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익은 가을 냄새가 그윽합니다.
내남없이 발그레 달아오르는가 싶었더니 금세 낙엽지네요.

 

 


먹고사는 일에다 고속도로까지 막혀
다락골에 도착하기도전에 벌써 어스름이 짙게 내려앉았습니다.
지난 주말에도 가을비가 내려 질퍽한 땅에 마늘을 심었는데…….
밭을 꾸며 양파모종을 아주심기 해야 하는데, 또 가을비가 내릴 거란 예보네요.
농사꾼에게 짓궂은 가을비입니다.
비가 내리기전에 양파 심을 밭을 꾸며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밤새 뒤척이다 새벽닭이 울기 무섭게 연장을 챙겨들었습니다.
거름을 뿌리고,
쇠스랑으로 땅을 파서 뒤집고,
마음은 급한데 몸은 따라오지 않고,
뒤죽박죽
낑낑대며 애써 만든 두둑 위에 비닐을 씌우고 나니 환하게 가을풍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새 가을빛이 구석구석까지 스며들었네요.

 

 

 

 

모종 값이 많이 올라서인지
양파 모종에 눈독을 드리는 이웃들이 많습니다.
내한성이 강해 중부이북지방에서 재배가 가능한 강원1호탠신황이란 품종의 양파입니다.
이른 아침부터 모종을 얻으러온 이웃 아주머니들이 일을 거드네요.
낯간지럽지만 양파모종 심는 일이 수월합니다.

 

 

 


지난 초가을엔 비가 잦았습니다.
땅이 습했던  까닭에 생강수확은 초라하고 토란수확은 푸짐합니다.

 

 

 

 

 

불과 엊그제만 같은데,
요즘 농촌에서 낫으로 벼를 베는 모습을 구경조차하기 힘듭니다.
마당에 널따란 멍석을 깔고 나락을 말리는 모습도 그렇고요.
찬바람이 부는 이맘때
집집마다 밭에 심어 놓았던 무를 뽑아와 시렁에 매달아 말리던 그런 풍경도 자취를 감췄네요.
소싯적 갈바람에 무를 말려 만든 다꽝은 달착지근하고 쫀득쫀득해 반찬으로 으뜸이었습니다.
그 식감을 잊지 못해 올해는 단무지용무를 따로 심었습니다.
늘씬하고 미끈하게 생긴 외모부터 눈길을 붙잡네요.
말리는 도중에 바람이 드는 것을 방지하기위해 생장점을 제거하고 4개씩 묶어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매달아 말립니다.
문득 떠오르면 슬며시 웃음이 번지는 어릴 적 고향의 모습이네요.

 

 

다락골에서 제일 큰 밭뙈기입니다.
외지사람이 빌려 5천 평이나 되는 밭에 배추 만 삼천포기를 심었습니다.
한동안 배추 값이 비싸다고 좋아하더니만
빨리 온 추위 때문에 배추 속이 차질 않는다며 울상을 짓네요.

 


돌아오는 주말에 김장을 하기로 계획했는데 배추가 속이 덜 차 걱정입니다.

 

 

늦은 가을밤.
고속도로에는 남녘으로 단풍놀이 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량불빛이 길게 이어집니다.
울긋불긋
단풍놀이가 따로 없습니다.

내일,

살아갈 힘을 비축하기위해 잠시 미뤄두었던 단풍놀이를 이렇게 즐깁니다.

생각을 바꾸니 여유가 넘침니다.
화려함이 쓰러지고 그 곳엔 조락의 스산함이 드리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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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는 해야 될 때가 있습니다.
그 때를 맞추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지키기 위해 정한 것이 약속입니다.
씨를 뿌려할 때가 있고,
꽃이 피는 때가 있습니다.
사람과 작물이 때를 맞추겠다고 한 약속이 농사였습니다.

여섯 해 넘게,
주말농사를 일구면서 이 약속을 헌신짝 버리듯 져버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자연현상이 좋은 핑계거리였고
자기 멋대로 정한 일의 우선순위에서 뒷전일 때도 많았습니다.


"한밤중부터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지난 주말 이른 아침.
서해안고속도로 당진톨게이트에서 통행료를 치르던 중
매표소아가씨가 전해준 말 한마디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비가 내릴 거란 예보도 있었는데 망설이지않고 길을 재촉했지요.
가을비라서…….

 

마늘 심기로 한 날
하루 종일 비가 내렸습니다.
가을비치곤 빗방울이 굵었습니다.
밭고랑에 빗물이 고일수록
가슴속 근심도 고입니다.
때를 지키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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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골에도 가을걷이가 한창입니다.
소싯적엔 가을걷이가 끝나면 농한기를 이용해서 관의 주도로 객토작업이 벌어지고 했습니다.
객토작업은 쓰던 흙에 다른 흙을 보태 토양성분을 개선시켜 땅심을 북돋우는 작업이지요.
관에서 덤프트럭으로 신작로 가에 수북하게 쌓아 둔
황토를 부모님은 머리에 이고, 지게에 지고,
마치 평균대 연기하듯 비좁은 논둑길을 가로질러 자기 땅뙈기로 퍼 날랐습니다.
뼛골 빠지게 힘든 일이였습니다.

 

 

"이 밭뙈기는 마늘만 빼고는 다 잘 되는 땅이여유."
옛 땅주인이 전해준 말처럼 여섯 해 농사를 짓는 동안 마늘농사만 성에 차지 않았을 뿐 다른 밭작물은 그런 대로 잘 꾸려왔습니다.
올해 마늘을 심을려고 예정해둔 곳도 모래가 섞여 마늘농사에 썩 좋지 못한 토질입니다.
궁리 끝에 뒷산에서 누렇고 찰진 황토를 퍼와 토질을 바꾸기로 작심하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서른 수레를 담아오기로 계획하고 패기 있게 시작했지요.
다른 일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하루 종일 스무 대여섯 수레를 옮기고 나서 그만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비좁은 산길이라 기계나 장비의 도움을 빌릴 수 없어 외발수레에 황토를 삽으로 퍼 담아 옮기는 일은 고행이 따로 없었습니다.

 


퍼온 흙을 고르게 펼치고 붕사와 석회를 뿌렸습니다.

 


마늘은 크면서 엄청 거름을 많이 먹는 작물인지라 잘 썩은 닭똥거름을 듬뿍 넣고 관리기로 1차 로터리작업까지 마쳤습니다.
혼자 갔다 하마터면 다치기라도 하면 어떨 거냐고 집에 돌아와서 옆지기에게 된통 혼났습니다.
하루가 지난 지금도 팔다리가 얼얼하네요,
그래도 배우고 실천하는 일은 늘 신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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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아드는 가마솥밥물마냥 여유롭지 못했습니다.
가을을 타서?
그렇지 않으면 마음이 심약해져서?
작은 일에도 쉽게 화가 나고  속이 상했습니다.
갇힌 틀 속에서 빠져나와 훌쩍 떠나고 싶었습니다.
지리산둘레길로 산행 떠나는  옆지기 일행 속에 슬쩍 끼여 따라가 볼까 망설이다가
들깨를 베어말리는 일이 발목을 붙잡아 다락골을 찾았습니다.
일탈을 꿈꾸며 시작했던 다락골에서 주말농사가 또 다른 틀이 되어 그 속에 갇혀버린 꼴이네요.

 

 

 

이름도 잊히지 않은 볼라벤, 덴빈.
두개의 태풍이 강탈해간 들깨 밭에서 칠칠맞게 흘려놓고 들깨이삭을 거둡니다.
몹쓸 놈,
자기가 키운 자식새끼의 잘못은 탓을 해도,
몹쓸 것,
작물 탓을 하지 않는 것이 농사꾼의 마음입니다.
거둔 결실이 성이  덜 차든, 안 차든, 잘못을 작물에게 뒤집어씌우는 농사꾼은 없습니다.
올해는 조금 덜 먹고  배부르게 먹을 다음을 기약해야겠네요.

 

 

 

배추밭을 둘러보는 이웃들이 늘었습니다.
다들 잘 키웠다고 칭찬 일색이네요.
으쓱해져 헤벌레 웃고 말았습니다.
지난 주말 배추밭에서  한랭사를 걷어내 배추벌레들이 모여들지는 않았을까?
은근히 걱정했었는데 지금까지는 작은 구멍 하나 보이지 않고 무탈하게 잘 큽니다.
물주는 일을 빼고는  손을 볼 곳이 별로 없네요.

 

 


잘 여문 상수리가 툭툭 떨어지네요.
떨어지는 도토리에 머리를 맞아도 아프지가 않습니다.
예쁜 가을입니다.
올해는 도토리가 풍년이라네요.
이웃집에 감 따는 바지랑대를 빌리려 들렸다가 비닐하우스 안에 펼쳐 말리고 있는 도토리를 보고 쉼터로 돌아오자마자 바구니를 들고 뒷산에 올랐습니다.
세 시간쯤 주워 모았더니 두어 되박은 너끈히  되는 것 같습니다.
가을이 주는 행복입니다.

 

 

 

감말랭이를 만들 때 쓸 감을 얻어오고.
팔아드릴 고구마도 가져오고,
이것저것 참견하다보니 하루해가 짧습니다.
그중에서 시간을 가장 많이 잡아먹는 일은 효소 담는 일입니다.
탱글탱글한 석류알맹이를 발라내 석류효소를 담고, 기침에 좋다는 도라지를 10kg 넘게 효소를 담그니 허리가 뻐근합니다.

 

 

떨어지는 낙엽이 보입니다.
저 낙엽들 하나하나에도 자신만의 사연을 간직하고 있겠지요?
뜨거웠던 한여름,
찬란했던 그런 시절은 다시 올 수 있을까?
가을이 깊어갈수록 아쉬움도 큽니다.
사람 사는 일이  이런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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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아침
반팔차림으로 마을구경을 나섰다가
쌀쌀한 한기를 견디지 못해 집안으로 들어와 옷가지를 끼어 입었습니다.
그새 기온이 뚝 떨어졌네요.
쉼터 앞 들녘엔 노란 물감이 번집니다.
가을이 콧속까지 파고듭니다.

 

 

 

 

쉼터 뒷산에는 야생버섯이 지천입니다.
지식이 짧아 함부로 따 먹을 수도 없고…….
기온이 내려가니 하나 둘, 표고버섯도 올라옵니다.
보면 볼수록 그 모습이 신비롭네요.

 

 

 

한 달 남짓 키운
김장채소들이 쑥쑥 자랐습니다.
배추밭에 한랭사를 씌워 만든 그물터널 안이 꽉 들어찼네요.
덕분에 벌레걱정은 덜었는데…….
해가 많이 짧아졌습니다.
배추 품을 벌려 부족해진 햇볕이  더 스며들게 한랭사를 벗겨줍니다.

 

 

 

가을장마가 끝난 후
3주 넘게 비 구경을 못했습니다.
배추들이 목말라합니다.
분수호수를 이용해 물을 주니 편리하네요.
배추는 물로 키운다고해도 과언은 아니지요?
배추밭 물주기는 자주 주는 것보다는 일주일에 간격으로 한 번 줄때 흠뻑 주는 것이 배추생육에 더 좋고 무밭은 가급적 물주기를 피하는 것이 좋다고 하네요.

 

 

"우리 밭 풋고추도 따가세요!"
추석명절을 고향에서 보내고 다락골을 찾아온 주말,
모처럼 옆지기도 함께 왔습니다.
그래서인지 이웃들이 더 반기네요.
주말마다 내려와 말상대를 해준 사람은 정작 본인인데,

은근히 샘이 나네요.
무뚝뚝한 남정네보다 싹싹한 옆지기가 눈에 들었나봅니다.
아랫집할머니는 잘 여문 알밤을 한 소쿠리 가져다주시고,고구마순을 뜯어가라는 옆집어르신의 말씀에
못 이긴 척,

통통한 고구마순만 골라 신나게 훑고 있는데 지나가던 이웃집 할머니도 한 말씀 거드네요.
넉넉한 가을입니다.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하늘 쳐다보기가 두려웠습니다.

그냥 실실 웃고 말았습니다.

 

태풍 볼라벤이 남긴 상흔은 참담했습니다.

허망했습니다.

사진기에 옮겨 담기조차 민망했습니다.

 

병치레 한 번 하지 않고

옹골차게 잘 컸었는데.......

쌓인 이력으로 꼼꼼하게 채비했었는데…….

사방에서 휘몰아친 강풍으로 떠나보낸 심정이 어찌나 서글프던지.

챙기지 못한 주인 탓이겠지요!

무사히 버텨주기만 안달했을 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착각이 빈틈이었습니다.

 

떠난 빈자리도 애처롭지만 남아있는 사람도 힘겹습니다.

"세상만사 모든 일이 뜻대로야 되겠소만......."

유행가 한 구절이 귓가에서 맴돕니다.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상처의 아픔은 가슴에 세기고 혼신을 추슬러야겠지요.

뿌려야할 씨앗이 남아있으니까요.

 

 

지난 주말까지는 멀쩡했는데, 

 

 

쓰러지고

 

 

뽑히고,

 

 

텅 빈 가슴처럼 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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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장마.
달갑지 않는 소식입니다.
가뭄, 폭염, 폭우, 그리고 가을장마.
이변이 일상처럼 되어버린 요즘 날씨입니다.
마치 각본 없는 괴물영화를 보는 것처럼 혼란스럽습니다.
인간이 저지른 악행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하니 딱히 어디에 하소연을 할 수도 없고…….
두려움을 떠나 무서움으로 다가옵니다. 

 

 

여름은 무더웠습니다.
다 귀찮았습니다.
기력마저 고갈되어 몽롱했습니다.
손가락도 까딱하기조차 싫었습니다.
"쉬는 것도 생산이다."
붙들고 있던 다락골도 살며시 내려놓았습니다.

 


더위를 피해 다락골을 달아난 사이,

밭뙈기는 수년 동안 돌보지 않은 묵정밭처럼 폐허로 변해있었습니다.
사람 키만큼 큰 잡초들이 밭뙈기를 지배합니다.
수확하고 방치해둔 매실나무 밭이 더 심합니다.
새벽부터 근 한나절을  뽑고. 뜯고. 베고.......
잡초들과 질펀하게 한판을 벌리고 나서야 겨우 모양새가 잡힙니다.

 

 

수일 전에 퍼부은 폭우로 다유들깨가 땅바닥에 벌러덩 자빠졌습니다.
빳빳하게 고개만 쳐들고 생체기를 겪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네요.
줄에 맞춰 군데군데 쇠말뚝을 박고 끈을 엮어 일일이 일으켜 세우니 금세 스스로 몸뚱이를 추스릅니다.
명약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갸륵한 손길이 명약입니다.

 

 

 

도둑 못 들어오게 쳐놓은 그물망에 스스로 갇힌 꼴이 되었습니다.
처음 재배하는 키 작은 흰 찰수수 때문에 맘 한구석이 꺼림칙합니다.
껍질이 없어 바로 사용할 수 있고, 키가 작아 쓰러질 염려가 없다는 말에 어렵사리 종자를 구해

밭뙈기 한편에 심어놓은 키 작은 흰 찰수수가 이삭이 여물기에 두주 전에 이삭에 양파망을 씌웠습니다.
밭뙈기가 산자락 끝에 위치한 한적한 터인지라 산비둘기, 까치 등 야생조류에겐 낙원이나 다름없는 곳이지요.
이삭에 양파망을 씌우고 낱알 한 톨도 빼앗기지 않을 거라며 나름 안심했습니다.
여물어가는 이삭을 바라보는 재미도 쏠쏠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내려와 이삭들을 확인해보니 양파망을 씌워둔 이삭마다  낱알에 거무스름하게 곰팡이가 슬어버렸습니다.
계속 내리는 비로 습도가 높아져 탈이 생겼습니다.
허겁지겁 씌운 양파망을 벗겨내고 곰팡이를 털어 내보지만 씁쓸한 기분은 지울 수가 없습니다.

 

 

대추는 풍년입니다. 

 

 


끝물더위로 후텁지근합니다.
그래도 아침저녁으로 제법 서늘하네요.
영영 식지 않을 것 같던 무더위의 기세가 한결 누그려졌습니다.
풍성한 가을을 마중하기위해 땀샘을 비웁니다.

 

 

 

김장할 때 쓸 무씨를 뿌립니다.
다락골에선 처서 절기 무렵에 김장배추모종을 내다심는데 무씨는 그 보다 일주일가량 앞서 파종합니다.
햇볕으로만 키우기 위해 거름도 넣지 않고 밭을 꾸몄습니다.
너무 크지 않고 달지 단 무를 키우는 게 바램입니다.
자색무에 여태껏 잊히지 않은 소싯적 즐겨먹었던 쫀득쫀득한 단무지 식감이 그리워 직접 단무지를 담가볼 요량으로 길쭉하게 생긴 단무지무도 함께 파종합니다.

 

 

끝난 올림픽열기에 열대야까지 겹쳐 잠을 설치는 날이 많았습니다.
지든 이기든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의 역동적인 모습이 늠름했습니다.
메달을 거머쥐고 환호하는 장면도 멋졌고요.
정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흘렸던 땀방울의 의미가 전해질 때마다 가슴 찡했습니다.
가을이 오네요.
땀방울이 결실을 맺는 가을입니다.

 

"힘겹다.
 집구석은 온통 곰팡이가 슬고 밭뙈기엔 풀만 가득하다."

 

"풀 뽑고, 벌레 잡고…….
 그걸 즐거움으로 사는 사람이잖아요. 당신은?
 자기가 자초한 일이니까,
 남까지 끌어들이지 마세요."

 

산행 도중에 옆지기가 보내온 카톡 메시지 답신은 씁쓸했습니다.
일행에 끼여 가평 연인산으로 산행가자는 옆지기의 권유를 뿌리치고 다락골을 찾았습니다.
늘 그렇지만 제가 다락골을 찾는 이유는
나와 떨어진 또 다른 나를 다락골에 남겨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웠던 분신들과 재회하는 순간.
기쁨 같기도 하고, 서글픔 같기도 한 감정들이 한꺼번에 밀려듭니다.

 


환기가 안 돼
쉼터 구석마다 곰팡이가 슬었습니다.
퀴퀴한 냄새, 끈적끈적하고 눅눅한 기운이 숨통을 조입니다.
닦고, 말리고…….
밭뙈기를 들여다 볼 틈도 없이 장마철 비설거지로 비지땀을 쏟았습니다.

 

 

지난 가뭄 탓일까요?
대학찰옥수수통이 생각했던 것보다 굵지 않네요.

 

 

일 년 중 날씨가 제일 무덥다는 대서절기입니다.
가만히 서 있어도 등줄기를 타고 땀이 흘러내립니다.

김장채소를 심을 터를 준비합니다.
다락골을 찾은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
마늘을 뽑고 잠깐 방심한 사이 바랭이며 쇠비름 등 온갖 잡초들이 들어찼습니다.
농부의 부지런함을 가름하는 기준을 김매기로 삼았던 집안에서 자란 탓에 잡초만보면 손부터 나가는 것이 습성처럼 굳어져있습니다만, 
땡볕 아래서 쪼그리고 앉아 김매기는 정말 힘겹습니다.

 

 

주말농사 7년,

이력이 붙을수록 일에는소흘해지고 꾀만 늘었습니다.
"김매기 싫은 놈 밭고랑만 센다!"라고
잡초를 뽑아내고, 멀칭해둔 비닐을 걷어낸 후, 석회비료를 뿌리는 것까지
마치는 것으로 계획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일하는 시간보다는 은행나무그늘에 주저앉아 쉬는 시간이 늘어갑니다.
"휴가나 가시지, 이런 땡볕 아래서 고생을 그렇게 사서한데유!"
농담으로 흘린 이웃집할머니의 말 한마디가 귓가를 떠나질 않습니다.
오기로 버텨보지만 끈기는 바닥난 지 오랩니다.
연장을 내동댕이치고 도망가고픈 생각이 간절합니다.

 


다행스레
2주전에 씨를 뿌렸던 당근이 골고루 싹 텄습니다.
살랑살랑 불어댄 바람과 적당하게 내려준 비 덕분이지요.
변죽만 울리고 흠집 하나 남기지 않은 채 스쳐 지나간 태풍이 고마울 뿐이네요.

 

 

농사용 거름은
필요에 따라 그때그때 인근 농자재마트에서 구입해왔습니다.
가끔은 덜 썩은 퇴비에서 발생하는 가스로 인해 피해를 보기도 했고요.
한꺼번에 대량으로 구입해 1-2년을 직접 더 발효시켰다가 사용해봤으면 하는 바램을 늘 가졌었는데 이번에 큰 맘 먹고 일을 냈습니다.
지인의 소개로 닭똥을 발효시킨 퇴비를 구입했습니다.
평택에서 이곳까지 운임 한 푼 안 받고 가져다주시네요.
일복이 터진 하루,
비를 맞아 무개가 상당한 100포대나 되는 거름을 퇴비장으로 옮겨 쌓으니 맥없이 두 다리가 후들댑니다.

 

 

예년 같으면 지금쯤
첫물고추 수확이 끝나고 두물고추 수확이 한창이었겠네요.
지난해와는 다르게 고추밭에 탄저병 발생이 줄었지만 다락골은 고추가 붉어지지 않아 야단입니다.
올핸 여름 초입부터 때 이른 무더위가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요상할 만큼 밤공기는 선선했습니다.
삼복더위 중에 어젯밤에도 두꺼운 이불을 덮고 잠을 잤습니다.
이런 찬 공기와 작물의 성장과는 상관관계가 존재하겠지요?
김장채소를 파종할 시기가 가까워졌습니다.
파종시기를 고민하는 이웃들이 더러 보이네요.
세상사는 일이 그렇고 그렇다지만 내다볼수록 앞날이 컴컴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원칙을 지키는 일이 중요하겠지요.
무덥습니다.
입 맛 잃지 마세요.

 

 

빗소리가 고마운 주말입니다.
절실하게 바라던 단비가 내립니다.
메말랐던 마음까지 촉촉하게 적십니다.
생기가 넘칩니다.

 

 

 

 

언제부턴가 주말날씨예보에 민감해졌습니다.
은근히 주말엔 비가 내리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비싼 기름을 때고 달려왔다 밭뙈기에 발도 들어놓지 못하고
헛걸음질을 할 것 같아 평소 주말에 내리는 비는 달갑지 않았습니다.
아마 주말농사를 일군 후부터겠지요!

 

 

 

 

가뭄 끝은 있어도 장마 끝은 없다더니
가뭄 끝에 단비가 내리던 날,
오랜만에 다락골이 시끌벅적합니다.
옆지기 형제 4가족이 다락골에 모여 매실도 따고,
직접 딴 매실로 효소를 담그며 형제간의 우애를 다지려 다락골에 모였습니다.
하는 일에 지장 없도록 하늘도 도웁니다.
해갈되기엔 다소 미흡했지만 토요일 오후부터 비가 그칩니다.

 

 


매실도 품종에 따라 익는 모습이 다릅니다.
천매는 살굿빛이 감돌고,
남고는 새색시 볼기짝마냥 연지곤지를 살짝 발랐습니다.
왕매실로 알려진 알이 굵은 풍후는 아직까지 살이 단단하고 푸릅니다.
장아찌용으로 안성맞춤입니다.

 

 

쑥을 뜯어와 피운 모깃불 연기가 뿌옇습니다.
도란도란 둘러앉아 살아온 이야기를 나눕니다.
매실작두로 씨를 바르고 칼로 살점을 도려내며 살아갈 길도 함께 찾습니다.
훈훈한 마음이 모이고 용기를 북돋우며 서로를 위로합니다.
한 뱃속에서 나와 같다고 믿었지만 달랐던 서운함도 이야기합니다.
잘못을 토닥여주고 힘을 합칩니다.
우애는 쌓이고 밤은 깊어갑니다. 

 

 

애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나무로 만든 이쑤시개를 하나씩 챙겨듭니다.
매실효소를 담는 과정에서
쓴맛을 내는 꼭지를 제거하고 매실표면을 두세 번 콕 콕 찌른 후 매실을 하나씩 용기 속에 담습니다.
발효과정에서 매실과 설탕의 농도차이로 과실 속 유효성분이 빠져나오면
청매실은 과육이 쪼그라드는 반면, 황매실은 껍질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자칫 잘못하면 농축액이 용기 밖으로 넘칠 수 있어 이것을 방지하기위해 사전에 매실표면에 작은 구멍을 내주는 것입니다.
각자 오는 길에 가져왔던 설탕 30kg에 맞춰 1:1의 비율로 황매실과 설탕을 버무려 용기를 채웁니다.
요즘 들어 부쩍 발효효소에 관심을 가진 옆지기와 처재들이라 곧이곧대로 따라합니다.
효소 담그는 모습들이 진지합니다.

 


감자를 마지막으로 올 춘계작물수확을 얼추 끝냈습니다.
감자를 캐며 애들이 추억을 세깁니다.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풍성합니다.
옛 말에 가뭄 3년은 살아도 3일 홍수엔 살수 없다했습니다.
다가오는 장마철 물 조심하세요.

쉬지 않고 여기까지 내달렸는데
결승선을 눈앞에 두고 시련이 닥쳤습니다.
감자가 밑이 들고, 매실은 하루가 다르게 살이 찌는 철인데
목말라합니다.
이 가뭄은 주말농사를 시작하고 처음 겪는 시련입니다.
하늘이 하는 일이니 난감하기 짝이 없습니다.
하늘을 바라보는 일 이외에는 해답이 없어 답답합니다.
잠깐 물주는 흉내를 내는 일 이외는 딱히 할 일도 없습니다.
곳간에 인심난다고
좋지 않은 물 사정 때문에 함께 부대끼며 살아온 이웃 간에 다투는 모습도 보입니다.
아전인수란 말뜻을 세삼 실감합니다.

 

천년초꽃이 만개했습니다.

고난에 굴복하지 않고 꽃을 피웠습니다.

수수하면서도 곱습니다.

끓어오른 심기를 가라앉히며 내일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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