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일반/농기자제

[지게]

누촌애(김영수) 2007. 4. 20. 21:52
[지게]  

지게는 우리 민족이 발명(?)한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전천후 운반 도구다.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은 자그만 체격의 한국인들이 지게 하나로 무거운 탄약이며 군수품들을 짊어지고 길도 제대로 없는 험한 산길과 들판을 재빠르게 이동하는 발군의 수송력에 감탄해 지게를 A-frame이라고 불렀다. 지게를 앞에서 보면 영어 알파벳 A와 닮았다해서 붙인 이름.

지게는 가지가 위로 벋은 Y자형의 2개의 자연목을 위는 좁고 아래는 벌어지도록 세워 사이사이에 3~4개의 세장을 끼운뒤 탕개로 조여 고정시킨다. 중간부분 세장과 다리 아래에다 사용하는 사람의 키에 맞춰 짚으로 엮은 멜빵을 달고 등이 닿는 부분에는 아프지 않도록 짚으로 만든 등받이를 달았다. 세울 때는 끝부분이 V자형인 지게작대기를 이용해 삼각모양으로 버텨 세운다.
[키보다 더 큰 지게를 지고 나무하러 가기 전에 환하게 웃는 소년. 40대 중반 이상의 농촌출신들은 어린 시절 학교에 갔다오면 지게를 지고 산에 나무하러 가거나 소 먹이는 것이 일과였다.]
지게는 쓰임새가 다양했다.

겨울에는 산에서 채취한 땔감나무를 지고 오고 봄 여름철에는 풀이나 거름을 지는데 제격이었다. 이정갑(78·함양군 병곡면 원산리) 할아버지는 “아이들이 자기 키보다 큰 아버지 지게를 지고 산에서 나무를 한짐 해오는 모습은 농촌마을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며 “특히 뒤에서 보면 아이는 보이지 않고 나무나 커다란 풀더미만 ‘털레털레’ 걸어가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지게는 또 피곤하면 진 채로 뒤로 누워 자는 침대역할을 하기도 했고 아버지가 아픈 아이나 노인을 싣고 10리길 신작로를 터벅터벅 걸어 읍이나 면소재지의 의원이나 약방까지 옮기는 이동앰뷸런스이기도 했다. 한국전쟁때 아버지나 형들은 지게에 이부자리, 옷가지, 세간살림을 싣고 그위에 막내 놈까지 얹어 피란길을 재촉했다.

그만큼 지게는 우리의 생활과 친숙했고 어른들은 지게 지는 것만 봐도 어느정도 ‘될성부른 농군’을 대번 알아차렸다.

배상백(43·합천군 쌍백면)씨는 “어른들은 지게를 지면 지게가 등에 ‘착착’ 달라붙었다”며 “우리도 어린시절부터 지게로 나무나 풀을 숱하게 했지만 어느 순간 지게질이 익숙해져 지게가 등에 착착 붙기 시작하면 어른들로부터 ‘인자 다 컸네’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밝혔다. 말하자면 지게질이나 낫질은 농촌살이의 기초필수 과목이었다.

함양군 함양읍 용평리 시장안에서 46년째 전통 농기구를 만들고 있는 이경생(64)씨는 “이제는 경운기나 트랙터가 많이 보급된데다 농촌에 젊은 사람도 없어 지게는 경운기가 못들어가는 산골지역에서나 간혹 노인들이 사용할 뿐”이라며 “지게 주문도 거의 없어 요즘은 만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지게는 농촌은 물론 도회지에서도 최고의 호구수단이었다. 60년대까지만 해도 서울에서 지게 하나면 5식구 밥은 굶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짐운반에는 단연 지게였다.특히 역전은 지게꾼들의 안방이어서 지게꾼들의 고달픈 처지와 함께 흔히 ‘역전 지게꾼도 …’라는 말이 사용됐다.

골목길이나 산비탈 내리막길에는 물론 새색시 시집갈때면 혼수품 지고가던 지게,나무를 지고 다니던 장작지게,북청 물장수의 물지게, 똥이나 오줌을 담아 밭에 붓던 똥지게까지 지게의 쓰임은 다양하기만 했다.

이정갑 할아버지는 “하루종일 일한뒤 해질녘 지게를 한짐 지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몸은 피곤해도 마음은 지게 무게만큼이나 풍성했다”고 회고했다.

지게에 얽힌 우화는 많다. 사이좋은 형제가 밤새 볏가리를 서로의 노적가리에 옮겨주느라 끙끙거릴때 사용한 것이 지게였다. 가난한 아버지가 숲 깊은 곳에 할아버지를 버리러 갈때 지게를 이용했고 아들이 그런 아버지를 보고 아버지도 할아버지가 되면 버릴 때 사용하겠다며 버려진 할아버지 곁에서 되가져온 것도 지게였다.

지게는 이제 청소년세대에게는 ‘선녀와 나무꾼’ 정도로만 기억되고 있다. 최근 인기연예인 임창정이 영화 ‘해적 디스코왕이 되다’에 똥지게꾼으로 출연했다는데 영화가 개봉된다면 우리의 10대들은 스크린으로나마 지게를 알게될 것 같다. 똥지게가 나온다면 당연히 재래식 화장실도 덤으로 나올 것이다.

 < 지게의 부분 명칭과 구실 >
 
새고자리 : 지게의 맨 윗부분으로 목발쪽보다 좁다. 지게를 지거나 앞으로 숙이거나 뒤로 뉘일 때 이것을 잡는다.
세장 : 지게의 두 짝이 짜이어 있도록 가로질러 박은 나무. 지게에는 4∼6개의 세장이 있으며 그 이름 또한 다르다.
윗세장 : 맨 위의 세장. 까막세장이라고도 한다. 지게를 세울 때 작대기 끝을 여기에 끼우는데 작대기가 움직이지 않도록 가운데에 홈을 파 놓는다.
밀삐세장 : 윗세장 아래에 가로 박은 나무. 이곳에 밀삐 윗끈을 매며 등태의 윗끈도 닿는다.
허리세장 : 지게의 밑쪽 세장 위에 가로 댄 나무. 이곳에 밀삐 윗끈을 매며 등태의 윗끈도 닿는다.
밑세장 : 지게의 맨 아랫세장.
가지 : 짐을 떠받치는 나무. 지게 몸에서 조금 윗쪽으로 돋혀 나왔다. 흔히 자연적으로 돋아난 나무를 쓰지만, 쪽지게의 경우 다른 나무를 깎아 끼운다.
등태 : 지게를 질 때 등이 닿는 곳에 짚으로 퉁퉁하게 엮어 댄 것. 곳에 따라 형태가 다르며 이를 대지 않는 곳도 있다.
목발 : 지게 몸둥이의 아랫부분. 동발이라고도 한다. 흔히 밀삐 아랫도리가 걸리도록 작은 턱을 붙인다.
밀삐 : 짚으로 엮은 끈. 밀삐 세장과 목발에 묶는다.
밀삐 아랫도리 : 밀삐가 목발에 매어진 부분의 끈.
탕개줄 : 지게의 몸과 몸이 빠지지 않도록 8자꼴로 틀어서 감아놓은 줄. 이 사이에 나무꾼들이 낫을 걸기도 한다.
탕개목 : 탕개줄이 풀리지 않도록 질러놓은 나무.
지게꼬리 : 지게에 짐을 싣고 위로 눌러 매기 위해 목발에 매어 가지에 감아놓은 줄. 지꼬리라고도 한다.
지게 작대기 : 지게를 세울 때 버티어 놓는 끝이 아귀진 나무. 지게를 지고 비탈을 내려올 때 지팡이로도 쓰며, 풀섶을 헤쳐나갈 때 길을 틔우기도 한다. 아귀진 부분은 가위다리처럼 양쪽으로 벌어지는 것이 보통이나 세 가닥짜리를 쓰기도 하는데, 이것은 작대기가 세장에서 미끄러지지 않는 이점이 있다.
알구지 : 지게 작대기 맨 위의 아귀진 부분. 예전 보부상이나 등짐장수들은 알구지 대신 노치(‘V’자 꼴로 베어낸 자리)를 지은 작대기를 썼다.  

 < 지게에 숨어 있는 슬기 >
  
지게는 무게중심과 관련이 깊은 운반용구이다. 지게가 삼각 구조의 모습으로 세워져 있을 때는 무게중심을 작대기가 받아내고 있다. 하지만 지게를 졌을 때는 허리세장과 등받이줄, 등태가 있는 사람의 등이 무게중심을 받게 된다. 또한 무거운 짐을 질 경우에는 무게의 중심이 허리에 놓이도록 지게 다리가 훨씬 올라간 지게를 사용하였다. 이러한 것은 무게중심의 이동을 통해 용이하게 짐을 운반하고자 한 조상들의 슬기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