보다는 밭고랑에 널린 고추들을 보며 속상해합니다.
고추가 붉게 익어갈 쯤부터
발생했던 비둘기, 꿩 등 날짐승들의 약탈은 줄기는커녕
더 심해졌고 고추밭 한편에서는 탄저병이 의심되는 징후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지난 3주 동안 예방을 겸한 약제 살포를 등한시했던 것이 화를 자초한 것 같습니다.
가지마다 주렁주렁 풋고추로 들어찼는데
소리 없이 찾아온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는지?

 

 


벌써 마을 서너 집에선 고추농사를 포기하고
뽑아버린 고춧대가 장대에 줄줄이 매달렸습니다.
힘들고 팍팍한 농심을 대변하는 것만 같아 마음이 무겁습니다.

 

"올 고추농사는 망쳤시유!
살다살다 이런 장마는 처음이란께유!"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에 핏기 없는 모습으로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배시시 웃고 있는 이웃어른의 모습이
평생 잊힐 것 같지 않은
머릿속 사진첩에 선명하게 인화됩니다.

 

 

 

 

"날도 더운데 왜 비닐을 벗겨낸데유?
그냥 강냉이 심었던 골망에 배추를 심어두 괜찮아유!"

 

3년 전에는 옥수숫대를 배낸 곳에 김장배추를 심었습니다.
잘라낸 옥수숫대를 발고랑에 깔면
옥수숫대가 썩으며 배추에게 양분을 더해 줄 거라는 어설픈 생각에
옥수숫대를 고랑에 깔고 옥수수를 심었던 두둑을 그대로 이용하여
배추를 심었습니다.
새롭게 이랑을 만들지 않아 일은 수월했습니다.
그러나 그 해 초가을 일기는 고르지 못했습니다.
모종이식 후 2-3주 동안 툭하면 비가 내렸습니다.
이식한 모종에 물주기 걱정은 덜었지만
비가 내리고 구름 낀 날씨가 계속되면서
습한 땅에서 발생하는 작고 검은 민달팽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습니다.
배추한포기에 많게는 7-8마리가 달라붙어 닥치는 대로 배추잎사귀를 갈아먹었습니다.
햇볕이 내리쬐는 대낮에는 밭고랑에 깔린 옥수숫대 속으로 몸을 숨겼다
아침저녁으로 배춧잎을 갈아먹는 달팽이의 공격은
배추속이 꽉 찰 때까지도 계속되었습니다.
되새기고 싶지 않은 끔찍한 악몽입니다.
날이 바뀌자 금세 땅이 뽀송뽀송해졌습니다.
퇴비에서 발생하는 가스를 미리 제거하기위해 모종이식 2주전에 미리
밭을 준비합니다.
옥수수그루터기를 들춰낸 후 비닐을 벗겨내고
석회비료와 붕사, 퇴비, 토양살충제를 뿌리고
새롭게 이랑을 만들었습니다.
수분을 가둬기위해 검정비닐도 씌웠습니다.

 


일과 휴식의 경계가 무너졌습니다.
가치 있는 일에는 수고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거창한 바캉스휴가는 못 되었어도
자연과 사람이 어울려
빗어내는 삶의 묘미를 만끽했습니다.
땀 냄새가 뒤섞여 삶의 기운을 북돋는 놀라운 힘이 넘쳐나는 모습을 보니
내심 뿌듯한 마음이 듭니다.
하나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그 일이 크던 작던 결코 쉬운 일은 없었습니다.


 

 

 

 

야콘 잎사귀가 축 쳐졌습니다.
살갗이 시뻘겋게 달아올랐습니다.
뜨거운 태양 열기에 숨이 막힐 지경입니다.
여름답습니다.
지난 장맛비와 강풍으로 심한 몸살을 앓았던 농장은
차츰 안정을 되찾아가고있습니다.
생채기도 많이 아물었습니다.

 

 

 


보라색 참당귀꽃이 살짝 꽃망울을 터뜨려 유혹한다 싶더니
사두오이가 시선을 가로챕니다.
쑥쑥 크는 모습이 정말 뱀처럼 생겼습니다.
껍질도 단단하지 않습니다.
맛은 분명 오이 맛인데 떨떠름한 맛이 강합니다.
징그럽게 생겼다며 만져보는 것조차 꺼리던 옆지기가
맛과 쓰임새를 물어오면 관심을 보입니다.


 

 

 

 

 

 

솔찮게 커버린 잡초들이 얄미워 무의식적으로 손이 갑니다.
팔뚝보다 더 굵은 옥수숫대를 잘라내는 일은 사내들도 힘겨워하는 일입니다.
이른 아침부터
반소매차림으로 낫을 들고 옥수숫대를 잘라낸다고 설쳐대는
옆지기 때문에 풀매는 일은 뒷전이고 지켜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얼마나 버텨낼까?"
낫질도 서투른 주제에 다치기라도 하면…….
일을 시키는 재미보다는 불안감이 훨씬 더합니다.
옥수숫대에서
옥수수통을 따낸 후 밑동을 잘라내던 옆지기는
반 고랑도 채 배어내지 못하고 낫자루를 내던지고 슬그머니 꽁무니를 뺍니다.
옥수숫잎에 할퀸 팔을 내보이며 쓰리고 아프다며 툴툴대는 꼴이 귀엽게만 느껴집니다.
수확을 불과 1주일 앞두고
쓰러져 애간장을 끓게 했던
찰옥수수를 수확합니다.
다행히 모진 시련 속에서도 옥수수통이 실하게 여물었습니다.
횡제라도 한 것처럼 들뜬 표정입니다만
정작 옥수수를 키워 낸 것은 옥수숫대인데
마치 사람이 주인인양
이것저것 간섭하고 희생만을 강요하진 않았는지 곰곰이 곱씹어 봅니다.

 

 


강한햇볕으로 고추대가 축 쳐진 틈에
수확과 관리 작업을 편하게 하기 위해 4번째 유인줄을 띄웁니다.
기운이 충만 된 아침, 저녁시간엔 가지가 부러지기 쉬운 위험 때문에
뜨거움이 최고조를 달한 대낮에 일을 치룹니다.
고추말뚝 맨 끝에 조금은 느슨하게 가지를 붙들어 매
햇볕과 바람이 잘 통하게 유인합니다만 빨갛게 잘 익은 홍고추만 골라 갈아먹은
흔적들이 심심찮게 발견돼 불안감이 가중됩니다.
잘 익은 홍고추 수확은 옆지기에게 맡기고
옥수숫대가 빠져나간 자리를 정리하여
들깨모종을 이식합니다.
다락골 이웃들도 들깨모종을 이식하느라 분주합니다.
남겨둔 밭뙈기는 물론
논두렁, 밭두렁에도 들깨모종으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비둘기, 고라니 등 산짐승들의 피해가 심해
예전에 콩을 심었던 곳도 점차 들깨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4-5개씩 한 무리를 지여
뿌리가 아닌 줄기 끝 생장점을 기준으로 키 높이를 맞춰
비스듬히 뿌리와 줄기의 절반 정도를 땅에 묻고 나머지줄기를 똑바로 일으켜 세웁니다.
베게 심으면 키만 크고 알은 실하게 여물지 못해 넉넉하게 간격을 넓혀 심고 줄기와 잎이
마르지 않게 물주기도 합니다.

 

 


어차피 겪어야 할 여름입니다.
내가 웃으니 그들이 따라 웃었고
그들이 아프니 나도 아팠습니다.
노란색안경을 끼고 하늘을 보니 온통 하늘은 노랗게만 보였고
푸른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니 푸르게만 보였습니다.
생동하는 모습을 보니 뿌듯한 마음뿐입니다.
거창하게 내걸지 않고
단순하게 생각하며 희망을 일굽니다.

 

 

 

 

후텁지근하던
하루일과가 막을 내리고
어둠의 커튼이 시나브로 펼쳐질 즈음
다른 삶을 공유하고 푼 지인들과 어울려 다락골에 왔습니다.
한적하기만 하던 시골마을에
모처럼 사람소리가 울립니다.
농익은 방울토마토를
씻지도 않고 냉큼 입 안 가득 던져 넣으며
훌쩍 커버린 모습에 탄성을 연발합니다.

감자수확의 기쁨을 지인들과 나눕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서로 시간을  맞추려 수확시기가 많이 늦춰졌습니다.
땀의 소중함과 자연이 베푼 혜택을 겸허히 배우는 일입니다.
줄기를 따라 줄줄이 따라 나오는
감자들을 보고 마냥 신기해하며 힘들어 할 줄 모릅니다.
자주색, 보라색, 흰색
색깔만 다를 뿐 모양이 엇비슷한 여러 가지 감자를 매만지며
휘둥글 해진 눈으로 모두가  신이 났습니다.
맨땅에 주저앉아 막걸리에 부추전, 그리고 바로 딴 풋고추로 새참을 즐깁니다.
풋고추를 깨무는 맛은 어느 산해진미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습니다.

 

 

 

감자를 캐낸 밭을 일구어 검은콩(귀족서리태)모종을 이식합니다.
장마철 고온 탓에 2주 동안 키운 모종들이 많이 웃자랐습니다.
옮겨 심은 후 재대로 뿌리를 내리고 잘 자라줄지 걱정입니다.
가끔 경험하는 주말농사의 한계입니다.
연결트레이에서 조심조심 모종들을 꺼내
정성을 다해 옮겨 심고  쓰러지지 않도록 흙을 수북이 쌓아올립니다.
손이 많이 가는 농사일이기에
여러 손을 합치니 일이 가볍습니다.
혼자서는 종일해야 할 일이 수월하게 끝났습니다.
비록 모종은 많이 웃자랐지만 태양보다도 뜨거운 성원과 격려하는 마음들이 전해져
뿌리를 든든히 내리고 잘 커 가리라 믿고 싶습니다.

 

 

입안은 모래사막처럼 바싹바싹 마르고 타들어갑니다.
밤새 퍼 마신 술이 아직도 뱃속에서 출렁되는 느낌입니다.
지난밤엔
모깃불을 피워놓고 둘러앉아
머리위로 쏟아 내리는 별빛, 얼굴을 스치는 바람, 귓전에 울리는 풀벌레의 울음소리를
즐기며 지나온 삶의 추억과 살아갈 내일을 이야기했습니다.
정감 넘치는 대화들이 수도 없이 오고 갔습니다.

 


새벽안개가 짙게 깔렸습니다.
안개에 가린 능소화가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귀한 모습입니다.
꽃가루가 내려앉은 찰옥수수 밭엔 빨간 수염이 달린 옥수수통이 매달렸습니다.
마디마다 곁이삭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튼실한 옥수수 생각에 
줄기에서 제일 실한 옥수수통을 1-2개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제거했습니다.
잘려나간 곁이삭들이 땅바닥에 내팽개쳐집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생각지도 않고
강물이 흘러가는 대로만 휩쓸려 
인간의 이기심만 내세우며 자연의 현상을 또 간섭하려들었습니다.

 

 

 

 

 

 

 


나방을 유인해서 방제할 목적으로
매달았던 페트병에 막걸리를 보충하다 가슴 뜨끔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지금까지 고추밭엔 가뭄으로
칼슘부족현상만 약하게 나타났을 뿐 병충해의 발생흔적은 보이지 않았는데
고추나무 한 그루가 시들시들 말라죽고 있습니다.
지난해 야콘을 심은 밭에 고추를 심어 연작(이어짓기)으로 인한 병해는 걱정하지
않았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토마토를 심었던 곳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지난해 봄이 끝날 무렵 한 곳에서 나란히 야콘모종이 3개가 말라죽었습니다.
가뭄으로 말라죽었을 거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죽은 모종을 뽑아내고 그 자리에
토마토 모종을 이식했습니다.
그런데 토마토 모종도 잘 자라다가 어느 순간부터 시들거리더니 말라죽고 말았습니다.
방심했던 곳에서 문제가 터졌습니다.
병든 포기를 뽑아 줄기 밑동을 잘라 맑은 물이 담긴 유리컵 속에 담가보았더니
하얀 진액이 묻어나옵니다.
약으로 고칠 수 없다는 풋마름병인 것 같습니다.
병든 포기가 자랐던 자리의 흙을 걷어내서 멀리 내다 버렸습니다.
목초 액을 진하게 물에 타 그 자리를 소독하고
동내 고추밭이 궁금해 둘러보았습니다.
7월의 고추밭은
길고 강해진 햇빛과 농부들의 정성이 더해져 눈부시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키가 1m20cm는 이상 자랐고 주렁주렁 매달린 풋고추들 사이엔
붉은색의 고추들도 더러 발견됩니다만 살펴본 4곳의 고추밭 모두에서 시들어 말라가는
고춧대가 어김없이 발견됩니다.
아직은 크게 번지지는 않았으나
고추밭 한 곳은 10그루가 넘게 말라죽고 있어 심각한 피해가 우려됩니다.

 


일행들 틈에 끼여 공주 마곡사에 갔습니다.
다락골 문턱을 넘나들며 주말농사를 일구기 전까지만 해도
주말마다 산을 찾고 고기를 낚는 재미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사람은 다 가질 수는 없는 동물인가 봅니다.
튼튼한 줄기를 키우기 위해 수많은 곁가지를 잘라내듯
하나를 얻기 위해선 다른 모든 대상들을 버려야하는 것이 순리인 것 같습니다.
결과의 크고 작음은 아직은 잘 모릅니다.
다만 다른 일에 앞서 이 일을 치중하는 이유는
활기와 생기를 마음껏 가져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백합향기가 짙게 묻어나는 다락골입니다.
떨어져 수북이 쌓인 밤꽃송이들이 마치 멍석을 깔아 놓은 듯 땅바닥에 나뒹굴고 있습니다.
만사를 제쳐두고 멍석위에 드러누워 토막잠이라도 즐기고 싶습니다. 

 

 

 

 

들풀에게 자리를 내준 땅을 되찾기 위해
작정하고 나선 날입니다.
두둑에 비닐을 씌우고 밭고랑에 부직포를 깔아 풀 뽑는 일은 많이 줄었지만
밭둑 주변과 봄철에 씨앗을 뿌려 싹이 돋아난 도라지와 수리취 밭이 말썽입니다.
장맛비가 계속되고
고온다습한 생육환경이 조성되면 잡초들은 혈기왕성한 모습으로 온 밭뙈기에 빈틈없이
들어 찰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벌써 도라지 어린새싹은 바랭이에 치여
숨도 재대로 내쉬지 못하고 녹아내리고 있습니다.
지느냐, 이기느냐.
포기를 하느냐, 마느냐.
선택해야할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산자락을 따라 길게  산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밭뙈기가 어둠에 묻히고 나서야 호밋자루를 내팽개치고 쉼터로 기어듭니다.

 

 

더디게 싹이 올라오던 울금밭엔
마지막 남은 빈자리에 싹이 움텄습니다.
가뭄으로 힘들어하던 야콘들도 기운을 차렸습니다.
순백색의 "사두오이꽃"에 카메라 앵글을 맞춥니다.
이른 새벽 해맑은 모습들만 카메라에 옮겨 담고
끝장을 보려는 듯 오기에 가득 찬 모습으로
호밋자루를 챙겨들고 쪼그리고 앉은 지 꽤 여러 시간이 지났습니다.
유월답지 않게 "덮다"는 소리가 목구멍을 타고 연거푸 세어 나옵니다.
땀으로 밴 옷가지에선 쉰 냄새만 베어납니다.
깔끔 떠는 옆지기에게 이런 모습을 감출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되니 입가엔 가벼운 미소가 스칩니다.
어린 새싹 속에서 진을 친 들풀들만 골라 뽑아내는 일은 고도의 집중력과 끈기가 요구되는 작업입니다.
어린생명이 다치지는 않을까?
호미질도 재대로 할 수 없고
장갑도 끼지 않은 손으로 조심조심 잡초들만 뽑아내다보니
손톱 끝은 새까맣게 물이 들고 아프기도 합니다.
자칫 잘못해서 잡초사이에 끼여
따라 뽑히는 어린 싹이 발견될 때면 제살이 찢기는 아픔도 감내합니다.
이것이 무슨 할 짓이라고.......
호밋자루를 집어던지고 시원한 그늘 밑에서 놀고픈 충동질을 참아내기도 쉽지만은 않습니다.
 

 

 

" 아저씨, 혼자 오셨구먼유?
얼른 우리 집에 건너가서 점심이나 같이 먹어유!"

 

"집사람이 일이 있어 저 혼자 내려왔습니다.
아침에 해 놓은 밥이 그대로 있습니다.
말씀만으로도 고맙습니다.
그런데 어디 편찮으세요?"

 

이웃집할머니가 건너오셨습니다.
까맣게 그을린 얼굴에 무척 수척해보입니다.
벌써 점심 무렵인가 봅니다.
잡초들을 들춰내는 데에 정신이 팔려 시간이 지나는 것도 잊어버렸습니다.
 

" 아저씨, 나 어저께 병원에 갔다 왔시유.
무릎팍에 물이 차서 주사기로 물을 뺏구먼유......"

하시며 붕대를 칭칭 감은 오른쪽 무릎을 보여줍니다.
고향에 계시는 어머님이 아파하시는 모습과 똑 같습니다.
자식새끼 잘 되기만을 염원하며
한 여름 뙤약볕 아래서
허구한 날
쪼그리고 앉아 풀을 뽑던 어머니들의 뼛속 깊이 파고 든 골병의 상처입니다.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겪는
아픔을 애써 감추고 밝은 모습만 보여주려 애쓰시는 모습이 떠올라
괜히 짜증이 나고 화가 납니다.

 

  

 

가뭄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밭뙈기 아래쪽에 있는 샘물이 바닥을 보입니다.
큰 가뭄에도 좀처럼 마르지 않아 예전에는 동내 공동우물로 이용되었던 샘입니다.
물이 줄어든 틈을 이용 샘물이 흘러가는 물길을 정비하여
소담한 미나리 밭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씨앗만 뿌려놓는다고 해서 곡식이 여무는 것은 아닙니다.
양쪽어깨위에 무거운 돌덩이를 올려놓은 것 같습니다.
쪼그리고 앉아 일한 탓에
승용차 가속페달에도 힘이 실리지 않습니다.
몸은 고달프고 힘이 들어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살아오고 있기에
마음만은 가볍고 후련합니다.
늦은 밤 인천으로 가는 고속도로 위로 여우비가 내립니다.

 

 

카메라를 하나 더 구입했습니다.

 

거금(?)을 들여 구입한 새로운 장비를 시험 삼아 고향 가는 길에 들고 갔습니다.
커진 등치만큼 기동성에선 많이 떨어지는 느낌입니다.
흙먼지가 폴폴 나는 농장의 표정을 재대로 담아낼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듭니다.


1. 안개 속에 묻힌 “진도대교”의 모습입니다.

 

 


2. 원추리 꽃이 함초롬히 피었습니다..

 


3. 장맛비가 잠시 쉬는 시간에 낙조풍경으로 이름난 “세방낙조”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짙게 깔린 안개 때문에 낙조의 풍경은 담아 오지 못했습니다.

 

 

 

4. 바닷물이 빠져나간 갯바위엔 돌미역이 지천이었습니다.

 

 

 

 

두주 만에 찾아간 다락골에도 비가 내립니다.
밤꽃이 흐드러지게 핀 주말오후 개시를 알리는 장맛비가 싫지만은 않습니다.
마실나온 두꺼비가 아는채를 해댑니다.
초록물결 싱그러운 밭뙈기 가득
말랐던 목을 축이려 생기가 넘쳐납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신이 납니다.
아기자기한 모습으로  자태를 뽐내는 광경이 놀램과 환희의 연속입니다.
당장 밭뙈기에 뛰어 들어가 어루만져야할 일이 지천인데
애꿎은 장맛비만 탓하며 밭두렁만 맴돕니다.

 


감자를 수확하고 그 자리에 옮겨 심을 검은콩(귀족서리태)을 포트에 파종하고
옆지기와 둘이서 하나씩 함지박을 챙겨들고 장독대 옆에 있는
보리수 열매를 땁니다.
선홍색의 보리수열매가 그 동안  가뭄 영향인 듯
단맛이 진하게 배였습니다.
둘을 따면 하나는 입안을 채우고 하나는 함지박에 담깁니다.
짹! 짹! 짹! 짹!
두 마리의 산새가 시끄럽게 울어댑니다.
자기들의 성찬을 앗아가는 낯선 침략자에게 앙칼지게  지저귀며 금방이라도
달려들 기세입니다.
장맛비는 수그러들지 않고
가져간 함지박이 가득 차
반 쯤 밖에 따지 못한 열매들은 새들의 먹이로 남겨둡니다.

 

 

 

 


이른 새벽
원두막에 쪼그리고 앉아 새벽의 적막함을 즐기며
마셨던 커피 한 잔의 여유는 오늘은 허락하지 않습니다.
굵은 빗줄기는 그쳤지만 이슬비는 이른 아침까지 이여지고 있습니다.
시작된 장마철을 대비하기위해 밭뙈기 주변 배수로를 정비합니다.
작은 손길 하나가 깊은 사랑을 만듭니다.
옆지기가 두 주사이의 변화에 어리둥절합니다.
입이 귀에  걸려 싱글싱글합니다.
고추밭에 풋고추가 주렁주렁 달렸습니다.
나방을 퇴치하기위해 고추말뚝에 매달았던 페트병의 효험을 톡톡히 보는 것 같습니다.
이웃 밭엔 풋고추에 구멍이 뚫린 담배나방애벌레의 피해가 심하게 발생했다는데
나방애벌레의 피해를 당한 풋고추는 하나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매달아 놓은 페트병에 막걸리를 보충하며 들여다보니 불과 2-3일전에 빠져죽은
나방들의 사체가 너부러져있습니다.
장마철에 발생하기 쉬운 칼슘부족과 탄저병을 예방하기위해
해당약제에 질산칼슘을 섞어 엽면시비 합니다.

 

  

 

  


찰옥수수 밭엔 개꼬리가 달리기 시작합니다.
키도 2m가 훌쩍 넘게 자랐습니다.
본격적으로 옥수수통을 키우기 위해 요소비료에 황산가리를 섞어
마지막 웃거름을 시비합니다.
노란 꽃들로 만개한 땅콩 밭엔 줄기에서 어미의 탯줄 역할을 하는 자방병이
아직 생기지 않아 비닐을 걷어내는 일은 다음으로 미뤄야할 것 같습니다.
두 주 사이에 수도 없이 발생한 토마토, 가지, 오이의 곁가지를 잘라냅니다.
곁가지를 잘라낼 때면 항상 똑같은 마음으로 마음이 무겁습니다.
곁가지의 입장에선 무지에서 오는 폭력으로만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쩐지 미안해지고 안쓰럽기도 해 남몰래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하루가 다르게 쳐들어오는 잡초와의 전쟁과 감자수확은 다음으로 미뤘습니다.
서둘러 일을 대충 마무리 짓고
점심 무렵
감자 몇 골을 캐내 트렁크를 채웠습니다.
아버님 기일을 맞아 시골집을 찾는 날입니다.
인천에 정착한지도 20년이 넘었습니다.
홀로 계신 노모생각에
서해안고속도로가 뚫리면 한 달에 한 번씩이라도 찾아뵙자는 결심이
이 핑계 저 핑계로 공염불에 그쳤습니다.
마음이 축축하고 쓸쓸합니다.
비 온 뒤끝이라 그렇다 애써 분위기를 바꿔보려 애써보지만
뒷맛이 영 개운치가 않습니다.

 "잘 모셔야 되는데
  잘 모셔야 되는데……."

 

 

감꽃 지는 초여름입니다.
새벽같이 일어나
감나무 밑에 떨어진 싱싱한 감꽃을 바느질실에 꾀어
목걸이를 만들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씨 뿌리기 좋다’는 절기 망종이 막 지난
현충일이 낀 연휴 첫날 아침 다락골에선 샛노랗게 핀 천년초꽃이 시선을 이끕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며칠 전 불어 닥친 돌풍에 허리가 부러진 고추나무 때문에
가슴이 뜨끔합니다.
고추나무 다섯 그루가 주인을 잘못 만난 탓에 허리가 절단 났습니다.
키가 조금 덜 자란 것 같아
지난주 방문 때 망설이다 그만 미룬 것이 화를 자초했습니다.
많은 여한만 남습니다.

 

 

 


두 번째 줄만 띄워놓았더라도
막을 수 있었던 일이였기에 마음이 부서지듯 아픕니다.
유인 줄을 설치하려
연장들을 챙기는 마음이 영 개운치가 않습니다.
분하고 억울한 마음에 내놓고 변명이라도 하고 하고 싶습니다만
기다리는 비 소식은 없고 초여름 햇살은 따갑기만 합니다.

 

 

 

 


"아저씨! 우리 집 매실나무가지 좀 질러주면 안되남요?"


저녁나절
새참생각에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키며
마음의 안정을 되찾아 가는데 동네 할머니 한분이 건너오셨습니다.
지난해 농사일이 힘에 부쳐
매실나무를 50그루를 심었는데 그동안 관리하는 요령을 잘 몰라 내버려뒀다며
손봐주기를 청합니다.
태양이 힘을 잃어 잡초 뽑기에는 좋은 시간인데
청을 물릴 수 없어 전지가위를 챙겨들었습니다.
몸이 무겁다며 그 동안 일은 돕지 않고 딴전만 피우던 옆지기도 따라나섭니다.
소를 키우는 외양간 주변으로 심어진 나무는 쇠똥거름을 많이 먹고 자라서인지
세력이 엄청 좋아보입니다.
집주인 할아버지가 기다리고 계십니다.

 

"어르신! 혹시 나무를 관리하실 때 정해놓은 원칙을 가지고 관리하시나요?
괜히 제가 만져 마음에 안 들면 어떻죠?"

 

"아니유! 그런 것 없시유!
와 주신 것만으로도 너무 고맙고 감사해유!
농사짓기 힘들어 매실나무를 심었는디…….
뽑아 없애야 될 성 싶구먼유!"

 

"아니 왜요? 나무가 엄청 실하게 잘 컸는데.......
무슨 이유라도 있으세요?"

 

"저번에 요 아랫마을 사람이 지나가다 그러는디유
이 매실나무는 가지만 뻗치는 숫 매실나무라 매실이 달리지 않는다고 당장 뽑아 없애라고 하더구먼유.
은행나무처럼 숫매실나무는 열매가 달리지 않는다 하던구먼유."

 

" 아니에요. 어르신 그건 아마 그분이 잘못알고 하시는 말씀 같아요.
매실나무는 숫 나무가 따로 없답니다.
매실나무는 올해자란 가지에서 꽃눈이 맺혀 다음해에 매실이 달립니다.
어르신이 너무 부지런히 밭에 퇴비를 많이 넣어 나무가 잘 컸을 뿐이에요."

 

안도하는 얼굴빛으로 바뀐 어른께
자를 가지와 남길 가지를 선정하는 요령과
가지 치는 시기, 가지를 잘라낼 위치 등을 상세히 설명하고
혼자서 직접해보길 권했습니다만
순박한 미소만 지으실 뿐 선뜻 가위질을 하려들지 않습니다.
혹시 잘못해서 흠이라도 생길까 조심하는 모습입니다.

 

"할아버지! 한번 해보세요.
제가 해봐도 쉬운대요."
 
곁눈질로 익힌 솜씨로 일을 거들던 옆지기가
가위를 들려주며 거들고 나섭니다.
어차피 주인이 직접 관리해야 될 나무이기에
요령을 터득시키려 반복해서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한참을 망설이던 주인어른이 용기를 냅니다.
시원스럽게 잘려나간 나무들을 보며 싫지 않은 표정입니다.

 

 

 

 

바람난 까치들의 지저귐이 새벽부터 시끄럽습니다.
빈틈없이 심어진 작물들이 차츰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입니다.
밭고랑에 깔아 놓은 부직포 덕을 톡톡히 봅니다.
밭고랑을 가득 매웠을 잡초들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씨를 뿌려 어린 싹이 돋아난 도라지 밭과 수리취(떡취)밭엔
잡초들이 들어차기 시작했습니다.
벌써 풀밭인지 도라지밭인지 분간이 안됩니다.
세력이 확장하려는 잡초들의 생명력이 두려움 자체입니다.
그렇다고 그냥 내버려둘 수도 없는 일입니다.
풀밭에 쪼그리고 앉았습니다.
어린새싹사이로 자리 잡은 잡초들만 골라 뽑는 일은
조금만 방심해도 어린새싹까지 함께 뽑혀 나옵니다.
안쓰러운 마음에 신경이 곤두섭니다.
집중하다보니 눈알이 튀어나올 것만 같습니다.
더디고 지루한 싸움입니다.

 

 

감자 두둑이 갈라졌습니다.
알이 들어찼나 봅니다.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없듯
자기 혼자의 힘으로 열매를 맺는 곡식은 없습니다.
바람이 불며 바람이 불까 걱정
비가 오지 않으면 비가 오지 않아서 걱정
꽃을 보는 기쁨보다 그 기쁨을 보기위해
고되고 긴 인내가 필요한 일이 농사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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