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은 비가 흔했습니다.
땅이 마른날이 몇 날이나 될까?
손꼽아 세 봐도 다섯 손가락이 채워지지 않습니다.
비의 기세에 짓눌려 더위마저 한 성깔 재대로 못하고 나뭇가지는 축 늘어졌습니다.
자연은 싸울 상대가 아니라 인간은 자연의 일부인 것을
조급함을 덜어내지 못하고 시나브로 불안감이 쌓여 초조함과 두려움으로 이어졌습니다.

 

 

수분을 좋아하는 둥근마만 신났습니다.
칭칭 감고 올라간 줄기 끝엔 좁쌀만 한 꽃들이 수도 없이 달렸습니다.
습해로 인해 아프지만 않으면 올 둥근마는 밑이 실하게 들 것 같습니다.

 

 

고구마 밭에 출몰하던 고라니의 행렬이 주춤한 가 싶더니
검정땅콩 밭에는 들쥐들의 노략질이 벌써부터 극성입니다.
땅속에 박힌 자방병 끝에 꼬투리가 달리기 시작했는데 귀신같이 알아채곤 약탈을 해갑니다.
가만히 나두었다간 하나도 남아나질 않겠습니다.
지난해 김장배추를 재배할 때 사용했던 한랭사를 꺼내 밭뙈기를 빙 둘러 울타리를 치고 나서야 한결 맘이 놓입니다. 

 

 

심한 입덧을 앓고 있는 새 각시 마냥
매실나무가 핼쑥합니다.
눈에 띄게 수척한 모습으로 잎사귀마저 오그라들고 까칠합니다.
이듬해 꽃이 피고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꽃눈이 분화되는 7월 중순부터 8월말까지 매실나무에겐 아주 중요한 시기입니다.
입덧을 잘 이겨내  튼실하고 많은 꽃눈을 잉태할 수 있도록 기원하며 그들과 하나 됨을 느낌이다.

 


노는 땅이 아까워
매실나무 밑에 심었던 어성초와 곰취가 부쩍 자랐습니다.
한 공간에 성품이 다른 여러 작물이 함께 있으니
함부로 물을 주는 것도 약을 치는 것도 조심스럽습니다.
매실나무를 갈아먹는 복숭아유리나방 애벌레의 피해가 심각합니다.
물에 희석시킨 살충제를 주사기에 담아 애벌레가 가해한 흔적을 찾아 나무껍질 속으로 약제를 투입합니다.
견디지 못하고 기여 나온 애벌레를 잔혹하게 처단합니다.

 


번잡한 일상을 내려놓고 마음을 차분히 추스릅니다.
소소한 여유를 곁들입니다.
집에 있으면 집안일, 나가면 바깥일, 들에 나오면 들일
맘 편하게 낮잠한번 실컷 자 보는 게 소원이라는 옆지기는 갓 뽑아온 열무를 조물조물 버무려 김치를 담급니다.
생강이 들어가야 제 맛이 난다며 이제 겨우 싹이 난  생강을 뽑아오고 붉은 고추를 따와 북북 갈아 넣습니다.
다락골에서 난 절제된 양념만 사용해서 그런지 맛이 깔끔합니다.
삶은 국수와 비벼먹으니
손바닥만 한 밭뙈기를 맨다고 잃은 입맛을 되찾는데 이보다 나은 것은 없습니다.

 

 

김매기와 북주기를 마친 들깨 밭에는 한 주가 겨우 지났을 뿐인데 잡초들이 많이 돋았습니다.
흙을 뒤집어주어야 발아가 잘 되는 쇠비름이 제철을 만났습니다.
쇠비름은 뽑아내 한 달가량 말려도 공중습도가 높으면 다시 살아나는 질긴 잡초입니다.
쇠비름은 살겠다고 안간힘을 쓰고
그걸 막자고 뽑아 없애려 농사꾼은 안간힘을 씁니다.

 

 

아침부터 비가 금방이라도 퍼부을 것 같습니다.
재배과정 막판에 깜부기병이 나타나 무진 애를 때웠던 찰옥수수를 수확합니다.
생육과정에서 거름을 많이 먹는 작물로는 옥수수도 빠지질 않습니다.
보통 두 번의 웃거름을 주어야 하는데
비 때문에 시기를 놓쳐 한 번도 주지 못했습니다.
옥수수통은 크지 않지만 맛은 있습니다.
옥수숫대를 잘라냅니다.
잘라낸 그 자리에서 오고간 것들이 남긴 자취와 여울의 그림자를 봅니다.
떠난 자리엔 망연한 우수가 가득 고여 쓸쓸한 그림자만 맴돕니다.
비라도 그만 내렸으면.......

'다락골사랑 > 다락골 사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락골 가을맞이  (0) 2011.08.30
비 그친 오후.  (0) 2011.08.23
행복한 고민.  (0) 2011.06.08
약속  (0) 2011.05.10
그냥 좋아서 합니다.  (0) 2011.04.18

 

여름의 길목
유월입니다.
삶도 흐르는 시간도 숨 가쁘게 지나갔습니다.
기대와 집착의 끈을 놓지 못하고  애면글면 살아왔습니다.

 

 

연휴
구석진 골짜기에 쪼그리고 앉아
연초에 하고자했던 바램이 잘 지켜지곤 있는지
풀뿌리를 파헤치며 자기성찰의 시간을 가집니다.
스멀스멀 박무가 드리우고 간간히 안개비도 내립니다.

 

 

"발등에 오줌 싼다"던
절기 '망종'의 풍경도 많이 바랬습니다.
보리 수확과 모내기가 겹쳐 허리 펴고 다닐 사이 없이 바쁘기만 했던 시절.
논두렁에 둘러앉아 못밥 먹던 기억.
그때의 인심은 후덕했습니다.
다락골에도 모내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써레질을 마친 논배미에 초여름 밤하늘이 슬그머니 마실 나왔습니다.
물에 비친 초승달이 황홀합니다.

 

 

 

허름한 시골집에 귀한 분들이 오셨습니다.
같은 하늘 아래서
힘들 때나 기쁠 때나 늘 의지하며 삽니다.
화롯가에 둘러앉아 살아온 흔적과 살아갈 이야기를 나눕니다.

 

 

 

산마늘은 벌써 가을입니다.
몸뚱이를 키우는 영양생장을 끝내고 종족번식을 위해 꽃 진 자리에 씨가 맺혔습니다.
골프공처럼 묘하게 생긴 꽃봉오리에 씨가 여뭅니다.
"씨앗이 여물기 시작하면 헌 스타킹을 씌워주세요.
그래야 씨앗들이 도망가질 못해요.
채종을 마친 씨앗은 축축한 흙과 섞어 보관하다 장마철에 뿌려놓고 그냥 냅 두세요.
그럼 이듬해 봄에 싹이 틀 거예요."
처음 심어본 작물일지라도
사이버공간에서 사귄 친구들이 스스럼없이 들려주는 소중한 경험이 큰 도움이 됩니다.

 

 

 

성심을 다해 씨앗을 뿌렸습니다.
그리고 하늘에게 맡겼습니다.
주말마다 변해가는 모습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누구 하나 겉돌지 않고 잘 자랐습니다.
수확해야하는 슬픔을 옆지기에게 맡겼습니다.

 

 

자연이 베푼 귀한 결실을 이웃과 공유합니다.
유형의 값어치로만 따지면 하찮고 보잘것없는 푸성귀인지 모릅니다.

정성껏 키웠습니다.
곳간에 인심난다고
짐칸도 모자라 승용차 뒷좌석까지 가득 채웠습니다.
빚만 지고 살아온 삶
나눔해드리지 못한 사람들이 걸립니다.
"쌈채, 조금 뜯어 가는데…….
언니 집에 계세요?"
돌아오는 길 내내 옆지기의 전화질은 계속됩니다.
더하기도하고 빼기도하고
옆지기의 행복한 고민은 진행형입니다.

'다락골사랑 > 다락골 사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 그친 오후.  (0) 2011.08.23
비라도 그만 내렸으면.......  (0) 2011.08.02
약속  (0) 2011.05.10
그냥 좋아서 합니다.  (0) 2011.04.18
정직하게 땀 흘린 만큼 반응하는 것이 농사입니다.  (0) 2011.04.04

 

징검다리 휴일로 이어지는 오월의 첫 주말
여기도 저기도 막히지 않는 길이 없습니다.
사람도 많고 차고 많습니다.
답답하고 지루하지만 다락골 가는 길이 예쁩니다.
가지마다 연두색 잎사귀를 토해내고 있습니다.
마른땅에 물 스미듯
번지는 연두색 신록이 곱습니다.
여러 들꽃들이 어우러져 발길을 가볍게 합니다.
왠지 모를 뭉클함에 가슴이 떨립니다.

 

 


얼마나 갑갑했을까?
2주 동안 비닐 속에 갇혀 옴짝달싹 못했던 고구마 순을 비닐 밖으로 꺼냅니다.
고구마 순을 내다 심고 나서 비닐위에 수북이 올려주었던 흙이 지난주에 내린 비로 대부분 씻겨 나갔습니다.
햇볕에 노출된 고구마순은 높아지는 비닐속의 열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간간이 녹아내렸습니다.
호박 고구마 순이 훨씬 피해가 심합니다.
속이 탑니다.
차에서 짐을 풀 새도 없이 맨손으로 밭뙈기에 쪼그리고 앉아 비닐을 찢어 고구마순을 꺼내고 흙을 채웁니다.
아프지 않게 잘 보살피겠다고 약속했는데
사상누각이 되진 않을까
씁쓸하고 먹먹합니다.

 

 


집체만한 흙덩이를 머리에 이고
까만 땅콩 싹이 틉니다.
날짐승으로부터 새싹을 지키기 위해 은빛 모형 독수리를 다시 내겁니다.

 


싹을 틔워 이식했던 둥근마 줄기가 오이망을 타고 오릅니다.
놀라운 일은 결코 요란하지 않습니다.
곁으론 별다른 움직임 없이 조용하고 차분했는데 안으로는 쉼 없이 변화하여 새 생명을 태동시켰습니다.
꽃 진 자리에 앙증맞게 애기 매실이 달렸습니다.

 

 

 

농장을 비운 2주 사이에 두릅순과 벙굿잎(엄나무어린잎)은 벌써 쇠 버렸습니다.
이 시기에 잠깐 맛볼 수 있는 참옻순이 절정입니다.
순수한 날것 그대로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입안에 남습니다.
초록의 봄나물
그 연하고 달고 쌉싸래한 맛이 입맛을 돋웁니다.
봄의 채취를 마음껏 탐합니다.

 

 

"고추모종은 깊게 심으면 좋지 않다."
"심고 나서 뜬물약과 총채벌레약은 반드시 쳐야한다."
"산골에선 진딧물이 더 심하다."
"약해발생을 줄이기 위해서는 밭을 갈 때 미리 뜬물약을 던져라."
"고추농사는 예방위주로 관리해야한다."
"풋고추를 내다팔 요량이라면 순도 99.9% 에틸알코올을 희석시켜 사용하면  풋고추 때깔이 끝내준다."
"세물고추수확이 끝나는 8월 초순에 고추 순을 1/3쯤 쳐내라
 그러면 밑에 달린 고추는 빨리 붉어지고 새순이 새로 돋아 순도 부드럽고, 그곳에 꽃을 피워  달린 풋고추도 엄청 부드럽다.
 장아찌용 풋고추로 최고다."

아침 새참 무렵에 쉼터 원두막에 다락골에서 내놓고 농사짓는 몇 사람이 모였습니다.
꺾어온 참옻순을 안주삼아 막걸리를 나누며 좀처럼 내보이지 않던 자기만의 농사짓는 법을 하나 둘 들려줍니다.
공감이 가는 내용도 많고 낯설고 생소한 방법도 있습니다.
"지는요! 절대로 남의 말만 옮기지않아유!
 지가 서너 번 해보고 나서 이거다 싶으면 그때 가서 알려주는 것이구먼유!"
사실 농사에는 정답이 따로 없습니다.
살아 숨 쉬는 생명체를 다루기 때문에 더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절기상 입하 무렵에 다락골에선 여러 모종들을 내다심습니다.
내남없이 고추모종을 이식합니다.
주말농사를 일구며 태양초고추만을 고집했던 지난과정들이 너무 힘들어 올해 고추농사는 포기했습니다.
다만 찍어먹을 풋고추를 따기 위해 열 그루만 심습니다.
모사리를 줄이기 위해
흙을 살짝 덮어주며 살포시 쓰다듬습니다.
관리하게 편하게 옥수수 모종의 어깨는 두둑과 나란하게 심고 호박모종을 심은 곳엔 비닐로 고깔을 씌워 밤공기의 찬 기운을 차단시킵니다.

 


"어버이날이네요.
 집에 안계시네요.
 항상 아프지 마시고......, 건강이 최고에요."
딸아이가 보낸 메시지 구절이 가슴 찡합니다.
"밥 굶지 말고 아프지 마라."
섬기지도 못한 어버이날,
휴대전화기에선 어머님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며칠 전에 다친 허리 병이 도져 일을 방해합니다.
구부리고 일어서는 동작조차 어정쩡합니다.
쉽게 지치고 이 일에 회의마저 듭니다.
땅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워 처음 시작할 때 했던 약속들을 다시 한 번 되새김질합니다.
자신을 돋보이게 보이려는 욕심을 밀어냅니다.
일부러 피사체를 강조해 사실을 왜곡시키지 않는 순수한 모습들을 찾아 셔터를 누릅니다.

 

봄에 꽃이 피지 않는다면 세상이 얼마나 삭막할까?
꽃핀자리가 보고 싶었습니다.
꽃비가 날리고
꽃이 진 자리도 궁금했습니다.
오랑캐꽃, 산자고, 현호색, 머위, 수선화…….
마치 시골학교 운동회 때 이어달리기 경주하듯 꽃 잔치가 연이어 성황입니다.
이 봄의 화려한 찰나를 마음껏 만끽합니다.

 

 

 

 

 

 

다락골에도 매화가 만발했습니다.
그 어떤 꽃송이도 갑자기 핀 것은 없습니다.
예쁘고 화려한 모습 뒤에는 지난겨울 땅속에서 무진 애를 쓴 결과입니다.
지난 주말엔 팔순의 어머님을 모시고 고창선운사와 부안내소사를 돌아보는 가족여행을 가졌습니다.
고즈넉한 절집마당에 핀 토종매화가 어찌나 곱던지 마음을 빼앗겨 연신 카메라셔터를 눌렀습니다.
세월의 더께가 겹겹이 쌓인 꽃 핀 자리가 예뻤습니다.
한주 늦게 핀 다락골 매화는 화려할 뿐 멋스러움이 덜합니다.
나무 모양부터 관리하기 편하게 사람 손에 길들였습니다.
꽃이 진 자리가 궁금합니다.

 


어느덧 4월 중순
주야간의 기온차가 심합니다.
간밤에도 산골마을엔 된서리가 내렸습니다.
감자를 내다 심고 두둑에 씌웠던 비닐 속엔 새파랗게 감자 싹이 올라왔습니다.
비닐을 찢고 그 속에서 새싹들을 꺼내줄 시기인데 서리피해를 걱정하는 이웃들은 손을 놓고 있습니다.
골짜기를 타고 봄바람이 거세게 붑니다.

 


어성초 싹이 돋아납니다.
덮어둔 볏짚을 해치고 삼나물 줄기도 부쩍 올라왔습니다.
밑동까지 잘라냅니다.
데치고 말려  산골의  별미꺼리로 갈무리합니다.
쇠고기냄새가 솔솔 풍기는 묵나물 생각은 벌써부터 침샘을 자극합니다.

 

 

 

내남없이 농사준비로 바쁩니다.
익숙한 풍경입니다.
거름을 내고 밭을 갑니다.
헛간에서 관리기를 꺼내 채마밭을 일굽니다.
지난겨울이 워낙 추워 관리기 시동이 걸리지 않으면 어쩌나 염려했는데 시동 줄을 잡아당기자 단번에 경쾌하게 시동이 걸립니다.
연료밸브를 잠그고 기화기에 든 연료까지 소모시킨 후  보관했던 것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비가 온다는 예보에
이웃들은 마늘밭에 웃거름을 줍니다.
애써 키운 마늘밭 작황이 신통치 못합니다.
공식에만 얽매여 시기도 재대로 파악 못하고 육족마늘이 기운을  차리기도 전인 4월 초순에 그만 비료를 주는 잘못을 하고 말았습니다.
과욕을 부렸습니다.
마음이 찝찝합니다.
보여주는 데만 급급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마음을 다잡습니다.
그냥 좋아서 합니다.
좋아서하는 일이니 즐기면서하고 그 속에서 재미를 얻습니다.

 

'다락골사랑 > 다락골 사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행복한 고민.  (0) 2011.06.08
약속  (0) 2011.05.10
정직하게 땀 흘린 만큼 반응하는 것이 농사입니다.  (0) 2011.04.04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0) 2011.03.28
봄입니다.  (0) 2011.03.15

 

지독하게 차가 막혔습니다.
서해대교위로 끝도 보이질 않게 긴 차량행렬이 늘어섰습니다.
한식을 앞두고 미리 조상 묘에 성묘 가는 인파와 남녘에 꽃구경 가는 행락객이 겹쳤습니다.
봄이 완연합니다.
길섶엔 벌써 노란 민들레와 보랏빛 제비꽃이 어우러졌습니다.

 

 

순수한 열정만으로 땅을 고르니 힘든 줄도 시간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오늘따라 옆지기도 불평한마디 없이 시키지도 않는 일까지 척척 해냅니다.

 

 

 

 

 

 

 

 


둥근마를 이식하고 나서 두주 째 싹을 키운 씨감자를 내다 심습니다.
스티로폼상자에 담아 비좁은 아파트베란다에서 애면글면 싹을 키웠습니다.
조심스럽게 세상을 향해 고갯짓하는 모습이 쉽게 볼 수 없는 광경이여서 놀라움과 흥분이 쉽게 수그러들지 않습니다.
참! 오달집니다.
뿌리도 강인하게 내렸습니다.
낙지발처럼 꿈틀대며 주변의 수분을 한순간에 빨아드릴 기세입니다.
뿌리에 달라붙은 상토를 탈탈 털어냅니다.
두둑에  한 뼘 간격으로 낸 구멍 속에 정성스레 밀어 넣고 흙을 채웁니다.
한주 전에 미리 씌워둔 멀칭비닐 덕에 두둑은 촉촉하게 습기를 머금었습니다.

 


기초가 틀어지면  되돌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른 봄 이맘때쯤 모종을 내다심을 때 첫손가락처럼 고려해야할 것은 서립니다.
서리로 인한 피해는 되돌리기 힘든 치명상입니다.
씨감자는 자체 내에 양분을 축적하고 있어 움트던 새싹이 서리를 맞고 얼어 죽어도
계속해서 새로운 싹이 올라옵니다만 그로인해 생육이 더디어 알뿌리가 덜 달리고 모양 또한 고르지 못합니다.
아침에도 찬 서리가 밭두렁을  하얗게 덮었습니다.
고육지책으로 철선을 땅에 처박고 그 위로 흰 비닐을 씌워 터널을 만든 후 살랑대는
봄바람에 쓰러지지 않게 단단히 붙들어 맵니다.
정직하게 땀 흘린 만큼  반응하는 것이 농사입니다.

 

 

 


애써 키운 블루베리 두 그루가 말라죽었습니다.
추위에 강한 곰취와 부짓갱이나물까지도 여럿이 얼어 죽었습니다.
원인을 살펴보니 범인은 두더지였습니다.
다락골에 터를 일군 후부터 줄곧 토양살출제등 농약사용은 자재하며 지력을 키워왔습니다.
그런 노력 덕에 토양 속에 유기물들이 풍부해졌습니다만 그것들을 노린 두더지가 밭뙈기 한편에 둥지를 틀고 말썽을 부립니다.
곰취와 부짓갱이나물을 심은 곳을 죄다 뒤집어놓았습니다.
맥주유리병을 두더지가 다니는 길목에 꽂기도 했고 특이한 냄새 때문에 두더지가 싫어한다는 어성초로 농장을 꾸미기도 했습니다만

두더지는 어성초를 심은 곳까지 뒤집었습니다.
인터넷을 뒤져 구입한 두더지퇴치기입니다.
태양광으로 자동 충전해 주기적으로 두더지가 싫어하는 소리와 진동을 발생시킵니다.
설치한지 한 달이 가까워집니다.
음파를 내보내기 시작한 후부터 지금까지 두더지가 다닌 흔적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대공을 길게 키우기 위해 수북이 깔아두었던 볏짚을 해치고 울릉도에서 건너온 눈개승마(삼나물)새순이 쑤욱 올라왔습니다.
해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산채류를 한두 가지씩 종류를 늘려가며 재배하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올해 내다심은 작물은 누릿대(누룩취)입니다.
종근 값이 비싸 조금밖에  구입해왔습니다.
반그늘을 좋아하는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은행나무 그늘이 미치는 곳에 터를 잡고 퇴비만 넣고 옮겨 심습니다.
고랑을 깊게 파서 서릿발 피해를 미리 예방합니다.

 


얇은 황사가 하루 종일 희뿌옇습니다.
간간히 빗방울도 떨어집니다.
황사먼지에 방사능까지 범벅된 비는 아닐까?
걱정할 수준은 아니라지만 왠지 찝찝합니다.
강 건너 불구경하듯
허투루 지켜보고 있어야만 하는 것인지!

'다락골사랑 > 다락골 사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약속  (0) 2011.05.10
그냥 좋아서 합니다.  (0) 2011.04.18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0) 2011.03.28
봄입니다.  (0) 2011.03.15
겨울 채비.  (0) 2010.12.07

 

쉼터 원두막에 불을 밝혔습니다.
잔설에 반사된 불빛이 포근하고 아늑합니다.
조용하게 봄을 맞이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눈으로 느끼고 귀로 느끼며 코로도 느낌이다.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봄을 알아차리게 합니다.
잠시 숨고르기를 하듯
2주전까지만 해도  목청을 높여 구애하던 개구리소리도 많이 자자들었습니다.
3월의 밤은 쓸쓸하다 못해 적막합니다.

 

 

이른 아침부터 땅을 고릅니다.
밤새 꽁꽁 얼어붙어 작업을 방해합니다.
쇠스랑으로 땅을 파고 뒤집고 흙덩이를 잘게 부수고 돌멩이를 주워 모읍니다.
봄을 시샘하는 추위와 함께 온 습설이 녹아 땅은 촉촉하게 습기를 머금었습니다.
봄감자와 둥근마 등 근채소를 다음주말에 내다심기 위해 두둑을 짓고 그 위에 검정색 멀칭비닐을 씌워 수분을 가둡니다.
햇살이 따사로울수록 봄바람도 덩달아 살랑거립니다.
산 꿩의 울음소리가 가까이서 들립니다.
발정 난 꿩의  울음소리가 정겹습니다.

 


매화꽃봉우리가 봉긋해졌습니다.
화사한 햇살아래서 쪼그리고 앉아 옆지기는 봄나물을 캡니다.
쑥은 아직 덜 올라왔지만 냉이는 지천에 널렸습니다.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 땅속 깊숙이 뿌리를 뻗친 냉이를 뿌리째 캐냅니다.
흙을 탈탈 털어내고 차곡차곡 비닐봉지를 채웁니다.

 

 

 

 

 


된장을 풀어 끓인 냉잇국에는 봄내음이 가득합니다.
다사로운 봄 햇살 속에 오붓한 여유를 맛봅니다.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겨우내 움츠렸던 가슴을 펴고
언 땅을 뒤집어 씨앗을 뿌립니다.
올해 들어 처음 내다심는 작물은 도라지입니다.
씨를 뿌리는 대신에 한 해 동안 키운 도라지 종근을 옮겨 심습니다.
종근은 자투리땅에 키워 늦가을에 캐내 얼지 않게 상토 속에 파묻어두었던 것입니다.
잘 썩은 퇴비만 듬뿍 넣고 곡괭이로 지난밤 늦게까지 깊이갈이를 해 두었습니다.
도라지는 보통 비닐을 씌우지 않고 재배합니다.
비닐을 씌워 관리하면 땅속 온도가 올라 도라지에 곁뿌리가 많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20cm가 넘는 길쭉한 쇠꼬챙이를 땅속에 박고 빙글빙글 돌려 구멍을 넓힌 후 땅높이에 키높이를 맞춰 하나씩 이식합니다.
유리그릇 다루듯
잔뿌리 하나라도 상할까봐 조심해서
줄자까지 앞에 놓고 오와 열을 맞춰 사방 10cm 간격으로 똑 바로 새워 옮겨 심었습니다.
촘촘하게 이식하다보니 일은 더디고 그와 반비례해서  일이 서툰 옆지기는 푸념석인 잔소리만 늘어놓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환상과 실체의 간극만큼이나 차츰차츰 구멍의 간격은 벌어지고 나중엔 줄자를 갖다 대는 것도 귀찮아 대충대충 심고 말았습니다.
지속하는 힘은 처음보다 나중이 훨씬 힘들었습니다.

 


나무 심는 계절입니다.
쉼터주변에 토종가시오가피 열 그루를 이식을 마치니 벌써 해가 뉘엿뉘엿합니다.

 

 

수행하듯 온몸으로 겪으며 힘에 부치게 많은 일을 했습니다.
일을 몰아서해야하는 주말농사이기때문에 늘 시간이 부족합니다.
밭일에 몰두하다보면 쉼터를 관리하는 일은 항상 뒷전입니다.
사용했던 농기구도 재대로 챙기지 못하고 돌아오는 경우도 종종 생김니다.
올해는 조금 일찍 시작하고 차분히 준비해서 진정 원하는 것을 찾아내겠습니다.

'다락골사랑 > 다락골 사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냥 좋아서 합니다.  (0) 2011.04.18
정직하게 땀 흘린 만큼 반응하는 것이 농사입니다.  (0) 2011.04.04
봄입니다.  (0) 2011.03.15
겨울 채비.  (0) 2010.12.07
가을 뒤에 오는 허전함.  (0) 2010.11.02

 

 

작은소망과 설렘을 가득 싣고 다락골에 왔습니다.
지난겨울은 유난히 춥고 혹독했습니다.
그 쓸쓸했던 시간만큼이나 이제 막 사방을 감싸는  기운이 훈훈합니다.
지루했던 시간은 가고
봄 마중 가는 들뜬 마음이 발걸음을 가볍게 합니다.

 

 

"어머! 인천아자씨 오시네유!
이제부터 부지런하게 준비해서 봄 것들 지대로 부쳐먹어봐야지유!"

객지에서 돌아온 식구마냥 만나는 이웃들이 살갑습니다.
겨우내 잠가두었던 쉼터로 통하는 상수도 밸브를 열고 쉼터 안으로 들어서니
혹한으로 수도꼭지가  얼어 터져  부엌방은 물로 흥건하고 화장실 양변기 물통도 금가 물이 줄줄 세어 나옵니다.
나름대로  정성을 다해 겨울채비를 해두었는데 작은 실수 하나가 화를 키웠습니다.
집안으로 통하는 수도관 밸브를 잠근 후 집안으로 연결된 수도관의 물을 완전히 제거하지 않고 방치했던 것이 원인이 되었습니다.
허겁지겁 당진읍으로 내달려 필요한 자재들을 구입해와 서투른 솜씨로 뜯고 붙이고 한참동안 씨름했습니다.
소스라치게 고요한 시골마을엔 개구리소리만 요란하고 해가 떨어지기 무섭게 오싹할 만큼 찬 냉기가 몰려듭니다.

 

 

한날한시에 씨앗을 뿌렸던 마늘밭에는 고만고만한 어린 싹이 움텄습니다.
혹한 속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을 지켜낸 생명들과 수인사를 나누며 얼마나 예쁘고 소중한지 한동안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지난해 가을 씨만 심어놓고
춥다고 방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코빼기도 보이질 않고 행여 엄동설한에 얼어 죽지는 않았을까 오만가지 생각만 했습니다.
비닐 한 장을 이불삼아  자신을 지켜낸 어린생명이 어찌 그리 대견한지 콧등이 싸하게 내려않습니다.

 


혹한과 싸운 양파모습은 실오라기처럼 앙상한 줄기만 남았습니다.
서릿발의 기세에 들려 푸른 잎사귀는 바싹 마르고 겨우 숨통만 붙잡고 있습니다.
얼마나 힘에 겨웠을까?
치열한 삶의 방식이 그대로 묻어납니다.
심어만 놓고 그냥 지나쳐버렸던 시간의 더께만큼이나 낯이 간지럽고 염치가 없습니다.
기운 차리게 영양분을 보충해주며 희망의 밧줄을 놓지 않았습니다.
꼼수가 통하지 않는 것이 농사 같습니다.

 

 

계획했던 일중에는
과수나무에 황소독을 하는 일도 포함되었습니다.
새순이 움트기 이전에 월동한 해충들을 방제하고 과수나무의 힘을 북돋우기 위해서입니다.
아침나절 내내 하늘에 비구름이 끼여 약제 살포는 약해발생의 우려 때문에 포기까지 생각했었는데 점심 무렵부터 날씨가 화창합니다.
보온을 위해 나무주변에 깔아놓았던 볏짚들을 걷어내고 석회유황합제를 흠뻑 뿌려줍니다.
매화꽃봉우리가 제법  부풀었습니다.

 

 


벼르고 벌렸습니다.
두둑을 덮고 있던 비닐을 벗겨내 차곡차곡 포대에 담아 마을 폐비닐집하장에 들어 날립니다.
밭고랑에 쌓인 낙엽들을 긁어모아 태우고
작은 돌부리 하나라도 더 주워 모읍니다.

 


봄입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봄입니다.
밭뙈기가 술렁이고 꿈틀댑니다.
씨를 뿌리며 기대와 설렘이 용솟음치는 계절입니다.
자연 앞에선 하잘것없는 인간입니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교감하며 정성을 다해 키우겠습니다.
이쁜 것도 못난 것도 모두 땅이 내는 것입니다.
풍성한 열매가 열리며 하늘에게 감사하고 작고 못난 열매가 달리면 자신이 정성부족을 탓하겠습니다.
품만 들고 삯도 건지기 힘든 수고로운 일이지만 욕심과 집착에서 벗어나 여유로운 미소만큼은 잃지 않겠습니다.

 

초겨울 찬바람이 매섭습니다.
열매가 떨어지고 서리가 내린 은행나무가지엔 마지막 남은 잎새 하나 없이 텅 비었습니다.
세상이 춥습니다.
수은주는 주저앉고 사람들 마음마저 얼어붙었습니다.
어깨가 움츠려들고 세상을 걱정하는 한숨소리가 길어집니다.

 

 

 

말 한마디가 허투루 들리지 않은 요즘
시절이 아무리 어수선해도 희망까진 버릴 수 없습니다.
잎사귀를 떨쳐낸 매실나무에는 꽃눈이 벌써 부풀어 올랐습니다.
올봄에는 하나도 달리지 않았던 청매도 꽃눈이 제법 많이 달렸습니다.
바라보는 기쁨도 잠시
뜨거웠던 여름 내내 해충들이 갈아먹어 상처가 난 가지들도 간혹 발견됩니다.
볼 쌍스러운 모습에 안쓰러워 부화가 끓어오릅니다.
군화발에 야무지게 차인 기분입니다.

 

 

 

 
상처부위를 도려내고 그 자리에 석회유황합제를 발라 상처를 치료합니다.
흰색수성페인트에 유황합제를 섞어 주간에 옷을 입힙니다.
붕사와 석회비료, 잘 썩은 퇴비를 듬뿍 뿌려 땅기운을 북돋아주는 일도 병행합니다.
뿌리를 땅속으로 깊게 뻗지 못하는 매실나무를 보호하기위해 가을걷이가 끝난 논에서 볏짚을 들고 와 나무 밑에 푹신하게 깔아줍니다.

 

 

 

오래 머물지 못해도 다락골에 찾아온 보람을 채웁니다.

서릿발피해를 방지하기위해 마늘밭엔 한 꺼풀 더 투명비닐을 씌웁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겨울채비를 위해 손을 쓸 곳이 많습니다.
농장일이 끝나면 한겨울동안 다락골 쉼터를 비워야합니다.
지난겨울에는 월동준비를 나름대로 잘했다고 으스대고 자랑했다가 보일러가 터지는 수난을 겪었습니다.
허전하고 시린 마음이 지금까지 남았습니다.
창틀사이로 바람이 스며들지 못하게 유리창엔 보온비닐을 시공하고, 수도꼭지와 보일러실배관은 동파방지용 열선을 칭칭 감아 맵니다.
곁에서 지켜볼 수 없어 팽배한 불안감 때문에 쉽게 손을 때지 못합니다.

 

 

세련되지 못한 서투른 솜씨였지만
묵묵히 가지를 다듬고 거름을 뿌리며  짚으로 감쌌습니다.
나무를 키우는 일은 가치 있고 소중한 일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일을 일궈가기 위해서는 행동이 따라야 가능한 일입니다.
거저 얻는 건 없습니다.
올겨울도 유난히 추울 거랍니다.

'다락골사랑 > 다락골 사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0) 2011.03.28
봄입니다.  (0) 2011.03.15
가을 뒤에 오는 허전함.  (0) 2010.11.02
진땀깨나 흘렸습니다.  (0) 2010.10.12
엎드렸던 들깨가 꽃을 피었습니다.  (0) 2010.09.28

 

 

몸에 걸쳤던 초록옷을 벗어던지지도 못한채 나뭇잎이 메말랐습니다.
가을을 타기도전에 초겨울 추위가 기승을 부린 산골마을엔
케에~케에~
짝을 찾는 고라니의 앙칼진 울음소리가 밤새 그칠 줄을 모릅니다.

 

 

늦추위, 태풍, 가을장마…….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번에 된서리가 다락골을 덮쳤습니다.
봄부터 가을까지 이어지는 하늘의 심술은 마치 해코지처럼 느껴집니다.
지난 4일 동안 흰 눈처럼 소복이 쌓인 된서리 때문에 마지막 남은 가을햇살을 누리며
토실토실 속살을 채우던 작물들이 쓰나미가 덮친 것처럼 초토화되었습니다.
황망하고 당황스럽습니다.

 


"인천아저씨!
내려오지 않으시면 전화드리려했구먼유!
서리땜시 생강이 모두 얼게 생겼시유!
얼른 생강부터 케유!"

이른 아침부터 이웃집 할머니가 건너와 생강수확을 재촉합니다.
서산에서 종근을 구입해와 처음 재배해보는 작물이라 모든 것이 낯설었는데
수확하는 요령부터 줄기를 제거하는 방법, 보관요령까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산 경험을 아낌없이 알려줍니다.
가을장마가 길어진 것이 생강농사에는 좋은 결실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생강을 심고 나서 두둑을 볏짚으로 덮는 이유는  잡초발생을 줄이려는 것으로 단순하게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직접 생강을 수확하면서 채득한 결과  추위로 인해 알뿌리가 상하는 것을 방지하는 것에  더 큰 지혜가 숨어있었습니다.
생강은 알뿌리가 지표면 가까이에 위치해 가뭄과 추위에 아주 약합니다.
그래서 생강을 내다심은 후 볏짚으로 두둑을 덮어주면 잡초발생을 억제시킬 뿐만아니라 수분증발을 막아 가뭄피해를 벗어날 수 있고,

보온효과가 있어 갑작스런 추위에 알뿌리를 보호할 수 있습니다.
수확한 생강들은 썩기 쉽고 쉽게 마르기 때문에 비닐봉투가 아닌 종이상자나 신문지로 감싸 얼지 않는 곳에 보관하라고 일러주시는 할머니께 수확한 것을

사과상자에 하나 가득 담아 드렸더니 좋아하십니다.

 


잔가시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무장갑을 양손에 끼고 빨갛게 잘 익은 천년초 열매를 따냈습니다.
깨끗하게 씻어 그늘에 널어놓고 검은 땅콩을 수확합니다.
한랭사로 보호막을 치고 은박으로 만들 모형 독수리를 걸어둔 덕에 지금까지 들짐승과 날짐승의 약탈로부터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꼬투리가 실하게 여물도록  수확시기를 늦췄었는데 때 이른 서리로 인해 잎사귀가 모두 고스러졌습니다.

 

 

결과만을 집착한 것도 아닌데 싱숭생숭한 기분이 좀처럼 가시질 않습니다.
마음만 앞세워 허둥대기만 했을 뿐 무엇 하나 성이 차는 것이 없습니다.
옷깃을 여미는데 마음까지 움츠려듭니다.
가을걷이가 끝난 휑한 들녘에는 나락을 털어낸 볏짚더미만 덩그러니 남았습니다.
가을 뒤에 오는 허전함이 짙게 베어 나옵니다.

'다락골사랑 > 다락골 사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입니다.  (0) 2011.03.15
겨울 채비.  (0) 2010.12.07
진땀깨나 흘렸습니다.  (0) 2010.10.12
엎드렸던 들깨가 꽃을 피었습니다.  (0) 2010.09.28
진도 여행-맘속에 항상 품고 사는 곳  (0) 2010.09.23

 

 

다락골에도 가을이 살포시 내려앉았습니다.
노랗게 물든 둥근마 잎이 가을의 운치를 더해줍니다.
어디론가 떠나 가을을 즐기고픈 행락객들 속에 갇혀 어둠이 짙게 깔린 뒤에야 다락골에 당도했습니다.

 

 

제법 날씨가 쌀쌀해 옷가지를 챙겨 입었습니다.

찬이슬이 많이 내렸습니다.
기온이 서늘해진 틈을 타고 여름 내내 비실비실 풀이 죽었던 야콘이 기운을 차렸습니다.
하찮은 미물일지라도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마자 서로 약속이나 한 듯 옆지기와 둘이서 내달리듯 배추밭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우와! 벌써 배추가 속이 많이 찼네요!
11월 두 번째 주말에 김장해도 충분하겠네요!"
불암3호 속노랑배추들이 속이 차기 시작했습니다.
잘 썩은 유기질비료만 듬뿍 넣고 여태껏 웃거름도 한번 주지 못한 주인을 비웃기로도 하듯 재법 옹골차게 자랐습니다.
한랭사를 벗겨낼 때만해도 무방비상태로 내모는 것만 같아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아직까진 우려한 정도는 아닙니다.
잎사귀에 구멍이 숭숭 뚫린 포기들을 골라 속살을 샅샅이 뒤져 서너 마리의 배추벌레를 잡아 없애는데 그쳤습니다.
그새
옆지기는 무밭에서  어린 무를 한 아름 솎아냅니다.
처음 심은 자색무의 자색 빛이 곱습니다.

 

 


골곡과 부침이 심했던 고추밭을 정리했습니다.
배짱인지, 오기인지
농약한번 치지 않고 근근이 버텨오다 막판엔 손쓸 사이도 없이 탄저병이 번져 풋고추 하나 성한 것 없이 망가졌습니다.
"이 잘란 고추 몇 근이나 먹겠다고......."
기껏해야 일 년에 고추 열 근도 못 먹는데
종자 값하고, 오고가다 길에 뿌린 기름 값이며 고추 수십 근은 사먹고도 남겠네요!
이젠 어지간히 경험도 쌓았으니 이다음부터 고추는 사먹고 맙시다!
내년부터 고추만 심어봐라, 내가 다시는 따라나서나......."

고추 순을 훑던 옆지기는 풋고추 하나 남아 있는 것이 없다며  일찍 감치 방 안으로 들어가 기척이 없습니다.
고춧대를 뽑아내고 병들어 떨어진 고추들을 주워 담아 밭뙈기와 멀리 떨어진 곳에 내다버립니다.
 

 

 


변화를 두려워하기보다는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에 빠져 살았습니다.
물 빠짐이 좋은 모래가 섞은 땅이어서 토질에 구애받지 않고 이것저것 농사를 지어왔습니다.
그런데 유독 마늘농사만큼은 재대로 지어보질 못했습니다.
터를 마련한 후 처음 두해동안 자투리땅을 이용해 마늘을 심었습니다만 말라죽어 결과가 좋지 못했습니다.
다락골에 터를 잡은 지도 5년이 더 지났습니다.
그동안 화학비료와 약제사용을 자재하며 땅심을 키우는데 주력했습니다.
해마다 석회비료를 시용한 결과 강한 산성이던 토질이 중성에 가깝게 개선되었습니다.
내일은 알 수 없어 두려움도 있지만 꿈을 꿀 수 있게 해줍니다.
화학비료와 토양살충제는 일절 사용하지 않고 유기질비료와 붕사, 석회비료에 유황을 첨가해 새롭게 밭을 꾸밉니다.
마늘은 잘 되는 땅이 따로 있다는데…….
작은 불안감은 쉽게 가지질 않습니다.

 


몸을 움직여 땀을 흘리는 것이 머리 쓰는 일보다 훨씬 적성에 맞는 것 같습니다.
일손을 덜어보겠다고 지난해봄에 구입했던 중고관리기를 꺼냈습니다.
구입만 해 놓고 기계 다루는 일엔 소질이 없어 헛간에 내버리다시피 방치해왔습니다.
그러나 정해진 시간 안에 일을 매듭짓기 위해서는 이제라도 기계의 힘을 빌려야만 될 것 같습니다.
세워둔 기계 앞에만 서면 "쓸데없는 데에 돈을 쳐들었다"고 입버릇처럼 내뱉는 옆지기의 빈정거림도 은근히 부담으로 남았습니다.
헛간에서 기계를 꺼내며 슬며시 옆지기의 표정부터 살핍니다.
연료콕크를 열고 시동줄을 힘차게 잡아당기자 경쾌하게 기계가 돌아갑니다.
그동안 주변사람들로부터 귀동냥한 것들을 밑천삼아 새로 꾸밀 마늘밭에 로터리를 칩니다.
앞으로 나갔다, 뒤로 물러섰다.
밭고랑에 쳐 박힌 기계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고 진땀깨나 흘립니다.
모든 것이 서툴고 낯설어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이다보니 힘은 힘대로 들었습니다만
기계의 쓰임새를 하나하나 익히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다락골사랑 > 다락골 사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겨울 채비.  (0) 2010.12.07
가을 뒤에 오는 허전함.  (0) 2010.11.02
엎드렸던 들깨가 꽃을 피었습니다.  (0) 2010.09.28
진도 여행-맘속에 항상 품고 사는 곳  (0) 2010.09.23
태풍! 그 후.  (0) 2010.09.07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