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은 비가 흔했습니다.
땅이 마른날이 몇 날이나 될까?
손꼽아 세 봐도 다섯 손가락이 채워지지 않습니다.
비의 기세에 짓눌려 더위마저 한 성깔 재대로 못하고 나뭇가지는 축 늘어졌습니다.
자연은 싸울 상대가 아니라 인간은 자연의 일부인 것을
조급함을 덜어내지 못하고 시나브로 불안감이 쌓여 초조함과 두려움으로 이어졌습니다.
수분을 좋아하는 둥근마만 신났습니다.
칭칭 감고 올라간 줄기 끝엔 좁쌀만 한 꽃들이 수도 없이 달렸습니다.
습해로 인해 아프지만 않으면 올 둥근마는 밑이 실하게 들 것 같습니다.
고구마 밭에 출몰하던 고라니의 행렬이 주춤한 가 싶더니
검정땅콩 밭에는 들쥐들의 노략질이 벌써부터 극성입니다.
땅속에 박힌 자방병 끝에 꼬투리가 달리기 시작했는데 귀신같이 알아채곤 약탈을 해갑니다.
가만히 나두었다간 하나도 남아나질 않겠습니다.
지난해 김장배추를 재배할 때 사용했던 한랭사를 꺼내 밭뙈기를 빙 둘러 울타리를 치고 나서야 한결 맘이 놓입니다.
심한 입덧을 앓고 있는 새 각시 마냥
매실나무가 핼쑥합니다.
눈에 띄게 수척한 모습으로 잎사귀마저 오그라들고 까칠합니다.
이듬해 꽃이 피고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꽃눈이 분화되는 7월 중순부터 8월말까지 매실나무에겐 아주 중요한 시기입니다.
입덧을 잘 이겨내 튼실하고 많은 꽃눈을 잉태할 수 있도록 기원하며 그들과 하나 됨을 느낌이다.
노는 땅이 아까워
매실나무 밑에 심었던 어성초와 곰취가 부쩍 자랐습니다.
한 공간에 성품이 다른 여러 작물이 함께 있으니
함부로 물을 주는 것도 약을 치는 것도 조심스럽습니다.
매실나무를 갈아먹는 복숭아유리나방 애벌레의 피해가 심각합니다.
물에 희석시킨 살충제를 주사기에 담아 애벌레가 가해한 흔적을 찾아 나무껍질 속으로 약제를 투입합니다.
견디지 못하고 기여 나온 애벌레를 잔혹하게 처단합니다.
번잡한 일상을 내려놓고 마음을 차분히 추스릅니다.
소소한 여유를 곁들입니다.
집에 있으면 집안일, 나가면 바깥일, 들에 나오면 들일
맘 편하게 낮잠한번 실컷 자 보는 게 소원이라는 옆지기는 갓 뽑아온 열무를 조물조물 버무려 김치를 담급니다.
생강이 들어가야 제 맛이 난다며 이제 겨우 싹이 난 생강을 뽑아오고 붉은 고추를 따와 북북 갈아 넣습니다.
다락골에서 난 절제된 양념만 사용해서 그런지 맛이 깔끔합니다.
삶은 국수와 비벼먹으니
손바닥만 한 밭뙈기를 맨다고 잃은 입맛을 되찾는데 이보다 나은 것은 없습니다.
김매기와 북주기를 마친 들깨 밭에는 한 주가 겨우 지났을 뿐인데 잡초들이 많이 돋았습니다.
흙을 뒤집어주어야 발아가 잘 되는 쇠비름이 제철을 만났습니다.
쇠비름은 뽑아내 한 달가량 말려도 공중습도가 높으면 다시 살아나는 질긴 잡초입니다.
쇠비름은 살겠다고 안간힘을 쓰고
그걸 막자고 뽑아 없애려 농사꾼은 안간힘을 씁니다.
아침부터 비가 금방이라도 퍼부을 것 같습니다.
재배과정 막판에 깜부기병이 나타나 무진 애를 때웠던 찰옥수수를 수확합니다.
생육과정에서 거름을 많이 먹는 작물로는 옥수수도 빠지질 않습니다.
보통 두 번의 웃거름을 주어야 하는데
비 때문에 시기를 놓쳐 한 번도 주지 못했습니다.
옥수수통은 크지 않지만 맛은 있습니다.
옥수숫대를 잘라냅니다.
잘라낸 그 자리에서 오고간 것들이 남긴 자취와 여울의 그림자를 봅니다.
떠난 자리엔 망연한 우수가 가득 고여 쓸쓸한 그림자만 맴돕니다.
비라도 그만 내렸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