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내려가려고?”

 

 “내려가 봐야지, 배추밭에 웃거름도 주어야하고 쪽파도 심어야하고 내일 비도 많이 내린다는데 고추 말리는 것도 확인해야 되잖아”

 

 “미쳤다. 미쳤어. 애들 보기 미안하지도 않아......

두 집구석 살림하려니 이번엔 이쪽이 엉망이네. 내년엔 그놈의 고추만 심어봐라......”

 

 “고추는 왜.......?

당신은 걱정도 안 돼, 궁금하지도 않아? “

 

”그 놈의 고추 때문에 한주도 빠짐없이 내려가야만 하잖아, 한번 내려 갈 때마다 기름 값에 도로비가 1주일마다 4만원씩 한 달에 길에 까는 돈이 얼마나 되는 줄 알아.

 생각 좀 해, 생각 좀. 내년엔 딸 새끼 대학 간다! 대학 가 ,정신 차려 이 사람아! “


 주말 오후4시 서해안 고속도로는 예상을 크게 빗나가 막힘없이 질주할 수 있었다.

 정모를 마치고 다락골에 들렸던 지난주에는 평소 당진IC에서 인천 집까지 한 시간 남짓이면 주행할 수 있던 길을 벌초를 겸한 성묘인파들로 인해 고속도로가 주차장이 되다시피 하여 6시간을 넘기고서야 당진에서 인천으로 기나긴 여정을 마칠 수 있었다.

 1주일 사이로 접어든 추석명절로 인해 미리 다녀오려는 성묘 길로 고속도로의 극심한 정체를 예상했지만 태풍“나리”의 영향으로 강한바람과 집중호우가 예상된다는 예보 때문에 나들이를 자재한 듯싶다. 비를 머금은 구름이 밀려와 온통 잿빛 하늘로 변해버린 다락골에 들어서니 명절에 차례 상에 올리려는지 동네 이웃집에선 밤 수확에 신이 나있다.

 심심찮게 내려대는 가을비로 과일의 단맛은 덜 했지만 1주일 사이에 배추와 무가 훌쩍 커 있다. 지난주 네 번째 수확한 고추가 일사량 부족으로 위험수위에 처해있다. 그나마 이웃어른들이 볕이 잘 들고 지푸라기가 많이 깔려진 하우스로 옮겨 관리해 주셔서 걱정을 한시름 덜 수 있었다.“고추농사는 1등 했는데 말리는 것은 영 신통치 않다”고 돌보아주신 어르신이 칭찬 아닌 칭찬을 늘어놓으신다. 옆지기와 어르신이 고추살피기에 여념이 없는 사이 살며시 하우스를 빠져나와 배추밭을 들여다보았다.

 배춧잎들이 구멍이 숭숭 뚫어져있고 어느 것은 잎줄기만 앙상했다. 

 자세히 관찰해 보니 검은색 민달팽이들이 배추포기마다 한두 마리씩 진 을치고 어린잎들을  갉아 먹고 있다. 생각할 여유도 없이 차를 집어타고 당진읍 농약 상으로 달려가 내용을 설명했다.

 “올해는 습하고 비가 오는 날이 많아서 달팽이들이 많이 발생한다.” 며 퇴치 약을 건네준다. 밭이 그동안 내린 비로 축축 할 테니 비닐을 작은 조각으로 작게 잘라서 배추포기 옆에 깔고 그 위에 풀 벌래 똥처럼 생긴 약제를 서너 개씩 올려놓으라. 일러준다. 어둠은 밀려들고 금방이라도 비는 퍼 부을 것만 같다. 급해지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비닐을 잘게 잘라 배추포기 옆에 반듯하게 깔고 한 포기 한 포기씩 처방해 나간다. 주변이 어둠속에 묻혀 버려 사물이 분간하기도 쉽지 않다.

 “그만하고 내일하셔요.”옆지기의 성화도 당장 애쓴 보람이 물거품만 될 것 같은 조바심에 한 포기 한포기가 소중하고 애처로워 쉽게 일이 손에서 떠나질 않는다.


 금방이라도 내릴 것만 같았던 비는 다음날 아침까지 참아 주었다.

 스산한 새벽 가을바람을 마시며 어제 처방한 배추밭을 살펴보니 포기마다 1-2마리 많은 곳은 다섯 마리까지 방제 약에 유인되어 힘을 못 쓰고 축 늘어져있다. 몇 곳에서는 아직도 잎사귀를 도려내 먹는 놈들도 더러 발견된다.

 비가 언제 시작될지 몰라 서둘러 작업을 강행한다.

 2주전에 정식한 배추에 1차 웃거름을 시비한다. 포기와 포기사이에 구멍을 뚫고 요소비료 한 스푼씩 그 구멍 안으로 투여한다. 앉아서 오리걸음 하려드니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본 잎이 3-4개씩 자라 무밭도 한 구멍에 1-2개씩만 남기고 솎아주고 뿌리에 안 닿게 웃거름을 시비하고 북주기를 해 준다.

 오전 10시가 넘어서려는 시간에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옆지기가 아침 일찍부터 잡초를 제거해 놓은 곳에 ‘고자리 파리’ 방제 약을 뿌리고 골을 만들어 쪽파종구를 파종한다. 유달리 쪽파 데침을 좋아하는 까닭에 눈에 띄는 빈터에는 모조리 쪽파종구를 심는다. 빗줄기는 시간의 흐름에 비례하여 점점 굵어지고 있다. 마을 주변은 미처 끝나지 못한 조상님들 묘의 벌초를 마치기 위해 빗속에서도 예초기 울음소리는 그칠질 않는다. 새싹이 보기 좋게 올라온 알타리무밭과 갓을 심어놓은 밭에도 김매기 겸 솎아주기을 끝내니 시계바늘은 오후 2시를 넘어서고 있다.


 참아주는 김에 하루만 더 참아 주었으면 달팽이를 완전히 박멸할 수 있었을 텐데......

 조금은 아쉽고 긴 여운이 떠나지 않았지만 삶의 근심과 걱정을 떨쳐내고 한 가지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행복을 누렸다. 비가 내려 달팽이로 인한 걱정이 한 가지 더 늘어났지만 1주일 내내  생동하는 모습만을 떠올리며......

 다음 주말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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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명한 날이다.

 소망하던 푸르른 날이다. 절기상 백로란다.

 거래처 직원의 예식이 있어 정오 무렵 식장에 들린다. 예정된 일이 있어 마음만 산란하다. 여기저기서 아는 체들을 한다. 머물다 가라 손을 붙잡는다.

 손사래 치며 눈인사만 나눈 체 서둘러 자릴 피한다.

 고속도로마다 차들로 붐빈다. 명절을 맞아 서둘러 벌초와 성묘를 하려는 행렬들로 이어진다.순간순간 짜증이 낫다가 금세 설래이는 마음으로 바뀐다. 인천에서 출발해서 4시간 반 만에 충북 옥천 이원 묘목 센터에 도착하니 저녁6시가 가까운 시간이다.

 이원으로 향하는 여정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고3딸아이의 2학기 수시모집이 눈앞에 다가와 있고, 1주일에 주말에만 갈 수 있는 주말농군의 특성상 거두어 드려야 할 고추며 제때 파종해야할 씨앗으로 인해 옆지기의 반대가 심했다. 보고 싶은 얼굴들 때문에 설득한 보람이 있어 옆지기를 동행하고 길을 떠날 수 있었다.

 만남의 시간이 다가올수록 가슴의 두근거림의 강도는 더해졌다.

 벌써 마당에는 먼저 오신 분들의 차들로 꽉 들어차 있었다. 처음 참가하는 정모라 가슴은 두근거리고 어색하고 낯설던 모습은 마당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설렘과 반가움으로 상쇄되어 버리고 만다. 지난 초여름 사산번개모임에서 마음을 나누었던 분들과 조우하고 처음대하는 분들과 만남의 기쁨을 즐긴다. 지난날의 발자취와 앞으로의 나갈 방향등 정해진 프로그램은 자정 즈음에 마무리 된다.차속에 누워 잠시 휴식을 취한다.

 날이 바뀌어 시계바늘이 2시 30분을 가리키고 있다. 옆지기가 당진으로 이동하자 보챈다.   헤어짐의 아쉬움을 뒤로 남기고 시동키를 걸고 오던 길을 따라 유턴한다.

 한 밤중 세시경의 고속도로는 텅 비어 있다.

 낮에 꽉 막히었던 것과 비교하니 너무나 대비된다. 가끔 화물을 운반하는 차들만 스쳐지나간다. 너무 한적해 으스스한 느낌이 휘감아 돈다. 속도계의 눈금이 자꾸 규정 속도를 초과한다. 옆지가는 몹시도 피곤했는지 코까지 드르렁대다. 경부고속도로, 안성-평택 간 고속도로, 서해안 고속도로를 이여 달려 당진 다락골에 도착하니 새벽 4시20분경이다.


 옆지기의 땅이 내려앉을 것 같은  한숨소리에 잠을 깬다.

 몸은 한대 얻어맞는 듯 찌뿌듯하고 눈은 쉽게 떨어지지가 않는다.

 아침부터 무슨 청승맞을 한숨이냐고 화를 내며 주섬주섬 작업복을 챙겨 입고 집밖에 나서니 옆지기가 고추건조장에서 한숨만 푹 푹 쉬고 있다.

 기가 쭉 빠져나가는 느낌이 든다.

 건조장을 살펴보니 고추들이 마치 탄저병에 감염된 고추마냥 모두가 썩어가고 있다.2주전에 수확하여 지난주 방문 때만도 너무 좋게 말라가고 있었는데......

 어이가 없다.

 오늘 잘 마른 건 고추를 비닐봉투에 차곡차곡  챙겨 둘 수 있겠구나 하던 기대는 지난주 계속 뿌려대던 비로 인해 산산이 무너졌다. 지난주 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햇볕한번 들지 않고 줄기차게 비가 내렸다 했다. 부슬부슬 계속 내렸다했다. 이웃들은 썩어가는 것들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옆 동네 기계건조장으로 서둘러 옮겼다며 미쳐 우리 네 것은 신경 못써 주셨다 미안해들 한다. 때깔 좋던 3번째 수확한 것들이 손 하나 써 볼 여력도 없이 썩어 버렸다. 하루만 햇볕을 주었으면 아무런 피해가 없었을 텐데......  

 그냥 방치해야만 했던 현실이 너무나 아쉽게 다가왔다.

  4번째 고추따길한다.

 옆지기는 보기도 싫다고 저만치서 딴전을 피운다.

 상한 속내를 애써 감추며 고추 따기에 열중한다. 터져 썩어버린 고추들이 고추 골에 어지럽게 널려있다. 꼭지가 빠져버린 고추들이 볼 상 사납게 느껴진다. 다행한 것은 아직 탄저병 기미가 보이지 않아 조그마한 위안이 된다. 언제 동참했는지 옆지기도 묵묵히 고추를 수확하고 있다. 기계건조장으로 다 가버린 슬픈 사연 때문에 옆집 건조장들은 떵 비어 있다. 오늘도 오전 내내 옆지기와 둘이서 따낸 물고추는 대략 70kg에 육박한다. 이번 건조는 시설이 좋은 이웃집 건조장을 사용하기로 한다. 곱게 펼쳐 널고 그 위에 검정색 차광막으로 빛을 가려 준다.


 지난주에 모종을 구입하여 이식했던  김장배추는 활착이 잘 된 것 같다. 그중 몇 개는 잎사귀를 벌레들이 먹어치워 잎줄기만 앙상하다. 지난번엔 잘 안 올라왔던 무씨 새싹도 보기 좋게 올라와있다. 아마 지난번 발아가 덜 된 이유는 씨앗을 너무 깊게 심었던 게 원인인 것 같다.

  1차로 2-3개만 남기고 솎아내고 북주기를 해 준다.

  미리 일구어 놓았던 곳에 알타리무를 파종하고 영양제에 목초액을 혼용하고 벼룩잎벌레 방제 약을 섞어 배추밭에 살포한다.

  제법 꼬투리가 달리기 시작한 검은콩 밭엔 노린재들이 진을 치고 막 생긴 꼬투리에 주둥이를 쳐 박고 열심히 진액을 뽑아먹고 있다. 서둘러 방제 약을 살포하고 오전 내내 수확한 고추밭에 탄저병예방약을 살포하니 어느새 주변은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깨 털기를 마친 옆지기가 집에 남겨둔 애들 보기 미안하다 그만 철수하자 자꾸 강요한다.

 쪽파씨앗도 심어야 하고 도라지 밭과 더덕 밭은 잡초 가득한데....... 이놈들과의 전쟁은 다음 주로 미루기로 한다.

 아마도 오늘 귀갓길은 무척이나 힘들고 지루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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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가가던 날” 느낌 그대로 이었습니다.

 만남의 순간이 다가올수록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모두들 반갑게 맞이해주시고 만남 그 자체를 축하해 주셨습니다. 입가엔 미소가 떠날 줄 모르고 푸르른 하늘에 두둥실 떠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격랑 치듯 밀려오는 기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서로의 닉을 기억하고자 명찰에 시선이 떠날 줄 몰랐습니다. 옥천으로 오는 길 꽉 막힌 도로에서 짜증도 내고 처음 참석하는 정모라 어색함과 낯설음에 대한 괜한 기우로 동행하던 옆기기는 “꼭 참석해야하느냐”고 투덜거렸지만 막상 주차장에 차를 세우니 그런 기분 눈 녹듯 사그라지고 만남 그 자체를 즐기고 있습니다. 초여름서산 모임에서 마음을 나눈 형과 형수님께서 환한 미소로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운영자분들도 스스럼없이 다가와 인사를 전해 주셨습니다. 서산모임에서 인사드렸던 느티나무방 어르신들께서도 반갑게 손을 잡아 주셨습니다. 따뜻한 정를 나누는 가게에는 회원님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대나무로 만든 피리를 하나 구입하고 모금함에 정성을 보태 습니다.



 한바탕 풍물놀이패들이 흥을 돋우며 지나갔습니다. 흥에 겨운 회원님들이 분위기를 선도하고 해맑은 동심들이 그 뒤를 즐겁게 따라 나섭니다.모두들 흥에 겨워 어깨 들썩거리고 얼굴엔 미소 가득합니다.

  어디선가 양푼냄비 두드리는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집니다.

 가만히 보니 방금 전 풍물패 앞에서 흰 수건을 휘저으며 분위기를 이끌던 그 회원님이십니다.

 “어머!여기서도 장이섰네?”

 영문도 모르고 궁금해 하는 옆지기에게 “올해부터 하는 행사인데 직접 재배하고 생산하신 물품을 직접 판매할 수 있게 배려해준 부스일거라 아는 체를 하며 발길을 그쪽으로 옮겨 습니다. 시골 장터를 연상하는 작은 장터에는 삼삼오오 회원님들이 모여 계셨습니다. 값을 놓고 흥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물품에 대한 열띤 자랑들을 늘어놓고 계십니다.

 판매한 이익금으로 좋은 일에 쓰시겠다는 따스한 마음씨에 탄복하며 몸에 좋다는 벌꿀음료를 맛보기 입가심으로 한입가득 떨어 넣었습니다. 자리를 옮기니 직접 생산한 배 상자를 수북이 쌓아 놓고 신명나게 찌그러진 양품냄비을 두들겨 대며 장단에 맞추어 구성진 입담을 들려주십니다. 호격행위를 하지 말라는 주변의 즐거운 항의에 좌중이 한바탕 웃음바다로 돌변했습니다. 풍악소리가 다시 일자 흥에 못 이겨 장사는 내팽개치고 또 그곳으로 달려가십니다.

 참 멋지게 살아가시는 분 같습니다.

  무공해 재배로 잘 익은 포도만 골라 포도즙을 냈다고 자부심이 대단하신 곳에서 수험생 딸아이를 위해 포도즙을 구입했습니다. 옆 부스에서도 덩달아 야단법석입니다. 직접 물을 들여 저렴한 가격에 옷가지를 파시는 분, 고사리 구기자 재배에 인생을 걸고 열심히 땀을 흘리신다는 분은 자기 재품자랑에 침이 마름이다. 갓 수확한 햇밤과 고구마로 열정을 불사르는 분들의 노고에 찬사를 드립니다.

 하나, 하나 다 구입해 드렸어야 함에도 그리하지 못한 점 송구한 마음 가시질 않습니다.

 처음 시작하는 행사라서 그런지 장이 덜 슨 것처럼 조금은 설익어 보였지만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 신뢰하고 그 신뢰가 씨앗이 되다보면 살아 움직이는 곧은터의 큰 자산이 되리라 기대해 봅니다.

 기존을 틀을 유지하려 애쓰며 더 높은 곳으로 도약하려는 모습이 여기저기 보여 참 좋았습니다.

  행사가 종료된 한밤중에 가꾸는 조그마한 밭뙈기가 눈에 밟혀 길을 떠났습니다.

 “포도즙이 시지 않고 참 달다.”옆지기가 봉지하나를 개봉하여 먼저 맛을 보고 건네준 포도즙은 참 달고 맛이 좋았습니다. 새벽녘을 가르는 상쾌한 바람 이였습니다.

멋진 모임을 가꾸어 주신 카페지기님을 비롯하여 여러 운영자님 그리고 모든 회원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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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의 문이 열리는 날부터 비가 내린다.

 강하게 내리는 비는 아니지만 추적추적 쉼 없이 계속 내린다. 아스팔트 옆 보도블록 위, 미쳐 못 거두어드린 물고추에도 주룩주룩 비가 내린다. 빗물에 파묻혀 제 빛깔을 잃어버린 고추들을 바라보려니 괜히 기분이 우울해 진다. 사정을 이해하려 들어도 이맛살이 저절로 찌푸려진다. 계속되던 8월의 불볕더위도 처서를 기점으로 기세가 한풀 꺾이고 새벽녘엔 이불이 그리워 무의식적으로 손이 내밀어진다. 

 이틀 전 종묘상에서 배추모종을 구입했다.

 종묘상에서 구입하여 2-3일 동안 노지적응기간을 가져야 좋다기에 주말정식을 위해 준비한 것이다. 작년에는 김장배추를 속노랑 배추만 심었더니 김치가 쉬 물러져 저장성이 떨어진다는 말에 일반 흰 배추와 속노랑 배추를 반반씩 심기로 하고 몇 군데 종묘상을 발품 팔아 뒤져보았지만 인천근처 종묘상서 판매되고 있는 품종은 속노랑 배가 아니면 CR배추였다. 혹시 당진에선 흰 배추를 구입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 속에 105구 1판에 8000원씩 주고 속노랑 배추 3판을 구입했던 것이다.

 


“빗길조심, 감속운행.”

 그칠 줄 모르는 빗줄기 속에서도 서해안고속도로엔 평소와는 다르게 차들이 가득하다. 다가오는 명절을 맞아 조상 묘에 벌초하려가는 후손들의 정성이 이어지는 것 같다.

 당진읍 종묘상을 찾았다.

 혹시 속노랑 배추가 아닌 일반 흰 배추가 있지 않겠나 하는 기대 속에서 몇 곳을 수소문 해 보았지만 가는 곳마다 허탕 질이다. 소비자들이 찾질 않아 육묘업자들이 모를 기르지 않는다는 말에 하는 수없이 속노랑 배추로 한판을 더 구입했다. 같은 품종의 배추가 당진에선 105구 한판에 5000원이라 한다. 한 판에 3000원씩 손해 보았다고 구시렁대는 옆지기의 살림솜씨를 감탄하며 다락골에 들어서니 어느새 어둠이 점령군 되어 밀려들고 있다.

 지난주에 파종했던 무씨의 싹이 움트는 것이 영 신통찮아 보인다. 보통 일주일이면 어느 정도의 모양을 갗추었을만도 한데 듬성듬성 싹이 올라와있다. 약 60%정도밖에 발아가 안 되었다. 국내유수의 종묘회사의 종자를 구입하여 파종하였는데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하는 의구심에 인사도 드릴 겸 이웃집에 건너가 여쭈어보니 종자가 묵은 것이어서 발아율이 떨어졌다며 자기네 심고 남은 종자를 나누어 주시며 싹이 안 올라온 곳에 다시 파종하라 하신다. 어리벙벙한 가운데 나누어 주신 씨앗을 서둘러 파종하고 갓씨를 파종할 목적으로 미리 일구어 놓았던 곳에 적갓씨를 파종했다. 마저 알티리무도 파종할까 하였으나 일찍 심으면 무에 심이 생긴다고  파종을 다음으로 늦추라고 이웃 어르신이 말씀하셔 거기에 따르기로 한다. 의구심이 들어 지난주에 파종한 종자의 곁 표지를 살펴보니 포장일자:07년6월, 발아율:85%이상이라 선명히 인쇄되어 있다. 종자자체의 하자일까 파종과정에서 발생된 문제일까 생각이 많아진다.

 전에는 들리지 않던 귀뚜라미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비는 밤을 새워 그 다음날까지도 계속 뿌려 댄다.

 빗줄기도 굶어지고 밭 도랑물 흐르는 소리가 점차 세차진다. 밭에 들어가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이 갈수록 악화된다. 구입해 놓은 배추 모종 때문에 조바심을 떨쳐 버릴 순 없지만 마지막 수확한 옥수수로 하모니카 불며 생활의 활력을 북돋는다. 오랜만에 맛보는 생활의 여유로움이다. 비오는 날 툇마루나 원두막에 앉아 아무 생각 없이 우둑 커니 주변 사물을 바라보는 이런 분위기와 정취가 좋다. 모든 잡념을 벗어 던지고 생각 없이 눈동자를 움직인다. 물방울이 내려 앉아 축 늘어진 주인 비운 거미집이 나무사이에 걸려있다.

 툭 툭 툭 툭…….

 떨어지는 처마 끝 낙숫물에 삶의 고뇌와 걱정을 떨쳐내고 마음은 고요의 바다를 항해한다.   녹색이 절정을 이룬 나무 잎사귀들은 이젠 탈색을 준비하고 언제부터 피었는지 뒷동산에는 하야케 핀 참취꽃들로 가득하다. 올해 심은  더덕들에게 달린 둥근 종모양의 꽃에선 “딸랑딸랑” 종소리가 금방이라도 울려 퍼 질것만 같다.

 한참 여물어 가는 은행알 하나가 슬레이트 지붕위로 “탁”떨어지며 일순간 적막감에서 빠져 나온다.옆지기는 직접 따온 들깻잎으로 장아찌를 담근다, 쪽파김치를 담근다, 부추김치를 만든다, 혼자만 바쁘다.

 

 

 

 


 참깨 배어 낸 곳에 비닐 멀칭을 새롭게 다시하고 배추모종을 심기로 했던 계획은 수정이 불가피하다. 주말에 만 올 수 밖에 없는 상황과 계속 내리는 비로 흙이 질퍽거려 도저히 작업을 수행할 상황이 못 된다.무작정 비 그치기를 기다릴 여유도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다. 오전 내내 원두막에 쪼그리고 앉아 분위기에 취해있었다. 인천으로 귀가할 시간은 다가오고 그렇다고 애써 구입해온 배추모종을 내버려 둘 수도 없다. 다행인건 빗줄기가 상당히 가늘어졌다. 시간에 쫓기여 이식 작업을 강행하기로 한다. 옆지기와 비옷으로 갈아입고 작업 상황을 점검한다. 토질이 모래가 많이 섞여있어 질퍽거리는 흙에 발은 빠져들지만 2주전에 미리 채전을 일구어 놓은 탓에 작업하는 데는 그리 큰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참깨를 재배할 때 사용했던 멀칭비닐을 최대한 이용하기로 하고 이랑을 재정비한다. 봄철 고추모를 이식할 때 사용했던 구멍 내는 기구의 거리간격을 40cm로 고정시키고 앞서 나가며 구멍을 내자 옆지기가 그 구멍 속에 포트에서 모종을 정성껏 꺼내어 하나씩 이식시킨다.

 구멍 내는 기구에 흙이 달라붙어 작업을 방해한다.

 작년 처음 심어 본 배추농사의 기억이 생생이 떠오른다. 작년에는 고추에 역병이 심하게 발생했다. 장마가 끝난 후 역병에 감염되어 볼상 사납게 말라죽은 고추밭이 많았다. 모두들 병든 고추대을 철거하고 그곳에 김장배추들을 심었다. 재작년 기생충 발견으로 인해 중국 수입김치 파동이 일어나면서 배추 값이 폭등했었다. 아마도 그때를 생각하며 배추를 심었으리라...... 역병의 영향으로 수급이 달린 고추 값은 좋았지만 수확철의 배추는 그냥 가져가 먹어만 달라는 농부들의 하소연도 외면하고 밭에서 수확도 못한 체 무지기수가 얼어 썩어 버려 농사짓는 이들의 마음을 멍들게 했다. 작년에는 가을 가뭄도 심했다. 이식한 날부터 계속 물을 뿌려 주어야했다. 매 주말 들릴 때마다 첫 번째 하는 일이 배추밭 물 주기였다. 올해는 비가 내려 그 수고는 덜 성싶다.

 

 

 

 


 김장배추 400여 포기를 심었다.

 일 년에 고작해야 많이 먹으면 30포기 정도 김치를 먹는다. 그 나머지는 믿어주고 성원해 주신 분들께 나눔을 할 것이다.

“내가 직접 키운 것”.“우리가 직접 농사 진 것”이라며 나눔할 때 좋아하고 감사하던 모습을 되새긴다. 농약을 사용 않고 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여건이 지금 처한 현실에선 쉽지가 않다.

  최대한의 농약사용을 자제하고 꼭 필요시엔 정해진 용량을 준수하고 최소한의 화학비료만을 시비하여 내가 거리낌 없이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배추를 키워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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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9일 참깨밭과 오이밭을 정리하여 2007년 김장채소을 심을 채전을 일구다.

퇴비.규산질비료,복합비료,붕사을 뿌리고 쇠스랑으로 땅을 파고 이랑을 만들다.

 

 

 

 

 

2007.9.2일 105구 4판을 구입하여 정식했다.속노랑배추와 일반 흰배추를 반반씩 심을 요량으로 배추모를 수소문 해 보았지만 종묘상에서 판매하고 있는 것들은 모두 속노랑배추뿐이다.비가 계속내려 작업을 방해 했지만 400여 포기를 노지 이식했다.1주일전에 파종했던 무씨앗이 발아가 덜 되어 재 파종했다.아마도 너무 깊게 심어 발아율이 떨어진듯 하다.

족파밭 한쪽을 뽑아내고 갓씨앗도 파종했다.

 

 

 

 

 

 

 

 

 

 

2007.9.9일 무싹이 참 잘 올라와 있다.한 구멍에 2-3씩만  남기고 솎아내고 1차 북주기를 한다.정식한400여 포기중에서 3포기가 고사해 남겨놓은 모종으로 재 이식한다.모종 몇 주를 벌래들이 갈아먹어 영양제에 방재약을 혼용 살포한다.준비해 놓았던 알타리무를 파종한다.

 

 

 

 

 

 

 

 

2007.9.15 비가 많이 내려 그렇는지 달팽이가 다수 발생 배추 잎사귀를 갉아 먹는 해를 입히고 있다.

방제약을 구입하여 처방하고 배추밭에 1차 웃거름을 시비하고, 본잎이 3-4개로 자란 무밭은 1구멍에 1-2개씩 남기고 솎아내기를 실시한다.김장용 쪽파종구를 파종하고 알타리무밭과 갓을 심어놓은곳도 김매기겸 솎아내기를 실시한다.

 

 

 

 

 

 

 

 

 

 

2007.9.23일 전반적으로 좋지않은 날씨로 인해 작물들이 일사량부족으로 초기성장이 좋지 않은 느낌이다.지난주에 처방한 달팽이 방제는 어느정도 효과가 있어 보인다.혹시나 하는 불안감에 친환경제제로 된 달팽이구제약을 구입 목초액과 배추벌래약과 혼용하여 살포했다.푸른색의 배추흰나방애벌래가 서너마리 관찰되었고 파방나방 애벌래도 하나 관찰되었다.아직도 달팽이 구제가 완전히 되지 않아 한포기에 한 두마리씩 관찰되었다.무밭은 한 구멍에 하나씩만 남기고 솎아주기를 마쳤다.지난주에 파종한 쪽파는 새싹이 보기 좋게 나오고 있다.

 

 

 

 

 

 

 

 

 

 

2007.9.30일 오늘로서 배추를 밭에 이식한지 4주째가 지나가는 날이다.

습한 날씨로 배추밭마다 달팽이 발생이 심하다.비가오는 가운데서도 달팽이와의 전쟁은 계속되었다.

4주차가 지나가는 오늘 요소비료에 칼슘비료가 혼합된 N-K비료를 포기와 포기 사이에 구멍을 내고 한 스푼씩 시비했다.무밭은 제법 알이 차기시작했다.알타리무밭은 일조량부족으로 생육황경이 좋지않아 걱정이다.달팽이를 구제하면서 배추잎사귀를 활짝 핀 꽃처럼 황짝 벌려주었다. 광합성을 촉진하여 꽉찬 포기를 만들기 위해서....

 

 

 

 

 

 

 

2007.10.7.달팽이의 서식밀도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않는다.

기피제를 처방했다.무밭은 일조량부족으로 인해 잎이 황색으로 변해 마그네슘을 처방했고 알타리무밭은 솎아주기를 마쳤다.

 

 

 

 

 

 

 

 

 

10월14일 오늘은 주말농장 TV촬영이 있는 날 입니다.

달팽이가 계속해서 피해를 입히고 있습니다.

은행나무밑에 심은 쪽파가 연작의 피해인지 생육상태가 썩 좋지 않습니다.

 

 

 

 

 

 

 

 

 

 

 

10월28일 배추가 결구가 많이 진행되었고 무도 밑이 실하게 들었습니다.

달팽이의 피해는 아직 계속중입니다.

이식8주째가 지나가는 참깨 후작으로 이식한 곳은 잘 성장하고 있으나 옥수수 후작한 곳은 영양부족현상이 관찰됩니다.이식6주째에 2차웃거름을 시비했어야 함에도 비료를 덜 주고픈 욕심에 시비를 안했는데 그 영향인지 포기가 크지는 않습니다.이웃밭서는 20L한말에 종이컵으로 하나씩 요소비료를 물에 타 반 바가지씩을 잎과 뿌리에 훔뻑 적셔주고 있습니다.그래야 속이 발리 찬다 하면서.......

 

 

 

 

 

 

 

 

 

 

 

11월5일 아침에 서리가 많이 내렸습니다.

배추잎에도 하얗게 서리가 꽃을 피었습니다.

영양제에 칼슘과 마그네슘을 혼합하여 20L한말을 옆면시비했습니다.

쪽파는 연작의 영향인지 계속 시들고 있습니다.

배추는 결구가 잘 되었습니다.

 

 

 

 

 

 

 

 

 

 

 

11월18일 노지에 배추 묘를 이식시킨지 10주가 되었습니다.

70일 결구배추라 했는데 정말 속이 실하게 들어찼습니다.

올 여름 궂은 날씨속에 일조량 부족으로 애를 태웠고 민달팽이의 발생으로 고생했지만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잘 성장했습니다.웃거름으로 이식후 3주째에 요소비료를 포기와 포기사이에 한 스푼 시비한 것 뿐입니다.쪽파가 연작피해를 나타냈고 알타라무가 기상여건으로 인하여 밑이 덜찼습니다.

오늘 우리가족은 김장합니다.400여포기 심은것중에서 70여포기는 나눔하고 나머지는 김장김치를 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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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말에도 다락골에 갔습니다.“정성 다해 최선을 다한다! 자신과의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한걸음에 갈 수 있는 서해안 고속도로의 혜택을 누렸습니다. 

 지난 이틀 동안 날씨가 참 좋았습니다.

 열대야다 폭염특보다 다 들 힘들어 했지만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볕은 나에겐 커다란 ‘감사함’그 자체였습니다. 지난번 광복절 노동으로 아직 정상적인 몸 상태는 아니지만 미처 행하지 못한 일들이 눈에 밟혀 주저앉고 싶은 심신을 추스르며, 오랜만에 하사하신 햇볕선물을 온몸으로 흡수하고 그 기쁨에 충만되어 있을 다락골로 달려왔습니다.

 이번에도 옆지기가 옆자릴 채워줍니다. 광복절 날 중노동으로 힘든 하루를 보낸 후부턴 다신 그 곳에 가지 않겠다며 ‘힘들게 일하지 말고 나무나 심자'며분노가 들끓었던 그 사람이였는데 아이러니 하게도 막상 떠날 시간이 다가오자 반찬을 챙기다, 얼굴타지 않은 크림 챙긴다. 자기가 먼저 설쳐 됩니다. 수능이 100일도 남지 않았는데 자기는 늘 찬밥신세라며 고3딸아이가 툴툴 거립니다.

 도착과 동시에 누가 먼저랄까 경주하듯 달려갔습니다. 지난 광복절날 엉성하게 만들어 놓았던 고추건조장은 고마운 햇볕덕분에 제법 고추가 기대이상으로 말라있었습니다. 손으로 만져보니 물고추 때와 전혀 다른 촉감이 느껴졌습니다. 마냥 기분이 좋았습니다. 옆지기도 흐뭇해 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지난번에 못다 딴 고추를 수확하겠다고 소쿠리를 챙겨들고 부산을 떱니다.

 밭주변에 빙둘레 심었던 대학찰옥수수가 풍성한 수확물을 남긴 체 다른 작물과의 임무교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건너편 외양간 소먹이 감으로 주기위해 낮으로 배어내어 가지런히 밭둑 한편에 모아두었습니다.


 더위를 피하고 픈 소망에서 퇴비며 규산질 비료를 손수래에 가득 실고 삽과 괭이 쇠스랑 등 연장을 챙겨들고 들판에 나갔습니다. 지난번 깨를 수확한 곳과 계절의 별미를 잃어버린 오이 밭을 정리하여 김장채소를 심기위한 채전일구기 작업을 하기 위함입니다. 

 살랑되는 바람에서 시원함이 더합니다. 

 가을이 턱밑이라서 그런지 상쾌함이 더해옵니다. 

 여름철 내내 수확의 기쁨을 안겨 주었던 오이 밭은 미쳐 수확시기를 놓쳐버린 못생긴 늙은 오이들이 즐비합니다. 줄기를 제거하며 모아놓은 노각들이 한바구니 가득 됩니다.언제 나왔는지 옆지기가 어제 미쳐 다 따지 못한 고추수확에 여념이 없습니다. 주변 들녘에도 이웃들이 서둘러 나와 들 거지에 열심들입니다. 

 퇴비, 규산질비료(석회비료 대용),복합비료, 붕사를 흩어 뿌리고 쇠스랑으로 땅을 파고 이랑을 만들려니 꼭두새벽인데도 금세 땀으로 흥건합니다. 

 옆지기가 삶아 놓은 찰옥수수로 아침을 대신합니다. 바로 따 먹는 옥수수맛은 그 맛을 더합니다.  주변이웃들과 나누어 먹을 김장용배추를 300포기심기로 예정하고 밭을 정비합니다. 배추모종은 9월 첫째 주에 종묘상에서 구입하여 이식하기로 계획하였고 무 씨앗은 다음 주에 파종할까합니다. 다행히 이웃집건조장이 여유가 있어 이번 고추건조는 그 집에 도움을 청하기로 했습니다.  

 어제 저녁부터 정오까지 옆지기 혼자 따낸 고추가 작은 산을 만들었습니다. 대충보아도 80kg은 넘겨 보입니다.

 정오를 넘어선 시각에 들어선 하우스건조장은 찜질방이 따로 없었습니다. 숨이 훅훅 막히고 땀이 줄줄 흘러내립니다. 고추를 다 펼쳐 널고 쉼터로 건너와 기진맥진하여 방바닥에 들어 눕고 말았습니다. 두 시간 가량 휴식을 맛보았습니다.

  근로후의 휴식은 진정 단맛 이였습니다.

 옆지기가 자긴 일 끝냈다고 길 막히기 전에 상경하자 성화입니다. 

 지난번 돌풍에 쓰러진 검은콩 밭이 이내 마음이 걸립니다. 태양이 잠시 구름에 모습을 감춘 사이 콩밭에 들어갔습니다. 보라색 꽃들이 한참 피어나고 있고 노린재 녀석들이 몇 마리 모습을 보입니다. 돌풍에 쓰러져 서로 얽히고 설키고하여 어느 것은 통풍이 되지 않아 썩고 있었습니다. 검은콩은 쓰러져 줄기가 땅에 누워버리면 꼬투리가 썩어 버려 꼬투리가 달리지 않는다 하기에 쓰러진 포기하나하나 세워주고 말뚝을 박아 지지대를 세워주었습니다. “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하나 없다”하더니 쓸어져 빛바랜 녀석들에게 애증의 정을 더 해 줍니다.



  S형!

  지난 서산모임에서 형을 처음 뵈었습니다.

  채 한 시간도 안 된 시간, 몇 마디 나누지 못한 대화였지만 곧은터을 공유하고 흙을 사랑하는 마음이 동하여 우린 시나브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마치 백년지기처럼 정도 나누었습니다.

  물 한 방울 아켜하신 몸에 밴 검소함과 근면함을 애써 따라 실천하려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무의식이 몸에 밴 형을 따라 하기엔 아직 역부족입니다.

 오는 9월에 또 다른 모임이 있다 합니다. 형의 해 맑은 살인미소가 영사기의 영상처럼 푸른 하늘이 온통 스크린 되어 내게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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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나기가 유별나다.

 ‘장마철’이란 용어가 사라지고 ‘우기’라는 용어가 사용된다 한다.

장마가 끝났다는 애기가 나오기가 무섭게 그 말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하루를 멀다하고 하늘은 처음 져본 물지게 양동이가 넘쳐 흘러 물줄기가  줄줄 세 듯 멈출 줄을 모른다! 수확기에 내리는 강우는 농심을 더욱 지치게 했다. 지난 주말엔 계속되는 비바람에 농장에 대한 궁금증만 더 한 채 집에서 빈둥거렸다. 지지난 주말 소낙비와 함께 갑자기 몰아친 돌풍으로 인해 쓰러지고 찢어지고 뽑히고 꺾이고 하는 참담한 상황 속에서 쓰러진 검은콩 밭만 간신히 일으켜 세우는 시늉만 겨우 하고 더욱 굵어지는 빗줄기속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애써 외면하며 근심, 걱정, 애태움을 마음속에 갈무리하고 그곳을 철수해야 만했다. 먹고 살아가는 생활전선 속에서 간혹 가는 시내 밖 출장길에서 창가밖에 펼쳐 진 타인의 농작물들을 마치 내가 키우고 있는 작물인양 착각 속에  우둑 커니 근심어린 눈빛으로 바라만 보았다. 주말에만 방문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한탄하면서 일주일하고 삼일을 마음고생하다 하루 웬 종일 쏟아지는 비바람 속에서 하늘만 바라보며 하소연만 할 수 없어, 힘겹게 싸워 가고 있는 나의분신들은 성원하고 격려하고픈 바램에 광복절 휴일을 맞아  어둠의 카렌이 짙게 드리워져 적막감에 휩싸인 다락골로 달려왔다. 국지성 호우 영향으로 인천에서 당진으로 오는 서해안 고속도로의 주변날씨가 수시로 바뀌었다. 인천에서 평택까지 억수같이 내리던 비가 서해대교에 올라서니 빗줄기가 가늘어지기 시작하더니 다락골에 들어서니 주춤해 진다. 짐 꾸러미조차 차에 그냥 남긴 체 손전등 하나 급히 챙겨들고 밭 주변을 살펴본다. 화들짝 놀라 숨소리를 죽이는 풀벌레들로 주변이 삽시간에 조용해진다. 호우에 밭둑이 한군데가 무너져 내려있다. 내일의 작업 상황을 점검하고픈 마음에 발길을 깨밭으로 옮기니 몇 걸음 못가 신발이 푹푹 빠져 이동하기가 수월치 않다. 질퍽하게 빠지는 밭가에 서서 하늘을 쳐다본다. 별 하나 보이지 않는다.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는다. 채 어둠이 아직 물러가지 않은 시각에 작업복을 챙겨 입으니 옆지기가 따라 나선다.작업도구를 챙겨들고 깨밭에 들어선다. 질퍽거리는 흙속에서 물기가 줄줄 흘러내리는 깻대를 하나씩 절단하여 가지런히 정리한다. 지난번 돌풍에 꺾이어버린 것들은 줄기자체가 녹아내려 버렸고 꼬투리하나 성한 게 없다. 어느 것은 꼬투리마다 새싹이 수북이 올라온 것도 있다.주변의 모든 농가들이 모두들 참깨가 참 잘되었다고 칭송했었다.

깨가 너무 좋아서 화를 입었다 했다. 한 번의 돌풍으로 꺾여버린 작물은 하루도 쉬지 않고 내리는 게릴라성 폭우로 인해 영영 소생의 길을 잃어버린 것 같다. 하나하나 정성들여 잎을 다듬고 묶기 좋게 정리하여 양지바른 곳에 펼쳐 말린다. 속 타는 농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날씨는 변덕을 부려댄다. 사이사이 푸른하늘이 보인다 싶어 기뻐하니 어느 틈엔 검은 먹구름이 몰려와 소낙비로 돌변한다. 옆지기와 힘을 모아 비를 피해 놓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햇살이 다시 돈다. 습기를 더한 무더위 때문에 심신은 지쳐간다. 갈증은 더 해지고 마셔대는 물 때문에 물배만 불러온다. 뱃속이 출렁 댄다 옆지기가 푸념을 늘어놓는다. 머리가 띵하고 얼굴엔 핏기가 없다. 원두막에 누워 버리고 푼 욕망이 자꾸 충동하지만 해야 될 일들이 눈에 보여 잠시도 쉴 여유가 없다.

 두 번째 고추수확이 예정되어 있다. 고추는 2~3번째 수확 할 때가 양도 많고 때깔이 제일 좋다고 한다. 첫 번째는 과육이 두꺼워 색깔이 검게 나온다 한다. 고추건조를 서로들 맡아 주시겠다던 분들이 얼굴조차도 보여주지 않는다. “내 코가 석자”라더니 ,계속되는 강우로 건조장마다 미처 말리지 못한 물고추로 넘쳐난다. 건조장 밖에는 골아 터져 썩어버린 고추들로 보기가 흉하다. 평소 같으면 보통 1주일이면 완전 태양초로 건조가 가능하다 하나 현재 처한 상황은 일조량 부족으로 10일이 지나도 마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한다. 고유가로 건조기 사용을 생각하지도 않고들 있다.

 속 타는 마음을 진정할 수 없었다.

고추밭은 계속되는 강우로 인해 미처 수확 못한 홍고추들이 과육이 갈라져서(열과 현상) 그 속으로 빗물이 스며들어가 과육이 썩어버려 빨간 껍데기만 남긴 체 보기 싫게 고추 골 주변에 어지럽게 널러져 있다. 대충 보아도 나무 하나당 2-3개 이상씩이다 그래도 우리 것은 나은 것 같다. 이웃 밭은 요소비료를 웃거름 시비하여 상태가 더 안 좋아 보인다. 계속되는 빗속에서 영양분까지 공급되었고 절재하지 못하고 흡수 하다 배가 터진 것 같다. 그 집 밭 고추나무 밑에는 빛바랜 붉은 고추가 수북이 나뒹굴고 있다. 날씨를 예측할 수 없어 하도 안타까운 마음에 빗속에서 고추수확은 강행했다. 하시며 살아생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하시며 이웃 어르신께서 혀를 찬다. 하늘은 언제 몰려 왔는지 온통 먹구름이다. 금방이라도 한바탕 쏟아질 것만 같다.

 “결정을 해야만 한다.”

오늘 고추를 따느냐 마느냐. 만약 수확한다면 고추 건조는 어떻게 할 것이냐. 깨밭 정리작업을 임하면서 너무 지쳐 고추수확은 토요일에 하기로 잠정 결정했었다. 그러나 살펴본 고추밭 상황은 너무도 좋지 않았다. 나무마다 가득 들어찬 홍고추가 한두 개는 터져있고 그중에서 몇 개는 속이 썩어 물컹거린다. 홍고추 하나에선 탄저병 이상 징후도 발견된다. 점심을 먹은 둥 마는 둥하고 고추를 따기로 결정했다. 사태의 심각성에 여망이던 태양초 고추 만들기를 포기하고 기계건조방향으로 결정하고 이웃 어른께 알아봐 달라 말씀 드리니 그쪽도 사정이 좋지 않아 토요일이나 건조가 가능하다 하신다. 건조비용은 1근에 1500원이라신다. 옆지기는 수확하여 택배로 처갓집에 보내 처갓집 옥상에서 건조하자 했지만 어차피 한 번은 걸쳐가야 할 상황이라 판단하고 간이건조장을 만들기로 했다. 옆지기에게 고추따는것을 부탁했다.

 정오를 넘어선 날씨는 폭염 그 이상이었다.

 어여삐 여기셔 그랬는지 여우비만 살짝 뿌리고 햇볕이 강하게 내리쬔다.

고추를 심을 때부터 건조문제가 항상 숙제였다. 간이 건조장 건립를 염두에 두고 필요한 자제를 준비 했었다. 하우스용 무적비닐이며 활대며. 파이프 등을 준비했었고 여름휴가를 이용하여 건조하겠다 계획도 세웠었다. 그런데 이웃집에서 서로 말려주겠다. 하기에 슬며시 그 계획을 접은 게 불행하게도 오늘 혹독한 대가를 치루고 있다. 폭염속 땅밑에서 올라오는 열기 속에서 바람도 미동하지 않는 고추나무사이에서 숨소리까지 길게 내쉬며 고추수확하는  옆지기가 애처롭게 느껴진다.  한 번도 만들어보지 않았던 건조장을 만들려니 실수투성이고 엉성하기 짝이 없다.  햇볕이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쉼터 뒷마당에 장소를 정하고 땅위에 함석판을 깔고 그 위에 야외용 돗자리를 쫙 깔았다. 그 위에 검은색 차광막을 펼치니 폭 2m에 길이 12m의 건조장 바닥이 완성된다. 함석 한쪽에 드릴로 구멍을 뚫고 반대쪽은 쉼터 벽체와 연결된 나무마루에 구멍을 내서 두 구멍끼리 활대를 연결한다. 그 위에 하우스용 무적비닐을  씌우니 보기에 엉성한 간이 건조장이 만들어 진다. 양쪽에 문틀을 설치하니 이젠 제법 모양이 갖추어 진다. 6시간가량 혼자 고추 따기 하던 옆지기가 짜증을 내기 시작하고 하늘은 온통 먹구름뿐이다. 벌써 주변은 어둠이 몰려온다. 마음은 급해지고 손길은 빨라진다. 서둘러 오전에 베어낸 깻대를 가지런히 정리하여 단으로 묶어 원두막에 피신시킨다. 빗방울이 하나둘씩 떨어지기 시작하고 만들어진 건조장엔 물고추가 하나둘씩 채워졌다.


22시가 넘어선 시간인데도 당진에서 인천으로 오는 서해안 고속도로엔 차들이 가득하다. 간간히 내리는 빗길 속에서 차들이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옆지기와 둘이서 태어나서 육체적으로 가장 힘든 하루를 보낸 것 같다. 어둠이 채 물러가지 않은 새벽 4시경에 일어나 그 어둠속에 다시 묻혀버린 저녁9시까지 허기를 체우는 시간만 잠시 비우고 커피 한 잔 편히 즐길 여유도 없이 연속된 노동에 빠져 들었다. 한계상황을 극복해 보려했다.

 더우면 덥다. 추우면 춥다했다.

엄살을 피우고 현실을 부정하려 했다.

자신의 편의를 위해 자연을 무시하기로 했다. 얼음이 어는 시기엔 얼음이 얼어야 했고, 햇볕이 강한시기엔 강한 햇볕이 있어야 했다.

오늘 가마솥더위 속에서 내리쬐는 강렬한 태양빛은 나에겐 큰 위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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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월 8월 6일 블로그 누적 방문객이 20만을 넘어섰다.

그동안 "다락골 사랑을 찾아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2년전 그러니까 2005년 5월 중순쯤으로 기억된다.

주야가 바뀌는 근무형태 속에서 적응을 잘못해 직장생활에 염증을 내던 옆지기의 행동이 평소와 다르게 느껴진다. 퇴근 후나 휴일엔 피곤에 쩌들어 늘 지쳐 쓰러져 잠자기 바쁜 사람 이였는데 어느 날부턴가 갑자기 집을 비우는 횟수가 늘었다. 친구들과 꽃놀이 간다.동창회가 있다. 둘러대는 이유도 제각각이다. 6월초부턴 외출하고 돌아오면 내 눈치부터 살핀다. 행동이 부자연스럽고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감이 잡힌다. 무슨 말을 할까 하다가도 그냥 지나쳐 버린다. "무슨 일이 있긴 있구나?"불안한 마음을 애써 억누르고 평상심을 갖으려 노력했다. 6월 20일경 일요일 이였다. 늦으막히 일어나 거드름을 피우고 있는데 아침 먹걸이를 준비하던 옆지기가 안방으로 들어왔다. 무언가 결심에 차있는 비장한 얼굴이었다. 우둑 커니 창가를 주시하던 그녀가 불쑥 한마디 내 뱉는다.

"나 없이 살 수 있어"

"아니, 이 사람이 아침부터 무슨 말장난이야."

긴장되는 모습을 애써 감추며 버럭 소리쳤다. 일순 무거운 적막감이 어깨를 짓누른다.

"흥분하지 말자", "흥분하지 말자" 자기체면으로 마음을 다스리려 애쓴다.

"할애기 있으면 한번 해 보시지"

서슬 퍼런 감정 섞인 목소리로 내 뱉는다.

"솔이 아빠! 내가 당신한테 시집와서 하루도 안 쉬고 고생했잖아."

그건 그렇다. 백화점에서 근무하며 잘 나가던 여자를 철 바뀔 때마다 옷 사주고 맛있는걸 많이 사주고 어쩌고 저쩌고 해서 꼬드겨 5살 차이의 나이를 극복 하고 꽃보다 예쁜 나이에 나를 따라왔던 사람이었다.생활력 강한 친정어머님 밑에서 자라. 결혼하고도 이일저일 가리지 않고 열심히 살아 왔다.

"뭔데 그래, 당신 행동 영 못 마땅하네.많이 어색해 보여,무슨 일 있어?"

언니 따라 당진에 놀러갔다했다. 그곳에서 땅을 하나 샀다했다. 벌써 계약금까지 치렀다 했다.

언니가 전에부터 알고 계시던 농협소장님이 소개 해줘 보기도 좋고 욕심이나고해서 샀다했다.

산자락에 위치한 농가주택이 딸린 조그마한 밭이라 했다.

뒷동산에 온갖 꽃들이 만발하고 커다란 은행나무가 두 그루가 있다 했다.

집 앞은 뚝 터져 막힘이 없고 논으로 펼 쳐져 있다고 했다.

말없이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자 언제 그러했냐는 듯 설명하기에 신명이 나있다.

나만 모르고 친정식구들은 다 알고 있다 했다.

인천에서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는 처제 내외도 잘 알고 있다 했다. 동서가 동행하여 몇 번 그곳을 방문했다고 말한다.

"나만 모른다고," 배신감이 밀려 왔다.절제하지 못하고 버럭 소리쳤다.

"당신이 복부인이야. 그곳에서 뭘 하려고 그래?

이 아줌마가 미쳤어 겁도 없이, 당신이 농사를 지을 줄 알아. 당장 물려 빨리!"

목소리를 높여  소리를 질럿지만 한편으로 안심이 된다.

도시에서 벗어나 살아본적이 없이 오직 도시에서만 살아오다 나와 맺어져서 결혼 후 계속 인천에서만 삶을 일구다  일 년에 겨우 한두 번씩 그것도 아버님 기일 아니면 명절 등 특별한 날에나 머나먼 남쪽 끝 보배 섬에서 팔순의 시어머니가 가꾸어 놓은 곡물이며 채소들의 신비감에 사로 잡혀 마냥 좋아하는 호미한 번 잡아보지 않은 전형적인 도시 아줌마가 사고를 친 것이다.

농사꾼의 자식으로 물려받은 DNA때문에 화초 가꾸기가 즐거워 아파트 베란다 빼곡히 화초를 가꾸는 내가 좋아 할 것 같아 노후를 생각해서 구입했다 둘러 댄다.


농사!

솔직히 나는 농사에 자신이 없다. 아니 싫다.

농사를 주업으로 하는 시골에서 낳고 자랐지만 농사에 대한 좋은 감정은 쉽게 찾아 볼 수 없다.

늘 지쳐계시던 얼굴. 바람 많이 분다고 걱정. 비가 많이 온다고 근심. 비가 오지 않는다. 애태움, 하루하루 마음편이 쉴 수 없는 여유…….

"농사는 우리 대에서 끝낼 테니 너희들은 절대 농촌에선 살 지마라."

틈만 나면 입버릇처럼 소망했다. 자신들의 평생 직업 농사에 대한 부정적 사고는 자신들의 삶이 떳떳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노력한 만큼 보상 받지 못한 현실이 안타까워 그리하셨을 것이다. 이상과 현실사이의 괴리가 너무 커 선뜻 자신들의 가업을 쉽게 자식들에게 물려주기가 싫었던 것이다.

 인간은 환경에 동화되어 살아간다 했던가! 농사의 깊은 뜻은 잘 모르지만 철모르는 마나님께 “너희가 농사를 알아” 반문하고 싶었다.

 제발 해약해라 설득하고 강요하고 별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도 한번 결정한 내용을 원상 복귀시키려 들지 않는다. 자기가 시집와서 맨손으로 벌어드린 것만으로도 그걸 구입하려 들면 충분하다며  자기가 결정한 일이니 묵묵히 따라 와달라 집요하게 고집을 부린다. 평소에 서방 말이라면 싫든 좋든 내색 한번  안하고 잘 따라주던 사람이라 한편으론 당황스럽고 또 한편으론 어이없기까지 하였다.밭뙈기의 규모가 얼마인지, 얼마주고 샀는지, 대금마련은 어떻게 할 것인지,하나도 관심 없는 척하고 "당신이 무턱대고 저질은 일이니까 당신이 알아서 해결하라" 강요하니 "자기혼자 좋아서 산 것도 아닌데 그것도 이해 못 해주냐, 당신하고 살기 싫다. 애들은 당신이 맡고 해어지자. 위자료 빨리 내놓아라. 그 돈으로 잔금 치루겠다"말도 안 되는 생트집을 앞세우며  자신의 결정에서 한 발짝 후퇴할 기미를 전혀 보이질 않고......

 나를 향하는 옆지기의 주절대는 잔소린 시간이 갈수록 더 거칠어 졌다.

 행정신도시다, 미군기지이전이다, 서해안권 개발특수다. 개발호재로 눈먼 분들의 투기행렬은 줄을 서고 여기저기서 부동산 광풍에 휘청거리던 시기였다. 그 곳 당진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되어 7월1일부턴 모든 토지거래가 묶인다며 그 이전에 등기이전까지 마쳐야 한다고 땅을 소개한 분의 애타는 목소리는 처음엔 옆지기 휴대전화로만 울려 퍼지더니 6월말이 가까워서는 집전화까지 부산을 떤다.

 설득 자체가 불가능해 보였다.

 말 한마디만 옮기려고 해도 불같이 화를 냈다.

 빨리 이혼하자 징징 댔다.어느 순간부턴가는 자기가 행한 일에 체념을 했는지 오직 나의 처분만을 기다리는 느낌이 들었다. 마음고생 그만 시키자. 혼자 잘 먹고 살자 한 것도 아닌데.......조금은 괘씸했지만 마음을 접기로 했다. 계약금도 아깝고 해서…….

 결정하니  일사천리로 일은 진행되었다.

 


7월 첫째 주 일요일 우편으로 보내온 등기문서를 손에 쥐고 당진으로 갔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이용하니 인천에서 그 곳까진 한 시간 남짓 거리상으론 약 100km.

충남 당진군 당진읍 대덕1리 198-208.속칭 "다락골"로 불러지는 마을이 그 곳에 있었다.

"은행나무집 땅 산 인천사람들인가 봐여."

"인천에서 어떻게 농살 짓겠다고, 돈 자랑하려구 잡아 놓았나보구먼 ."

"외지 것들이 들어오면 동내 다 버리는데 ……."

"이제 그 밭 금방 산 되겠구먼, 농사 제대로 하겠어."

...........

흘러지나가는 수군거림을 외면했다.

잎사귀를 다 따버린 담배나무만 앙상히 서 있고, 붉게 익어가는 고추들이 옛 기억을 회상하게 했다. 어색한 모습으로 밭을 한 번 빙 둘러보고 산자락과 밭의 경계지점에 조립식 판넬로 지어진 주택에 들어서니 할아버지, 할머니 두 분이서 낯선 손님을 바라보고 어리둥절 하신다. 땅을 계약하면서 서로 안면이 있을 탠데......

느낌이 안 좋았다. 허겁지겁 집안을 대충 둘러보고 쫓기듯 집을 빠져나와 옆지기에게 따져물으니 자기도 주인은 오늘 처음 대면한다 하며 모든 계약은 소개시켜준 분에게 위임하여 처리했다 한다.

 "직접 계약서를 작성 안 했다고……."

 순간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뭔가 잘못되어다는 느낌이 언뜻 스쳤다. 나도 그랬다. 서류를 하나하나 꼼꼼히 챙겨야  했었는데 옆지기와 오랜 실랑이 속에서 고집만 부리며 시간만 허비하다 마감시간이다 되고서야 서두르는 양 촉박한 일정 속에서 우편으로 보내준 등기부등본과 도시계획확인원만 겨우 확인하고 선뜻 잔금을 송금했었다.

예상대로 일은 꼬여들었다.

칠순의 고령에 농사일하기가 힘에 부친다고 이곳 터를 정리하고 당진읍에 2층 단독주택을 마련했다는 분들이 겨울이 다가와도 집을 비워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집은 밭과 산자락 경계에 위치하고 있는 등기부상에 나타나지 않는 집이였다. 건평이 대략 30여 평인 조립식으로 지어진 주택이었다.

옆지기는 땅값에 집값을 더해서 값을 치렀다하고, 그분들은 밭만 팔았지 집은 애기도 없었다며 집이 필요하며 집값을 더 달라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매매하겠다고 생트집을 잡는다.

"내가 인천에서 웃돈까지 올려주며 이 따위 밭뙈기만 보고 땅을 잡았겠냐, 주말에 쉬어갈 집이 있어 잡았다고 목이 쉬게 주장했지만 그 분들 앞에선 공허한 메아리로만 다가서는 것 같았다.

 사건의 처음과 끝은 이랬다.

 부동산 거래에 있어 제반 사항을 확인하고 주인과 직접 계약서를 작성했어야 함에도 우리는 소개시켜준 분의 말만 믿었고, 소개 시켜주신 분은 집주인이 서로 이웃에 사는 먼 일가친척이여서 서로 좋은 것이 좋다고 밭만 팔면 응당 집도 따라갈 것 아니냐면서 안이하게 생각하신 것 같다.그래서 집에 대한 내용은 두 분이 작성한 계약서에도 빠져있었지만 집값이다하고 웃돈을 더 쳐 드린 건 서로들 인정하고 있었다.한푼이라도 더 받아내고픈 욕심때문이였다.

"돈 앞에서 처자식도 없다 했던가."

 시간이 지날수록 계약을 그따위로 했다면 나의 옆지기에 대한 추궁은 계속 되고 일은  쉽게 해결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옆지기는 옆지기대로 괜히 일 저질러 이혼까지 하겠되었다고 이쪽저쪽에 통사정해도 소용이 없었다.  조용히 해결되길 기대했다.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들려오고 상황은 계속 꼬여만 갔다.지적공사에 의뢰해 측량을마쳤다.내 땅에 지어진 집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 굴삭기로 철거하겠다고 시한을 정해 통보하고 옆으로는 소개시켜주신 분께 강요하여 요구하는 금액을 최소화시켜 일을 일달락지었다.

사소한 부주의에서 오는 결과는 그 대가를 요구 했다.


 지난 시절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금이지 옥인지 아끼며 길러주신 분들의 은혜에 힘입어 그분들이 하시는 일은 그분들만의 일 인양 게으름만 때우며 흙냄새만 맡고 자란 나였다. 해 뜨며 논밭에 나가고 해가 지면 들어오는 연속된 일과 속에서도 궂은일 하나 시키고 싶지 않은 그분들의 욕심 속에서 농사일은 내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인 양 착각 속에서 살아오다 작년 봄 처음으로 다락골에 감자를 심었다. 몸속에 내제하며 살아 움직이는 농사꾼의 유전자로 인해 옆지기의 예상치 못한 돌출행동으로  마련된 터전위에 씨를 뿌렸다.

 집안에서 먹다 남은 푸릇푸릇 싹이 난 것, 이집 저집에서 조금씩 동냥한 것과 시장바닥에서 부족한건 구입하여 어렸을 때 기억을 끄집어내 씨감자를 칼로 절단하고 절단면을 소독한답시고 나뭇잎태운 재를 묻혀  심었다. 동네 분을 고용하여 관리기라는 것으로 땅을 파고 우리 내외와 처재내외가 합세하여 갈아 엎어놓은 땅에 한사람은 앞장서서 일정한 간격으로 구멍을 뚫고 한사람은 그 구멍에 복합비료를 한 줌씩 집어넣고 그 다음 사람은 씨감자를 하나씩 집어넣고 마지막 사람은 흙을 채워 마무리 한 다음 하얀 비닐로 이랑을 씌웠다.

 직접 키워 수확한 감자를 쪄서 먹을 생각에 모두 신이 났었다.

 강원도에서 부친께서 감자농사를 대량 재배한다는 회사동료의 조언을 대충 흘려듣고 처음 하는 농사에 정성을 다했다. 그렇게 대략 100여 평에 감자를 심었다. 2~3주가 지나면 그 곳에서 푸른 싹이 올라올 거라 했다.

그때 그 부위를 상처 안 나게 비닐만 살짝 찢어주고 흙으로 채워주라 했다.

 3주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가도 100여 평의 감자밭에선 애써 눈 씻고 찾아보아도 푸른 싹은 보이지 않았다. 25m가 족히 넘은 감자 골에 많으면 하나 아니면 두개 그 나머지 대부분은 텅빈 골, 감자 100여 평 심어 4그루 생존에 감자알 달랑8개 수확.

 열무도 그랬다.

 싱싱하게 자란 이웃집 밭의 열무가 보기가 좋았던지. 옆지기가 우리도 열무를 한번 심어보자 했다. 초기 생육상태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수확기를 앞둔 주말에 방문하니 그게 채소밭인지 벌레사육장인지 …….우리는 또 다른 아픔을 경험해야 했다. 이름 모를 벌레들이 열무 잎사귀를 다 갉아먹어 버렸다.

 고추도 심었다.

 청양고추 50그루, 일반고추 150그루 기억을 더듬어 고추에서 발생하는 벌래와 탄저병예방에 고생하시던 어르신들의 모습에서 그것들만 잘 관리하면 고추농사는 끝나는 줄 알았다. 장마는 시작되었고 여기저기서 고추나무가 시들어 갔다. 시들음 병엔 약도 없다는데 풋고추라도 따먹겠다는 욕심에 그냥 지나친 게 화근이 되었다. 여기저기 시들다 말라버려 볼썽사납게 변해버린 고추밭을 바라보며 형용할 수 없는 창피함을 감내해야만 했다.

 5월 봄 가뭄에 씨앗 뿌린 참깨 밭은 종자들이 발아가 되지 않는 관계로 온 밭에 쇠비름의 천국으로 변해 버렸고 새때들의 줄기찬 공격에 콩 씨앗만도 3번을 파종해야만 했다.

 거름시기를 잘못 맞추어 녹아내린 김장 배추 모종 때문에 2번의 모종을 이식해야만했고 한창 성장기의 무에 욕심을 너무 부려(너무 물을 많이 줌)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손상시켜 버렸다.

 노력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새벽부터 일어나 풀을 뽑았고 틈만 나면 작물들에게 물을 뿌렸다. 좋다는 비료는 다 사 날랐고 바람 불면 바람 부는 데로 비가 오지 않으면 오지 않은 데로 가슴앓이를 했다. 현지 주민들께 마치 점령군의 모습으로 비추어지지 않을까 숙고했고 생각해서 행동했다. 

 "다 때려치우고 시골 내려가 농사나 지을까." 이 말의 거짓됨을 쉽게 터득도했다.


 2006년8월 초순 이였다.

 아파트 동내 분들과 어울리는 친목계에서 "산청목"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컴퓨터를 검색하면 잘 알 수 있다 했다.

 "검색"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이전에는기껏해야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가끔 앉아 고스톱이나 치는 게 고작 이였다.

 살아 숨 쉬는 좋은 정보들이 가득했다.또 다른 세상이 거기에 있었다.

 주말에는 다락골에 가서 땀을 흘렸고 놀이감을 놓쳐버린 아들놈의 저항을 묵살하고 주중에는 틈만 나면 컴퓨터 앞에 앉았다. 하루가 멀다 달려가더 당구장도 발길을 끊었다. 친구들과의 만남도 줄이고 카페라는 곳에서 새로운 친구도 사귀었다. 불로그도 개설했다. 글도 써보고 스크랩도 해 오고 남의 자료도 주인 허락 없이 살짝 가져오기도 했다.

 애써 올린 글 그냥 가져온 점 진심으로 사죄드린다.

 내가 블로그에 집착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다.

 철저한 준비를 위해서다. 

 이론과 실제는 어느 정도의 괴리가 발생한다. 서로 정보를 공유하여 철저히 대비하면 조그마한 시행착오라도 미연에 방지하지 않을까  하는 바램이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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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이 트기 전인데도 끈적끈적하다.

 바람의 움직임은 없고 하늘은 온통 먹구름 투성이다.

 들짐승들의 지져 기는 울음소리는 꽤 소란스럽다. 냇가에서 스트로폼통에 하나 가득 강모래를 퍼 담아 들고 왔다. 잠깐 인데도 땀이 비 오듯 하다. 개구리지 맹꽁인지 울음소리가 거칠어진다. 쉼터 뒤뜰에 심어져 있는 주목나무에서 올해 자란 새순을 가지런하게 잘랐다. 시기는 놓쳐버렸지만 삽목을 한번 해보고픈 미련 때문이다. 약 15cm길이로 가지런히 잘라 물에 담가 놓고 미처 손보지 못한 밭 주변 잡초제거와 옥수수 수확과 동시에 옥수수 대는 베어낸 자리에 들깨모종을 이식한다.

 스산한 바람이 분다.

 갑자기 공기가 바뀌는 느낌이 든다. 찬 기운이 일순 느껴지는 동시에 갑자기 뇌성을 동반한 소낙비가 세차게 퍼붓는다. 옆 밭에서 참깨 순지르기를 하려 오셨던 어르신부부가 서둘러 퇴장한다. 소낙비와 함께 돌풍이 불고 순식간에 펼쳐지는 광경은 딴 세상에 온 착각이 든다.

 세찬 돌풍에 감나무 가지가 짝 갈라지며 한쪽으로 누워버리고 다른 한 가지도 전봇대에 겨우 의지하며 넘어지는 것을 힘겹게 참아내고 있다. 가지마다 주렁주렁 달려 올 감을 실컷 따먹건 네. 하던 옆지기의 기대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다.

 제때에 순지르기를 잘했다고 지나가던 분들이 듣기 좋은 소리를 많이 해주었던 검은콩 밭이 순식간에 커다란 통나무가 굴러간 모양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버리고 수확기에 접어든 검은깨(흑임자)대가 낫모양처럼 ㄱ자로 꺾여 바라보는 사람의 억장이 무너지게 한다.

 망연자실, 속수무책,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소낙비 속에 원두막에 비를 피한 채 지켜보는 이의 마음은 형용할 수없는 슬픔이다.

 하늘이시여!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눈앞에서 이런 암담한 모습을 보아야만 합니까?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절규해 보고픈 싶은 심정뿐이다. 손도 제대로 쓸 수 없는 초보농사꾼의 처음으로 겪는 자연의 중벌은 견디어 내기가 힘들다.



여름휴가를 얻어 고3 딸아이만 집에 남기고 옆지기와 아들놈은 동행하고 수요일 저녁 늦게 다락골로 건너왔다.

 산자락 아래 맞닿은 쉼터이지만 샌드위치판넬로 지어진 탓에 쉽게 달구어져 미쳐빠져 나가지 못한 열기로 방안은 찜질방이다.

 지난주부터 말썽을 부리던 냉장고를 소형으로 바꾸는 작업이 한밤중인데도 쉬 몸에서 발생하는 땀이 줄지 않는다.

 장마가 지나간 8월초입의 날씨는 무더위의 연속이다. 남쪽에서는 폭염주의보가 계속 발령되고 있다. 휴가 첫날 무더위를 피해볼 요령으로 아직 어둠이 물러가지 않은 농장에서 첫 번째 대학찰옥수수 수확작업을 진행한다.

 전지가위로 옥수수통을 하나씩 자르기에 정신이 팔려있는데 새벽잠이 없어졌다며 이웃집 할아버지가 낮을 들고 일을 거드신다.

 “옥수수작업은 이렇게 하던데, 며칠 전에 TV에서 봤어”, 옥수수통을 낫으로 이렇게 자르고 옥수숫대 밑동을 낫으로 이렇게 자르면 되, 옥수숫대는 저 넘어 소먹이는 사람이 가져가게 그냥 놔두게.” 하시며 연신 즐겁게 일을 도와  주신다.

“어르신 드시고 싶은 만큼 가져가세요.” 한마디 던지자 “예끼, 이 사람아 자네가 비싼 돈 들여 애써지은 농사인데 그렇게 하면 되나.”

“아니에요, 어르신 필요한 만큼 가져가 자식들도 주시고 그렇게 하세요. 우리농사의 스승은 어르신이시잖아요 어르신 필요하시면 마음껏  따 드세요.”

 250그루에서 대략 300개 이상의 옥수수통이 수확된 것 같다. 그 동안 신세진 이웃 분들께 한 바구니씩 나누어 드려도 아직도 200개 이상이 족히 남는다.

 이것들도 인천에 가지고가 주위사람들과 나누어 먹을 것이다.

“자네 그래가지고 뭘 남나, 그렇게 남 퍼주다 보면……”

“아니에요 나 한사람 노력해서 서로 나누어 먹으면 좋잖아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갖다 주어도 그때만 좋아하지 먹지 않고 버릴 때 속도 상하기도 해요, 그래서 올해만큼은 퍼주는 것은 그만하자 했는데 막상 닥치니 또 가가호호 배달해주어야겠네요, 어느 땐 허무감도 들 때도 있어요.”

 “뭐하려 이 짓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옆지기가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 던진다.


 11시 무렵부터 밖에 서 있어도 숨이 막힐 만큼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더위를 피해 이웃들이 집안으로 모두 피서를 갔는지 들판은 한가롭다.

 차가 없어 집안에 계시는 어르신 세 분들을 꼬드겨 나름대로의 피서를 떠나기로 한다.

 면천에 들려 시원한 콩국수로 점심을 함께하고 당진군 소재 관광지를 눈요기하기로 한다. 영탑사, 영랑사에 들려 시원한 나무그늘에서 잠시 더위를 피하고 성구미 포구, 왜목마을에서 바닷바람에 생선회 한 접시 즐기고 도비도 관광단지에서 난지도 해수욕장만 바라보고 더위가 한풀 꺾인 5시 무렵에 다락골로 돌아왔다 .계획된 첫 번째 홍고추 수확을 위해서다.“돈 많이 썼지."

미안해하지는 동네어르신들을 따스한 미소로 배웅하고 옆지기와 둘이서 올 첫 홍고추수확 재미에 빠져있다. 줄 줄 흘러내리는 땀으로 온 몸이 질퍽거렸지만 하나하나 선별해 가며 완전히 익은 붉은 고추만을 따내기가 보통 힘들지가 않다.

건고추는 이웃집 두 집에서 서로 말려주시겠다 하시니 그 동안 고추말리기에 대한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을 것 같다.조금이라고 푸른 기가 있으면 희나리가 생긴다며 완전히 붉은 것 만져보아 촉감이 부들부들한 것을 수확하라 누누이 이웃어르신이 강조하신 내용이라 정신을 집중하여 딴다하여도 가끔은 푸른 것이 하나 둘씩 발견되곤 한다. 한 리어카 가득 홍고추를 따가지고 이웃집 하우스건조장에 건너갔다. 지푸라기를 푹신푹신하게 깔아 놓고 그 위에 검은 색 차광막을 깔아 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 고추를 겹쳐지지 않게 차광막위에 펼치고 그 위 로 다시 한 번 검은색 차광막을 한 겹 더 덮어준다. 양 쪽 문을 개방하고 4~5일 건조 시키고 나서 위에 덮은 차광막을 벗겨 내고 사방을 통풍시켜 건조시키면 새빨간 태양초 고추를 얻을 수  있다 한다. 어릴 적 시골에서는 하우스건조장이 없어 아침엔 펼치고 저녁에는 걷어드리고 하는 일을 반복했는데 건조장에서는 그런 수고는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금요일 하루일은 쪽파 심는 것으로 일을 시작한다.

지난주 혼자서 다락골에 왔을 때 무료한 저녁시간을 보내려 가을 김장때 사용할 쪽파씨앗을 생각 없이 보기 좋게 다듬어 놓았는데 이번에 오니 그 종구에서 푸른 새싹이 한참 발생되고 있다. 쪽파종구는 파종할 때 손질하여 이식을 해야 됨에도 잠깐 깜빡 망각했었나 보다. 마늘 심었던 자리에 토양소독을 하고 완숙퇴비와 복합비료를 시비하고 종구를 심는다. 옆집어르신께서 김장용으로는 시기가 너무 빠르다며 김장용 쪽파씨앗은 자기가 줄 테니 걱정 말고 간격을 좁혀 밀식하여 파종하란다.

 태풍의 간접영향인지 습기가득 머금은 무더위가 강도를 더한다. 종구파종을 함께한 옆지기는 집안으로 도망가고...... 자랄 대로 자라 수확기가 가까워진 참깨 순지르기를 시작한다. 전자가위로 꽃의 끝부분을 절단한다, 이제 열매가 맺기 시작한 마지막부분 씨방에 튼실한 씨앗이 가득 차게 하기 위해 순을 절단해 주었어야 한다 했다. 어느 분을 절단해 주랴. 어느 분은 안 해도 된다. 의견이 분분하지만 곧은터에서 익힌 데로 작업은 진행된다. 참깨는 거름기를 줄여서 재배해야 한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완숙퇴비에 복합비료까지 시비하여 키가 장대처럼 커 다닥다닥 붙여야 된 열매가 듬성듬성 달려 속 빈 강정이다. 깻대속에서 파묻혀 작업하니 그 속에서 발생하는 열기 때문에 몹시 숨이 차다. 시원한 극장생각이 간절해 서둘러 작업을 강행하고 식구들과 함께 당진읍에 있는 극장에 갔다. 대학시절의 시대의 아픔을 함께 나누었던 기억을 더듬으며 슬픔에 잠긴다. “화려한 휴가”제목과는 영 어울리지 않은 시절의 아픔을 전혀 이해하지 못해 어리둥절히는 아들놈을 이해시켜드니 비록 몸은 에어컨 바람에 시원함을 감지하지만 등줄기에선 식은땀이 흥건하다. 잊혀 가던 그 시절의 영웅담을 아들에게 자랑스럽게 떠들어 대며 제법 시원해진 다락골로 돌아와 고추밭과 검은 콩밭에 약제를 살포한다. 주변 고추밭들은 역병에 감염되어 보기 흉한 모습을 더해 가지만 우리 밭만은 그 모습에서 저만치 비켜 있는 것같아 잔잔히 미소가 입가에 감돈다. 고추밭에서는 특별한 병증은 발견되지 않았으나 탄저병예방약을 위주로 약제를 살포한다. 어제 홍고추 수확 후 너무 왕성한 세력을 억누르기 위해 순지르기작업을 실시하였으나 그래도 약재 방제하기는 힘에 부친다. 검은콩 밭은 이름 모를 벌레들이 잎사귀를 갈아 먹은 흔적이 있어 살충제위주로 약재를 방제한다.

 

 불과 30분정도 내린 소낙비로 인해 그 동안의 노력들이 초토화되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기억조차 하기 싫은 처참한 모습들이다. 검은깨들은 깻대의 중간부위가 사정없이 꺾이어 서로 얽혀있고 검은 콩들은 쓰러지고 넘어지고 부러지고 서로 찢어지고,....... 녹두밭은 태풍 맞은 보리밭인양 쫙 누어 버렸다. 빗줄기가 가늘어진 틈을 타서 일으켜 세우고 북돋기하고 이리 살피고 저리 들여다봐도 나오는 건 한숨뿐이다.

“죽어나가는 사람들도 허다 한데........이까짓 돌풍에 넘어졌다고 그리 상심하세요.”

이제야 농부들의 아픈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겠다는 옆지기의 푸념을 양념삼아 쓰러진 콩들을 일으켜 세워주려 힘을 북돋는다.

 

 

 

 

 

 

 

 

 

 

"무슨 콩밭이 저렀담?"
"고라니, 썩을 것들이 손을 댔구먼!"
"콩밭이 형편없네. 저렇게도  보기 좋게 싹쓸이 했담."
"올 농사 망쳐구먼,빨리 뽑아내고 들깨나 얻어다 심던지 가을배추나 심어야 갰구먼."
콩밭 옆을 지나시던 두 분의 할머니가 수군거리는 이야기다.
지난주 전지가위로 과감히 순지르기 했던 검은콩 밭의 듬성듬성한 자태를 보고 말씀하신 것 같다.

장마 끝자락에선 계절은 습기를 가득한 찜통더위에 심신을 쉬 지치게 한다.
각자의 삶에 허우져거리는 모습에서 길동무 하나 마련 못하고 난생처음으로 외톨이 되어 작업복 꾸러미를 챙겨들고 길을 떠났다.
엊그제 세찬 장맛비의 영향 때문인지 휴가철 주말인데도 평소 주말보다 더 한가한 듯싶다.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강요는 하지 말자, 애써 자위해 보지만 텅 빈 옆자리를 채워주지않는 대상들의 공허감을 사무치게 절규하며 터덜터덜 비포장 길을 따라 다락골로 들어 왔다.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체 알아들었는지 고추며 옥수수, 콩들이 생기가 넘쳐난다.
꿀꿀했던 상념도 멀리 도망가 버린다."오길 잘했다." 다 내 탓인데 그 누굴 탓하랴.
기운이 충만 되고 모든 게 제자리로 자리를 찾아간다.
논, 밭에 약치 시랴, 김매기 하시랴, 예초기 돌리시랴, 거름 주시랴 들녘의 이웃들은 제각각 열중이시다.

 

 

차에서 내리는 동시에 고추밭부터 살펴본다.
한 해 동안 그깟 고추 20근도 못 먹는데 그놈의 고추 심어 도로에 뿌려 되는 돈이 얼마냐고
마눌의 푸념 섞인 원성이 메아리가 되어 날 서글프게 할 때도 하나둘씩 빨갛게 익어가는 놈들의 찬란한 모습에 모든 것들이 금세 상쇄되어버리고 만다.
 고추밭에 약제를 살포한다. 지난주까지 만도 기승을 부리던 담배나방은 어느 정도 방제가 된 듯싶다.
고춧잎에 흰 반점이 하나둘씩 발생되는 곳이 더러 관찰되었지만 병에 관한지식이 생소하고 준비한 약재가 없어 방제는 다음주에 상황을 보아가며 실시하기로 하고 탄저예방약을 위주로 약을 살포한다.
장맛비에 강한 햇볕의 영향인 듯 1주일 사이의 작물의 성장은 눈부시다.
고춧대의 키가 턱밑까지 자라 약 치기가 영 성가시다. 숨까지 막힌다.
이웃 밭에서 방아다리 고추를 수확하시던 어르신이 하던 일손을 잠시 멈추시고 건너오신다.
"고추 세력이 참 좋아, 키가 너무 커 순지르기를 해주어야 되겠구먼, 오늘은 약을 쳤으니 다음 주에 와서 이렇게 순을 잘라주면 돼." 하시며 직접 시범을 보여주신다.
"홍고추 많이 땄어요? 우린 방아다리고추를 모조리 따버려 붉은 게 별로 없네요."
"올 고추는 별재미가 없어, 자네 것은 깨끗이 잘 되었어, 벌레도 별로 보이지 않고 노력한 흔적이 보이는구먼, 우리 것은 삼 년째 계속되는 연작이라 그런지 고추가 많이 죽었어, 고추는 삼년연속 연작하면 많이 죽지." 어르신을 따라 어르신 고추밭에 건너가니 고추가 많이 죽어있다. 곳곳에서 시들시들 죽어가고 텅 빈 골도 여럿 보여 영 마음이 좋지 않다.
자칭 고추도사라고, 고추농사에 대해 열정과 자부심이 엄청 강하셨는데…….
밭둑에게 걸터앉아 힘없이 담배만 빨아 대시는 모습에 가슴이 미어진다.
 어둠이 밀려올 즘  쉼터 앞산자락에서 전에부터 찜해놓았던 개복숭아를 한대야  가득 턴다.
반은 벌레가 먹고 색이 누렇게 변해가는 개복숭아를 적막감에 짓눌리는 밤공기 속에서 혼자 있음을 망각하기 위해 깨끗이 씻고 또 씻어 설탕과 잘 버물려 한통가득 효소를 만들 준비를 한다. 

 

 

아침 일찍 원두막에 앉아 모처럼의 여유를 즐기고 있다. 지난주를 기점으로 밭엔 새로 발생하는 잡초가 현저히 줄어든 것 같다. 이식 하면서 잡초 제거겸 영양 보충을 목적으로 바크를 깔아 준 당귀는 참 잘 자라고 있다. 밭가에 심어놓은 녹두들이 제법 여물어 간다. 깨밭도 서너 개 넘어 진건 빼고 무난한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 조생종 매주 콩은 꽃이 피었다 싶더니 어느새 열매가 맺히기 시작했다. 농장의 수호신 은행나무의 열매들이 시시각각 알이 차기 시작했고 그 무개만큼이나 가지들이 죽죽 처져 간다.
장마의 영향인 듯 대봉시 감나무 밑에는 떨어진 땡감들이 나뒹굴고 있다.
보라색 흰색으로 범벅된 도라지 밭은 아담한 씨방들이 달리가 시작했고 설치한 더덕밭 유인 대엔 더덕줄기들로 뱅뱅꼬여간다.
이식한 들깨들이 자리를 잡아가고 이 주전에 이식한 대파모종은 많이 상해 보기가 흉하다.
상태를 보아가며 갈아엎고 쪽파를 심어야 할 것 같다. 비처 수확 못한 가지들의 색이 바래가고 오이망사이로는 늙은 오이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그 옆 작두콩들은 분홍빛 꽃봉오리를 터뜨리고 있고 꼬투리도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한다.
순지르기한 검은콩 밭은 분지마다 새로운 가지가 발생하여 삐죽삐죽 새싹이 올라오고 있다.
이론상으로 쉽게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들이 이해되는 순간이다. 하늘이 쾌청하여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릴 것 같다.
서둘러 옥수수 이삭거름주기와 밭주변 잡초 제거부터 일을 시작한다.
 늘 하는 반복된 생활인양 느껴지는 잡초와의 전쟁 너무 잘하려고 하지 않아도 잡초만 보면 손이 가만히 있지 않으니 전생에 이놈들하고 무슨 업보라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작물의 성장과 비례하여 잡초들의 세는 한풀 꺾이는 느낌이다.
옥수수수염들이 하나둘씩 갈색으로 말라가고 있다.
도중 몇 개는 비둘기들의 공격을 받아 망가져 있다.
아마도 다음 주면 소원하던 옥수수를 첫 수확 할 것 같다.
곧은터에선 옥수수열매를 하나만 남기고 다 제거하라 했다.
시장에서 팔 물건도 아니고, 워낙 옥수수를 좋아하는 주위사람들의 성화에 두 번째 옥수수통까지만 남기고 그 후에 발생한 옥수수열매는 과감히 제거한다.
들에 나갔다 점심식사를 하려 집에 들르신다는 어르신이 한 말씀 던지신다.
"어허~ 오랜만에 제대로 된 옥수수농사를 보는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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